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하루를 앓았다. 그러니까 그저께 저녁 민박집에 들어가 약국에서 지어온 콧물약과 기침약을 먹었다. 약에 워낙 민감한 지라 한번 먹으면 낫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눈은 7시에 떠졌는데, 정신이 몽롱했다. 약기운인지 아니면 몸살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더 머물렀다. 강구라는 소읍을 둘러보기라도 했다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쉬는 동안 과연 이 여정을 끝까지 갈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일 끝까지 가기 어렵다면 어디서 마칠 것인지, 돌아가는 길은 어떻게 잡을 것인지, 자전거는 어떻게 보낼 것인지 내내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완주를 목표로 잡았지만, 몸상태와 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하겠다는 것은 출발전부터 생각해 둔 것이었다.


머릿속은 그렇게 복잡하고 몸은 땀을 흠뻑 쏟아내고 있었다. 반바지만 입고 있어도 이불이 흠뻑 젖는 것이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땀을 흘렸다. 몸살보다는 약기운인 것 같았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민박집에 틀어박혀 TV리모콘만 까딱까딱하며 이불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가끔 식사하러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바깥출입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더 머물고 오늘 아침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어찌됐든 부산까지 가서 자전거를 소화물로 보내고 기차로 올라가던, 아니면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던 양당간의 결정은 거기가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초 가기로 했던 동쪽의 끝 호미곶은 가지 않기로 하고 곧장 포항으로 향했다. 7번국도를 다시 탄다는 마음이 처음에는 조금 께름칙했는데, 갓길도 아주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차량통행도 그리 많지 않아 달릴만 했다. 게다가 언덕도 없어 포항까지 내차 달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의외로 행보가 가벼워지는 걸 느낀 나는 경주까지도 이런 식으로 간다면 오전 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기대는 다행히 이루어져 1시가 되기 전에 경주역까지 올 수 있었다. 그만큼 7번국도는 달리기 좋게 잘 되어 있었고, 나 역시 몸상태가 예전상태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회복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주역에 도착하니 역 광장에는 수학여행을 왔는지 한무리의 청소년들이 눈에 띈다.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경주는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참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자전거로 찾아온 나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경주역에서 관광안내지도를 받고, 다시 35번 국도를 타기 위해 경주국립박물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15분 정도 달리니 경주박물관이 나온다. 경주에 와서 관광을 한 곳은 박물관이 전부다. 아쉽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경주의 사람들과 집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경주박물관을 나와 35번국도를 탔다. 처음에 좀 좁은 길을 지나고 나서 본격적인 도로로 나서면 35번국도는 7번국도보다 더 편하다. 바로 옆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차량들은 고속도로를 탄다. 그러다보니 35번국도는 차량통행이 한산하다. 다시 신나게 달린다. 손목이 좀 시큰거리지만 자꾸 동작과 자세를 바꿔줄 수 있으니 훨씬 편하다. 긴장할 때는 자세바꾸는게 어려운데, 차량이 별로 없으니 어떤 자세든 마음대로다.




언양에 도착해 어제와 오늘의 여정을 정리한다. 언양은 경주와 양산 사이에 있고, 부산에서 약 55km떨어져 있는 곳이다. 내일 오후면 부산이다. 지도를 보니 오늘 달린 거리가 지금까지 달린 하루주행거리로는 가장 길다. 새롭게 자신감이 붙는다. 제주도에 갔다가 다시 서울로 북상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지금의 기침만 좀 멎는다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




주행 거리 : 약 107km

주행 시간 : 10시간

주행 구간 : 강구항 > 장사해수욕장 > 포항시 흥해읍 > 경주역 > 국립경주박물관 >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 등억온천단지








반응형
반응형
 



몸안에 바람이 들어왔다. 목이 다 타들어간 것 같았다. 자꾸 물을 마셔도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밭은 바람을 입밖으로 자꾸 쏟아냈다. 기침이다.


어제 좀 무리했나 보다. 거리도 거리지만, 그 수십개는 될 것 같은 언덕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 바람은 또 어땠나. 전국에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겨울 초입의 바람이다. 게다가 바닷바람이니 그 바람이 몸 안에 들어와 아무 일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언젠가 이런 날이 있을 줄은 알았다. 기침이 좀 나올 뿐인가 싶더니, 손목이 아프다. 내리막길에서 무게 중심이 손목에 많이 쏠려서 그랬을 것이다. 아침에 약국에서 파스를 사서 붙였지만, 계속 손목에 힘이 들어갈 테니 그다지 효과를 보긴 어려울 것이다.


다리는 예전부터 언제 신호가 올까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무릎에서 이상신호가 온다. 역시 언덕길을 넘다보니 생긴 후유증일 것이다. 밤마다 마사지를 해주지만 근육에 중점두었을 뿐이라 무릎은 그다지 신경쓰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다. 그래도 아직 페달을 밟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저 언덕길을 올라가거나 과도하게 힘을 줄 때면 무릎이 약한 신호를 보내는 정도다.


해안도로를 타고 내려갔다. 처음 해안도로는 평지길이었다. 한 한시간 이상을 달리면서 바다도 여유롭게 관망하며 갈 수 있었고 해안기암의 절경도 눈에 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맞바람이었다. 쉴새없이 부는 매서운 남서풍이 도저히 속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몰아쳤다. 바닷바람이 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강한 바람을 맞아보는 건 처음이다. 그래도 날은 따뜻했고 하늘에는 구름도 거의 없어 어제처럼 춥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새파란'과 '시퍼런'의 차이를 새삼 느꼈던 바다와 하늘. 작은 어촌마을마다 진하게 풍기는 비릿한 냄새들. 뺨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과 함께 온 몸이 동해를 느끼고 있었다. 한참을 내달리니 다시 7번국도를 만났다. 이번 7번국도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관광버스와 콘테이너트럭, 그리고 탱크로리 차량. 시골버스(관내버스)는 자전거가 앞에 있으면 웬만하면 피해서 가려고 노력하는데 관광버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쳐간다. 콘테이너트럭은 그 길이 때문에 위협적이고 탱크로리는 소리가 여느 트럭보다 더 큰 것처럼 느껴진다.




울진군과 영덕군 모두 대게를 관광상품으로 내걸고 있었다. 해안도로 길가마다 가게들 열에 아홉은 대게를 내걸고 장사를 했다. '울진 대게'와 '영덕대게'. 둘다 같은 바다에서 잡힌 것일 테니 똑같지 않을까. 울진군 경계를 넘어 영덕군 병곡면에 들어섰다. 병곡면사무소를 찾아가 영덕군 관광지도를 구했다.


병곡면에서 다시 7번국도와 헤어지고 해안도로로 들어섰다. 고래불해수욕장 옆의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 길은 한참 평지길로 역시 바람의 저항을 제외하고는 달릴만 했다. 간간히 나오는 작은 언덕들은 가뿐히 올라준다. 이 정도로만 간다면 오늘의 목적지 강구까지는 너끈히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대진항을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축산면 소재지를 지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언덕길이 시작됐다. 언덕을 오르던 도중 자전거 앞바퀴가 1단으로 놓자 체인이 빠져 버렸다. 자전거도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1단으로 놓으면 뒷바퀴와 체인이 부딪히는 현상도 나타났다. 1단으로 놓고 달릴 수 없게 됐다. 웬만하면 2단으로 놓고 올라갈 수 있지만, 너무 힘든 길은 끌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강구를 향해 가는 길에 수많은 항구마을들을 만났는데, 대개의 마을들이 언덕과 언덕 사이에 있어 상당히 애를 먹었다.






한참을 달리니 대관령에서 본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영덕풍력발전단지다. 이곳에 영덕해맞이 공원도 함께 있다. 여기에 도착한 시간이 3시 30분. 그 전에 축산면에서 빵과 우유를 먹었지만 허기가 져서 라면을 사먹었다.




해맞이 공원을 내려가면서부터 강구까지는 거의 고갯길이 없는 평지길이었다. 바람을 제외하고 나를 곤란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 길을 달리다보면 갯바위 위에서 길게 낚시대를 드리우고 낚시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파도가 거칠고 바람도 거세게 부는 데 춥지는 않을까. 그 재미는 낚시꾼만 알 것이다.





강구는 영덕대게 집하장처럼 어수선했다. 관광 온 사람도, 대게를 사러 온 사람도 모두 이곳으로 모이는지 바닷가에 있는 점포직원들은 손님을 부르느라 바쁘다. 내일은 구룡포까지 가볼까. 거리가 역시 만만치 않다. 또 몸이 회복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주행거리 : 약 81km

주행시간 ; 약 6시간 30분

주행구간 : 울진군청>망양해수욕장 > 영덕해맞이공원 > 강구항



반응형
반응형
 


청솔민박집을 나왔을 때는 8시가 되지 않았다. 어제 오후 늦게 컵라면 하나 먹은 게 전부였으니 배가 고플만 하다. 게다가 근처에 식당도 없다. 인사하는데 노부부는 아침 식사 중이었다. 민박집 노부부에게 밥을 얻어먹을까 했지만, 그럴 주변머리가 부족하다. 그러니 몸이 고생한다.


바람이 정말 심했다. 특히 언덕을 올라갈 때 맞는 맞바람은 정말 고통스럽다. 해안도로에는 차가 없다지만, 언덕이 많다. 울진까지 오면서 수없이 많은 언덕을 넘어야 했다. 언덕을 오르는데 1시간 걸린다면 내리막길은 고작 15분… 그리고 다시 오르막길.


부남리를 지날 즈음 해안도로가 이상하다. 비포장길이 나온 것이다. 여기저기 도로공사를 하는 트럭, 포크레인 등이 보인다. 그런데도 자전거 여행객을 막지 않는다. 길이 연결되어 있으리라 믿고 달렸다. 한시간 가까이 달리자 다시 포장도로가 나왔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풀렸다.


다시 7번국도와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이 다음부터는 해안도로가 따로 없단다. 용화휴게소에서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장호유원지를 옆으로 지나치고 임원해수욕장도 지나자 또다시 기나긴 언덕길이 나온다. 쉬다가 오르다가를 반복하다가 도달한 곳은 도덕공원. 이곳이 바로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면이다. 드디어 경상북도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경상북도로 진입했지만 울진 중심지까지는 한참을 더 달려야 했다. 이 곳 역시 부구 지점 근처에서 7번국도가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뀌고 구도로로 이동할 수 있다. 대부분의 차량은 7번국도로 가고 구도로는 차량이 거의 없다. 그러나 언덕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동안 한 자전거 여정 중 가장 많은 언덕을 지나왔다.


죽변에 도착했을 때가 한시가 넘었을 때다. 이곳의 자장면 집에서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었다. 자장면을 먹고 나와 옆 초등학교 아이들이 노는 것을 한참 구경했다. 남녀 섞여서 함께 축구를 한다. 유독 다른 아이들보다 큰 여자아이가 눈에 띈다. 여느 아이들보다 공차는 것도 시원시원하고 또래 아이들에게 이런저린 지시도 내린다. 주로 수비를 보는데 결정적인 위기를 막아낼 때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차별이 없다.


죽변을 거쳐 다시 이어지는 언덕레이스. 30분 오르고 10분 내리달리고 다시 30분 오르고 10분 내리달리고... 그러기를 한 두시간, 드디어 울진읍내가 보인다. 목적지 도착한 것이다. 부남리를 지날 즈음 해안도로가 이상하다. 비포장길이 나온 것이다. 여기저기 도로공사를 하는 트럭, 포크레인 등이 보인다. 그런데도 자전거 여행객을 막지 않는다. 길이 연결되어 있으리라 믿고 달렸다. 한시간 가까이 달리자 다시 포장도로가 나왔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풀렸다.






다시 7번국도와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이 다음부터는 해안도로가 따로 없단다. 용화휴게소에서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장호유원지를 옆으로 지나치고 임원해수욕장도 지나자 또다시 기나긴 언덕길이 나온다. 쉬다가 오르다가를 반복하다가 도달한 곳은 도덕공원. 이곳이 바로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면이다. 드디어 경상북도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경상북도로 진입했지만 울진 중심지까지는 한참을 더 달려야 했다. 이 곳 역시 부구 지점 근처에서 7번국도가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뀌고 구도로로 이동할 수 있다. 대부분의 차량은 7번국도로 가고 구도로는 차량이 거의 없다. 그러나 언덕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동안 한 자전거 여정 중 가장 많은 언덕을 지나왔다.


죽변에 도착했을 때가 한시가 넘었을 때다. 이곳의 자장면 집에서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었다. 자장면을 먹고 나와 옆 초등학교 아이들이 노는 것을 한참 구경했다. 남녀 섞여서 함께 축구를 한다. 유독 다른 아이들보다 큰 여자아이가 눈에 띈다. 여느 아이들보다 공차는 것도 시원시원하고 또래 아이들에게 이런저린 지시도 내린다. 주로 수비를 보는데 결정적인 위기를 막아낼 때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차별이 없다.


죽변을 거쳐 다시 이어지는 언덕레이스. 30분 오르고 10분 내리달리고 다시 30분 오르고 10분 내리달리고... 그러기를 한 두시간, 드디어 울진읍내가 보인다. 목적지 도착한 것이다.





주행거리 : 60.7km

주행시간 : 7시간

주행코스 : 덕산해수욕장 >> 용화휴게소 >> 장호유원지 >> 임원해수욕장 >> 울진읍내



반응형
반응형


 


어제는 삼척 온천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수면실에 사람이 없는 대신 모기가 극성이다. 홀에서는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소리치며 설쳐대는 통에 수면실로 대피했건만 역시 쉽게 잠들지 못했다.


찜질방 PC를 이용해 6일차 코스를 살펴봤다. 울진까지 갈 경우 국도에서는 한재터널을 피할 수 없다. 다시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훔쳐본다. 국도를 타고 달린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해안도로를 탔다는데,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다. 자세한 지도를 얻었어야 했다. 삼척시 지도를 따로 구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든다.


아침에 카운터에 삼척시 지도가 있는지 물어보니 있었는데 떨어졌단다. 근처 삼척 경찰서 민원봉사실에도 없다. 여기는 관광수입에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다. 찜질방 카운터 직원은 찜질방 뒷편 언덕길을 오르면 해안도로와 만난다고 알려주었다. 그저 산책길이라고 하는 그 언덕은 자전거를 타고는 오를 수 없는 곳. 끌고 오르기 시작했다. 어찌된 길인지 알 수 없이 세갈래 길이 나온다. 직진으로 멀리 보이는 호텔방면으로 달렸다. 길이 막혔다. 철문으로 막아놓았다. 다시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올라와 다른 길로 달렸다. 또 갈림길이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해 내려가니 민가가 나온다. 길이 없다. 다시 돌아와 아까 그 갈림길에서 오르막길을 택한다. 길을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빗방울이 보인다. 아직도 삼척의 찜질방 근처에서 헤매고 있는데 비라니… 일단 아저씨의 안내대로 나가니 정말 해안도로가 나온다. 차도 없고, 길도 잘 뚫려 있다. 탁트인 바닷가를 왼편에 두고 거침없이 달렸다. 하지만 빗방울이 점점 심상치가 않다.




해안도로를 나와 다리를 하나 건너니 7번국도와 만났다. 삼척시 정라동에 들어선 것이다. 정라동에서 다시 국도를 타는 기분은 찜찜했다. 계속 이렇게 간다면 한재터널과 만나는 건데… 그러나 삼척남초등학교를 지날 즈음 자동차전용도로 표지판이 나온다. 그 왼편에는 맹방해수욕장 가는 길이 있다. 그렇다면 저 길이 해안도로로 가는 길이 아닐까. 예상대로 맹방해수욕장 길이 바로 해안도로였다. 그러나 빗방울은 이미 굵어져 있었다. 방수를 자랑하는 고어텍스 점퍼도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해안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지만, 이렇게 젖은 상태에서 더 달린다는 것은 몸에 무리가 따를 거라고 생각되었다.


결국 덕산해수욕장에서 민박을 구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민박'이라고 써놓은 집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초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에 바닷가에는 민박집을 운영하는 곳이 거의 없다. 아마도 성수기 때만 영업을 하는 것 같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청솔민박집. 두 노부부가 운영하는 집인데, 샤워실이 각방마다 갖춰져 있고 바다와 접해 있는 아주 좋은 곳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2층 끝방으로 안내했다. 성수기 때는 8만원까지 받는 방이란다. 할머니에게 따로 커피 대접까지 받고 할아버지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또 그동안 한번도 빨지 않은 자전거용 바지와 티셔츠를 빨 수 있었다.


오후 늦게 날이 갰다. 바람은 여전히 심했지만, 파란하늘이 보이자 아쉬움이 생겼다. 조금만 더 달릴 것을 그랬나 싶다가도 이왕 쉬는 거니 편하게 쉬었다가자. 옷을 갈아입고 바닷가를 거닐었다. 황량한 해수욕장 풍경. 모두가 떠나고 몇몇 낚시꾼들만 길게 낚시를 들이우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며 입질을 기다리는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그저깨 본 경포대의 바닷가는 관광객들도 많고 놀러온 청소년들이 한창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댔는데, 이곳은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만 가득했다.









밤이 되니 적적하다. 컴퓨터가 없어 오늘의 일정을 수첩에 정리하다가 창밖을 보니 달이 둥실 떠 있다. 바다 한가운데 달빛을 드리운 모습을 처음 접한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재빨리 카메라를 들고 나가 바다와 달을 렌즈에 담았다.


어찌됐든 예정했던 일정보다 이틀이 늦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경주에서 며칠 묵을려고 했던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행거리 : 12km

주행시간 : 2식간 30여분

주행코스 : 삼척온천 >> 정라동 >> 맹방해수욕장 >> 덕산해수욕장

반응형
반응형





터널은 오늘을 포함해 꼭 두번 지나왔다. 한번은 용문터널로 기억된다. 짧기도 했고 옆으로 지나친 차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늘 통과한 7번국도의 동해 터널은 길이만 500m에 가깝다. 터널은 제대로 된 갓길이 없다. 배수로로 만들어놓은 것이 전부다. 그러니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또한 오고가는 차들의 매연이 터널 안에 가득하다.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다. 입구 바로 앞에서는 자전거 운전자든, 차량 운전자든 잠깐 시야가 어두워지는 실명 현상을 겪게 된다. 그 순간이 자전거 라이더에게는 가장 무서운 순간이다. 안보이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까. 1초도 안되는 순간이겠지만, 그 순간에 한사람의 삶이 끝나고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뒤에서 오는 차량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터널로 진입하는 것이 그 이유다. 미국 대륙횡단을 한 홍은택 씨도 터널에 들어가는 라이더는 강심장이라고 했다. 매연이나 도로상황 시야고장 보다 더 두렵게 하는 것은 소리다. 공포영화에 대한 실험에서도 시각보다는 청각에서 사람들이 더 공포를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만큼 청각으로 느끼는 공포는 더욱 크다는 말이다.

불과 5일 달렸을 뿐이지만 최소한 내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이 자가용인지, 버스인지, 트럭인지, 대형트럭인지 정도는 안보고도 구별할 수 있게 됐다. 아마도 생존본능이었으리라. 그러나 터널에서는 그런 구별이 무색하다. 이미 반대편 차선에서 지나간 차량의 소리를 달려오는 차량으로 착각하는가 하면, 대형트럭들이 지나갈 때면 귀가 멍멍해지면서 머리까지 띵해지는 현상을 겪기도 한다. 이를 두고 홍은택 씨는 '터널은 고장난 앰프'라고 했던가. 오늘도 터널을 지나오다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관광버스를 피하느라 터널에 기댔다가 오른쪽 팔뚝에 터널벽의 시커맨 매연때를 잔뜩 묻히기까지 했다. 다시 터널이 나온다면 더더욱 조심해야겠지만, 제발 다시 터널이 나와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강릉에서 삼척은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7번국도로 갈아타면 도착할 수 있다. 해안도로라서 그저 평지를 내달릴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정동진까지 가는 길에서 여러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몇번씩이나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했던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니 가장 편한길은 그저 평탄한 길이다. 오르막길은 힘겹고 내리막길에는 위험요소가 있다. 자꾸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내 자신이 스스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천천히 느릿하게 언덕길을 오르다가 다시 쏜살같이 내리막길을 달리고 다시 천천히 언덕길을 비질비질 오르다가 다시 미친놈처럼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물론 자전거 라이더 중에는 이런 길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 길은 날 정말 지치게 하는 길이다.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정동진에 도착했다. 두번째 와보는 것이지만 역시 별 볼 것 없는 곳이다. 연인들이 많이 보인다. 매번 연인 없이 혼자 와서 그런 걸까? 이곳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정동진역을 나와 길을 나섰다. 이 롤러코스터 같은 해안도로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7번국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7번국도도 다르지 않았다. 해안도로처럼 심한 것은 아니지만 완만한 언덕과 내리막길의 반복이다. 중간중간에 준비한 빵과 물로 계속 영양보충을 했다. 삼척에 다다를 쯤 길고 높은 언덕에 아파트촌이 보인다. 설마 저기까지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싶었지만, 결국 올라갔다.

내 지금의 삶도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어가면 시원하게 내달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그런 바램으로 내일을 다짐해 본다.




반응형
반응형



대관령을 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전날 세번의 고갯길을 넘으면서 생긴 요령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제 묵은 곳의 해발고도가 높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대관령을 조금만 오르다보면 해발고도 700m지점에 도달하고 거기서 더 달리면 에너지연구소라고 풍력발전기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정상까지는 금방이다. 해발고도 832m 대관령 정상!!! 그렇게 경외했던 장소에 이렇게 쉽게 올라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이제 내려가는 길의 끝에 강릉이 기다리니 당황스러움 보다는 기쁨이 크다.







대관령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이 내리막길은 강릉영동대학까지 연결되며 약 18km다. 이 길은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힐클라임대회의 정식 코스이기도 하다. 힐클라임 대회는 자전거를 타고 강릉영동대학(해발고도 30m)에서 출발해 대관령 정상까지 18km를 오르는 대회로 자전거 매니아들에게는 도전해 볼만한 대회라고 한다.


역시 내려가는 길은 정말 위험천만하고 스릴있다. 특히 급커브길과 급경사가 겹쳐 있다보니 손에 땀을 쥐고 손목에 너무 강한 힘이 들어가 시큰거릴 정도로 통증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강릉에 사는 지인을 만나기로 했기에 강릉교도소 앞을 지날 때 지인에게 경포대에서 만나자고 문자를 전송했다. 강릉시도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닌지라 복잡했다. 초입부터 헤매며 물어물어 찾아가던 중 관광안내소가 보여 직원에게 강릉시 지도를 부탁해 받을 수 있었다. 관광안내소는 여러 여행객들에게 매우 유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상세한 여행지도를 받을 수 있어서 지역의 관광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길에 대한 안내도 비교적 자세히 되어 있어 낯선 여행객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


안내지도를 보며 경포대를 찾아가던 중 친구 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민에게는 자전거 여행을 간다고는 얘기했지만 믿어지지 않았는지, 내가 강릉에 도착했다니까 놀라는 눈치다.


"야, 나 여러번 죽을 뻔했다.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들다."

"너 진짜 미쳤구나."

"그러게, 하다보니 내가 정말 미친 짓을 했구나 싶다."

"암튼 조심해서 잘 다녀와라."

"야 한번 지원 안 나오냐?"

"나도 하번 가고 싶은데, 일정이 어떻게 되냐?"


대략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니 민은 진심인지 꼭 가겠다고 말했다. 그 말만으로 참 기뻤다. 오지 않는다 해도 멀리서 진심으로 응원하는 한 사람을 얻은 기분이다.




원래 일정은 동해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포대 바다 앞에 서니 더 달리고 싶지 않았다. 바다를 멀리 바라보다 해변의 모래 위로 누워버렸다. 파란하늘에 눈이 시리다. 눈을 감았다. 서울을 출발해 여기까지 달려왔던 과정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괜히 내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졌다. 한순간 이만큼 했으면 정말 잘한거다 싶으면서 이제 그만 서울로 돌아가자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무엇보다 외롭다는 느낌, 이만큼 했으면 할만큼 한 거라는 위안이 나를 감쌌다.





눈을 떴다. 새파란 하늘이다. 다시 일어나 앉았다. 두 소녀가 모래를 컵에 담아 바다로 던진다. 아이들에게는 무척 진지하고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엄마가 바다 가까이 가지마라 나무라지만 막무가내다. 어차피 돌아올 모래들을 계속 그렇게 바다로 던지는 아이들. 그들에게는 행동 그자체가 소중하고 의미있다. 누가 무어라 하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 행동이 놀이이고 학습이다.




약속한 지인 선영씨와 만났다. 예전 직장에서 알게 된 사람이다. 그냥 '아는 여자'라고 하면 될까? 선영씨에게 풍성한 지원을 받았다. 자기 동네에 왔으니 손님 접대를 제대로 하겠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여행객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고 위안이다.


진짜 원조 초당순두부 집에서 순두부와 비지를 정말 맛있게 해치우고 근처의 허난설헌 생가에 들러 주옥같은 그의 시를 읽으며 즐거운 낮 한때를 보냈다. 다시 택시를 타고 나를 안내한 곳은 오죽헌. 율곡 이이 선생의 생가이며 신사임당의 친정집이라고 한다. 이곳은 꽤 잘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허난설헌 생가의 풋풋함이 더 정겹다. 저녁에는 경포의 바닷가에서 회를 먹었다. 그야말로 융숭한 칙사 대접을 받은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오늘 하루는 이곳 경포대에 있는 찜질방에 묵고 내일 출발할 것이다. 서울에는 비가 왔다고 하지만 여기 강릉은 파란 하늘에 낮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송글송글 맺힐 만큼 따뜻하다. 내일은 동해를 지나 삼척까지 가볼 예정이다. 오전에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다. 비가 온다면 갠 다음에 출발할 것이다. 여기서 까먹고 헝클어진 일정을 어떻게 만회할지는 삼척가서 고민해 보아야겠다. 



반응형
반응형





산을 넘어 오는 가을아침 햇살이 반갑다.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추워진다고 하는데, 여기는 아침도 무척 쌀쌀하다. 준비한 쟈켓을 입고 페달을 밟았다. 횡성은 한우가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소똥냄새가 진하게 넘실거린다.


차들이 아침부터 많이 달렸다. 왕복 4차선이다보니 달리는 속도 역시 무섭다. 어제 준비한 상세한 지도로 다음 예상 목적지를 보며 달리니 그리 힘겹지 않다. 페달을 밟는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내심 '이렇게만 달린다면 오늘 대관령도 넘지 않을까' 싶었지만, 지금까지 하루하루 달려온 거리보다 오늘 가야할 목표거리가 좀더 길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첫번째 언덕길에서 쉽게 접어야 했다. 갑자기 나타난 언덕길 가도가도 끝이 없이 빙빙 돌아간다. 10% 언덕 앞에서는 아예 자전거를 끌고 갔다. 이 고개가 바로 '황재'다. 징하고 징한 언덕이었다. 초반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전거를 끌고 가다시피 했다. 진짜 언덕길을 만난 것이다. 언덕길을 자전거로 끌고 올라가며 드는 생각은 내일 넘게 될 '대관령'에 대한 걱정이었다. 대관령은 해발고도 832m. 도대체 지금 오르는 이 고개는 높이가 얼마나 될까.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나타난 표지판이 가르키는 고도는 500m. 대관령에는 미치지 못하는 높이다. 그런데도 힘들다.




이제 내리막길... 어제 글에도 있지만 내리막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어렵게 올라왔으니 내리막길은 그에 대한 보상이겠지만, 막상 질주하듯 내려가는 자전거를 내 스스로 감당하기가 힘들다.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자전거의 핸들은 조금만 꺾어도 확 돌아버린다. 아주 조심스럽게 커브길을 달려야 하며, 작은 자갈 같은 것이 바퀴에 걸려도 그 느낌이 핸들에 전달될만큼 민감해진다. 끊임없이 앞뒤 브레이크를 걸어주면서 내려왔지만 아마도 시속 30~50km사이는 되지 않을까. 속도계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그렇게 신나게 내려갔다. 이제 더 높은 고개는 없겠지. 그러나 그도 잠시 불과 한시간도 가지 않아 다시 시작되는 언덕길. 차량 통행도 한산하다. 뭐일까? 열심히 페달을 밟아보지만, 역시 역부족. 다시 자전거를 끌다 타다를 반복했다. 이 고갯길은 좀전의 '황재'보다 더 높다. 눈앞이 캄캄하다. 저 멀리 빙빙 돌아서 올라가는 차들을 보니 더 지치는 것 같다. 어차피 올라야 할 길이고 넘어야 할 산이라면 거북이처럼 끈질기게 엉겨붙어봐야지라고 마음먹고 올랐다. 정상에 올라보니 그곳은 '태기산'. 해발고도 980m 거의 1000m에 가깝다. 지도에는 태기산이 나와 있지 않았다. 생고생을 했다고도 생각했지만, 대관령보다 높은 곳에 올라왔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것도 아니라 절반은 끌고 올라왔지만 그래도 올라왔다는 것에 만족하며 내심 대관령을 다시 보게됐다.



정상에 올랐을 때는 12시가 넘었다. 준비한 김밥과 정상에서 파는 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 1톤트럭에 주방을 차려놓고, 정상 옆에 콘테이너박스와 간이 식탁을 꾸려놓은 아주머니가 이것저것을 팔고 있었다.


"아주머니 여기서 장사한지 얼마나 되셨어요?"

"한 15년 됐나? 아니지 16년이네요."

"와, 그럼 여기 자전거 타고 넘나드는 사람도 많이 보셨나요?"

"그럼요, 많이 봤죠. 요샌 좀 뜸한데, 여름엔 좀 있어요. 그 중에는 단골도 있죠, 호호호."

"내 라면맛도 좋고, 물맛도 참 좋네요."

"어디서 오셨어요?"

"횡성에서 왔어요. 서울에서 그저께 출발했죠."

"고생하네요."

아주머니가 끓여준 라면에는 버섯과 호박, 감자와 파, 양파가 한껏 들어가 있어서 아주 맛있었다. 게다가 산정상에서 먹는 라면, 그리고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겪은 어려움들을 생각하니 라면도 김밥도 금새 먹어치웠다.

"아주머니 잘 먹고 갑니다. 많이 파세요."

"이제 내리막길이니 고생도 끝났네요. 조심해서 가세요."

"네."








급경사와 급커브. 역시 적응 안된다. 계속해서 브레이크를 잡아주면서도 쏜살같이 내려가는 그 속도감, 그것은 쾌감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아드레날린이 한꺼번에 분비되는 짜릿함이다. 이제는 봉평을 지나게 된다. 효석문화마당도 있는데, 시간을 보니 이미 많이 늦어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내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부면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또 하나의 고개를 만났다. 고개 이름은 모르겠지만 해발고도 700m... 언덕길을 오르는 요령이 생겼다. 여기에서는 거의 자전거에서 내려오지 않고 쉬다 달리다를 반복하며 끝까지 올랐다. 물론 체력은 훨씬 떨어지고 있었지만, 몸과 머리가 만들어낸 방법이다. 이렇게 700고개를 넘어가니 진부면이다. 조금만 가면 6번국도와 헤어져 456번 지방국도를 타게 된다.




456번 지방도로. 차가 없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5대 혹은 3대 중의 한대 꼴로 레미콘이나 덤프트럭 등 대형차다. 게다가 갓길도 없다. 지방도로라서 길폭이 좁아서 마치 귓가를 스치듯 트럭들이 내달린다. 겁이 덜컥 났다. 달리다가 뒤에서 트럭의 굉음이 들리면 옆에 공간(풀숲 또는 흙더미)으로 들어가 트럭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러길 반복했는데, 왜 이렇게 트럭들이 많이 지나가는지. 그냥 자가용이나 작은 트럭들은 알아서 피해가는데, 나는 흰차선만을 밟고 가도 트럭이 오면 옆으로 빠져서 지나가길 기다렸다. 어떤차는 바로 귓볼을 스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시 오르막길이다. 오늘의 목적지 횡계까지는 10km. 자전거로 간다면 한시간 정도. 걸어간다면... 2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하지만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 안전을 위해서 자전거에서 내렸다. 갓길도 없는 오르막길을 오른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게다가 트럭들이 무섭게 내달린다. 지금 생각해도 현명한 판단이었다.



지방도로를 터벅터벅 걷다보니 트럭들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강원도는 지금 한창 수해복구로 바빴다. 456번 지방도로 곳곳에 지반이 침해되어 길한쪽이 무너져 내린 곳이 많았다. 그 수많은 덤프트럭과 레미콘 트럭들이 강원도의 수해복구를 위해 동원된 것이었다. 이유를 알게되니 수긍이 갔다. 그렇다면 더더욱 안전하게 걸어서 가야하리. 그렇게 5km의 언덕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드디어 언덕길이 끝났다. 여전히 갓길은 없다. 트럭들은 바쁘다. 도로폭도 좁다. 시간은 벌써 5시를 넘어가고 해는 서산너머로 곧 질 것이다. 여전히 5km를 달려야 횡계다. 걸어간다면 1시간 이상. 해는 떨어져 어두워질텐데, 나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하나.


어쩔 수 없었다. 어두워지고 걷는다는 것은 더 위험하다. 그나마 해가 있을 때 달리자.

'길이 없고 트럭들이 달려들겠지만, 내가 내려가는 속도로 최대한 따돌려보자.'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을까.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기아는 앞바퀴 2단(최고3단), 뒷바퀴 8단(최고8단)으로 놓고 내달렸다. 브레이크는 간간히 잡았다. 정말 빠르게 질주했다. 그리고 점점 평지에 가까워오니 좁디 좁은 갓길이 있다. 뒤에서 차가 올경우 갓길로 빠져 나가고 다시 차도로 들어오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30분을 달리니 횡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일은 대관령을 넘는다. 황재(500m) - 태기산(980m) - 진부고개(700m)를 넘으니 자신이 생겼다. 대관령 832m를 넘으면 동해바다다.

반응형
반응형

2일 : 횡성

내 몸에 맞는 최대속도를 찾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과 산위에서 내려오는 단풍진 숲의 모습. 길의 저편 끝까지 이어진 은행나무 가로수 길. 그곳을 달리다보면 흩날리는 노란 은행잎들. 간간히 내 옆을 달리는 자동차들의 시샘일 듯 뒷꽁무니에서 날아오르는 낙엽들이 스치듯 나에게 다가서면 나는 넋이라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양평에서 횡성으로 가는 길을 가다보면 홍천과 횡성으로 갈라지는 길을 만난다. 거기까지는 내 옆으로 80~100km 가까이 달리는 차들이 주는 위압감에 핸들을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지저분한 갓길에 있는 작은 돌맹이 하나도 놓칠세라 주변 풍광은 신경쓰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횡성으로 가는 6번 국도는 왕복 2차선의 한적한 길이다. 차들도 훨씬 적고 달리는 속도도 느려진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줄줄이 서있고 가을걷이가 끝나 볏단을 세워놓은 논과 멀리서 자전거만 지나가도 짖는 개들, 드물게 서있는 당산나무(마을 입구에 서 있는 큰 나무)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재미가 좋다. 그러나 횡성까지는 구비구비 언덕길들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진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코스가 자전거 마니아들에게 익히 알려진 라이딩 코스라고 한다.





마침내 징한 언덕길을 만났다. 왜 이리 언덕이 심한가 했더니 여기가 도덕고개란다. 고작해야 해발 230m 정도에 불과하지만 첫번째 고개라 너무 힘들었다. 도덕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횡성군으로 진입이다. 횡성군청 소재지까지 달리는 길, 곧바로 내리막으로 연결된다. 차도 별로 없겠다 싶어 올라오면서 쌓인 한풀이 겸 내리질렀다. 그러나 난 스피드광은 못되나 보다. 일단 가속이 붙은 자전거를 제어하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거리감각이 순식간에 뒤바뀌니 핸들을 어느 점에서 꺾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뿐만아니라 돌발상황에서 갑자기 핸들을 꺾게 되거나 브레이크를 잡는다면 그대로 곤두박질 치고 큰 사고가 날 것이 분명하다. 그런 두려움이 나를 감쌌다. 결국 천천히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무리없이 내려오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순식간에 1km를 내달리는 그 느낌은 정말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쾌감이다.









그러나 언제나 불안한 걱정은 현실로 된다. 다음 고개를 넘어 다시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갓길에 버려진 건축폐기물을 피하다가 그만 핸들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발생해 차도 한가운데로 꺾어져 들어갔다 간신히 되돌아오는 일을 겪었다. 만일 뒤에서 차라도 달려왔다면 그 자리에서 차에 치였을 터. 십년은 감수한 기분이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지면에 스치며 충격을 받아 발톱이 지금도 아프다. 그러나 천만다행이다. 내리막길, 특히 차도의 내리막길은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예정보다 횡성에 일찍 도착했다. 점심도 건너고 1시 반경에 횡성군내로 들어와 오복장이라는 자장면 집에서 자장면을 먹었다. 매일 여관방을 잡고 다니다보니 먹는 건 좀 아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일 횡성까지 가는 길이 좀 헷갈려 다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자세한 길을 다시 프린트하고 모레 있을 대관령 등정을 위한 선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 어렵지도 않고, 또 쉽지도 않을 것 같다. 아무튼 내일 모레 4일이면 강릉이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