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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에 변화를 주었다. 플라스틱 수초 장식물을 들어내고 진짜 수초를 넣은 것이다. 인공 수초를 빼는 과정에서 플래티의 새끼들이 많이 보인다. 플래티를 키우면서 번식하는 걸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처음 본다.

오늘은 물갈이를 보다 더 편하게 하기 위해 사이펀과 연결한 여과 장치를 만들었다. 좀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환수를 할 수 있을 듯하다.

가만히 어항 속 세계를 본다. 인공수초와 달리 진짜 수초들은 어항 속에서 광합성을 한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는 활동을 말한다. 그래서 수초가 들어간 다음부터 조명은 매우 중요하다. 중학교 상식이지만 식물은 밝을 때만 광합성을 한다. 빛이 부족하면 광합성이 이루어지지 않아 어항 속 수질이 악화되는 데다가 수초들도 죽는다.

얼마전 사무실에도 식물을 들여놓았는데 어항까지 초록이들이 자란다. 마음에 봄바람이 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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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데, 주말 농장 이야기가 나온다. 나 포함해 넷 중 둘은 작년까지 주말 농장을 다녔고, 다른 한 명도 예전에 주말 농장을 한 경험이 있다. 그러니 셋은 농사꾼인셈. 감자, 고구마, 대파, 쪽파, 무, 배추, 오이 등등 각자가 쏟아내는 농사꾼 경험이 점심식탁에 푸짐하게 차려진다. 어떤 작물은 언제 심어야 하며, 어떤 건 약도 뿌려야 할만큼 병충해에 취약해 키우기 고약하다는 말도 한다. 

순댓국에 밥 말아 먹으면서도 농사 이야기가 쏙쏙 들어와 흥미롭다. 기껏해야 사무실에 식물 몇개 들여 놓고 쳐다보는 재미로 살고 있는데, 누구는 주말마다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다채롭게 농작물을 키우고 있었다니 같이 식사하는 동료들이 다르게 보인다. 내 사무실에는 오래전부터 키우던 페페가 하나 있다. 어쩌다보니 다 죽었는데, 한가닥 살려서 물꽂이로 키우는데, 거기서 다시 새싹도 나오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 

012
항아리병 속에서는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파란컵 잔에서도 뿌리가 내리고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다.

 

회사 생활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애완식물로 페페만 기르고 있었지만 봄의 기운을 보다 더 가깝게 느끼고자 피토니아와 테이블야자를 들여 놓았다. 전문 농사꾼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얘네들을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내가 먼저 회사를 그만둘지, 얘네들이 먼저 사망할지 ㅎㅎ 어찌됐든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모든 것들에게 건투를 빌어 보는 봄이다. 

 

피토니아(화이트 애나)
테이블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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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딸과 함께 영화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을 보았다. 아주 오래전 비디오를 빌려다가 집에서 봤었는데 최근 OTT를 통해  <반지의 제왕 1,2>편을 보게 되면서 다시 한 번 톨킨이 구축한 세계관에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다시 영화관에 재개봉한 <반지의 제왕>은, 지축을 흔드는 듯한 말발굽 소리가 선명한 돌비 시스템으로 전해지고 절대반지를 없애기 위한 프로도와 샘의 고통스럽고 힘겨운 여정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딸 덕분에 20년전 영화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허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나를 설레게 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새로 개봉되는 영화를 광고하는데 <폭풍의 언덕>이 영화로 나왔나 보다. 

"린턴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무성한 숲의 나뭇잎 같은 거야. 겨울이 오고 시간이 지나면 변할 거라는 거 잘 알아. 하지만 히스클리프를 향한 내 사랑은 그 숲 아래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바위와 같아. 눈에 띄는 즐거움을 주는 건 아니지만 꼭 거기 있어야 하는 존재.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야!"

지독한 집착적 사랑의 히스클리프와 자유로운 영혼 캐서린의 광기어린 사랑. 책 전반에 짙게 깔린 분위기, 음침하고 어둡고 쓸쓸하기까지했던 느낌이 가셔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책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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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겪게되는 아픈 갈등들은 시간이 지나 원인과 결과만 남은 앙상한 기억만 남는다. 그런 기억들은 아무렇지 않게 뚝뚝 꺾어 추억의 불쏘시개로 쓰인다. 그래서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고 고통은 계속되는 거다. 그 이유와 해결 과정은 모두 망각한 채 다시 반복되는 갈등의 골로 시나브로 빠져들어간다. 함정에 빠져버리면 다시 빠져나오려고 골머리를 앓지만 앙상한 기억들을 떠올려보는 일은 허튼 수작에 불과하다. 그냥 슬픈 일이다. 속상해하고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슬프고 슬프게 받아들일 일이다. 

갈등은 결국 슬프다. 연민일 수도, 동정일 수도 있다. 씁쓸하다 못해 아리기까지 한 입맛을 느끼는 일이다. 무슨 짓을 해도 무력함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 이럴 때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슬픈 일이 생긴 것이다. 그냥 슬픔에 빠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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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 화단이 또 예쁘게 꾸며졌다. 도시에서 살면 이런 사소하지만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는 심미적 구조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인공적이지만 세심한 인간의 도시 문명을 접하면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시골 정류장은 어떨까? 어느 지리산 산골마을은 하루 3~5회 정도 버스가 온다. 정류장 구석에는 거미줄이 커다랗게 쳐져 있고 언제 붙였는지 모를 광고판들이 여기저기 색이 바래고 귀퉁이가 떨어져 바람에 팔랑거린다. 아무렇게나 써져있는 콜택시 번호 중에는 017도 있더라.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인공 구조물 밖으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숲과 들판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들이 낡은 정류장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또한 경이롭다. 오래되어 낡음을 생생한 자연이 감싸안은 듯하다.

존재들에 이유를 분이고 엮일 것 같지 않은 관계를 얶어보면 세상은 다른 재미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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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잎이 무성한 나무
잎을 다 떨군 나무


한날 거의 동시간에 찍은 두 개의 나무 사진이다. 여의도 LG빌딩에서 마포대교로 넘어가는 교차로, 이곳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두 대왕참나무 그늘목이 너무 상반된 모습이다. 같은 공간에서 하나는 지난 가을에 떨어지지 못한 잎들이 무수히 매달려 있고, 다른 나무에는 마른 나뭇잎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 생각에는 잎을 떨구지 못한 나무가 이상해 보인다.

두 나무에서 나타나는 외관상 극명한 차이가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졌다. 이를 위해 먼저 “나무는 왜 가을에 잎을 떨어뜨릴까?”를 알아보았다.

나무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에너지를 성장보다는 보존으로 전환한다. 즉, 낮의 길이가 점차 짧아짐에 따라 광합성의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나무는 잎에 가는 영양분을 줄인다. 이때 잎과 나뭇가지가 연결된 부분에 ‘떨켜’라는 조직이 물과 양분이 오가는 길을 막는다. 잎에 영양분의 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잎은 색깔이 변하기 시작하고, 나뭇가지와 잎을 연결하는 부위에서 일종의 가위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마른 나뭇잎이 가지에서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이 가위 메커니즘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위와 같이 나뭇잎이 매달린채 겨울을 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물론 겨우내 나뭇잎은 이미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잎을 떨어뜨리는데 여의도의 그 대왕참나무 그늘목은 왜 잎을 그대로 달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설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먼저, 이상기온. 너무 갑작스럽게 추워져서 가위 메커니즘이 작동할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즉 떨켜라는 조직이 작동하기 전에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가위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았을 거라는 가설이다. 이럴 경우 나무는 즉시 나뭇잎을 죽인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 하나다.

두 번째 가설은 질산 비료의 과다 투여다. 영양이 풍부한 나무는 성장에 더 중점을 두는 전략을 택한다. 최대한 나무잎을 늦게까지 유지하면서 자신의 몸집을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더 견딜 수 없이 추워지면 바로 영양 공급을 중단한다. 그래서 나뭇잎이 가지에 남게 된다.

잎을 달고 있는 나무가 처음 이곳에 심어진 게 2019년도였다. 이곳에 심어졌을 당시에도 제대로 잎을 틔우지 못하고 비실비실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수액 봉투까지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조마조마했는데, 어찌어찌 살았났다. 8월이 지나서야 잎이 듬성듬성 자라났을 정도니 그야말로 기사회생한 셈이다. 아마도 이런 어긋난 성장 흐름이 지금처럼 마른 잎을 남기고 겨울을 나는 모습으로 남게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봄은 겨울을 난 식물에게 축복과 같은 마법은 펼칠 거라 본다. 조만간 저 마른 잎들을 떨구면서 새순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늦더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나무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여의도 대왕참나무 그늘목은 자전거 출근길에 항상 만나는 나무라 이제는 정이 깊이 간다.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는 점에서도 애틋한 마음이지만, 주위 다른 나무들과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관찰하는 재미를 준다. 이 나무 덕분에 위와 같은 과학적 지식을 탐구하는 재미도 누렸다. 나에게 더없이 귀한 나무다.


마른 잎이 무성했던 나무에서 새순이 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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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물꽂이로 키워 온 페페의 뿌리가 풍성했다. 오늘 흙에 옮겨 심었다. 흙은 예전 산세브리아를 키우던 화분에서 가져 왔다. 흙색은 검었다. 한창 세계 3대 곡창지역이라는 우크라이나 땅의 흙도 검다고 들었다. 아주 좋은 흙이다.

흙도 방치하면 건조하고 푸석푸석해지며 빈약해진다. 비록 화분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지만, 틈틈히 물꽂이에 있던 물들을 부어주면서 흙을 건강하게 키웠다. 무생물인 흙이 건강하다?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만, 흙에서 살아가는 미생물들이 건강하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흙이다.

물꽂이로 사용된 물이 흙속에서 식물과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식물의 뿌리에는 여러 미생물들이 자란다고 한다. 마치 우리의 장과 같다. 장에 사는 미생물들이 우리가 먹은 음식들을 잘 분해해 배출을 돕듯이 식물의 뿌리에 사는 미생물들은 뿌리가 영양분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어찌됐든 이제 페페의 뿌리는 물속에서 나와 당연히 있어야 할 흙속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분명하다. 잘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는 봄의 일이다. 그저 나는 지켜보고 응원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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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를 앞세워 갈라치기 하는 세력과 분노와 공포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세력의 싸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가 가진 공통점이다.

대선 기간 중 양측은 총칼만 안 들었을 뿐, 말로 오가는 증오의 표현들은 총칼 못지 않았다. 이렇게 비이성적인 난투극으로 대선을 치루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싶은 마음인데, 과연 그런 게 가능해질까?  

상대를 상대로 이해하지 않고, 전부 몰살하고 절멸해야할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양쪽 다 있더라. 그런 사람들에게 먹이(관심)를 주는 사람도 많다. 생각을 하면서 살지 않으면 그냥 사는 대로 생각하는 바보가 된 사람들이다.

이재명이든 윤석렬이든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왔으면 그만한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것인데 그걸 보지 않고 어떻게든 흠결만 잡고 늘어졌다면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좀 의심해 보시길 바란다. 검증? 검증이 선을 넘으면 그냥 확증편향의 사고일 뿐이고, 음모론일 뿐이다. 음모론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만한 사람들도 열심히 음모론을 전파하는 것을 보면 누구말대로 선거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극단적 대립만 불러오는 지금의 정치 체제는 바뀌어야 한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이런 극단적이고 비이성적 광기만을 불러오는 정치 체제를 개혁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유권자들이 '모 아니면 도'만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선거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수 없다.

윤석열 당선자도 정치의 극단적 모습을 아주 생생히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국민들의 요구가 민주당 아니면 국민의 힘 두 가지 선택지로만 선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또록 정치의 자장 안에서 협력하고 논쟁하는 모습을 보일 때 민주주의는 한단계 더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윤 당선자는 정권 교체를 모토로 내세웠다. 바라건대, 정권 교체를 넘어 정치 교체를 추진하는 지도자가 되어 주길 바란다.

막판 정치 교체를 전면에 내세워 표를 받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매번 위기의 순간에만 정치 교체를 내세워 구걸하지 말고 다수당의 지도력을 발휘해 윤석열 당선자와 정치적 대협상에 나서야 한다.

더 강력한 민주주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주인된 삶을 살 수 있게 돕는다. 주인된 사람들의 의식이 모일수록 민주주의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이런 선순환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극단적 대립을 보였던 대선이었지만 그래도 여러 모습들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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