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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남한산성에 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자주 나오는 글귀다. 사실 이 글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먼저 실렸던 글귀다. 이 짤막한 글귀만큼 당시의 초라하고 궁색했던 조선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난 그말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저께 ‘나는 남한산성에 있었다.’


우리 삶도 언제든 ‘독안의 든 쥐’처럼,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왕’처럼 초라해질 수 있다. 그 순간 우리에게 길은 있을까. 나가서 항복을 하는 길도, 안에서 굶어죽는 길도, 길이 아니면서 길이 되는 그 길에서 우리는 망설이고 있다. 김훈은 썼다. “그해 여름,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할 길은 포개져 있었다”라고…


남한산성은 김훈 덕분에 유명세를 탔고, 숭례문의 희생으로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소설 <남한산성>이 유명해지면서 경기도는 지난해부터 남한산성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복원과 정비사업에 나서고 있다. 숭례문이 불타면서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를 비롯해 방연방재 장비와 시설이 갖추어질 전망이다. 병자호란 직전에 난리를 예감했던 인조가 성벽을 더 튼튼히 했었다.


'아껴서 빈틈없이 다져놓은 성이었다. 급경사로 치고 올라간 구간에서 성벽의 기초가 뒤틀리지 않았고, 급히 굽이진 구간은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 성벽은 산의 높낮이를 따라 출렁거렸고, 성을 쌓은 자의 뜻에 따라 더불어 노는 형국이었다. 기울거나 주저앉거나 돌의 이빨이 빠진 자리가 없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성벽 여기저기에 잡풀이 자라고 곳곳에 금이 가 있는 모습은 초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시간이 훑고 간 흔적이고 시간 자체가 유산의 일부다. 치욕의 역사가 서린 곳이지만,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경계였다. 당시 많은 이들이 성 안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도망가다 죽고,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그들이 맞서 싸웠던 만주족은 지금 역사 속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나갔던 이들의 후손들은 이 땅에 살아남아 여기서 살아가고 있다. 경계는 모호해졌고, 삶은 분명해졌다. 청과 싸울 것을 주장했던 김상헌은 죽어서 사는 길을 모색했다. 전쟁이 끝나고 윤집, 오달재와 함께 청나라에 끌려가 순절했다. 그들의 위패는 남한산성 현절사에 모셔져 있다. 청과의 화의를 주장하는 최명길은 살아서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만주족이 사라진 지금,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인가, 아니면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일까. 다시 김상헌과 최명길의 두 길은 결국 포개져 있었다.




김상헌, 윤절,오달재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현절사. 6월의 신록이 우거지고 있다.
그들을 우리는 '순절'했다고 말한다. 죽어서 산 자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살아남는 건 중요한 과제다. 우리 사회도 먹고 사는 일의 중요성을 따져서 지금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결과 참담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시민들은 ‘먹는 문제’로 거리로 나서서 새벽까지 거리집회를 하고 있다. 경찰들은 불과 20여년전에 있었던 방식으로 배후를 잡겠다고 드잡이를 나섰지만, 애꿎은 시민들만 닭장차에 싣고 있다. 2MB정부에게 분명한 길을 가라고 국민은 요구하고 있지만, 그 길은 2MB가 죽는 길이니 쉽게 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알까, 어차피 그가 가야할 길은 미국이 원하는 길이 아닌 국민이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참으로 비루하고 고단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고기 한점 먹느냐 마느냐 가지고 죽자 살자 5월의 뜨거운 거리로 나서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하지만 이북이나 이남이나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그냥 거기 일개의 삶으로 멈춘다면 그것은 그냥 생물학적인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거리로 나오면 달라진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이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금의 이남 정권도 분명히 두려워해야 할 문제이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다.


지난달 4월 18일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고, 이제 40일이 지났다. 인조는 47일 동안 남한산성에 갇혀 있었다. 이제 7일 남았다. 과연 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2MB는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바로 청계천 광장에 나와 국민들 앞에 삼배를 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것은 치욕이 아니라 그가 살 길이고 국민이 살 길이다.


대통령은 지금 중국에 있다... 국민은 지금 청계천에 있다.

하도 쇠고기 문제로 시국이 어수선하다보니 글이 이렇게 새나간다. 게다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청계천과 종로 일대에서 싸우고 있을 또 다른 나의 모습들로 인해 마음이 편치 못했다. 글로 위로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주 금요일에는 나도 반드시 거리에서 연행될 각오를 할 것이다. 내 성격상 무임승차는 싫다.


아무튼 남한산성은 걷기도 좋고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다. 복잡하고 고단한 인생들에게 한번쯤 권하고 싶다. 남한산성 성벽길은 한바퀴 천천히 돌아도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걷는 것을 즐기는 이에게 남한산성은 최적의 사색장소가 아닐까.


지하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와서 9번 버스를 타고 산성로터리까지 갈 수 있다. 자동차로 온다면 주차료 1000원이다. 남한산성 관리사무소에서 산성지도를 얻을 수 있다. 갑갑한 마음 산성에서 달래 보자.


 



 ^ 현절사로 오르는 길목에서



^ 6월이 내일 모레라 그런지 녹음이 한창이었지만
봄바람이 불어줘서 산성걷기는 참 좋았다.








^ 현절사에서 산성에 오르는 길
























^ 남한산성 군포지의 흔적. 일종의 초소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남한산성에 남아 있는 군포지는 없고 이렇듯 흔적만 남아 있다.












^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목. 이날은 준비없이 한 방문이었다.
현절사에서 출발해 여기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목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려왔다.
한시간여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제대로 한번 돌아보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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