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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트는 교통수단 중 전동차와 지하철을 보겠다. 오사카를 자유여행을 위해서는 가급적 스롯토 간사이 패스를 챙기는 것이 좋다.

스롯토 간사이 패스는 간사이 지역(오사카, 고베, 교토, 나라, 와카야마, 고야산)에서 전철(JR 제외)과 전철, 버스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교통 패스다. 2일권(3,800엔)과 3일권(5,000엔)이 있는데, 꼭 연속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하는 날이 떨어져 있어도 사용할 수 있다. 즉 2일권의 경우, 1일차에 이용한 후 2일차 쉬고 다음날 3일차에 남은 하루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스롯토 패스가 가진 또하나의 장점, 바로 관광지 할인 혜택이다. 오사카성 천수각의 100엔 할인을 비롯해 주요 관광시설 350곳의 할인 특전이 이 패스 안에 담겨 있다. 그러니 자유여행을 가겠다면 필수 준비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간사이 스롯토 패스는 우리나라에서 준비해 갈 수도 있다. (간사이 스롯토 패스 사이트 바로가기)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면 입국심사장까지는 공항전철을 이용한다. 간사이 국제공항은 입국장과 터미널이 모노레일로 연결되어 있고 여기를 무인전동차가 오가며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모노레일로 이동하는 시간은 무척 짧다. 기껏해야 5분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노레일의 재미를 좀 느껴보겠다면 첫차는 그냥 보내자. 대부분 첫차는 거의 아침 출근 지하철 수준이다. 많은 승객들과 승객들이 가지고 온 짐에 치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첫차를 보내면 한가한 모노레일에 올라 여유있게 모노레일열차를 살펴보고 창밖으로 공항도 볼 수 있다. 

간사이 국제공항은 1994년에 완공된 공항이다. 특이한 것은 이 공항이 바다를 메워서 만들어진 인공섬에 있다는 것이다. 지진과 태풍이 빈번한 일본에서 인공섬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1995년 코베 대지진의 진원지는 이 공항에서 불과 20km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당시 코베 대지진은 6443명의 사망자가 생길 정도로 막강한 대지진이었다. 하지만 이 공항은 유리창 하나 깨진 게 없을 정도로 멀쩡했다고 한다. 또 1998년에 온 태풍은 풍속의 시속이 200km에 달했다고 하지만 역시 이 공항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일본의 놀라운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사이 국제공항 지하철역은 깔끔했다. 지하철 매점마저도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동차 내부는 우리나라보다 약간 좁았다. 우리보다 열차 궤도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오사카에는 8개의 노선이 있다. 각각은 우리나라처럼 색깔로 구분된다.


 

노선 심벌

노선명

거리 (km)

노선 색깔

M

1호선

미도스지 선

24.5

빨강

T

2호선

다니마치 선

28.1

보라

Y

3호선

요쓰바시 선

11.4

파랑

C

4호선

주오 선

17.9

초록

S

5호선

센니치마에 선

12.6

분홍

K

6호선

사카이스지 선

8.5

갈색

N

7호선

나가호리 쓰루미료쿠치 선

15.0

연두

I

8호선

이마자토스지 선

11.9

주황





오사카 지하철역은 우리나라와 달리 각 노선을 갈아 탈 때마다 새로 나오고 들어가는 것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철 구로역에서 2호선 신촌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냥 표 한 장으로 가능하지만 일본은 구로역에서 탑승한 후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신도림역에서 1호선을 나와 다시 2호선으로 표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구조다. 게다가 하나의 환승역에 있는 각 노선의 입출구도 모두 다르다. 반드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게끔 만들어져 있다. 각 노선을 운영하는 회사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시스템이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고 말한다.

오사카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지하철 전동차모습이다. 전동차 겉모양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네모지고 길고… 그런데 좀 색다른 전동차도 볼 수 있다. ‘라피도’라고 간사이 국제공항 역에서 볼 수 있는 특급열차다. 이 열차는 스롯토 패스를 이용해 탄다고 해도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















오사카 지하철의 개찰구 앞에는 항상 직원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오가는 사람들의 질문에 아주 친절히 응대하고 있었다. 우리도 간혹 헷갈리는 곳에서 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 전동차 운전석도 훤히 보이는 구조다. 기관사의 모습이 좀 무뚝뚝해 보이지만, 그래도 이들이 기기를 조작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도 재미다. 역사에 있는 직원 사무실도 유리창으로 훤히 보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만큼 직원들의 노동강도는 강해지겠지만 고객입장에서는 찾아 들어가 물어보기도 쉽고 그만큼 더욱 친근감이 가면서 믿음직스럽다. 

자유여행의 핵심은 교통편을 잘 이용하는데 있다. 관광지 100개를 알아도 직접 찾아가 보아야 보배다. 오사카의 지하철 이용을 하는데 글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역시 직접 부딪혀 보고 알아가는 게 가장 빨리 배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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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트에서 오사카에서 먹은 음식들을 소개한다.

도톰보리를 소개하는 포스트에서도 밝혔듯이 오사카는 먹을거리의 천국이다. 어떤 분들은 오사카를 ‘우리나라의 전라도’로 비교하곤 한다. 오사카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교역의 중심지로 각지의 특산물들이 모이는 곳이라 맛있는 먹을거리들이 예부터 아주 풍부했던 곳이다.

오사카에서 지낸 1박2일이 짧아 많은 것을 먹어볼 수도 없었고, 출장차 방문한 거라 가난하게 돌아다니다 보니, 일일이 유명한 식당을 찾아다닌다는 것도 사정상 어려웠다. 그래서 그다지 이름난 식당의 음식도 아닌데 여기에 올린다는 게 사실 좀 남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가난하게 찾아다녔어도 싸고 맛있게 먹은 몇몇 음식들이 인상에 많이 남아 간단히 정리해 보겠다.

인천에서 새벽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오사카에는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밤새 잠을 설쳐 피곤하기도 했지만 낯선 이국땅에 발을 딛는 기분 때문에 약간은 들떠 있었다.

그래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니 우선 고픈 배부터 채울 일이 급했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식당을 찾기도 쉽지 않아 한참을 헤매다가 마침 문을 연 ‘야요이켄’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김밥나라’ 같이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할 수 있는 평범한 식당이었다. 이 가게는 자동판매기에서 식권을 끊어서 제출하는 형식이었다. 이런 형식의 식당은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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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간 O대리님은 그냥 정식을 시켰고 나는 일종의 돈가스덮밥을 시켰다. 가격은 500엔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오사카에 와서 처음으로 접하는 맛은 어땠을까. 좋았다. 이런 평범한 가게에서 먹는 가벼운 아침식사가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으니까. 워낙 허기가 진 것도 있겠고 내 입맛이 싸구려라서 뭐를 먹어도 맛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참 기분 좋은 아침식사였다.


그리고나서 하루종일 업무를 하느라고 돌아다녔다. 이른 아침부터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4곳을 돌아다니느라 점심도 걸렀다. 그리고 4시 쯤에 도톰보리에 들렸다. 낮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구경거리는 없었다.  O대리님과 나는 일본 라면(라멘)을 먹기로 했다. O대리님은 도톰보리에는 유명한 킨류라멘집이 있지만 다 비슷하다면서 다른 라멘집을 소개했다. 라멘집 이름은 ‘사쯔마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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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가격을 보고 좀 놀랐다. 850엔. 대충 800원으로 환산해도 7000원이 넘는 가격. 속으로 무슨 라면이 이리 비싼가 싶었는데, 막상 나온 라면을 보니 그럴만도 할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비싼 것 같기도 하고... 돼지뼈를 우려서 국물을 내고 돼지고기도 푹 삶아서 라면에 얹어서 내놓는데, 보기에는 굉장히 느끼해 보였다. 맛은 좀 느끼하긴해도 괜찮았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가격이 좀 부담스럽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도톰보리에서 라멘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사카의 밤거리를 구경하려고 했는데,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그만 그대로 뻗고 말았다. 밤을 새고 날아왔다가 다시 하루종일 돌아다녔으니 견뎌낼 수가 없었나 보다.

아무튼 이튿날 날이 밝았고, 눈을 뜬 우리는 서로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하루밤이 그냥 지나간 것이 얼마나 원통하던지….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게스트 하우스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주변 구경을 나갔다. 오사카타워 아래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오사카의 아침은 매우 조용하고 집집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화초와 화분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싱그럽게 빛났다.


우리는 체크아웃을 하고 거리로 나왔다. 우선 아침을 먹기로 하고 남바역 근처의 ‘요시노야’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요시노야도 체인점인데, 작은 가게 안에서는 아저씨 한분이 혼자서 손님을 맞고 음식을 만들어 내놓고 있었다. 돼지고기 덮밥을 주문했는데, 가격은 350엔 정도. 우리나라로 치자면 불고기덮밥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가격은 3000원에 못 미치는 매우 저렴한 가격이다. 게다가 맛도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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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라시야마로 향했다. 아라시야마에서 돌아다니면서 먹은 말차아이스크림, 일종의 녹차아이스크림인데, 녹차의 싱그러운 자연의 맛과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 입안이 지금도 맴돈다. 아라시야마를 나오면서 다꼬야끼와 기린맥주를 들고 강가에 앉았다. 강가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즐기는 여유는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다를 게 없다.

그리고 다시 시내로 들어왔을 때는 오후 5시.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쉬움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끼면서 우리는 ‘와타미’라는 맥주집을 찾아 들어갔다. 일본통인 O대리님이 알아서 안주를 시켰는데, 기본 안주로 회 몇점이 나왔다. 역시 회의 본고장인 일본답고 해산물이 풍부한 오사카답다는 느낌이다. 맥주는 잔을 얼려서 나왔는데, 맥주가 아주 시원하고 맛도 색다르고 이색적이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만큼의 맥주를 마셨다. 환전해 간 모든 돈을 다 털었지만 그래봐야 2잔씩 밖에 안돌아갔다. 시간은 얼마나 빨리 흘러가던지.

저녁도 먹지 않고 맥주로 때웠으니 배가 안고플 수가 없다. 간사이공항으로 가는 길에, O대리님의 제안에 따라 있는 잔돈을 다 털어서 호라이만두를 샀다. 호라이만두도 꽤 맛있다. 다음에 가면 꼭 다시 사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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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돌아보니 굉장히 가난한 여행이었다. 하루에 두끼만 챙겨먹고 그것도 간단히 먹었으니 일본 맛의 고장이라는 오사카를 너무 무모하게 다닌 게 아니었을까. 많지 않지만 그렇게 접한 오사카의 맛의 느낌은  꽤 좋다. 오사카에서는 ‘먹다가 망한다’는 말이 실감났으니 말이다.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많이 털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있는 잔돈까지 다 털고 나왔으니 그 말이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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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는 '먹다가 망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전통적인 일본 요리가 유명한 곳이다. 그 중에서도 도톰보리는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먹자거리라고 할 수 있다. 음식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많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도톰보리는 1612년에 공사를 개시해 완성시킨 물자 수송용 인공수로 주변의 거리를 말한다. 에도 시대부터 이 강가를 따라 술집과 카부끼 극장 등이 하나 둘 들어서며 유흥가로 발전했고, 지금은 오사카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반드시 들려볼만한 명소 중의 하나로 발전했다.

도톰보리 간판들을 보는 것도 재밌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간판은 두 팔을 들고 트랙을 달리는 남성의 모습이 그려진 간판이다. 1935년 세워진 이 간판은 도톰보리의 상징적인 명물이다.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볼 수 있는 큰 게(킹크랩) 간판이 보인다. 너무 쉽게 눈에 띄는 만큼 잊을 수 없다. 1962년에 개업한 게요리 전문점인데, 지금은 전국 각지에 수십 개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게의 모습이 좀 엽기적인데, 게 다리까지 움직이니 호러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유명하다니까...

도톰보리의 낮과 밤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현란한 네온사인과 특색있는 간판들 때문일 것이다. 도톰보리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밤에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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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 있는 오사카성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였다. 이곳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과 명을 도모했던 것이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그의 이름은 동북아시아에서는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각인됐다.









오사카성 입구

 

하지만 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광도 한세대를 넘지 못했다. 그가 죽은 뒤에 이어진 토꾸가와 이에야스의 반란에 의해 아들이 이곳 오사카성의 한 쪽에서 자결을 했다. 그 자결 장소에는 현재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조선을 침략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떨게 한 사람의 아들이 이렇게 초라한 곳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자결터와 비석



 

자결터와 비석을 지나 텐슈가쿠로 올라가는 언덕을 오르기 전에 나오는 공터에는 거대한 돌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다. 여기를 ‘각인석 광장’이라고 부르는데 이 돌들에는 각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이 오사카성을 지을 때 전국 각지의 돌들이 옮겨졌는데, 당시 성벽을 세우는 데 참여한 가문의 문장이라고 한다.

오사카성의 중심 건물인 8층 높이의 텐슈가쿠(天守閣). 여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를 기록한 박물관이자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간사이 쓰루 패스를 가지고 있다면 100엔의 입장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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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에 갔을 때가 5월 4일 토요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오사카성에 나들이를 왔다. 이날 마침 성의 광장에서는 Family Festival과 관련된 행사가 곳곳에서 열렸다. 일본 전통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화려한 무대를 펼쳤는데 볼만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전통복장을 즐겨 입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복 입는 것을 보는 것이 점점더 보기 어려워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저글링 공연 사진



 

한쪽에서는 재미있는 저글링 공연도 펼쳐졌다. 삐에로 분장을 한 아저씨가 단순한 저글링만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묘기도 부리고 코믹한 행동도 하면서 좌중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맑고 호기심에 가득찬 눈동자를 카메라에 담아 보았는데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왔다.

오사카성의 시립 박물관은 휴관이어서 구경할 수 없었다.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새점을 치는 분이 보였다. 한글도 보이기에 유심히 보았지만, 문법과 어법이 맞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하간 한국관광객도 주요 고객 중의 하나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꾸라몬을 지나 성밖으로 나오면 오사카성 주변을 도는 로드 트레인을 만날 수 있다. 이 로드 트레인은 오사카성의 돌면서 관광을 즐길 수 있으며 종착지인 대수문전에 내려 준다.

역시 오사카성에 가서 텐슈가쿠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많이 아쉽긴 하지만 바깥에서 구경한 여러 공연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관광지 입장료들이 만만치 않다는 게 나를 소심하게 만들었다.

다음 포스트는 오사카의 이모저모를 찾아가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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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재-중재에는 봄꽃들이 한창이었다. 진달래 철쭉은 흔하게 만나는 것들이지만 손톱만한 꽃들이 발치에서 방긋방긋 미소를 전염시키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몸도 마음도 피곤했는데, 꽃들을 보니 편했다.

몇몇 무덤가에는 할미꽃이 다소곳하게 피어있었다. 예로부터 자손들의 효성이 지극한 묘 주변에서는 할미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는데… 중국에서는 백두옹이라고 불렀고,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약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동의보감은 할미꽃에 대해 ‘혈(血)에 들어가 열독을 제거하고 피를 맑게 함으로써 아메바성 적리 및 이질에 쓰인다’고 밝히고 있다.

신비로운 봄꽃들의 향연과 함께 했던 백두대간 여원재-중재 코스. 이제부터 하나씩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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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다. 나름대로 성장의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 자연과 만나는 감동이 있었고, 항구와 시장과 벌판, 공장에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보았다. 가을이 깊어가는 한가운데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과 땅을 보았고, 바람과 비도 원없이 맞아보았다. 가을볕에 타버린 얼굴과 더 탄탄해진 다리근육과 맑아진 머릿속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어 기쁘다. 몸이 가벼워진 것처럼 마음도 가벼워졌다. 삶을 더 가볍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송탄역 근처의 여관방에서 눈이 떠진 것은 6시. 알람도 없고 창밖도 어두운데 눈이 떠졌다. 오늘이면 서울로 들어간다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다시 잠들어보려 했지만,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뉴스를 틀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심드렁하니 듣는다. 건성건성 듣다가도 일기예보만 나오면 몸이 돌아간다. 버릇이 됐다.


터미널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1번 국도를 따라 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많은 차들이 오고간다. 서울에 가까운 국도라지만 도심을 빠져나오면 갓길은 엉망이다. 왼편으로 차들은 쌩쌩 소리를 내며 달리고 갓길은 아슬아슬하고 오른편은 논두렁인 길을 달린다. 도심내에서는 아예 차도로 달리는 것이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인도쪽에 자전거 길을 만들어 놓은 곳도 많지만, 차도의 아스팔트에 비하면 울퉁불퉁하고 곳곳의 지반이 깨지거나 무너져 엉덩이가 무사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안전하게 가자는 마음에 인도쪽을 택해서 조심조심 갔다. 사람도 피해야지 길도 살펴야지 신경써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방에 비해 서울과 수도권 쪽이 자전거에 대한 배려가 훨씬 부족하다. 지방의 큰도시 뿐만 아니라 중소도시들 중 일부는 자전거 도로가 아주 잘 마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인도로 다니는 사람도, 차도로 다니는 차량도, 그리고 자전거도 모두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서울로 올수록 이런 정책적 배려는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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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가는 길에 1번 국도를 도저히 타기가 어려워 샛길로 빠져 달렸다. 간신히 수원역까지 달려갔는데, 거기서 다시 안양 방향을 알 수 없다.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길가 간이매점에서 어묵을 사먹으며 길을 물었다.


“저, 자전거로 안양 방향으로 가려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자전거로?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자전거로 가려면 한참 걸릴 텐데, 어이구”


자전거 전국여행의 마지막 여정인데, 고작 수원에서 안양 가는 게 한참 걸릴 거라고 걱정해 주는 아저씨의 말에 속으로 웃고 말았다. 고작 10km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 수백km를 달려온 내가 그것이 두렵거나 걱정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어쩔 수 없이 1번국도를 타고 달렸다. 물론 수원에서부터는 계속 인도로 달렸다. 자출족(자전거 출퇴근족)들은 거침없이 차도를 달린다고 하는데, 자전거 전국여행을 한 나도 도심내 차도를 달린다는 건 꺼리고 싶은 일이다.


수원의 명물이라고 하는 팔달문과 장안문을 지나 의왕시를 향했다. 의왕시내로 진입하니 안양까지 8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안양에 들어가서는 안양천을 따라 집으로 달렸다. 첫날 집에서 나와 안양천을 타고 시작한 자전거 여행이 이제 다시 안양천을 타고 마무리됐다. 안양천 길에서 만나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반갑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네까지 안양천 둔치에서 늦가을 맞이 나들이를 나온 모든 사람들이 나를 마중나온 사람처럼 반갑다.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잠시의 일탈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렇게 나는 돌아가고 있었다. 모천(母川)으로 돌아온 한 마리 연어처럼 내가 다시 돌아간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쏟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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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장여관. 이름은 그럴싸한데, 별로 추천할만한 집은 아니다. 근처 다른 여관방들이 어떤지 모르지만 전국일주에서 다져진 여관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도 온돌이 좋긴 좋다.


김밥나라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초지대교로 향했다. 원래는 섬의 서쪽 끝까지 해안가를 따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동행한 김 선배도 오후 일찍 집에 가야 한다고 하니 섬의 동쪽 해안만을 타고 초지진을 구경한 후 초지대교를 넘어 서울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건너편 김포와 그다지 멀지 않다보니 큰 바다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갯벌이나 고기잡이배 등은 반갑다. 바다를 상징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갯벌, 갈매기, 고깃배, 파도, 비릿한 바다내음, 등대, 백사장 등등. 초지진으로 내려가는 길 일부에 이런 것들이 있었다. 비록 막막한 수평선은 보지 못했지만 이런 것들이 마음을 위로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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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한편에 마련되어 있어서 달리기 편하다. 초지대교까지 조금 힘든 언덕길이 한번 정도... 강화도의 독특한 점은 바로 섬 자체가 하나의 요새라는 것이다.


서울로 통하는 수로는 반드시 이곳 강화를 거쳐야 했다. 때문에 강화는 예부터 독특한 군사기지들이 발전했고, 또 그만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며, 수많은 피가 뿌려진 전쟁의 기억을 가진 곳이다. 그것이 바로 ‘돈대’와 ‘진’, ‘보’로 대표되는 군사기지의 흔적이다. 강화도의 돈대-진-보 등은 해양에서 접근하는 적들을 맞아 싸우기 위해 세워진 군사기지들이다. 물론 강화도에는 점등사라든지 마니산, 첨성대 등도 있지만 지정학적 위치로서 강화도가 가지는 역사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대몽골 항쟁의 본거지였고, 근대에는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의 서구 열강의 외침을 겪었던 장소다.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이웃 사이에도 학살과 보복이 처절하게 되풀이 되어 지금도 전쟁 당시를 떠올리는 것이 금기처럼 된 곳이다.


우리는 일정 때문에 대부분의 돈대나 진, 보를 그냥 지나쳤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지나치는 곳이 많다. 자전거는 차보다 느리기 때문에 도로에서 시간을 많이 뺏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리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고통스럽게 달리기보다 그것을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차로 지나가면 못보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시선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자전거 여행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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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지진을 나온 시간은 11시 50분. 초지대교를 건너온 이후 김포 IC까지는 356번 지방국도를 타고 간다. 지방도로이지만, 자전거 도로와 갓길이 잘 되어 있어 안전한 편이다. 김포IC에서는 다시 48번 국도를 타고 갔다. 한강 제방둑길을 타고 가볼까 했지만, 아는 길로 빨리 가자는 김선배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48번 국도를 타고 행주대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오후 2시가 좀 넘어 행주대교에 도착했다. 갈 때보다 상당히 빨리 왔다.


늦은 점심을 어제의 국수집에서 해결하려 했으나 다시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그리고 찾아가니 국수집은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식당을 찾아가는데, 4000원짜리 콩나물국밥에 맛깔난 반찬까지 꽤 괜찮았다. 어제의 국수에 이어 오늘의 콩나물국밥까지 행주산성 근처 식당은 주머니가 크지 않은 사람들에게 참 괜찮은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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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을 먹고 4월달 파주 원정을 다짐하고 헤어졌다. 김선배는 들어가는 대로 큰애의 조립장난감을 같이 만들어 주어야 하며, 작은애의 네발 자전거의 뒷바퀴를 떼어주기로 했단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주말에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진다. 나는... 딱히 할 일은 없다. 홀가분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부럽기도 하다.


왕복 120여km, 총 주행시간 약 12~13시간의 강화도 여행은 이렇게 무사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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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자전거답게 달렸다. 작년 11월 이후로 이렇게 하루 종일 자전거 타보는 건 처음이다. 사실 많이 긴장하고 걱정했다. 체력은 될까? 자전거는 펑크 나지 않을까? 펑크나면 내가 고칠 수 있을까? 강화도까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일까? 중간에 위험한 곳은 없을까?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등등...

예전에 자전거 전국일주 떠나기전에도 그랬다. 걱정을 하다보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것처럼 온갖 상황들이 다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냥 가는 게 좋다. 말이나 생각보다 위대한 것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걱정이 아니라면 페달에 과감하게 발을 얹고 돌려보는 거다.


안양천 자전거도로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부 지역에서. 멀리 보이는 다리는 가양대교



행주대교 남단에서 다리위로 올라가는 길


집에서 나와 달리기 시작하니, 지난 번 보다 짐도 마음도 가볍다. 날씨도 비교적 따뜻하고 화창하다. 안양천을 타고 한강을 향해 달리니 윤비(자전거 이름)도 신이 난 것 같다. 씽씽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이 녀석도 기분이 좋은 거다.

함께 가기로 한 김 선배와는 행주대교 북단에 위치한 국수집에서 보기로 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한참 헤맸는데, 다행히 행주산성에서 선배와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12시 경. 점심은 국수로 하기로 하고 근처 <원주 국수집>을 찾아갔다.



원조국수집 주요 메뉴인 잔치국수, 건너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그릇에는 비빔국수



원조 국수집, 벽에 세워놓은 자전거들.


우리가 찾아간 '원조 국수집'의 국수는 3,000원. 반찬은 달랑 김치 하나였지만, 양만은 어느 집 국수보다 푸짐했다. 아침을 늦게 먹고 출발한 나는 잔치국수를 다 먹지 못할 정도였다. 김선배는 비빔국수를 시켰는데, 그런대로 맛있단다.

선배 말에 따르면, 원래 이곳 원조국수집은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본거지란다. 이곳에서 자주 모임을 가진다는데, 이날도 모임이 있었나보다. 김선배나 나도 회원이기는 한데, 가입인사만 했지 들러보지도 않았던 터라 그냥 모른체 했다. 다른 자전거 회원들은 우리가 누군가 싶은지 흘깃흘깃 쳐다본다. 민망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좋은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자전거를 잘 모르는 나는 그냥 좋아보인다 싶었는데, 김선배 말로는 보통 50만원 이상 되는 것들 같다고 한다. 우리 자전거는 20만원 대의 저렴한 자전거. 그래도 저 으리으리한 자전거 중에 과연 몇대나 한달간 전국일주를 해보았을까 생각하니 은근히 내 자전거가 자랑스럽다. (원조 국수집은 행주산성 입구에 있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

점심을 든든히 먹고 출발한 시간은 오후 1시경. 예상보다 꽤 늦은 출발이었다. 행주대교 남단에서 48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거기서 48번 국도만 타고 내내 달리면 강화대교를 건널 수 있다. 처음 가는 것인만큼 48번 국도만 내내 따라 달리기로 했다.

행주대교 넘어 초반에 자전거 도로가 조금 있다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시 김포 근처에 이르니 넓직한 갓길이 나오고 차량통행도 한산해졌다. 최고제한속도가 80km라고 하지만 한산한 도로에서 그렇게 달리는 차량은 없다. 전국일주 하면서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 소음에 익숙한 나에 비해, 김선배는 약간 긴장하는 듯했다.

잘뻗은 국도변도 김포시내에 들어서자 없어지고 우리는 차도 위로 달렸다. 역시 시내주행이 까다롭다. 차량들이 속도는 많이 떨어졌지만 통행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시 김포시내를 벗어나면 얇은 갓길이 나온다.

김포를 벗어나 강화대교를 건넌 것은 3시 반. 행주산성을 떠난 후 2시간 반만에 강화대교를 건널 수 있었다.



시원하게 뻗은 서울-김포 48번 국도



나를 믿고 첫 자전거 여행을 나선 김선배



강화대교 건너기 전


강화대교 건너편 휴게소에 들려 쉬었다. 우리는 서로 엉덩이의 안부를 물었다. 목표한 강화도에 왔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휴게소 매점에서 지도를 얻어 다음 목적지를 논의했다. 그래도 최대한 달려서 석양을 보자는 욕심에 아픈 엉덩이를 달래며 안장에 올랐다. 계획은 해안도로 북쪽길로 달려 섬의 서쪽까지 가는 것. 하지만 길을 잘못들어 그만 해안도로 남쪽길로 들고 말았다. 다시 길을 돌아오다 착한 동네 주민분을 만났다. 그분도 자전거를 타고 가시길레 붙잡고 물었다.

"아저씨 해안도로 북쪽길로 가려면 어디로 가나요?"
"아 연미정 가려고 하는구만요. 거기 좋지. 얼마전까지 군사지역이라서 못들어갔는데, 요즘에는 주말에 한해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던데..."
"아네, 그쪽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나요?"
"그게 휴게소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가는 거지. 군부대 옆으로 통과하는 거에요. 나도 연미정이나 한번 가볼까 생각중인데, 하하"

아저씨는 아주 유용한 정보 두가지를 알려준 셈이다. 해안도로 북쪽길과 '연미정'이라는 곳이 참 볼만하다는 것. 아저씨 말대로 휴게소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가니 반듯한 자전거 길이 나온다. 하지만 그 옆으로는 견고한 철조망이 쳐져 있어 좀 삭막하다.


얕은 차단벽도 있는 자전거 전용 도로

아저씨가 안내해 준 길은 해안도로로 연미정 가는 길도 맞았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한 정보가 있었으니... 강화도는 북한과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연미정 가는 길에 해병대 군인 아저씨들이(무척 앳되 보였다) 도로를 막아섰다.

"무슨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그냐 자전거타고 왔는데... 관광이죠."

물론 살풋이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군인 아저씨들은 더이상 가는 것은 안된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민통선 안으로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민통선이라니, 우리가 참 많이도 올라왔나 보다. 민통선이라는 개념을 순간 망각한 나는 개념없는 질문을 했다.

"그럼 혹시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나요?"

군인아저씨도 황당했을 텐데 친절하다.

"글쎄요. 아무튼 돌아가셔야 합니다."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서서 가려는데, 군인 아저씨들 우리에게 거수경례도 붙인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거수경례에 웃으며 "수고하세요"라고 답했다. 나는 왜 군인을 보면 늠름하다는 생각보다는 참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까.

제법 넓직한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우리는 어림짐작으로 강화군청(중심지)이 있을 만한 지역을 찍어 바로 농로로 들어섰다. 지도에도 없는 임시도로길을 달렸다. 논들은 한번 밭갈이를 해주었는지 객토가 잘 되어 있다. 오랫동안 가물었을 텐데도 한번 객토를 해놓으니 검고 찰진 흙들이 밖으로 드러나 보였다.


임시도로를 달리는 김선배. 평화로운 강화의 봄이 느껴졌다.



임시도로 위를 달리는 김선배

결국 우리는 강화군내로 들어왔다. 거기서 숙소를 잡았다. 김선배의 네비게이션에서 검색해 나온 유일한 여관 독일장 여관에 짐을 풀었다. 물론 군청 주변에 여관은 많았다. 결론적으로 여관 상태는 그다지... 아무튼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마땅한 집이 없는데, <소문난 감자탕집>이 있어 어떤 맛이기에 소문났다고 자랑하나 궁금해 찾아들어갔다. 결론적으로 그냥 평범한 감자탕이다. 우거지가 많이 들어갔다는 것이 좋았다. 고기맛은 나쁘지 않다. 국물맛은 진한편이다. 감자는... 하나도 못먹고 다 뺏겼다.


<소문난 감자탕>집의 감자탕 가장 작은 것(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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