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난 가난하지 않다. 그렇다고 부유하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건 아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삼십대 중반의 미혼 남성의 삶이란 게 거기서 거기다. 아침마다 부대끼는 대중교통에서 졸면서 출근하고, 점심시간마다 오늘은 얼마짜리 밥을 먹나 고민하고, 휴일도 반납하며 철야도 마다하지 않고 회사에 매달려 살아간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열심히 산다면서 항상 불안하다. 노숙자나 거지를 보면 애써 피하는 이유는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 삶과 노동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참고 사는 것은 그런 가난이 가져올 ‘충격과 공포’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가난하지 않은 것에 안심하고 있다. 우리 의식은 노숙자나 거지를 피하듯이, 그렇게 가난을 외면하고 있다. 거기에 존엄한 가난, 가난한 휴머니즘은 없다. 그 이면에는 가난에 대한 지독한 냉소와 두려움과 멸시가 담겨 있다. 공선옥 소설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가난은 무능력하고 낡은 것, 더러운 것, 혐오스러운 것, 그리하여 일종의 페스트 같고 에이즈 같은 것이다. 암과는 달리 그것들은 점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질병이다. 오늘날 가난은 바로 그처럼 전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몹쓸 질병과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존엄한 가난’을 이야기한다. 그는 아이티의 가난한 빈민가 사람들을 위해 싸워온 신부다. 끊임없는 내란과 독재에 시달리며 가난과 굶주림에 지친 아이티에서 네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네 번 모두 군사 쿠데타에 의해 물러나야 했다. 그의 총 집권 기간은 불과 5년 8개월에 불과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는 군대를 해산하고, 국영기업의 조건 없는 민영화를 거부했는가 하면, 공공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교육과 보건의 사회적 질을 높였고, 최저임금의 인상을 이끌어 냈다. 이 책은 아리스티드가 세계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여기에는 그의 아이티 민중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담겨 있고, 특히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배려가 나타나 있다. 또 부의 추구보다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길에 대한 사유와 성찰 속에서 아이티가 나아갈 제3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가 경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이 충격과 공포를 어찌해야 하나. 왜 우리는 아이티 같은 나라보다 잘 산다고 자부하면서도 이런 불안과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겪어야 하나. 이 책에 그 해답은 없다.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우리 자신의 마음의 가난을 돌아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산행 중에 만난 사람 중에 머릿속에서 또렷이 남아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지난 여름 벽소령에서 만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다. 지리산 능선길이 잘 가꾸어진 건 사실이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이가 산행을 한다는 건 보통의 평지를 걷는 것과는 달리 몇십 배는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나 싶었다. 사실 이건 내 과장일 수도 있는데, 당시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4시간 만에 왔으니, 딱 두 배의 시간이 들었을 뿐이다. 시각장애인은 스스로 지리산을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고, 그의 친구가 기꺼이 동행이 되어 길을 나섰다. 보지 못하는 그에게 산은 어떻게 느껴졌을까.
모든 이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가질 수 있는 욕구가 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열정이 많은 인간일수록 그 욕구는 더욱 강렬하다. 이 욕구는 온갖 난관과 고통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며 열정은 그것을 성공으로 이끄는 기폭제가 된다. 19세기 증기기관도 발명되기 전 시대를 살던 영국인 제임스 홀먼은 신분상승을 위해 군에 들어갔다가 얻은 중병으로 그만 시력을 잃고 만다. 시각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구걸밖에 없던 그 시절에 그는 피나는 노력 끝에 해군기사단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일주의 꿈을 꾸었다.
말과 마차, 그리고 도보만으로 육지를 돌아다녔고 범선에 의지해 대륙을 오가며, 말라리아가 모기로부터 생긴 병이라는 것도 모르는 시절에 아프리카를 누비고 다녔고, 식인종들을 만나 그들의 풍습을 유럽에 전하기도 했다. 그가 다녔던 거리는 최소한 40만km에 이르고 그가 접한 문화권만 해도 역시 적게 추산해서 200여개에 이른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이 2만3천km였으니 제임스 홀먼의 여행이 얼마나 길고 오랜 여행이었는지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는 보지 못하는 대신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였고, 만져보고, 냄새를 맡았다. 현지에서 사람들의 도움과 호의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여행은 혼자 출발했고, 혼자 돌아오는 여행이었다.
따라서 그의 여행은 느린 여행이었다. 시각은 한꺼번에 대상을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분석하지만 촉각은 천천히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자꾸 되새기며 파악하는 일이다. 우리의 삶의 속도를 생각하면 제임스 홀먼처럼 느리게 여행하는 일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점점 바뀌고 있다. 거리를 정복하고 얼마나 멀리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녀왔냐가 자랑인 여행에서 이제는 감각으로 넘치는 여행,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한 여행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 차마고도의 옛길을 이용해 티벳으로 가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이 책은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다. 400쪽이 넘는 분량에서는 다루고 있는 양도 방대하다. 제임스 홀먼의 일대기를 다루면서도 한편으로 당시의 시대상이나 풍습들도 상당히 면밀하게 다루고 있어서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임스 홀먼의 호기심을 따라 살펴본다면 그다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장애에 대한 편견을 떨어 버릴 수 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시각장애인은 눈으로만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단지 시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임스 홀먼이 보여준 용기와 모험은 이를 잘 나타냈다. 실제로 제임스 홀먼의 경우 아무리 처음 가는 방이라도 불과 몇분동안만 거닐어 보면 생활하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로 공간 파악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게다가 높은 곳이나 어두운 곳에서는 오히려 비장애인들 보다 훨씬 뛰어난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고소공포증이 있을 리가 없고, 어둠은 낮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책의 첫부분, 활화산이었던 베이비오 화산을 올라가는 제임스 홀먼의 모습은 그가 정말 시각장애인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게 할 정도다.
문득 내 자전거 여행이 생각난다. 도시와 도시, 마을과 마을을 자전거로 달리는 그 중간중간에 스쳤던 가슴 뛰는 풍경들. 그것은 내 여행의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다. 하늘을 가득 덮었던 낙엽들, 벼 베기가 끝난 들녘에서 한가로이 이삭을 쪼고 있는 시골닭들의 풍경, 동네 어귀부터 나를 따라오며 짖어대던 강아지들, 길을 달리며 만나는 풍경들이 한가롭기만 했다. 명승지를 탐방하고 뛰어난 풍경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과는 달리 바람을 벗하고 구름과 동행하는 여행의 기억은 여전히 내 삶에 강렬한 모티프가 되고 있다.
제임스 홀먼의 세계여행기를 다룬 <세계를 더듬다>는 그런 면에서 우리 안의 여행 본능을 일깨운다. 현지의 문화와 사람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서는 느린 여행의 멋과 맛을 알려주는 진정한 여행기의 진수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흔히 알려져 있는 것과는 반대로, 맹인의 다른 감각들이 더 예민해지지는 않는다. 더욱더 중요해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눈이 먼 사람이 그의 시력이 온전했을 때보다 소리를 더 잘 듣지는 못한다. 다만 귀에 익은 소리들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이 달라질 뿐이다. 촉각 역시 더 예민해지지는 않지만, 그 역할이 더 중요해질 뿐이다. 촉각이 접촉의 확인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미숙한 인지(認知)가 정확한 인식(認識)으로 격상되기 위해서는 주의 집중이 요구된다. - 92~93쪽
촉각에 기초한 인식은 시각에 기초한 인식과는 양적으로 다르다. 시각은 한꺼번에 꿀떡 삼키지만, 촉각은 홀짝홀짝 마신다. 촉각의 세계에서 물체는 빛의 속도로 갑자기 그 성질을 드러낸다. 촉각의 세계에서 물체는 빛의 속도로 갑자기 그 성질을 드러내지 않고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필요에 따라 조금씩 그 성질을 드러낸다. 그것은 섬광처럼 일순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거친 스케치가 완성된 초상화로 변하듯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95쪽
맹인들은 맹인 여행가를 기억하고 있다. 1970년 미국 맹인연맹 연례총회에서 회장 케빈 저니건은 총회장에 모인 회원들에게 맹인 여행가를 그들의 공유 유산의 일부로 자랑스럽게 주장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많은 맹인들이 안전한 제한된 구역에 무력하게 머물러야 한다는 통념에 시달려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는 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홀먼의 이야기는 맹인들이 점자도, 긴 지팡이도, 기숙학교도 직업재활도 나오기 전인 근 200년 전에 한 걸음에 100리를 갈 수 있다는 전설의 요술구두를 신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제임스 홀먼처럼 “혼자서, 아무런 도움 없이, 도와주는 사람 없이” 전 세계를 누비는 데 평생을 바칠 맹인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 지구 위의 삶이 속도가 빨라져서 아무리 다른 감각이 예민하다고 해도 맹인이 그 감각에 의존해서 그런 빠른 생활에 적응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 423쪽
공간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우리 모두를 여행가로 만든다. 우리가 붙잡더라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낯익은 것들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고 새로운 것들과 친해지고 더욱 낯선 정적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더듬어나간다. 우리가 만약 맹인 여행가만큼 운이 좋다면, 우리는 바람과 엄숙한 정적에 깃들인 지능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기꺼이 그 길을 더듬어나갈 수 있으리라. -428쪽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머나먼 LA에서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기다립니다. 멕시코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9살 .. 더보기
어떻게 우연이 잘 맞아서 영화 이벤트에 뽑혔다. 서대문 드림시네마, 영화관마저 생소하고 영화제목도 생소하다. 대충 보아하니 멕시코 영화다. 큰 기대도 안하고 영화 한번 공짜로 본다는 기분에 영화관에 찾아갔는데, 결론은 뜻밖의 수확이다.
영화 <언더더쎄임문>은 21세기판 엄마 찾아 삼만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9살 꼬마 까를리토스. 엄마는 4년 전부터 머나먼 미국의 LA에서 일하며 매달 300불씩 보내주고 있다. 그 돈으로 할머니의 병원비와 약값을 데고도 그렇게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사는 까를리토스는, 그러나 엄마가 한창 보고 싶은 꼬마 아이일 뿐이다. 매주 일요일 엄마로부터 오는 전화만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날,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제 홀로남은 까를리토스의 머나먼 여정이 시작된다. 'LA, 도미노 피자집 옆 건너 버스 정류장에 있는 공중전화, 벽화가 보이고 플라스틱 선물가게가 있는 곳', 단서는 이것에 불과하다.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에 주소도 모른다. 연락처도 없다. 로드무비이면서 성장영화이고 무엇보다 미국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존재하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영화는 매우 탄탄한 짜임새로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영화적 재미를 보여주었다. 촌철살인의 명대사들도 우리를 감동시키지만, 영상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메시지들이 가슴을 촉촉히 적셔온다.
까를로토스는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이민자들이 겪어야 하는 생사의 고비를 넘고, 돈을 잃어버려 빈털털이 신세가 되어 마약중독자의 손에 의해 인신매매 될 뻔도 한다. 하지만 같은 처지의 불법이민자들을 돕는 아주머니의 손에 구출되고 그들과 함께 일터에서 일하다가 이민국에 쫓겨 달아난다. 그때 만난 아저씨가 아버지를 찾아주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아들을 돕지 않고 숨고 만다. 엄마나 아빠가 모두 자기를 버린다고 좌절할 때 아저씨는 한마디 한다. "누구보다 너희 엄마는 널 사랑한다. 네가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일을 생각해 봐라.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토마토 농장에서 이민국에 쫓겨 달아나고, 접시닦기로 숙식을 구하고,... 누가 이런 삶을 살길 원하겠냐. 그러나 이런 삶을 네 엄마는 살고 있다. 바로 너를 위해서 말이다."(정확한 대사는 아님)
미국이라는 거대한 부의 그늘에 가리워진 멕시코 불법체류자들의 비참한 삶에서 따뜻한 시선을 끌어올린 영화감독에게 찬사를 보낸다. 올해 나에게 있어 가장 감동적인 영화 중의 하나로 이 영화를 추천하는 바다.
============================================= 마지막으로 촌철살인의 명대사 한마디
"그래그래 너, 킹왕짱이다." >> 엄마를 찾는 까를리토스를 도와 함께 LA까지 간 엔리케가 까를리토스의 잔소리에ㅣ 대답하는 말.
"미국의 역사? 간단해, 처음에는 원주민을 착취하고, 다음에는 흑인들을 착취하고, 지금은 멕식코인들을 착취하고 있어." >>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시험을 준비 중인 로자리오(엄마역)가 미국 역사가 어렵다고 하자 친구가 하는 말.
후배로부터 <맘마미아>의 OST를 받아 들었을 때부터 ‘아, 이 영화 꼭 보고 싶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좋다는 입소문이야 같이 일하는 여직원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듣던 터였지만, 익숙한 아바의 음악이 이끄는 매력은 그 입소문보다 확실히 대단했다.
‘원스’가 저예산 영화에서 출발한 음악 영화의 소박한 순수함이 있다면, ‘맘마미아’는 기획된 영화의 기교와 멋이 한껏 드러나 있다. 제대로 된 음악 영화를 갈구하던 대중들은 ‘맘마미아’의 출현에 환호했다. 4주 동안 전국 317만 명을 끌어들여 2004년 <오페라의 유령>이 세운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우선 재밌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 있어 노래가 시작되더니 정말 줄기차게 노래가 나온다. 심지어 영화가 다 끝나도 앙코르 영상을 통해 따로 보여주는 노래들도 좀처럼 자리를 뜨기 어렵게 한다. 이미 만들어진 노래들로 꾸며졌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극 전개에서 하나의 흐트러짐도 보기 힘들다. 서사구조가 탄탄하니 노래가 더욱 돋보이며, 심금을 울린다. 특히 <The Winner Take It All>을 목놓아 부르는 장면은 그리스의 눈부신 바다 풍경과 함께 눈시울을 자극할 만큼 자극적이었다.
<The Winner Take It All>는 아바의 아그네타가 남편 비요른과 갈등을 빚던 시기에 발표된 곡이었는데, 그 깊이나 완성도가 뛰어나 아바의 대표곡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긴 사람이 모든 걸 갖는다’면서 실패한 사랑, 이별을 앞둔 사랑의 아픔을 절절하게 노래한 이 노래는 그 깊이 있는 가사와 절절한 가락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뮤지컬 제작자 주디 크레이머에게 아바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영감을 주기도 했다.
영화관에서 신나는 음악들로 저절로 무릎을 흔들고 고개를 까딱거리게 하는 경험은 흔치 않다. 게다가 요즘 이 OST 덕분에 점심시간 이후의 식곤증을 몰아내고 있다. 이 가을은 적어도 이 OST만으로도 우울할 일은 없을 듯하다.
낯설지만 재밌었던 레바논 영화 <카라멜>. 사실 이 영화가 어느 나라 영화인지는 인터넷을 뒤져보고 알았다. 영화를 보고서는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고, 영화 팸플릿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이슬람과 그리스도교가 공존하는 모습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연애결혼을 인정하면서도 아랍의 보수적인 문화로 미혼 여성이 혼자 호텔을 예약할 수 없고, 혼전 성관계가 용납되지 않지만 그러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처녀막 재생 수술이 보편화되어 있는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레바논 여성들의 솔직하고 유쾌한 이야기가 지중해의 따스한 빛과 카라멜의 황금빛 영상으로 스크린을 감싸고 있다.
영화 <카라멜>은 그런 배경을 묵직하게 깔았지만, 여성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닿아 유쾌하고 발랄하게 상황을 이끌어갔다. 우리나라 영화 <싱글즈>를 연상할 수 있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레바논 여성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어려움이 세심하게 드러내고 있어 볼만하다.
무영탑을 만든 아사달 같이 전문가들이 만든 작품이 아니다. 거친 손으로 투닥투닥 두드려 만들어낸 흙인형이다. 당연히 누가 왜 만들었는지 세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그저 누군가의 무덤 한켠에 자리잡아 이생의 삶을 다시 저승에서도 잘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토우는 보통의 신라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표현한 UCC, 즉 자체개발 콘텐츠인 셈이다.
천년의 세월을 넘어 토우가 여전히 우리에게 재미있고 유쾌한 상상을 선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천년전 이 토우를 만들었던 이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그 유쾌한 만남이 즐겁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신라관 한편에는 이 토우들만 모아 독특한 전시를 펼쳐놓고 있다. 손가락 두마디 만한 크기의 토우들이 보여주는 세상은 신라인의 유쾌함이다. 온갖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인형들, 무술을 하는 토우,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거기다가 므흣한 성행위 장면까지… 앙증맞고 깜찍한 인형들이 보여주는 재미있는 모습들에 빠져 전시관에는 웃음과 탄성이 가득하다.
전시관 중앙에 특별히 자리잡은 한쌍의 도제기마인물상은 가장 멋들어지고 정교한 작품이다. 오히려 작고 앙증맞고 투박했던 토우와 비교해 보면 이것도 그 범주에 넣는 게 이상하기까지 하다. 아무튼 이게 국보 91호다.
신라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그려낸 연작소설집 <서라벌 사람들>을 펴낸 심윤경 작가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토우장식장경호와 같은 유물은 남자의 커다란 성기와 여자의 섹시한 엉덩이를 유별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유물들을 보면 신라가 성을 숭배하는 토착종교를 지닌 사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꾸밈없고 솔직한 신라인들의 UCC를 내 블로그에 담으니, 100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유쾌한 UCC활동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했다. 늦은 저녁 지하철 풍경은 모두 각자의 일상을 마치고 하나둘 어깨에 짊어진 짐들을 질질 끌며 집으로 가고 있다. 저 짐들은 다시 내일 아침이면 질질 끌리며 직장으로 학교로 다시 경쟁의 세상으로 가지고 가야 할 것들이다.
세상의 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을까. 짐의 형식이나 방법은 달랐을 테지만,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반드시 짊어질 억겁의 운명은 하나였을 거다. 생-로-병-사, 21세기 과학이 풀지 못하는 의문은 몇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 경계에 다가서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안의 괴로움까지 풀 수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만났다. 마른듯하지만 강건하고, 부드러운 듯하지만 날카로운 조각선들, 저 보일 듯 말 듯한 입꼬리의 미소는 깨달음으로 한걸음 나아간 신성의 모습일까. 아무리 엎드려도 그 눈에 눈맞춤 할 수 없는, 낮고 낮아지는 그 마음은 더더욱 깊어진다.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출가 직전 태자 시절에 중생의 고통을 보면서 고뇌에 잠겨 있는 모습을 그린 모습이다. 즉 부처 이전의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중생의 고뇌를 헤아리는 태자의 모습은 미륵보살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구원하겠다며 출가를 결심했다. 큰 마음을 가지고자 했던 사유의 깊이를 우리는 얼마나 짐작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면서, 버리지 못한 것에 질질 끌려다니는 우리네 인생은 그에게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사유 되었을까. 두루 헤아리며 생각한다는 ‘사유(思惟)’가 여기 불상에 깃들어 나는 자꾸 그 생각 안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어가 보지만, 헤아릴 길이 막막하다.
기대를 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무심히 셔터를 누를 때가 있다. 대부분의 풍경은 프레임 안에 갇혀버리기 일쑤다. 정말 좋은 사진은 프레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진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항상 카메라 뒤에 숨어 있다. 그것은 프레임을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담아야 한다는 말이다. 매그넘의 사진들은 프레임에 숨어 있는 진실들, 그리고 사진기 뒤에 있는 작가들을 보여주었다.
매그넘의 명성은 이미 권력이다. 물론 그들은 목숨마저 내놓고 위험한 역사의 현장을 마다하지 않는 불굴의 작가라는 점에서 그런 권력은 의미 있으며 가치가 있고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명성과 권력이 어떻게 한국을 담아낼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들이 프레임 안에 담아낸 풍경은 실상 아주 단순하고 가까운 평범한 일상들이었다. 그러나 평범함 안에 비범함을 담아내고 있다.
각각의 작가들이 추구하는 사진정신은 실로 다양해 빛과 어둠, 여성, 프레임 안의 프레임, 유머, 색채 등등 자신이 담고 싶은 것을 담는다. 한 장의 사진에 하나의 담론이 실리는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그러니까 피사체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나 관찰, 교류 없이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기계적 초점일 뿐이며 보다 진지한 작가적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 기술적인 발전은 이룰 수 있을지언정, 내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방식의 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가방안에 항상 캐논 400D를 가지고 다니면서 막상 가방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내 어깨에 느껴지는 중압감만 더욱 커지고, 왜 그것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 모를 의문만 쌓여 갔다. 아마도 세상에 대한 관찰이 부족하고, 교류도 없으며, 탐색도 하지 않았던 탓이다. 매그넘 사진전을 다녀오면 자꾸 사진기에 손이 간다. 평범하게 보이는 시선을 다시한번 마음의 프레임에 넣어본다.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오는 세상을 향해 좀더 세심한 시선을 던져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카메라가 가방 밖으로 나오는 일이 잦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세상이 나를,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