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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빅 블랙풋 강의 소리, 낚싯대를 던지는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들고, 강물을 따라 흘러들어 가는 것 같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마지막 내레이션


누가 영화보자고 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나에게도 내돈 내고 소장하고 있는 DVD가 하나 있다. 바로 브래드피트가 나오는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화포스터가 주는 풍경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빅플랫풋 강변에서 플라이낚시를 하고 있을 자신을 상상해 보지 않을까.

여행은 참 좋아하면서도 낚시 여행은 단 한번도 없었다. 친구 중에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좀처럼 같이 낚시하러 갈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럴만큼 마음 한편에 여유를 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사실 낚시를 썩 내키지 않은 여가라고 여기는 마음도 한몫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 친구 녀석이 평일날 시간이 되어 낚시나 가자고 했다. 이것도 경험이 아닐까. 낚시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볼 수 있듯, 낚시는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여가다. 자연 속에 있는 나를 느끼고,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속성을 터득해가는 과정이다. 오래전에는 낚시가 먹고 살기위한 행위였겠지만, 지금은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시간일 것이다. 또 세상과는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낚시의 궁극적인 재미는 바로 자연과의 교감이며 나와의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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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낚시꾼을 빗대 '강태공'이라고 한다. 무릇 기다림과 인내의 상징으로서 강태공을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난했다. 그 가난 때문에 아내가 떠날 정도였지만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기다렸다. 미끼 없는 낚시대를 강물에 드리우고 세상을 낚았다. 

백수생활 3개월이면 그 생활에 안주하게 된단다. 곧 태만과 게으름이 생활 깊숙이 자리잡는다는 것일게다. 그말은 경험적 사실일 게다. 나이 80에 세상의 중심에 나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강태공의 그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평소에도 물왕리 낚시터를 자주 찾았다던 친구는 내가 쓸 낚시대도 가져왔을 뿐아니라 손수 설치해주기까지했다. 낚시에 대해서는 'ㄴ'자도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지켜볼 뿐이다. 초심자를 데리고 나서는 낚시일테니 선배로서 이런저런 근심도 있기 마련이라 그런지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찌가 살짝 움직이는 걸 '입질'이라고 해. 그건 아직 물지 않은거야. 붕어가 물면 찌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불쑥 올라오거든. 잉어는 반대로 찌를 쑥 물고 들어가. 그럴 때 잡아채야해."

"떡밥은 너무 꽉 뭉처도 안되고 너무 흐물흐물해서도 안돼. 역시 너무 무겁게 해서 찌가 안보일정도가 되서는 안되고, 반대로 너무 가볍게 해서 물고기가 모이지 못하게 해서도 안되겠지."


안되는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다. 낚시 하는 내내 이런저런 신경도 많이 써준다. 직접 준비해온 버너로 물을 데워 컵라면도 내주었다. 가끔 커피를 끓여 내오기도 했다. 이런 대접도 이만하면 상전대접이다.








 

물왕리 저수지는 붕어와 잉어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바닷물을 막아서 호조벌 곡창지대에 농수를 대기 위해 1946년에 만들어진 저수지다. 이승만 전대통령의 전용낚시터이기도 했던 이곳은 지금도 커다란 붕어들이 심심치않게 올라오는 곳이다.


낚시를 하다보면 물위로 폴짝 뛰어오르는 물고기들과 수면을 스치며 지나가는 새들을 자주 본다. 멀리 숲속에서는 두견새도 울고 있다. 수면에서 부서지는 햇살을 보다보면 그저 정신이 멍해진다. 자연속에 머물 수 있는 즐거움, 이것도 낚시의 하나다. 플라이 낚시를 즐겼던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폴 퀸네트는 그의 책 <인생의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할 때가 온다>에서 이렇게 밝혔다.



‘맑은 물에서 플라이 낚시를 한다는 것은 한동안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플라이 낚시에는 항구성이 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일을 하든 플라이낚시는 항상 거기 있다. 삶의 여정에서 이렇게 한결같은 것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플라이 낚시는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곳에서 벌어진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머리위에서 캐스팅하는 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꼭 플라이낚시만 그럴까. 모든 낚시가 자연이 만들어 준 고독 안에서 나와 신이 대면하는 자리가 아닐까.





 

물론 이런 낚시 예찬에도 불고하고 낚시터와 낚시꾼은 수질오염의 주범이다. 오죽하면 한강 상류에서는 낚시를 금하고 있을까. 물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바로 미끼(떡밥)와 납추다. 이날 내가 뿌린 떡밥의 양도 엄청났다. 이 떡밥들을 물고기들이 다 먹는게 아니기 때문에 썩게 되고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찌 아래에 달게 되어 있는 납추(사진)도 문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민물낚시에 사용된 뒤 버려지는 납추는 연간 1억5910만개로 무게만해도 715.5톤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양의 납이 우리 강과 저수지에 버려지고 있다는 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이 좋아 등산을 하는 이들로 인해 산이 오염되듯이, 강이 좋아 낚시를 하는 이들로 인해 강이 오염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납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캐나다는 국립공원 등에서 납추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는 사례도 생각해볼만하다.  




이날 결국 나는 단 한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내 친구도 허탕을 쳤다. 올때마다 최소한 4~5마리를 잡았는데 오늘따라 물고기들이 도망다녔던 것일까. 옆에서는 팔뚝만한 붕어들이 척척 올라왔으니 우리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 친구는 꽤 실망한 듯하다. 일전에 왔을 때도 45cm 짜리 붕어를 낚아올렸다며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낚시의 손맛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럼 또 어떤가. 햇볕에 그을린 친구 얼굴의 까만 웃음이 반갑고, 빈어망에는 밝은 달빛이 가득한데 무엇이 부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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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남한산성에 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자주 나오는 글귀다. 사실 이 글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먼저 실렸던 글귀다. 이 짤막한 글귀만큼 당시의 초라하고 궁색했던 조선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난 그말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저께 ‘나는 남한산성에 있었다.’


우리 삶도 언제든 ‘독안의 든 쥐’처럼,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왕’처럼 초라해질 수 있다. 그 순간 우리에게 길은 있을까. 나가서 항복을 하는 길도, 안에서 굶어죽는 길도, 길이 아니면서 길이 되는 그 길에서 우리는 망설이고 있다. 김훈은 썼다. “그해 여름,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할 길은 포개져 있었다”라고…


남한산성은 김훈 덕분에 유명세를 탔고, 숭례문의 희생으로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소설 <남한산성>이 유명해지면서 경기도는 지난해부터 남한산성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복원과 정비사업에 나서고 있다. 숭례문이 불타면서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를 비롯해 방연방재 장비와 시설이 갖추어질 전망이다. 병자호란 직전에 난리를 예감했던 인조가 성벽을 더 튼튼히 했었다.


'아껴서 빈틈없이 다져놓은 성이었다. 급경사로 치고 올라간 구간에서 성벽의 기초가 뒤틀리지 않았고, 급히 굽이진 구간은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 성벽은 산의 높낮이를 따라 출렁거렸고, 성을 쌓은 자의 뜻에 따라 더불어 노는 형국이었다. 기울거나 주저앉거나 돌의 이빨이 빠진 자리가 없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성벽 여기저기에 잡풀이 자라고 곳곳에 금이 가 있는 모습은 초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시간이 훑고 간 흔적이고 시간 자체가 유산의 일부다. 치욕의 역사가 서린 곳이지만,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경계였다. 당시 많은 이들이 성 안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도망가다 죽고,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그들이 맞서 싸웠던 만주족은 지금 역사 속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나갔던 이들의 후손들은 이 땅에 살아남아 여기서 살아가고 있다. 경계는 모호해졌고, 삶은 분명해졌다. 청과 싸울 것을 주장했던 김상헌은 죽어서 사는 길을 모색했다. 전쟁이 끝나고 윤집, 오달재와 함께 청나라에 끌려가 순절했다. 그들의 위패는 남한산성 현절사에 모셔져 있다. 청과의 화의를 주장하는 최명길은 살아서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만주족이 사라진 지금,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인가, 아니면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일까. 다시 김상헌과 최명길의 두 길은 결국 포개져 있었다.




김상헌, 윤절,오달재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현절사. 6월의 신록이 우거지고 있다.
그들을 우리는 '순절'했다고 말한다. 죽어서 산 자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살아남는 건 중요한 과제다. 우리 사회도 먹고 사는 일의 중요성을 따져서 지금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결과 참담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시민들은 ‘먹는 문제’로 거리로 나서서 새벽까지 거리집회를 하고 있다. 경찰들은 불과 20여년전에 있었던 방식으로 배후를 잡겠다고 드잡이를 나섰지만, 애꿎은 시민들만 닭장차에 싣고 있다. 2MB정부에게 분명한 길을 가라고 국민은 요구하고 있지만, 그 길은 2MB가 죽는 길이니 쉽게 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알까, 어차피 그가 가야할 길은 미국이 원하는 길이 아닌 국민이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참으로 비루하고 고단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고기 한점 먹느냐 마느냐 가지고 죽자 살자 5월의 뜨거운 거리로 나서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하지만 이북이나 이남이나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그냥 거기 일개의 삶으로 멈춘다면 그것은 그냥 생물학적인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거리로 나오면 달라진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이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금의 이남 정권도 분명히 두려워해야 할 문제이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다.


지난달 4월 18일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고, 이제 40일이 지났다. 인조는 47일 동안 남한산성에 갇혀 있었다. 이제 7일 남았다. 과연 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2MB는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바로 청계천 광장에 나와 국민들 앞에 삼배를 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것은 치욕이 아니라 그가 살 길이고 국민이 살 길이다.


대통령은 지금 중국에 있다... 국민은 지금 청계천에 있다.

하도 쇠고기 문제로 시국이 어수선하다보니 글이 이렇게 새나간다. 게다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청계천과 종로 일대에서 싸우고 있을 또 다른 나의 모습들로 인해 마음이 편치 못했다. 글로 위로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주 금요일에는 나도 반드시 거리에서 연행될 각오를 할 것이다. 내 성격상 무임승차는 싫다.


아무튼 남한산성은 걷기도 좋고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다. 복잡하고 고단한 인생들에게 한번쯤 권하고 싶다. 남한산성 성벽길은 한바퀴 천천히 돌아도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걷는 것을 즐기는 이에게 남한산성은 최적의 사색장소가 아닐까.


지하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와서 9번 버스를 타고 산성로터리까지 갈 수 있다. 자동차로 온다면 주차료 1000원이다. 남한산성 관리사무소에서 산성지도를 얻을 수 있다. 갑갑한 마음 산성에서 달래 보자.


 



 ^ 현절사로 오르는 길목에서



^ 6월이 내일 모레라 그런지 녹음이 한창이었지만
봄바람이 불어줘서 산성걷기는 참 좋았다.








^ 현절사에서 산성에 오르는 길
























^ 남한산성 군포지의 흔적. 일종의 초소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남한산성에 남아 있는 군포지는 없고 이렇듯 흔적만 남아 있다.












^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목. 이날은 준비없이 한 방문이었다.
현절사에서 출발해 여기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목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려왔다.
한시간여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제대로 한번 돌아보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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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기석은 대학 때부터 풍물놀이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지역 풍물패에 가입해 꾸준히 활동해 왔죠.
그가 가입한 봉천놀이마당이지난 24일 20주년을 맞았고,
서울대 노천극장에서 떡벌어지는 잔치 마당을 가졌답니다. 






엄청 잘 생긴 총각 ㅎㅎ 이렇듯 놀이마당에는 젊은 사람부터 나이 지긋한 분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어우러져 마당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사진 속 젊은 분은 다른 놀이마당에서 축하공연차 와주신 분으로 기억되네요 ^^;;




공연의 즐거움은 이들의 웃음에서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오랫동안 악기와 함께 신명나게 살아와서 그런지,
웃음이 맑고 투명해 보이더군요.
악기들에 손떼가 깊게 베일수록
이들의 웃음은 더욱 맑게 닦아지는 것은 아닐까요.









이 사람이 제 친구입니다.
양복입고 나가면 그냥 평범한 직장인으로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얼굴이죠.



봉천놀이마당이 준비한 집체극을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집체극은 봉천놀이마당의 20년을 돌아보는 형식이라고 합니다.
처음 봉천동 쪽에 자리를 잡았을 때만 해도 '봉천놀이방'이었다고 합니다.
요즘에 하도 PC방, 노래방, DVD방이 많았는데,
여기 놀이방이 원조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ㅎㅎ

그리고 고사상 앞에 떡하니 앉아서 부채를 펼쳐들고 있는 위인은
마당놀이에서 빠질 수 없는 '잡색'이라고 하더군요.
잡색은 마당놀이의 분위기를 더욱 재미있게 하는 광대와 같은 역할인데,
관객석과 마당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자칫 극과 극 사이 애매할 때 나서서 신명을 돋구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대부분 각설이 복장을 하는데, 이 각설이도 이날 아주 재미있었답니다.

참, 이 각설이도 제 친구입니다. 어쩌다 봉천놀이마당에 들어갔는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이 좋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친구죠.
쉽게 하기 힘든 각설이 역할도 아주 능청맞게 참 잘합니다.
고사상 앞에 앉은 설정도 그자리에서 즉석에서 나온 돌발적인 행동이었는데,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고사상 앞에서 간단히 제를 지냅니다. 이 제는 처음 봉천놀이마당에 생겼을 때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조금씩 봄의 기운이 싹트는 형상을 표현하는 듯합니다.
꽃다발을 들고 마당을 휘휘도는 춤사위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 분은 재능이 뛰어난지 여러 장면에서 옷을 자주 갈아 입고 나오시더군요^^




봉천놀이마당의 완연한 봄을 상징하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을 때 등장한
봄의 여신(?),이 아닐까 싶은 연기였습니다.
아무튼 조금씩 놀이마당이 활기를 띄어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겠지요.









뜨거운 여름을 상징하는 남성무가 선보였습니다.
호방하고 거침없는 무용을 선보였던 분이죠.
목소리도 천둥처럼 우렁우렁 울렸는데,
마이크가 부실해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안타까운 사연이...










뭐 그렇게 잔치가 계속 이어지다가



양반들이 나옵니다. 태만과 게으름을 상징하는 듯,
극중에서는 먹고 노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양치기(웬 양치기?) 소년이 다가와 위험을 알리지만,
노는 걸 방해했다고 양치기 소년을 묶어버리죠.

이때,



이때 흑두... 머시기라는 실질적인 위험이 엄습합니다.
아마 봉천놀이마당이 나태와 안위에 빠졌을 때 나타난 위기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춤사위는 위압감과 함께
압도하는 무거움도 느껴졌습니다.


위험을 알렸던 양치기 소년입니다.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졌지요.
흑두... 머시기라는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한창 춤을 출때,
손을 풀더니 일어나 비틀대며 무대 중앙으로 나섭니다.
눈은 여전히 가려져 있고, 몸은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져 있는 상태죠.
그리고 무대 중앙에서 쓰러집니다.




가운데 있는 분이 양치기 소년역을 한 분이죠.
아~ 물론 고사가 끝나고 꽃다발을 들고 춤을 추던 그 분이기도 합니다 ㅎㅎ
양치기 소년이 무대 중앙에 쓰러져 있을 때,
그를 구한 건 양 옆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쓰러진 양치기소년을 일으켜 세우고,
그에게 새옷(지금 입고 있는 도포)을 입힙니다.
그렇게 전체 집체극은 끝나죠.

시련도 있었고, 큰 위기도 있었지만,
새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서 지금까지 잘 지내오고 있다,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이제 마지막 공연입니다.









맨 앞에 있는 분이 봉천놀이마당의 큰 스승님이십니다.
제 친구들도 선생님이라고 저를 인사시키게 했지요.
이날도 열정적인 마무리 공연을 주도해 주셨습니다.



이분도 잡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집체극은 좀 아쉬운 감도 있지만,
직장인들이 틈틈이 만들어 꾸며왔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신명나게 살아온 20년처럼
앞으로도 봉천놀이마당이 꾸준히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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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말로 접어드니 날씨는 더 찌는 듯하다. 한창 더운 여름이 되면 무더위의 연쇄살인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복잡한 시대상황이야 어떻든 사람살이는 계속된다. 인간은 전쟁 속에서도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가지 않던가. 사실 총성없는 전쟁일 뿐이지 지금 세상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사람은 사는 거다.


여의도 광장에서는 전국의 교사들이 올라와 학원자율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광장 건너편 여의도 교원공제회관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두 남녀가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의 닻을 올리고 긴긴 항해를 시작했다.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꽃피운 사랑이여~


후배는 참 좋은 교사다. 그리고 좋은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갈 것이다. 언제나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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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길거리에 그대로 멉춰 서고 말았다. 아니다. 바로 그 정신, '그깟 사만원 때문에'라고 말하는 바로 그 정신 때문에 나는 세상에 속아넘어가는 것이다. 다른 자들의 밥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사만원 때문에 이 새벽부터 부지런히 사기를 치고 또 누군가는 그 사만원 때문에 해도 뜨기 전에 가게에 나와 알바를 족치는데, 오직 나만이, 이 한심한 이민수만이 '그깟 사만원 때문에'라고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정신이 나로 하여금, 만원만 더 달라는 사기꾼에게 내 돈도 아닌 남의 돈을 이만원이나 선뜻 내준 것이다. 방값 이십구만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천원짜리 컵라면에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이나 먹는 주제에 말이다.

- 김영하 <퀴즈쇼> 중에서  



살다보면 법이란 것과 마주칠 일이 많다. ‘법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얼마나 멋진 말인가. 덕이 많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리면 ‘그깟 사만원’이라고 말하겠지만, 스스로 착하게 살면서 손해만 보며 살 수는 없다. 고작 ‘이십구만원짜리 고시원에 살’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은 권리 위에서 낮잠자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오늘 결국 노동부에 민원신청을 넣었다. 내용은 퇴직금 미지급. 주위 사람들이 임금체불이나 퇴직금 문제로 골치를 앓았던 이들의 얘기는 남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제 이 문제는 내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인간적으로 지금의 사장에게 유감은 없다. 오히려 재직기간 동안 모질게 굴지 않아 호감이 남아 있는 분이다. 게다가 지금 일하고 있는 선배와도 막역한 사이라서 이런 식으로 일이 꼬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결코 바라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거다. 자꾸 싫은 소리하며 사정하듯이 지급을 종용하거나, 귀찮게 전화해서 괴롭히는 거나, 혹은 그냥 개무시당하는 걸 묵묵히 참는거나 내가 할 짓이 아니다. 그냥 가장 편한 방법과 원리원칙대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법에 의지하는 수밖에... 법이 내편일까? 그건 알 수 없다.


진정이 접수되면 30일 안에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과연 나는 퇴직금 미지급분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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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또다른 욕망의 장소, 경륜장에 다녀왔다. 달리는 자전거들은 모두 여기서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에 사람들은 베팅을 건다.여기는 광명경륜장-스피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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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욜에만 경기장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듯하다. 입장료는 어른 400원 어린이 무료라는데, 미성년자끼리는 입장할 수가 없다. 오늘은 목요일이라 주변이 한산하다. 당연히 내부입장은 안되는 듯했다. 곳곳이 내일부터 시작될 경륜을 앞두고 청소에 한창이었다.


경륜을 무슨 재미로 보나 싶었는데, 뉴스자료에 따르면 2007년 경륜산업의 영업이익이 175억원이었다고 한다. 경륜은 사행산업 중에서는 간신히 꼴찌를 면하고 있다. 카지노가 제일 잘나간다고 하는데 강원랜드만 지난해 영업이익이 4181억이었고, 토토가 2817억, 경마가 1913억이었다. 경륜은 경마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175억원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사행산업이 잘 된다는 건 그만큼 경기가 안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연일 성장하고 있는 사행산업을 그저 웃으며 볼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다.


광명경륜장은 가족나들이 코스로 인기가 있다니 그나마 다행일까. 하지만 막상 경기장 안에서는 도박판다운 욕설과 무질서가 있을 수 있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은 많이 고려해보고 판단해야할 것이다. 주변에 목감천이 있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어 인기다. 산책로도 잘 꾸며져 있으며, 주차는 무료다. 자전거 대여소에서는 꼬맹이들이 탈만한 조그만 세발자전거도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어 아이가 있는 가족나들이 코스로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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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이곳 경륜장까지는 목감천 자전거 도로를 이용했다. 천천히 달렸는데도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달리다보면 천변 산책로나 자전거 도로들이 지차체의 부를 그대로 보여준다. 구로구 쪽보다 광명시 쪽이 훨씬 잘 다듬어져 있다. 위의 사진도 광명시 쪽에서 찍은 건데, 아마 청보리가 아닐까? (정확한 명칭을 아시는 분은 댓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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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 초록색 물결이 일러이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 그 옆으로 자전거 길을 달리면 바람과 청보리가 만든 웨이브가 그대로 페달로 전달되는 것처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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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도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벌과 나비들이 바쁘다. 이웃집 담장 너머에 붉은 장미꽃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집을 나왔는데, 이처럼 환하게 맞아주는 유채꽃은 올들어 처음 만나다 보니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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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세워놓은 내 자전거도 노란색이다. 가벼운 오후의 산책으로 몸도 마음도 달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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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전 다녀온 양수리, 길을 잃은 사람이 찾을 곳인가.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거짓된 약속에 기대어 두물머리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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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초에 최과장님을 만났다. 그는 전에 일하던 여행사에서 알게된 이다. 나보다 한살 많던가. 작은 몸에서 나오는 풍부한 인심과 넉넉함이 인상적인 분이다. 그분이 제안했다.


"양수리나 갈까요? 출사 겸 같이 가시죠. 제 카메라가 너무 오랫동안 잠자고 있네요."


잠자는 카메라를 깨우기 위한 출사 여행. 실상 우리 스스로를 깨우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을까.


가는길에 망향 비빔국수집에 들렸다. 이 동네에서는 꽤나 유명한 집인가보다. 번호표를 뽑았는데 앞으로 50여명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50여명에 놀랄게 아니다. 우리가 먹고 나왔을 때 번호표를 뽑았던 사람들은 100명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보통을 시켰는데도 양이 푸짐하다. 매운 음식을 잘 먹으면서도 진땀 깨나 흘렸다. 달달하면서도 독특한 매운맛이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사람들의 기다림에는 끝이 없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최과장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출사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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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지명 이름도 알 수 없다. 강 옆으로 호수가 생성되어 있는 곳이다. 별장 같은 단독주택들이 즐비하다. 기찻길이 있고, 건널목도 있다. 호수에는 산책하는 이들을 위한 것인지, 이것저것 독특한 소품들이 있다. 최과장님 말로는 예전에는 아주 잘 꾸며져 있었는데, 지금은 폐허가 됐다고 한다. 아무래도 두물머리 쪽으로 손님들을 다 뺏기고 이곳은 찾는 이가 없어서 버려진 것일까. 아니면 주위 동네 분들이 낯선 이방인 관광객들을 꺼려서 일부러 버려두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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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두렁과 강둑길을 걸었다. 어차피 길이 제대로 있을 거란 생각은 없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지 오래된 길의 흔적이다. 내 뒤로 많은 길을 지나왔다. 그 길이 내 앞에 다시 새롭게 길을 만들고 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저 앉을 수 없다. 걸어온 길이 밀어주는 그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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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어쩌면 고장난 물레방아에 물길을 내기 위해 애쓰며 사는 것. 따뜻한 강물을 바라보며, 지는 해를 아쉬워할 수 있는 것, 그것이다. 저 물레방아도 허허로운 벌판에 물을 대며, 꿈틀대는 생명들이 지면을 뚫고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돌아가지 않는다고 물레방아가 아닐까, 이제 영원의 나라로 돌아가 잠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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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돌보지 않아도 흘러가는 것들이 있고, 돌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민들레는 스스로 세상을 향해 꽃씨를 띄운다. 난 지금 문이 닫혀 있다고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둠속에서 홀로 흐느끼며, 열리지 않는 문은 벽이라는 좌절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성대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내 등 뒤에서 또 다른 문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난 벽을 더듬어 문고리를 잡으려 하지 않는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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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깡통처럼 요란하고 녹슬어버렸다. 다시 벌거벗고 길을 나서야 할 거다. 옛길이 언제 새길을 보여주었나, 뒤로 지나온 길에 연연하지 말자. 여기 두물머리, 내 앞에 서서 나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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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고척도서관에 간다. 대학 때 이후로 이렇게 자주 도서관에 드나드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쉬는 게 이래서 좋은 건가, 싶으면서도 뭐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가겠냐 싶다. 그래서 즐긴다.


아무튼 도서관에 가다보면, 반드시 고척근린공원을 지난다. 제법 규모가 큰 공원이며 광장 외에 스탠드가 갖추어진 운동장도 있고, 미취학 아동들이 즐길만한 조그만 놀이터도 있으며, 운동시설도 갖추고 있다. 평상도 여기저기에 갖추어져 있어 한낮에 아이들과 산책나온 주부들이나 심심풀이로 나온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날은 사생대회가 있었는지, 여기저기 중고등학생들이 많다. 이런 일은 드물다. 평일 한낮에 학생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현수막을 보니 구로구에서 주최하는 구민 사생대회다. 학생뿐만 아니라 주부 등 일반인도 참가하는 대회로 보인다. 호기심에 한바퀴 둘러보자는 마음에 공원을 거닐었다. 그리고 뜻밖의 풍경들을 만났다.


광장의 쉼터는 크게 3군데로 나누어진다. 무대 양편에 한곳씩, 무대 맞은편에 한 곳 이렇게 세 곳에는 그늘막과 평상과 벤치가 놓여져 있다. 사생대회가 끝나고 찾아간 그곳은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심풀이 오락장이었다.


먼저 무대를 마주보고 왼쪽에서는 반상위에서 흑백의 대결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략 60대 이상의 남성노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저 바둑판들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신기할 정도다. 공원측에서 마련한 것 같지는 않다. 바둑이란게 한번 빠지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하는데, 여기의 노인장들은 썩을 도끼 같은 건 없을 듯하다. 이런 노년이라면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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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무대의 오른편 쉼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한나라와 초나라의 싸움판이다. 장이야 멍이야 큰소리가 오가고 장기알이 세차게 장기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지나가는 말처럼 흘려내는 훈수에 화들짝 놀라는 할아버지의 고함이 어딘가 익숙하다. 서울 한복판 공원에서 이렇게 재미있게 장기를 두시는 분들이 바로 이 공원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무대 맞은편 쉼터로 가본다. 멀리서 보니 이곳에는 앞의 두 곳과 다르게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대세다. 간간히 할아버지도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좀전까지 흑과 백, 한나라와 초나라가 싸우는 판이었다면, 여기는 꽃들이 싸운다. 화투. 여기저기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작은 군용 모포까지 준비되어 있다. 거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판돈들은 죄다 10원짜리. 세상은 10원짜리가 모자르다고 난리인데, 이 동네 10원짜리는 죄다 여기 모여 있나 보다. 간혹 100원짜리도 나오겠지만 판은 더 이상 커지지 않는 듯하다.


나같이 젊은 놈들이 낄 판은 어디에도 없다. 한 세상 건너오며 이리저리 치인 분들이 이제 딱정이마저 굳어버린 삶의 상처들을 부려놓고 남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추운 겨울에는 어려웠을 아주 재미있는 풍경들이 5월의 따스한 봄날 공원을 메우고 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 공원에 어르신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농구장에는 10대 학생들이 던지는 공 2~3개가 골대를 번질나게 오가고 있고, 광장은 꼬맹이들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전거질과 인라인을 배우는 초보 젊은 여성의 위태로운 몸동작이 눈에 잡힌다. 우레탄길 운동코스를 열심이 걷거나 뛰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청장년층이다.


일상에 바빠서 찾아다니지 않았던 고척근린공원의 봄은 그렇게 따스하게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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