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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집을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년부터 새로운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본가에서 멀지 않다.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직장이 멀어서, 혹은 결혼 때문에, 아니면 집이 멀리 이사가니까 등등의 이유가 아니면 독립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본가와 한동네라니 이상하게 볼만도 하다.
가족. 참 슬프고 억장이 내려앉는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속하게 되는 집단이고, 그 집단의 보호 아래 성장하고 자라왔으며, 이만큼 살아왔던 고마운 곳이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곳은 감옥이 된다. 내 말과 행동과 생각을 구속하는 일이 생긴다. 머리가 커지면서, 대가리에 피가 마른다는 어느 시점에서 가족이 나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위로보다 상처가 될 때가 많다.

영화 <가족의 탄생>을 보며 입안이 텁텁해지는 건 왜일까. 엄마가 둘(친엄마는 없다)인 채연(정유미)과 아버지가 다른 누나 선경(공효진) 밑에서 자란 경석(봉태규)이 채연의 집에서 이룬 행복의 가능성의 근간에는 따뜻한 정과 이해, 그리고 믿음이 담겨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랑의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1년 반동안 집을 나와 살면서 조금씩 부모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집에 가면 다를 것 없는 일상이 여전히 또아리 틀고 있는 분위기지만, 이해받기를 원해고 사랑해 주길 바라던 나는 변했다. 아니 그 떨어져 사는 기간동안 가족들도 조금씩 변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해체와 재생성, 나는 요즘 다시 집에 들어가 사는 걸 생각 중이다.

 
영화는 기차 안에서 만난 남녀로 시작한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깜찍한 미소를 짓는 채연에게 경석은 흠뻑 빠져든다. “삶은 계란에는 사이다가 있어야” 한다며 넋두리를 풀어놓는 경석이 채연도 싫지 않다.
다시 영화는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미라(문소리)를 보여준다. 집 나간 뒤 5년 만에 찾아오는 남동생 소식에 설레는 미라는 정 많고 걱정 많고 일 많은 평범한 누이의 모습이다. 그런데 5년 만에 찾아온 형철(엄태웅)은 그렇지 않다. 이모 뻘 되는 여자 무신(고두심)을 아내라고 데리고 와 미라에게 태연하게 소개하지만 미라는 당혹스럽다. 게다가 무신의 전 남편의 전 부인의 아이가 찾아와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형철과 무신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신이 어떤 사연이 있는 여자인지, 왜 미라는 결혼을 하지 않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형철이라는 비뚫어진 가부장에 의해 삶이 이상하게 꼬인 무신과 미라만 있다.

다시 영화는 선경(공효진)을 비춘다. 선경은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덜컥 나아버린 엄마가 밉다. 아무데나 정을 주고 상처받았던 엄마가, 그래서 함께 상처받은 자신의 과거가 싫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류승범)와의 사랑도 쉽지 않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소리쳐 보지만 “변했다”는 말밖에는 없다. 변한 것은 선경일까, 아니면 사랑일까. 선경은 헷갈린다. 가족도 연인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땅을 떠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어렵게 어렵게 성사되기 일보직전 선경의 엄마가 세상을 뜬다. 엄마가 떠난 다음에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선경. 그리고 남겨진 배다른 남동생. 선경은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다시 영화는 처음 기차 안에 만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다. 유난하게도 모든 사람에게 잘 해주는 채연(정유미) 때문에 남자친구 경석(봉태규)은 괴롭기 그지없다. 경석은 누나의 조언을 듣고자 채연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약속한 날 채연은 집나간 다른 남자의 아이를 찾아 헤매느라 경석의 집에 오지 못한다. 화가 난 경석이 채연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채연은 집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여기까지 경석이가 쫓아와 다시 화해를 요청하지만 뜽금없이 채연에게 온 전화 때문에 다시 언성이 높아진다.

“네가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사랑하잖아.”
 

채연의 집 앞에서 헤어질 찰나 집안에서 나온 미라가 경석을 발견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집에서 밥이나 먹으라는 권유를 뿌리치기 위해 채연이 “우리 헤어졌어요.”라고 하지만, 미라는 “헤어지는 게 뭐라고. 밥은 먹고 가”라며 억지로 끌고 들어온다.

채연에게 엄마가 둘이다. 아빠는 없다. 그런데 두 엄마 모두 친엄마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이다. 채연의 ‘헤픈’ 정은 두 엄마가 준 정의 깊이였을 거다. 경석에게 가족은 누나 뿐이다. 어렸을 때 엄마가 죽었지만, 엄마에 대한 인상은 ‘구질구질’하다라는 거다. 그러나 누나는 “정이 많은 분”이라고 한다. 경석은 그런 정을 느끼지 못받고 살아왔다.

그렇게 ‘또 하나의 가족’이 탄생했다. S그룹이 말하는 가전제품들과의 가족 보다는 더 리얼하고, 어찌보면 황당하며, 그래도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는 가족의 탄생이다. 누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이 배우 하나하나의 연기가 돋보였던,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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