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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직장 동료들이 가끔씩 던지는 말이 있다. 젊었을 때는 절대 하지 않았던 말인데, 나이가 드니 저절로 입밖으로 터진다. 변하지 않는 구조와 회사의 인식에 대한 자괴감을 담아서 이렇게...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20대의 젊은 청년 조일병이 내뱉던 그 말은 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무시무시한 폭력 앞에 내던져졌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도 손내밀지 않았으며 모두가 방관했다. 그 절망 앞에서 그는 마지막을 향해 폭주했다. 누가 착하고 순했던 조일병을 그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은 의미없다.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떠들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군 시절(1993~1995) 중대 행정반 게시판에는 군부대 사건사고들이 매주 업데이트 되었다. 나름 경각심을 주기 위해 사례들을 제시함으로써 불미스러운 사고(?)를 막겠다는 취지였지만, 사고의 디테일한 내용이 다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저 누가 어떤 일로 어느 정도의 부상(또는 사망)을 당했으며 어떻게 처리되었다는 정도만 나올 뿐이다. 제시된 내용으로 보면, 대부분의 사고들은 부주의가 원인이거나 병사간 사적 충돌이었고, 일부 상급자의 가혹행위로 인한 단순 사고였다. 

군에 있을 때 옆 대대의 병사가 목욕탕에서 상급자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부대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 소원수리함이 다시 설치되고 모든 병사들이 장교들에게 불려가 일대일 면담을 진행했다. 이런 사고를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것 보다는 병사들의 군기를 다시 잡겠다는 의지로 보였고, 그 기간 중 내무반은 거짓된 엄숙함과 적막함으로 채워졌다. 그 결과는? 군대 내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이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와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로 한 시기가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다. 

드라마 <D.P.> 속 주 공간은 군 병영과 내무반이며 이곳은 짐승들의 공간이다. 내가 다닌 1990년대의 군대와 똑같았다. 내무반의 침상과 관물대, 모포 각잡기, 붉은 취침등 밑에서 주전자로 물을 뿌리고 신라면 뽀글이를 먹는 모습까지 판박이다. 심지어 은밀한 폭력의 공간인 건물 뒷편, 비품 창고, 초소도 아픈 옛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폭력과 부조리, 비합리가 계급과 상명하복이라는 명분으로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공간들이다. 

드라마 속 시간(2014년)은 나와는 한참 멀다. 그런데 폭력의 정도는 극악할 정도다. 물론 영화 속 폭력이 모든 군부대에 똑같이 적용되긴 어려울 것이다. 1990년대 군 복무를 했던 나와 2010년대 군 복무를 했던 사람들은 20년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변한게 없다.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국방부 시계는 멈추어 있거나 아주 느리게 갔던 것은 아닐까?

변화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젊은 20대 청년들을, 계급으로 나누고 복종을 강요하고 다름을 용납하지 않도록 훈련했던 군대의 본질적인 내용이 변화했을까? 난 여전히 답을 모르겠고, 질문도 할 수 없으며, 관심을 가지기가 두렵다. 군 제대 이후 한참동안 군에 재입대하는 꿈을 꾸었다. 언제가부터 이제 그런 꿈을 꾸지 않았는데, 이 드라마 <D.P.>를 보면서 그 꿈이 다시 나타날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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