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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블로그의 기업적인 활용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새로운 마켓팅 기법으로 블로그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블로그와 기업 마켓팅은 어디에서 접점을 찾고 있을까 한번 볼까요.

먼저 고객과의 직접적인 만남입니다. 블로그는 그 특성상 일대일의 온라인 만남을 쉽게 합니다. 악의 화신 또는 기계(보그)로 불려왔던 마이크로소프트(MS)가 블로그를 하는 직원들의 활약으로 인간의 얼굴을 한 기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MS직원들과 대중들이 부딪히고 만나는 블로그에서 새로운 기업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죠. 언론이나 광고를 통해 만난 MS의 또다른 모습에 대중은 관심을 보였으며, 그것이 과거의 MS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새로운 MS의 이미지로 바꾸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언론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인터뷰를 하지만 언론에 제대로 노출되는 것은 쉽지 않죠. 또, 언론은 특성상 기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집하며, 심지어는 왜곡하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기업블로그는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한 독자적인 미디어입니다. GM의 밥 러츠는 블로깅을 하는 포천 10대 기업의 중역입니다. 그는 “블로그는 중요하고도 걸러지지 않은 목소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의 다이렉트 라인을 가진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블로그는 작은 기업들에도 유리합니다. 영국의 재단사 마혼은 무너져 가던 그의 사업을 블로그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열고 자기가 어떻게 옷을 만들고 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고급 양장이 만들어지는지 소개하는 글을 계속해서 올렸습니다. 점차 그의 블로그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현재 그는 뉴욕에서 들어온 주문을 맞추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블로그는 입소문 마케팅입니다.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입소문의 진원지이자 전파자는 대부분 블로거죠. 블로그를 통해 뜨거나 찍히는 것은 이제 흔한 일입니다. 입소문에 매우 민감한 영화업계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홈페이지와 함께 블로그도 개설합니다.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유도하기 위해서죠. 물론 이는 때로 독이 되기도 합니다.

유럽의 어느 작은 식당은 블로그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고 그곳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올리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블로거들이 이 지역을 찾으면 반드시 들리는 명소가 됐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식당이나 숙소들이 블로거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식당가 기행 테마로 유명한 블로거-파찌아빠의 맛집순례의 글에는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많은 이들이 댓글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덧댑니다. 식당주인이 모르는 사이에 무시무시한 총평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책의 관점은 일관되게 블로그를 통한 마케팅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동안의 마케팅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을 향한 일방적이고 주입식이었던 데에 반해 블로그 마케팅은 소규모로 이어지는 쌍방향 마케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마케팅은 이제 막 시작단계이며 그 가능성은 풍부하게 열려 있습니다. 누가 먼저 블로그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곳을 먼저 선점하느냐는 비즈니스 마케팅의 중요한 포인트가 됐습니다. 블룸버그 마케팅의 설립자인 토비 블룸버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블로깅을 통합 마케팅 계획의 일환으로 두지 않는 기업들은 중요한 기회들을 놓칠 것이고, 경쟁사들이 블로그를 도입하면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겁니다. 블로그는 조직이 고객에 가까이 가게 하고 고객들이 브랜드에 가까이 가게 하기 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도구에요. 결론은 목표 오디언스가 블로그를 원하면 블로그를 하는 게 낫다는 거죠.”

미니홈피 1000만명 시대랍니다. 길가는 사람 4명 중 1명은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런 트렌드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웹 2.0 시대라고 한다. ‘참여, 나눔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실현한다’는 철학이 블로그 마케팅에 담겨 있습니다. 블로그는 이 기본철학에서 시작해 ‘참여와 공유’, ‘집단 지능’, ‘사용자 중심 철학’이 발현되는 공간입니다.

외국에서는 기업블로그의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 제대로 된 기업 블로그는 없습니다. 풍요속의 빈곤이지만, 어쩌면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열린 시장일 수도 있습니다. 블로그, 조금만 관심을 가져 보시면 무한한 보물창고가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 세상을 바꾸다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로버트 스코블 (체온365,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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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떠나는 걸음이 다시 지리산으로 간 이유                              

백두대간 제3구간 종주 코스는 남원과 함양사이의 고원지대인 운봉고원을 통과한다. 여원재에서 출발, 고남산-유치재-사치재-복성이재-치재-봉화산-중치까지 갈 예정이었다. 즉 여원재에서 북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여원재에서 거꾸로 남쪽으로 달렸다.

우리가 남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출발하고 2시간 뒤에서야 알았다. 해는 이미 중천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돌아갈 길을 고심했다. 결국 가던 방향을 따라 지리산으로 가기로 했고, 여원재에서 출발한 백두대간 산행이 수정봉과 노치마을, 정령치로 이어져 다시 지리산의 품속으로 기어들어간 꼴이 됐다.

언젠가 가야할 길이었다. 5월달에 가려고 했던 구간이다. 하지만 1박2일로 달리기에는 벽소령-여원재가 너무 긴 코스다. 이 기회에 정령치까지 미리 끊어 줌으로써 5월 산행의 부담을 줄였다. 또 이번에 가지 못하고 다음 달에 찾을 봉화산 코스는 진달래 철쭉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음달이면 만개해 있을 테니 아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산은 정상에 오르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데 있다는 말을 되새겨 보았다.

우리 나이 30대, 넘어야 할 산이라면 넘어갈 것이다                        

사실 준비는 아주 잘 됐다. 대장을 맡은 친구도 꼼꼼히 잘 챙겼다. 일행 모두 열정도 있고, 체력도 괜찮았다. 식량과 부식은 회사에서 집으로 오던 내가 간단히 장을 보아 마련했다. 지난번보다 알차고 풍부했다. 지도도 <백두대간24>라는 가장 최근에 나온 지도책을 구했다. 빈약하지만 나침반은 친구가 마련했다. 하룻밤 묵을 숙소도 확보했다. 고도계도 있으면 좋겠지만 나중에 구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험이 없었다.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먼저 간 이들이 남겨둔 표식만으로 찾아가기에는 우리 경험이 부족했다.






3월 9일 영등포발 진주행 9시 52분차에 몸을 실었다. 낮에 사무실에서 일하다 오느라 친구 둘은 제대로 저녁식사도 못 챙겼단다. 준비해간 빵으로 대충 끼니를 채우고 맥주 한잔씩 마시고 잠을 청했다. 밤기차의 흔들거림에 몸을 실으니 잠도 쉽게 찾아들었다.

하지만 피곤을 싣고 달리는 거다.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시달리다가 주말에 이렇게 산행을 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어려움들은 어쩔 수 없다. 한창 사회에서 일할 30대의 나이다. 여유롭게 산행 준비하고 느긋하게 집을 나오기가 쉽지 않은 세대다. 하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추억거리 하나 만들어 보자는 일념, 그리고 삶을 더 의미있게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 등을 떠민다. 어려움은 타고 넘어야 한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면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남원역 대합실


기차 안에서 설핏 잠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남원 도착 안내 방송이 나왔다. 친구들을 부랴부랴 깨워야 했을 만큼 나도 친구들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남원역에 내린 시간은 새벽 2시경.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남원역은 시내에서도 한참 동떨어져 있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잠에서 덜 깨 몽롱한 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자니 그 시간도 속절없다.

결국 택시를 타고 남원 시내까지 나왔다. 아저씨에게 버스터미널 근처 PC방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하면서 한마디 물어보았다.

“아저씨 백두대간 가는 사람들 요즘도 많아요?”
“요새는 좀 뜸하제요. 그라도 꾸준히 오갑니다.”


24시간 해장국집의 풍경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PC방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PC방을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맸다. 조용한 지방 도시를 새벽에 거니는 기분도 남다르다. 아무도 없는 빈도시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만큼 고즈넉했다. 고만고만한 2~3층 높이의 건물들이 꼬깃꼬깃 접힌 것처럼 늘어서 있는 모습이 아담하다.

PC방을 찾아 정보를 더 구하고 거기서 잠시 눈을 붙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대장을 맡은 기석이는 밤새 이번 구간에 대한 웹 정보를 검색하고 꼼꼼히 읽어갔다. 옆에서 보면서 간간히 쳐다 보았지만 이내 무거운 눈꺼풀을 닫아버렸다. 대장의 책임은 막중하다.

PC방을 나와 식당으로 향한 건 새벽 5시경. 근처 24시간 하는 밥집이 딱 2군데 있었다. 흔한 김밥집과 해장국집, 우리는 해장국집을 선택했다. 든든히 잘 먹고 가자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새벽의 해장국집에는 반드시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취한 사람들의 구불텅한 말투는 힘든 고갯마루를 오르는 것처럼 알아듣기 힘들다. 술취한 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이어갔고, 상대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를 삼켜준다. 식어가는 해장국에는 멀건 기름때만 둥둥 떠다녔을 것이다. 소주잔은 바닥이 보일 틈이 없었고, 김치는 그 자리에서 내내 젓가락을 기다리며 쉰내를 풍겼을 텐데 말이다.

삶의 고단함을 등산에 비유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그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것이 산행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해 줄까. 나는 이 고약한 마약에 취해 오늘도 짐보따리를 이고 산행을 나섰다. 무엇을 잊기 위함이고 어떤 것을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일까. 문득 <낮은 산이 낫다>라며 지리산 산줄기 밑의 한 야산에서 살고 있다는 남난희 선생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새벽길을 알려준 운성대장군                                                 

새벽 6시 남원에서 운봉으로 가는 첫차를 탔다. 새벽 첫차를 타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첫차를 몰고 나오는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하고, 새벽 첫차를 타고 일을 나가는 사람들의 부지런함을 보며 배운다.

남원에서 여원재까지는 대략 20분~30분이면 간다.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고개 7선(選)에도 뽑힌 여원재(女怨峙). 북쪽에서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다. 남원시를 뒤로 하고 고갯길을 올라서면 운봉 고원지대가 나온다. 여기서는 지리산 서부 산줄기를 감상할 수 있는데 동남쪽으로 세걸산과 바래봉이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황산이 자리잡고 있다. 유명한 흥부마을도 여기에 있다. 여원재라는 말을 풀어보면 여인의 원한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라 좀 무섭게 느껴진다. 익히 알려진 유래는 다음과 같다.

왜구침입으로 나라 곳곳이 몸살을 앓던 고려 말, 왜구들은 이 깊은 내륙까지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았다. 왜구들이 쳐들어와 이곳의 주모를 희롱하자 이 여인은 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자르고 자결했다고 한다. 중앙에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내려온 이성계는 어느날 꿈속에서 노파가 나타나 전투날짜와 전략을 알려주었고, 그대로 실행하여 대승을 거뒀다고 한다. 훗날 이성계가 알아보니 그 노파는 바로 자결한 주모였다. 이성계는 이 주모를 기려 사당을 짓고 ‘여원’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후로 이곳은 여원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나라가 위태롭고 정의가 사라진 곳에 약자들이 설 곳이 어디였을까. 중한 목숨마저 끊어내면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여인의 정절이었을까, 자존심이었을까. 어쩌면 남자들에게 유린당하고 노리개감이 되어야 했던 그릇된 시대의 아픔을 원망했던 것은 아닐까.

여원재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등반 준비를 했다. 랜턴을 준비하고 스틱을 꺼내고 신발끈을 다시 묶는 일이다. 언제나 이 순간이 가장 긴장된다. 밤새 내려온 피곤함도 싹 가실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이 출발점에서 길을 정반대로 잡았다. 북쪽으로 가야하는데 남쪽을 잡게 된 것은 바로 ‘운성대장군’ 석상 때문이다.







산행 안내를 맡은 기석은 운성대장군 쪽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고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쪽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 보니 고남산 방면으로 가고자 한다면 운성대장군의 건너편 쪽으로 가야 했다.

그야말로 깜깜한 밤이었다. 자신있게 운성대장군쪽으로 길을 갔던 기석이도 우리도 초반에 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지도를 보며 어림짐작으로 길을 가늠해 보지만 어스름한 새벽 여명 빛으로는 제대로 찾아낼 수 없었다.


해는 서쪽에서 뜨지 않는다                                            




거기가 거기 같은가 하면 또 여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색색의 리본이 백두대간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사실 리본이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물론 리본이 반드시 있어야 할 만한 곳이 있다. 길을 찾기 어려운 곳이나 길이 여러 갈래인 곳에서 발견하는 리본은 참으로 반갑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리본을 묶어 놓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특히 자신의 산악회를 자랑하거나 알리려는 목적으로 달아놓은 리본들은 더더욱 그렇다. 지리산을 처음 찾아 갔던 1991년에도 지리산에서 리본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다 보니 따로 표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길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길에서 먼저 길을 찾아간 이들이 후세에 오는 이들을 위해 안내표시를 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위적인 표시는 그만 했으면 한다. 한해 2만여명이 백두대간을 다닌다고 하니 조만간 백두대간 길이 환히 열리지 않겠는가.







7시가 넘어가자 멀리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해가 반갑다. 그런데 이상하다. 해가 뜨는 곳이 내 왼쪽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북쪽으로 가고 있다면 해는 내 오른쪽에서 떠올라야 맞다. 그런데 왼쪽이라니 이상한 일이다.

조금더 가다보니 해가 뜨던 왼편으로 큰 저수지가 보였다. 지도상에서는 큰 저수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지도를 펼쳐들고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이 가르치는 북쪽으로 지도를 놓고 보니 우리는 남쪽으로 가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우리 길 잘못 든 거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이 나침반이 잘못된 거 아닐까?”
“하기는 일전에 내 나침반도 완전히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말이야.”
“다음에는 내가 꼭 제대로 된 나침반을 사올게.”
“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걸. 해가 지금 우리 왼쪽에서 뜨고 있잖아. 해가 북쪽으로 간다면 지금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야. 우리 길에서는 해가 오른쪽에 있어야 해.”
“…”

하지만 이때까지 우리는 단 하나의 이정표도 보지 못했다. 도상으로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이정표를 하나도 보지 못해 결정하기 어려웠다. 이정표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원재를 출발한 지 1시간 반이 지났는데도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올라가는 봉우리 끝이 둘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는 북쪽의 ‘고남산’, 하나는 남쪽의 ‘수정봉’.





사실 대장만의 잘못도 아니다. 서로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리가 친구만을 탓할 수는 없다. 깊은 산중이 아니라 조금만 가면 마을이 있으니 이럴 때 좋은 경험을 한 것이 어쩌면 다행이다. 백두대간 종주에서 이번 산행은 두고두고 재미있게 얘기될 화제거리가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남행을 택했다. 그리고 수정봉에서 노치마을로 하산을 시작했다. 한시간 가량 내려가니 노치마을의 유명한 노송들이 보인다.


감미로운 봄햇살과 할머니의 꼬임에 넘어가 마신 막걸리                            








노치마을 노송은 이 마을의 자랑이다.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일조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여원재를 중심으로 하는 이 구간은 백두대간의 고원지대로 운봉고원으로 불리운다. 제법 높은 곳에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예부터 질좋고 영험하다는 소나무를 이용해 제기와 목기를 깎는 나무쟁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우리가 노치마을의 노치샘에 들어섰을 때 지팡일 짚고 지나가던 마을 할머니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관심을 보였다.

“산에서 오는개벼?”
“아, 네.”
“구람, 여그서 막걸리 한잔 마시구 가. 나두 한잔 주구.”
“아 여기 막걸리 파나요?”

그리고 고개를 들려보니 구판장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찾아서 막걸리를 주문했다.



 


햇살 때문이다. 한 병만 마시고 가기로 한 것이 어느새 두병이 되고 세병이 됐다. 막걸리 한 병이 밥사발로 세잔이 나왔으니 셋이서 한 병씩 마신 셈이다. 우리보고 막걸리 마시고 가라던 할머니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한잔 드리고 이야기나 들어보려 했는데, 사라지셨다. 우리가 세 병째 비워갈 즈음에 나타나셨는데, 한잔을 권하니 “나 원래 술 안 마셔.”라며 극구 사양하신다.

그런데 왜 아까는 술 한 잔 사달라고 하셨을까 궁금하다. 생각해 보니 햇살만이 아니라 꼬부랑 할머니의 꼬임에도 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어떠랴. 1500원으로 한껏 기분이 좋아지니, 감사할 일이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정령치로 향했다. 노치마을에서 정령치까지는 포장도로를 타고 가는 길이다. 정령치 꼭대기까지 가는 게 아니라 지리산 입구 바로 앞까지만 가는거라 더 이상의 오르막길도 산길도 없다.





그래도 이 길은 지리산으로 가는 길이다. 지리산을 떠나는 발걸음이 우여곡절 끝에 지리산 자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4월달에 이번에 타지 못한 길을 가게 될 예정이다. 5월에는 다시 지리산 구간으로 돌아온다. 대장을 다시 내가 맡을 것이다. 참으로 질기고 질긴 지리산과의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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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와 지방도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데는 일반국도가 확실히 좋다. 하지만 길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적다. 그러나 지방도는 좀 돌아가는 길이고 갓길도 작지만, 보고 느낄 수 있는게 많다. 오늘도 잠깐 지방도를 타다가 늦은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와 만날 수 있었다.

부여를 나와 공주로 가는 길은 예상대로 언덕들이 무수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다지 힘든 언덕은 아니었지만, 아침부터 무릎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니 덜컥 겁이 났다. 일찍 출발한다고 아침도 빵과 우유로 대신했다. 배고픔은 없지만, 몸이 어떨지 걱정됐다.


공산성




부여도 그랬지만, 공주는 더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도시도 부여보다 깔끔하고, 도시 중앙에 있는 공산성은 높지도 않으면서 고풍스런 멋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다면 함께 공주를 찾아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런 공주를 그냥 자전거로 지나쳐야 하니 좀 아쉽다.

공주를 지나 한참 가다 보니 오르막이 시작됐다. 차령터널로 가는 길이다. 터널 앞에서 옆 구길을 타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 이미 오르막길이 시작된 거라 그런지 차령고개는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차령고개 정상에는 휴게소로 지어진 건물이 버려져 있었다. 황량한 가을 바람과 낙엽들, 그리고 버려진 건물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차령고개를 오르면서도, 그리고 내려가면서도 차 한대를 만나지 않았다. 터널이 생긴 이후 아무도 이 길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길도 버려진다. 길을 통해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고, 길을 통해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데, 막상 버려진 길에는 무엇이 남을까. 가끔 나처럼 찾는 이가 있겠지만, 버려진 건물과 황량한 길의 풍경은 가을의 쓸쓸함을 더욱 깊게 한다.


차령고개 정상에서




차령고개를 넘고 한산한 길을 가다가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만났다. 외진 길의 왼편으로 산의 언덕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람이 세게 불자 나무에 남은 나뭇잎과 땅에 떨어져 있던 낙엽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생명을 다하고 썩어 다시 나무에게로 돌아갈 나뭇잎들의 마지막 향연이었을까. 하늘을 떠다니는 나뭇잎들은 새떼들의 군무처럼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다녔다. 카메라로 찍으려 했지만, 그 찰나는 오래되지 않고 낙엽비가 되어 도로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실상 카메라로 찍어보았자 나뭇잎들이 추는 춤이 제대로 표현될 리는 없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었다.

천안에 들어간 시간은 2시 경. 80km를 달려왔지만, 어쩐지 더 힘이 났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택까지 20km가 좀 넘는다. 내처 달릴까 고민했다.


'평택까지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평야지대이니 어려운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오늘 달린 거리도 평소보다 많다. 무리해서는 안된다.'

'토요일까지 서울 들어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오만가지 계산이 재빨리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평택까지 가기로 했다. 평택은 경기도, 서울이 코앞이다.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기운이 더욱 난다. 예상대로 평야지대다 보니 힘든 언덕도 없다. 그러나 서울로 가까워질수록 차량이 부쩍 많아졌다. 예전 서울에서 양평으로 갈 때처럼 많은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옆을 스쳐지나갔다. 갓길의 바깥쪽으로 바짝 붙어서 가지만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긴장을 하니 무릎은 신경이 가지 않고 손목이 아프다. 핸들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평택에 들어간 시간은 예상대로 4시. 평택시청에 들어가 평택의 관광지도를 얻었다. 송탄까지 멀지 않아보였다. 오늘 묵을 곳을 찾다가 송탄으로 잡았다. 관광지도는 송탄역이 가깝게 나타나 있었는데 이런, 송탄역에 도착하니 거의 6시가 됐다. 관광지도도 믿을 게 못 되지만, 길을 잘못 알려준 주유소 아저씨 때문에 너무 힘들게 찾아갔다.

부여에서 송탄까지, 생각해보면 자전거 여행 중 가장 먼 거리를 달린 듯하다(약 130km 이상). 아쉬운 점은 충청북도를 밟지 못했다는 거다. 그래도 이제 경기도다. 조금만 힘을 내자. 이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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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두번째 구간으로 벽소령-노고단-만복대 코스로 가려 했는데,
벽소령으로 올라가는 구간, 성삼재에서 노고단 코스가 입산 통제구간이었다.
명목은 산불조심 기간...
4월 30일까지는 이 구간을 탈 수가 없다.

이는 지리산만이 아니라 여타 다른 국립공원들도 마찬가지다.
주요 등산로를 제외한 샛길이나 산불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곳은 모두 통제가 됐다.
우리는 그저께 내 집에서 급하게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가졌다.
결국 지리산 3구간을 먼저 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건너뛰는 2구간은 통제가 풀리는 5월에 찾아가기로 했다.

제1구간 산행의 대장은 내가 맡았고,
이번 산행 대장은 다른 친구가 맡기로 했다.
아래는 이번 산행의 대장을 맡은 친구가 보내온 산행 계획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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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제3구간(여원재-봉화산-중재)
- 국립공원 통제기간으로 3구간 선등

1. 산행일시 : 2007년 3월9일(금) ~ 3월11일(일)

2. 교 통 편

1)출발: 영등포역 9:52분 무궁화열차 -> 남원역 -> 여원재(6시 첫차 20분소요) -> 3구간 Start
2)귀경: 중기마을 or 운산리버스정류장 -> 함양 -> 서울

3. 주요구간 및 예상 소요시간

▶주요 구간거리 및 소요시간(식사, 휴식시간 제외)
여원재-(5.2km/1시간35분)- 고남산-(5.4km/1시간10분)- 매요리(2km/1시간05분)- 사치재-(2.2km/55분)- 새맥이재-(1km/35분)- 시리봉옆헬기장-(3.7km/1시간05분)-복성이재-(3.5km/1시간30분 )-봉화산-(4.3km/1시간25분)- 광대치-(2.7km/1시간05분 )- 중재-(3km/45분 )- (운산리)

▶도상거리 : 30km+하산로3km(월간 사람과산 참조)
*참조: 실측거리 33.32km+하산로1.75km(포항셀파산장 자료)

▶진행한 도상거리:77.9km(남은거리683.15km-77.9km=605.25km)

▶산행시간:12시간10분


4. 숙박
♣ 치재 : 철쭉식당수퍼(063-626-1307)


5. 식사

♣ 10일 아침식사 : 매식
   10일 점심 : 라면, 햇반
   10일 저녁 : 매식
   11일 아침 : 매식
   11일 점심 : 라면,햇반

6. 예상비용
- 차비(\148,800) : 기차(\58,800) / 마을버스(\20,000) / 고속버스(\70,000)
- 식대(\15,000 * 3회=\45,000)
- 부식(라면외 \30,000)
- 11일 저녁 뒷풀이(\30,000)
*Total : \253,800(1인당 \84,600)


7. 회비 : \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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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를 참 많이 바꿨다. 이 변덕이 또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지키고 싶다.

‘윤비’는 내 자전거 이름이다. 자전거여행을 다니면서 내 자전거에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그리고 바퀴 륜(輪), 날 비(飛)를 써서 ‘윤비-바퀴가 날다’로 했다. ‘비륜’으로 할까 하다가 ‘비련’과도 비슷하고 ‘윤비’라는 이름이 불리는 느낌도 좋아 지었다. 마음에 들어 자전거 이름을 내 아이디로 사용했다. 가끔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니는데, 근래 날씨와 게으름 때문에 도통 타고 다니지 못했다. 여전히 내 윤비는 층계 베란다에서 다시 달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주 아는 지인과 강화도나 인천으로 윤비와 함께 떠날 예정이다.

‘윤비’라는 이름이 너무 자전거에 치우쳐저 있고 ‘하늘을 달리는 자전거’도 자전거에 치우쳐져 있었다. 자전거여행 글을 제외하고 내 블로그가 자전거 전문 블로거도 아닌데,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있어 아이디를 바꾸려고 했다. 오랫동안 고민을 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어 예전에 잠깐 썼던 ‘난향천리-난의 향기가 천리를 간다’를 다시 써 보았다. 그리고 블로그 제목도 바꿔보려 했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결국 ‘난향천리’와 ‘하늘을 달리는 자전거’가 어울리지 않게 공존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난향천리’도 사실 너무 간지러운 별명이다. 내가 무슨 향기가 있다고 ㅎㅎ

결국 ‘구상나무’라는 아이디를 다시 살렸다. 예전 나우누리 피시통신 시절, 내가 처음 만든 아이디다. 당시 지리산에서 본 구상나무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지은 이름이었다. 다시 이 아이디를 살리면서 ‘구상나무’에 블로그의 제목도 처음 제목인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잡았다. 그저 세상 살아가는 일에 있어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흘러가자는 의미다. 블로그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계속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아이디와 블로그 제목을 바꾸면서 ‘구상나무’에 대해 알아보았다. 구상나무의 학명은 ‘Abies Koreana Wilson’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구상나무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다. 침엽수의 하나로 외국에서는 ‘한국 전나무’라고도 불린다. 주로 한라산에 많이 자라고 있으며 덕유산과 지리산에서도 일부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이 ‘구상나무’가 멸종위기에 처했다. 유네스코 국제자연보존연맹의 멸종위기종 적색 목록에 등재되어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지구온난화. 찬기후에서 잘 자라 한라산에서도 1400m 높이에서 한라산 정상까지 가장 많이 분포해 있는데, 지구 온난화로 점점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나무들에 의해 터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내가 90년대 지리산에서 본 구상나무의 모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그때는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 내 별명으로 쓰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속에 따뜻한 기온을 품고 찬기후를 이겨내며 박복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가느다란 햇살마저 감사히 받아 생명을 키우는 우리의 구상나무, 그 나무의 온후함과 강인함을 배우고 싶다. 또 사라져가는 귀한 자연자원을 보호하고 아끼는 마음도 내 아이디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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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백두대간!                                                                

지리산은 쉽게 오르는 산이 아니었다. 지난여름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두 번 모두 비를 흠씬 두들겨 맞고 물러서야 했으니 말이다. 두 번째 산행에서는 통제마저 뚫고 장터목까지 갔지만 결국 산장지기(장터목 관리소장)에게 한소리 듣고 물러서야 했다. 오기를 부려도 안된다. 날씨를 원망할지, 지리산을 원망할지, 아니면 내 운을 원망할지 원망할 대상마저 간단치 않다.

시간이 지나 올 1월초에 다시 지리산 등반을 도모했다. 이번에는 비가 아니라 눈이 가로막았다. 출발 하루전 한반도 일대에 뿌려진 폭설이 원인이었다. 지리산은 깊고 큰 산이라 조금만 눈비가 내려도 입산통제가 내려진다. 결국 지리산을 포기한 그날 태백산을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안에 지리산은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속상함 반 원망 반을 섞어서.







1월말부터 백두대간을 계획했다. 오랫동안 가졌던 꿈을 다시한번 실현시켜보고 싶었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음먹으면서 그 시작점을 진부령으로 잡았다. 지리산에 대한 원망 때문에 아래에서 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 때문에 그냥 지리산부터 가는 것으로 잡았다. 그렇게 계획하지 않은 지리산행이 결정됐다. 이번에는 지리산이 목적이 아니라 백두대간이 목적이었다. 선언이 무색하게도 한달만에 지리산을 다시 찾게 됐다.

백두대간을 계획한 사람은 나와 친구 둘.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여성 한명이 더 참가했다. 산행은 3~4명이 최적이다. 택시를 타도 4명은 한차이며, 2인 1조로 움직이기도 좋고, 버스를 타도 2명씩 앉으면 안성맞춤이다.

백두대간의 첫 산행지는 천왕봉. 원래는 산신제도 지내려고 했다. 한달에 1회 이상 간다고 해도 2년여를 꾸준히 다녀야 완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결의를 모으고 다짐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준비부족으로 인해 산신제를 지낼 수는 없었다. 대신 노고단을 기약했다.

2007년 2월 23일 밤 12시 동서울터미널. 대부분의 차들은 거의 다 떠났다. 아마도 지리산 가는 밤 12시차가 막차인가 보다.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저마다 삶의 봇짐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으로, 마을로 가려고 한다. 함양을 거쳐 가는 백무동행 버스에는 등산객 반, 일반승객 반 정도가 앉아있다. 자리는 거의 꽉 찼다.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 않았다. 전날에도 상가집을 다녀오느라 잠을 많이 자지 못했다.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고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선잠만 설핏 오갈 뿐이다. 뒤척이다 보니 3시간이 금방 지났고 백무동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밤을 새고 가려니 잠 오는 게 걱정이다.






어느 하늘의 별들이 저리 맑고 투명할 수 있을까                       

백무동 주차장에 내린 시간이 새벽 3시 15분. 버스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한기가 덮쳤다. 추위의 기습에 몸서리가 났다. 걷다보면 더워지는 게 등산이다. 춥다면 걸어야지. 등산화를 단단히 메고 스틱을 꺼내고, 랜턴을 점검하며 등산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마쳤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어느 하늘 아래서 저리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을까. 함께 버스를 타고 온 등산팀 중 한팀이 일찌감치 떠났다. 다른 팀은 아직 떠날 생각이 없는 듯 주차장에 머물러있다.

새벽길을 걷는 것은 침묵 속을 걷는 것과 같다. 단지 우리 네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서늘하게 밤공기를 갈랐다. 한참을 오르다가 돌아서서 떠나온 마을을 보았다. 잠든 마을은 고요하고 간간히 일찍 깬 불빛만 졸린 눈을 비비는 듯 깜빡거린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내 입김이 구름처럼 떠올라 별빛들을 흩뜨린다. 마른 가지들 틈으로 반짝이는 맑은 별들이 반갑다.

백무동에서 3시 40분경에 출발해 참샘에 도착하니 5시 10분. 참샘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 커피를 마시기로 했는데, 한기가 장난이 아니다. 물 끓이는 반시간도 안되는 시간이 한나절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따뜻한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출발했다.

소지봉을 지나니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살짝 깃들기 시작했다. 시간상 무리해 달린다고 해도 일출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별이 총총 떠 있는 밤하늘을 보니 일출 구경이 아쉽기만 하다.











제석봉, 용서와 참회에서 평화와 안녕으로                                   


 

▲ 장터목 산장


장터목에 오른 시간이 7시 10분경.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라면과 햇반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햇반은 뜨거운 물에 최소한 15분정도 끓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까칠해서 먹기가 괴롭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급하게 햇반을 꺼내 먹기 시작했으니 아무리 배가 고팠다지만 정말 먹기가 곤혹스러웠다.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해법은 라면에 햇반을 다 넣어서 끓여 먹는 것. 친구는 ‘개죽’이라고 했지만 정말 먹을 만했다. 일단 뜨거운 밥알이 부드럽게 넘어가니 속에서 편하다. 맛이야 나아질 것이 없지만, 그래도 목구멍을 넘어가는 게 쉬우니 다들 수월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천왕봉으로 길을 나섰다. 천왕봉에서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올 계획이라 배낭은 모두 장터목 산장에 놓고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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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을 떠나 제석봉을 올랐다. 여전히 황량한 봉우리는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있다. 용서와 속죄의 시간은 참으로 길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날이 언제쯤일까. 1991년부터 각인된 이곳에 대한 내 기억은 여전히 멈추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무자비한 침탈에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이 보인다. 빈자리에서 조금씩 솟아나는 생명들을 보면서 제석봉이 다시 많은 나무와 풀들로 뒤덮이는 상상을 해본다. 그때쯤이면 이 황량한 봉우리의 모습은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용서와 참회의 기억도 사라지겠지. 그 자리에는 질서와 평화가 자리잡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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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석봉의 풍경들



천왕봉, 이제 백두대간의 시작이다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들어서니 바위틈 사잇길이 얼음으로 꽁꽁 얼어있다. 아이젠을 끼고 있지만 그래도 쉽지 않다. 통천문, 하늘로 통하는 문. 좁은 틈사이로 올라서면 곧 하늘이 나를 반기는 곳. 얼마 만에 오르는 것일까. 지난여름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면서 장터목까지 왔지만 끝내 돌아서야만 했던 그곳이 이제 눈앞에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갈망해 왔던 곳인가. 많이 다녀보았으면서도 감회가 새롭다.

천왕봉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였다. 구름도 저 멀리 물러나 쉬고 있었다. 백두대간의 시작점. 민족의 뿌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나는 서 있다. 이렇게 맑고 고운 겨울을 보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1991년과 1997년 가을 이후로 천왕봉의 맑은 하늘을 보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천왕봉에서 새롭게 백두대간의 성공을 기원하는 한편, 끝까지 완주해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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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봉에서 일행들과 함께

 

장터목으로 돌아가는 길, 제석봉을 지나가는 길은 아무리 지나다녀도 말이 없게 만드는 길이다. 천왕봉을 오를 때도 이 제석봉을 지나면서 겸허해지지만, 하산길도 산에 대한 경외감이 나를 휘감는다.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까지는 장터목에서 두시간 내외의 길. 천왕봉까지 가볍게 오른 일행들을 괴롭히는 것은 졸음이다. 나역시 밤을 거의 꼬박 세우고 내려온 거라 걸어가면서도 졸립다. 촛대봉에 오르고 세석 산장이 보일 즈음에는 그저 잠시라도 눈을 붙였으면 하는 바람만 간절했다. 지리산에 오면 항상 밤차로 오다보니 익숙하지만 역시 피곤한 일이다.






세석에 도착하니 4시 정도.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쉬자는 의견이 대세다. 저녁은 화려한 만찬이다. 먹을 것들은 죄다 꺼내놓고 준비해간 삼겹살과 목살을 굽기 시작했다. 2근 1200g이다. 겨울이라서 냉장은 걱정없었다. 지난 여름에도 삼겹살을 산중에서 구워먹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이번에도 준비한 것이다. 만만치 않은 양인데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해가 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추위가 닥쳐왔다. 이번 겨울은 춥지 않다고 여겼는데, 겨울 동장군이 이 산속에 들어와 숨어있었나보다. 일행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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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겨울산을 만나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자던 생각이 그만 6시까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산에서는 모두 부지런해 어떤 이는 새벽 3시부터 부스럭거리며 산행을 준비한다. 새벽 일출을 보려는 사람도 있고, 갈 길이 멀어 일찍 떠나는 이들도 있다. 난 피곤했는지 중간에 깨기도 했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6시에 일어났다.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밤새 눈이 왔었다. 세석산장 주변은 온통 눈천지다. 눈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고, 길은 이미 눈으로 덮이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김치찌개. 있는 김치를 다 넣고 요리하는데, 맛이 영 나지 않았다. 함께 간 사람 중에 요리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산 중이니 이렇다 할 양념이나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다. 그저 있는 김치와 참치로 찌개를 만들었다. 어제의 만찬이 간절히 그리워졌다. 김치찌개는 그저 그랬고 밥알은 까칠했다. 결국 다시 국에 밥을 말아 먹기로 했다. 역시 부드럽고 뜨거운 것이 좋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 시간이다. 산에서는 세재를 쓰지 않기로 한데다가 겨울이니 음식 닦아내는 게 문제다. 하지만 아주 간단히 해결할 방법이 있다. 물론 산에서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게 제1원칙. 그 뒤에 남은 요리의 흔적은 눈을 긁어다가 넣고 밥을 비비듯이 쓱쓱 문지르면 눈이 살짝 얼어 알갱이가 되면서 찌꺼기들을 깨끗이 빨아들인다. 거기에 마시던 커피를 조금 남겨서 넣고 휴지로 골고루 닦아주면 음식냄새마저 사라진다. 이는 라면이나 찌개를 해 먹은 뒤 설거지 할 때 매우 유용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눈길과 눈꽃, 그리고 눈축제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아침먹고 짐을 꾸려서 세석산장을 나간 시간은 7시 반. 벽소령까지 길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다시 그곳에서 작전도로를 타고 음정마을까지 3시간반 정도. 점심 시간까지 대략 8시간 반 정도 예상하고 출발했다.

어제는 맑고 화창한 겨울날씨, 오늘은 눈내리는 겨울날씨다. 지리산이 겨울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친절한 지리산은 정말 오랜만이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느낌도 좋다. 새도 눈길을 총총 밟고 갔나보다. 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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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경에 영신봉을 지나면 수많은 나무계단의 내리막길이 나온다. 벽소령에서 세석을 갈 때면 여기가 가장 힘들다. 오르고 또 올라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계단이다. 반대로 세석에서 벽소령으로 갈 경우 계속 내리막길이니 그다지 부담이 없다. 경치를 감상하면서 갈 수 있으니 즐겁다. 칠선봉에 도착한 시간은 영신봉을 떠난 후 약 한시간 뒤인 8시 50분.

칠선봉은 주위의 바위들을 유심히 보는 재미가 있다. 예전부터 산에 있는 바위에 살아 있는 생명의 모습을 찾아내어 이름을 붙인 건 바위의 영험에 기댄 토템신앙의 발현일 것이다. 칠선봉 주위의 바위에서 인간의 형상을 찾아내는 건 사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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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봉을 지나 약 40분 쯤 더 가니 선비샘이 나온다. 날씨는 분명 영하로 내려간 날씨인데도 샘은 얼지 않았다. 물의 양도 풍부하다. 여름날에 비해 적긴 하지만 겨울철의 샘치고는 부족함이 없다. 맑은 선비샘의 차가운 물을 마시니 속 깊숙한 곳까지 겨울의 냉기가 싸하게 내려간다.

선비샘에서 약 30여분 가면 구벽소령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벽소령길이 시작되는 데 1km가 조금 넘는 거리로 평탄하게 이어진다. 벽소령길은 편안하게 산책하듯이 갈 수 있다. 오솔길을 걷는 기분도 남다르다.


아름다운 것은 위험하다-벽소령                                              

벽소령은 오른편으로 기암괴석들이 깎아지르듯 서있다. 왼편으로는 계곡쪽을 향해 가파른 낭떠러지다. 길이 넓으니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다보면 “낙석주의” 표지판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왼편으로도 안전줄이 계속 쳐져 있다. 그만큼 위험을 내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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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 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0분 경. 눈발이 그치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쪽에서는 눈이 빠르게 녹았다. 특히 벽소령 산장의 지붕에서는 눈이 녹아 내리며 처마끝에서는 물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일행은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김치와 라면, 캠핑가스가 부족해 이곳에서 추가로 구입해야 했다. 지리산의 산장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물론 산밑에서 사는 것보다 약간의 웃돈을 더 내야하지만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산장에서 먹을 것을 구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산장도 미쳐 준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물건이 품절될 수 있으니 산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건 비상시나 반드시 필요할 때만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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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겨울이 겹치고 있는 길, 작전도로                                      





 

벽소령에서 하산길은 음정마을로 잡았다. 음정마을로 출발한 시간은 12시 20분. 작전도로길은 초반 100m정도만 가파를 뿐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이 옛군사도로다. 평탄한 길로 6.4km정도인데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산책길이라고 보면 된다. 이 길을 걷다보면 산에 온 것이 아니라 멋진 옛길을 걷는 것 같다.

벽소령을 내려가니 양지바른 곳에는 눈이 녹았고, 그늘진 곳은 눈이 많이 쌓여있다. 눈이 쌓인 곳도 이미 속은 얼어 있어 올라가도 많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양지바른 곳은 마치 가을길처럼 낙엽 썩는 냄새마저 났다.

이곳 벽소령 작전도로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운치있는 길이다. 하산길에 일행은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적인 특수성도 있겠지만 이 길은 원래 등산객들이 잘 타지 않는 길이다. 그러다보니 더 고즈넉하고 운치있다. 또 지리산 능선을 타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더 이상 등반이 어려울 경우 탈만한 하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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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눈싸움도 하고 떠나온 지리산 봉우리들을 뒤돌아보면서 내려가니 어느새 음정마을이다. 음정마을은 조그마한 마을이다. 음정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2시 반 정도. 하산길이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음정마을을 벗어나면 버스 타는 곳이 나온다. 함양 가는 버스의 시간 간격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산골짝까지 오는 버스가 많지는 않다.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 때마침 버스가 왔으니 우리는 참 운이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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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조금 더 올라간 양정마을이 기점이었다. 양정마을에서 10분 정도 쉰 버스는 오후 2시 35분경

출발해 음정마을을 거쳐 함양으로 달렸다. 함양에 도착한 것이 오후 3시 30분, 함양까지는 약 한시간 거리인 셈이다. 함양발 서울행 버스는 이미 군내버스 기사님이 전화예매를 해주셨다. 우리가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난 것이다. 만일 아저씨가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오후 5시에나 있을 서울행 버스를 타야 했을 것이다. 함양에서 출발한 버스는 약 3시간 40분만인 7시 10분에 서울 동서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여유있게 즐긴 산행이었는데도 서울에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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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얼마 뒤, 역에 세워놓았던 자전거의 안장을 도둑맞고 말았다. 자전거를 통째로 들고 가는 자전거 도둑도 있는가 하면 요즘은 부품 일부를 훔쳐가는 도둑도 많다. 자전거 여행 중에도 앞 전조등 뒤 후미등을 모두 초반에 도둑맞았더랬다. 여행 후반에는 자전거를 여관 로비나 뒷마당 가려진 곳에 놓았고 찜질방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환한 곳에 보이게 하거나 찜질방 로비 한 구석에 양해를 구해 채워놓기도 했다. 안전하게는 가까운 파출소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자전거 도둑이 기승을 부리다보니 자전거 도둑을 피하기 위한 방법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마음 먹고 훔쳐가는 도둑을 막을 방법은 딱히 없다. 자전거 주인이 최대한 세심하게 자전거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최상이다. 자전거의 안전한 관리 방법을 정리했다.

① 잠금장치는 필수 : 외부에 자전거를 가지고 나갔다면, 최소 1분이상 자전거가 눈에 안띄는 곳에 둘 경우는 반드시 잠금장치를 해야 한다. 잠금장치가 없는 자전거는 충동적인 절도의 쉬운 표적이 된다.

② 단단한 자물쇠 : 실톱이나 소형절단기로 쉽게 끊어지는 케이블이나 사슬은 피해야 한다. 자전거 대리점에서는 실톱이나 소형절단기로는 끊을 수 없는 강한 자물쇠와 케이블을 판매하는데 가격이 좀 비싸지만 그만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자전거를 잠글 때는 프레임과 바퀴를 함께 묶어 주어야 하며, 여러대의 자전거를 엮어서 묶을 수 있다면 아주 좋다.

③ 실내 보관 : 장기간 자전거를 타지 않을 때는 가급적 집안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단독주택일 겨우 마당에 보관해도 되겠지만, 요즘 전용 마당이 있는 주택은 드문만큼 집안 베란다나 다용도실, 거실 등에 자전거를 보관하는 것이 안전하다.

④ 지하철역이나 아파트 내 자전거 보관소는 상습적인 자전거 도난 장소다. 불가피할 경우 어쩔 수 없지만 야간에는 절대 피해야 할 장소다.

⑤ 안장이나 속도계, 전조등, 후미등 등은 단단히 매여 놓거나 탈착해 따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⑥ 도난경보기를 설치한다.

사실 개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도둑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떠한 자전거라도 털어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도난 자전거는 보통 온라인으로 유통된다. 인터넷에 자전거 등록을 통해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자신의 자전거를 광고하는 것도 이 도난에 대비한 방법이기도 하다. 관련 사이트로 오마이자전거(www.omaja.co.kr), 세이프바이크(www.safebike.co.kr)가 있다.

자전거 도둑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도 자전거 도둑 때문에 골머리가 아팠나 보다. 2005년 한해 동안 도난당한 자전거만 97대, 거의 100대에 가까운 자전거가 도난당하자 대학 당국은 ‘미끼 자전거’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이 미끼 자전거에는 GPS추적장치를 달아 자전거가 없어질 경우 신호를 쫓아 도둑을 잡는다는 구상이었다.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전거 도둑과의 전쟁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자전거 도난을 막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자전거 도둑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구에 사는 양은정 씨는 20년간 가족들의 자전거를 포함 20여대를 도난당한 후 ‘자전거에도 등록번호제를 실시하자’는 입법청원 운동을 벌였다. 사실 번호판을 단 자전거, 막상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실시해 온 제도다. 자전거 도둑을 완전히 막지 못하지만 유통 단계에서 쉽게 매매될 수 없게 한 만큼 자전거 도둑은 크게 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들어설 날이 언제쯤일지 알 수 없다. 도쿄 시내에서 자전거의 교통분담율이 20%이르는데 비해 서울은 오토바이 포함 6%에 불과하니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언젠가는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때까지 자신의 애마를 언제나 소중히 보관하는 노력,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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