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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도 혁명도 실시간 SNS로 전파되는 세상이다. 머나먼 타국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신경이 집중된다. 지하벙커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울음도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군인의 모습도 내 작은 휴대폰으로 시시각각 전달되었다.

아파트를 향해 떨어지는 미사일의 모습, 곧바로 이어지는 폭발과 섬광. 전쟁에서 빛과 열은 대부분 참혹하다. 차라리 지하의 어둠이 더 평화롭다. 전쟁이 일상의 모든 걸 거꾸로 바꿔놓고 말았다.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안도하면서도 여전히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세상은 그만큼 가까워졌다. 부디 이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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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권이 생긴 이래 대통령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었다. 직접적인 선거 활동을 한 경우도 있었고, 간접적인 지지-반대 발언을 온라인 공간에서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말 꺼내기가 쉽지 않다. 줄곧 지지했던 민주당에 표를 주기가 어렵다.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생긴 건 서울과 부산시장에 후보를 냈을 때부터다. 그때 민주당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말로만 반성하는 관행, 서민을 위한 정책 실종,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 민중을 외면하는 나라 살림...

무엇보다 변하지 않은 공포와 분노 마케팅. 언제까지 보수세력에 대한 반대 이익만 취득하며 살 건가? 이런 이유로 당연히 민주당은 이제 심판의 주역이 아닌 대상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는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우리가 더 지지해 주지 않아서... 우리가 더 밀어주지 않아서... 우리가 더 열심히 응원하지 않아서... 한국 사회가 뒤로 가는 열차에 올라탄 것일까?  마치 "나에게 표를 안주면 국힘당이 되는데, 그래도 좋아?"라며 사람들을 길들여 왔고, 그렇게 몸집을 키워오더니 이제 스스로 괴물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당연히 국힘당 윤석렬은 최악의 후보다. 그런데 그 최악의 후보와 민주당은 졸전을 치르고 있다. 역시 민주당 주변인들은 최악의 후보를 막아야 한다며 표를 달라고 한다.

물론 윤석렬에 비해 이재명 후보는 좋은 후보다. 대장동 의혹도 부풀려진거라는데 동의하며 그의 성품이 좀 모질고 막가는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선택받았다는 것은 그것을 상쇄할만한 그의 장점이 더 크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민주당도 그러한가?

나에게 "윤석렬을 막기 위해 이재명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은 오히려 더더욱 나를 망설이게 한다. 민주당은 언제까지 국힘당의 반대파로만 살려고 하나? 결국 국힘당과의 적대적 공존으로 생명을 유지하겠다는 거 아닌가? 마치 남북의 보수 세력들이 분단체제를 이용해 온 것처럼 말이다.

허상과 꿈을 쫓는 일이 되겠지만, 그냥 이 땅이 일궈온 민주주의를 믿기로 했다. 어떤 세력도 어떤 권력도 민주주의의 시스템에서 권력은 제한적일 것이다. 이재명이든 윤석렬이든 그들 역시 이 제도의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이번 선거는 이 지겨운 가스라이팅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해왔듯이 다시 민주당에 표를 준다면 민주당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땅의 대통령 선거는 승자독식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변화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꿈꾸는 나는 이번 선거의 목표를 민주당 심판과 양당체제의 균열에 두겠다. 아마도 이 기조는 민주당이 다당제 정착 및 결선투표제 실천이 없다면 계속 이어질 것이다.

더이상 공포와 분노 마케팅으로 표를 구걸하지 마시라.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겠다면 평소의 행동으로 보여달라. 매번 이렇게 선거 때만 하겠다고 하지 말고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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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초등 6학년 딸이 '눈뜨고 코 베이징'이라며 이번 쇼트트랙 판정 논란 관련 유튜브를 보내왔다. 매번 개나 고양이, 아니면 노래 영상만 보내오던 녀석이 이런 영상도 보내오는 걸 보면 그 또래 아이들에게도 꽤 많은 관심을 받는 사건인가보다. 어찌됐든 올림픽에 전혀 관심없던 초딩들도 올림픽을 알게 하다니 실로 놀라운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에게 올림픽이 부정, 부패, 싸움, 욕심으로만 기억된다면 그 후유증은 어떻게 감당할까? 그래서 어제 저녁에는 아이와 함께 스포츠가 가지는 의미, 친구들과 즐기는 게임과 다를 바 없는 스포츠의 정신을 이야기해 보았다.

우리나라는 쇼트트랙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이후 절반에 가까운 금메달을 가져간 쇼트트랙 강국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방법으로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쇼트트랙은 스피드스케이팅과 달리 변수가 아주 많은 경기이다. 즉, 억울한 일도 생기고 논란도 많은 종목인 것이다. 오노 사건 기억하는가? 하지만 안톤 오노 선수는 쇼트트랙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한 선수 중 한명이었다. 국뽕 기사와 반중 정서에 취해 쇼트트랙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까지 흥분하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지 않나 싶다.
(참고 칼럼: 한발짝 물러서 본 '쇼트트랙 논란'[김세훈의 스포츠IN]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토니 스타크는 고립된 우주선 안에서 네뷸라와 손가락 농구게임을 한다. 네뷸라는 패배했을 때 흥분해 칼을 들지만 토니는 패배해도 좋은 게임이었다며 악수를 청했다. 스포츠는 서로의 열정과 노력에 대해 응원하고 격려하며 즐기는 것이다. 괜히 비분강개하여 쓸데없이 에너지 낭비하지 말자. 그럴바에는 그냥 발닦고 드라마나 보자. 비록 여러 이유로 선수들은 실패한다. 한명의 우승자가 있다면 그 몇십배의 패배자가 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더 멋진 일 아닌가? 승리는 위대하지만 승리만 보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선수들의 활약을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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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호, 불멸의 호랑이


"난 반드시 '인왕산 호랑이'를 때려잡겠다."
이 말이 의미없는 말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인왕산에는 이제 호랑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 놓고 인왕산 주변의 고양이를 잡아 죽이면서 '이 고양이들이 호랑이가 될 수도 있고, 호랑이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여러 이유를 붙일 것이다. '호랑이와 비슷하니까', '호랑이가 고양이과 동물이니까', '호랑이처럼 육식 동물이니까' 등등

지금 정용진 회장과 윤석렬 후보를 비롯해 극우 똘마니들이 하는 '멸공' 인증이 이와 같다. 대한민국 땅에서 자취가 사라진 공산당을 멸하겠다는 건, 결국 나와 다른 생각을 공산주의로 몰아서 멸해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기 위함일 뿐이다.

만일, 인왕산에 호랑이가 있다면?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 호랑이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고 종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설령, 우리 사회에 공산주의적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민주주의 사회의 건강한 다양성을 위해, 민주주의 건강함을 해치지 않는 선해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해 보호해 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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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 시작됐다. 늘 그래왔듯이 월요일은 눈비만 없다면 따릉이를 타는 것이 좋다. 버스나 지하철이나 그 어느 요일보다 복잡하다. 짐짝처럼 실려가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나홀로 페달을 밟고 질주하는 게 좋다. 오늘도 그런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집앞 따릉이 주차대를 보니 대기 자전거 "0".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숫자다. 월요일이니 그렇다. 보통 2~3대 정도는 남아 있더니 오늘은 씨가 말랐다. 좀 멀리 떨어진 전철역 앞 주차대에는 따릉이가 많이 남아 있다. 거기서 따릉이를 타고 갈까, 아니면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갈까? 전철역을 향해 가는 도중에도 수십번 생각이 왔다갔다 한다.

'그래도 지하철은 버스보다 나을 거야.'
'아냐, 지하철이나 버스나 월요일의 저주는 피할 수 없어.'
'그래도 시간이 이미 많이 지났어. 따릉이 타고 갔다가는 지각하겠어.'
'가뜩이나 오늘부터 사원증 패스 사용한다는데 첫날부터 지각자로 찍히면 안되는 거야.'

전철역까지 가는 그 짧은 시간 난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잰다. 뭐 하나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 그대로 폭발한다. 아니 이런 사소한 일에도 왜 이렇게 생각이 복잡하고 심난한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좀더 대범해지고,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별것도 아닌 일이 생각이 좁고 편협해지고 쪼그라든다.

따릉이를 탈 거냐 안 탈 거냐라는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나고 나는 왜 이런 생각에 빠져 출근하고 있나라는 자괴감 비슷한 감정이 솟구쳐 오른다. 이쯤되니 내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하다. '까짓거 지각 좀 하라지, 난 짐짝이 되기 보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겠어.' 라는 생각으로 따릉이를 선택했다. 결과에 책임지면 되는 것이며,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되는 거다. 안전한 선에서 최대한 빨리 페달을 밟는다면 지각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지각을 좀 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은 크지 않다. 언제나 선택이 나를 만드는 거다. 작은 선택이 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결국 책임은 스스로 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임을 안다면 어떤 선택이든 나쁘지 않다.

결국 난 따릉이를 타고 출근했고, 보통 때보타 20여분 정도 늦게 출근했지만 지각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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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항상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지만 왜 월요일만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오늘은 학생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도 버스는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뒷문으로 탑승해서 간신히 문을 닫았고, 조금씩 주춤거리며 몇센티미터씩 들어가는데, 발이 무언가에 걸린다. 곧이어 어떤 사람이 외친다.
"여기 휠체어 있어요. 죄송합니다. 발 조심해 주세요."
버스 뒷문 안쪽 공간은 휠체어 공간이다. 내가 탄 버스는 저상버스였고, 마침 휠체어를 탄 장애인 한 분이 탑승한 상태였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에 장애인의 발이 걸린다. 만원 버스에서 저마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사정에도 자신의 출근길 전쟁을 치르는 북새통은 어쩔 수 없다. 거기에 낀 장애인의 고통은 더하면 더했지 편할리가 없다.
평상시 개봉동을 출발한 버스는 보통 신도림에서 많은 사람을 내리고 좀 한산해지다가 여의도에서 더 많이 내려 그나마 숨통이 트이고는 했다. 그런데 이날은 어찌된 일인지 신도림에서 더 많이, 영등포와 여의도에서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의 발은 점점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되고, 뒷문의 출입구 앞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무간지옥이 펼쳐졌다.

출처: 투데이신문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서울 북동부까지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이 버스의 탑승객들은 여의도와 마포 일대에서는 주로 젊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구로와 강북, 노원에서는 나이든 분들이 많이 이용한다. 그만큼 다양한 이용객들이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출퇴근 시간의 배차 간격은 들쑥날쑥... 시종점에서 일정한 시간에 출발한다 해도 워낙에 긴 구간을 운행하다 보니 중간에 버스와 버스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아지거나 벌어지는 불규칙해지면서 간혹 특정버스에서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의 그림이 펼쳐지게 된다.

"아휴 죽겠네. 저 쇼크 오면 버스 멈춰요. 그럼 여러분도 출근 더 늦어져요."
그의 외침은 공허하다. 막 버스로 탑승하는 승객들이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뒷문으로 승차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버스 기사마저도 앞문에서 타려는 승객들에게 다음 버스를 탈 것을 설득하거나 억지로 타려는 승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판에 뒷문 승객들을 살펴볼 여력은 없다. 그렇게 되니 뒷문 출입구쪽은 아수라장이다. 장애인의 그만 타 달라는 외침도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버스를 타고서야 장애인의 존재를 인지할 뿐,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도 신경 쓸 수도 없는 지경이다.

"지금 어디죠? 저 여의도역 가려고 하는데, 어디서 내리는 게 가까운가요? 여의도 환승센터라고요? 감사합니다. 어떻게 내리냐고요? 노래를 해야죠. 안 그러면 못내려요."

나도 밀리다 밀려서 그의 옆자리에 서게 되었고 목적지가 가까워진 그와 짧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여의도 환승센터에 버스가 도착했다. . 그 분이 외치기 시작한다.

"잠시 내렸다가 타 주세요. 저 내릴게요. (버스 기사에게) 기사님, 저 내릴게요."
뒷문에 서 있던 사람들이 길을 열어 주었다. 잠시 기다려 보지만 버스 휠체어 승하차용 발판이 내려오지 않자, 다시 그 분은 다시 바깥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기 선생님, 힘좀 쓰실 수 있으면 제 휠체어 좀 잡아 주시겠어요? 아니 그렇게 잡으시면 허리 나가요. 여기 잡아 주세요."
이때, 승하차용 발판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는 무사히 하차할 수 있었다. 그는 9호선을 타는게 목적이었던거 같은데, 9호선 전철은 무사히 탔을까? 9호선도 출퇴근 시간에 지옥도가 펼쳐진다는데...

그의 말대로 그는 새벽부터 나섰어야 했을까? 모르겠다. 비교적 시간을 칼 같이 사용하는 현대인의 삶에서 굳이 장애인에게만 추가적인 시간을 요구하는 건 옳지 않다. 물론 휠체어로 이동하는 일이 다른 이동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혼잡한 버스에서 그가 겪어야 할 그 고통은 여러가지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다.

왜 이 버스는 이 시간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혼잡한 버스에서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어떻게 가능할까?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이동 수단으로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휠체어 장애인도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더 편해져야 할 이유도 없고 더 고통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그의 고통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 어쩌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그도 힘들겠지만 출퇴근 시간 대라 할지라도 필요하면 기꺼이 버스에 탑승하는 일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도 그도 더 나은 방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서로 같이 익숙해져야 할테니 말이다.


20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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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키보드를 마침내 장만했다. 옛 타자기 느낌의 디자인으로 키감도 확실하고 소음이 매우 적다. 무선 키보드를 살 때 두 가지 우려했던 것이 있다.
하나는 키감이다. 노트북의 키감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반 PC 키보드의 확실한 키감을 넘어 집에서는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다 보니 노트북처럼 누른건지 안누른 건지 알 수 없는 느낌의 키감을 꺼려한다. 우선 이번 키보드는 키감에서는 확실히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좀 뻑뻑한 느낌이 들 수는 있겠다.
다음은 PC와 태블릿을 오가며 사용할 수 있는 편이성이 잘 구현되느냐이다. 별다른 조작없이 Function 키로 쉽게 전환이 가능하다. 태블릿과 PC를 오가며 사용하기에 아주 좋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이 후기 역시 무선 키보드를 활용해 태블릿에 작성하고 있다.


일단 두 가지에서 만족스럽다. 여기다 더해 구식 타자기 느낌으로 레트로 감성을 한껏 느낄 수 있어 좋다. 따라서 편의성, 디자인, 효용성 모두에서 만족스러운 물건이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다음 교육과정과 교과서 업무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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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분인지
어느 때보다 청명한 하늘.
자전거 주행거리 총 500km 찍은 날.
지난해 이맘때는 800km를 넘겼지만
올해는 목표없이 흘러가는대로 사는 걸로...
바퀴가 굴러가고 싶은 만큼 가는 거지.

욕심없이 사는 건지
안일하게 사는 건지
종잡을 수 없다.
사십을 지나 곧 오십이 가까운데
유혹에 강해진것 같지는 않고
무언가에 혹했던 적은 있었나?
욕심을 내고 쟁취하려 달려든 적은 있었나?

어찌보면 참 제멋에 취해 편하게 살았다.
이제와 사람이 바뀌겠나.
그럼에도 환경과 상황이 바뀌니
사람을 다른 자리로 몰아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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