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있는 동안에도 내륙에 비가 왔었다. 강진을 나와 달리는데 날씨가 잔뜩 흐리다. 비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한두방울 긋기 시작했다. 일전에도 비를 맞고 달린 적이 있었다. 그때도 얼마 못가서 덕신해수욕장의 청솔민박집에 머물다가 다음날 출발했다. 기상청 예보에도 비올확률이 40%라고 했으니 비가 올 거라는 각오는 되어 있었다.
먼저 2번 국도를 타고 목포 방면으로 가다가 13번 국도를 타고 영암으로 갈 예정이었다. 잘만 하면 광주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못해도 나주까지는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성전 근처에서 점점 빗방울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월남저수지 옆을 지나서 풀치터널 앞에서는 옆에서 지나가는 차들이 내는 물보라를 느낄 정도였다. 쏟아진다 싶을 정도는 아닌 잠깐은 맞고도 다닐 수 있는 가랑비 정도였지만, 도로는 이미 푹 젖어 있었고,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비를 피해 보았지만, 쉽게 그칠 비같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영암까지 가서 차후 여정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빗속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빗속을 자전거로 달린다는 것,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니다. 비로 인해 내 시야도 방해를 받고, 달리는 차들 역시 시야가 더욱 좁아지게 된다. 게다가 빗길의 미끄러움까지 더해진다면 위험은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또 가끔씩 큰 차가 옆으로 지나가면 뒤쪽에서 일어나는 물보라 세례가 있다. 도로가 많이 젖어 있고 비가 계속 오다보니 그런 일이 종종 생긴다. 또 자전거는 물받이가 허술하다. 그러다 보니 내 자전거의 바퀴에서 튄 물이 심지어는 내 머리까지 올라와 버리곤 한다.
장황하게 빗속을 달리는 어려움을 늘어놓은 이유는 내가 영암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함이다. 결국 나는 영암에서 이날 하루의 여정을 정리해야 했다. 쟈켓도 이미 젖어가고 있어 더이상 달린다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길은 천천히 젖어들었다. 가을도 천천히 길 위에 내려 앉았다. 가로수들은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제가 가진 것들을 길 위에 내려놓고 있다. 나도 스스로 시련의 계절을 이겨내기 위해 나를 버리는 여행을 시작한지 벌써 보름을 훌쩍 넘겼다. 참 좋은 것을 많이 보았지만, 무엇보다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길 위에 서보았다는 것이 기쁘다. 비록 40km도 달리지 못하고 멈추었지만 비에 젖은 길 위에 서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 비에 젖어 있든, 자갈이 깔려 있든, 포장이 되어 있든, 비포장이든, 그 길 위에 서 있음을 그리고 살아서 달리고 있음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비가 오면 빗물로 인해 도로 위에 얇은 층이 형성됩니다. 이 층은 물만이 아니라 도로위에 있던 먼지 등의 부유물이 섞여 있기 마련이죠. 물도 그렇지만 이런 부유물들로 인해 도로는 자연스럽게 매우 미끄러워집니다.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의 경우에는 차량에서 흘러나온 각종 기름들이 같이 섞이게 됩니다. 우천시 자전거 여행은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리고 시야확보도 어려워집니다. 모자를 써도 빗물로 인해 전방을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을뿐더러 만일 백미러를 하고 있다고 해도 백미러 역시 빗물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쉽게 뒤에서 오는 차량을 살피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량으로 인해 고인 빗물을 옴팡 뒤집어쓰는 경우도 종종 있죠.
타이어, 핸들, 브레이크, 페달 모든 면에서 자전거는 빗속에 100%노출되는 구조입니다. 그러다보니 빗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기능고장 사례도 많지요. 브레이크 패드와 림이 젖기 때문에 제동력이 떨어집니다. 핸들부분의 기어조절장치에도 물이 들어가고 장갑이 젖었을 경우 기어 조정도 애를 먹게 됩니다.
도로를 함께 이용하는 차량과 자전거는 끊임없이 서로 소통합니다. 자전거는 수시로 뒤에서 오는 차량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차량 역시 여러 방법으로 앞에 달리는 자전거에게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죠. 비는 이런 소통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자전거가 비를 맞게 되면 반드시 청소를 하고 기름칠을 다시 해야 합니다. 가급적 비가 올 거라고 예상되면 자전거를 몰지 않는 게 좋습니다.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를 맞게 되면 체온이 떨어지는데 거기에 무리해서 페달을 밟으며 운동을 하니 감기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자전거도 사람도 비를 맞은 후 관리를 잘해야 건강한 여행을 지속할 수 있겠지요?
“창박게 부는 바람, 죽음의 시늠소리도 드러쓸 것이고 갓 태어난 아기의 숨소리도 거쳐 왓슬 것이다. 잠 못 이르는 이 밤, 바람에게 마는 사연을 듣는다.”
-홍영녀님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서-
홍영녀님은 포천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칠순에 한글을 배워 주욱 일기를 쓰고 계십니다. 자손들이 팔순 생신 기념으로 일기를 책으로 엮어드렸습니다. 슬하에 6남매를 두었지만,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하시는데, 씩씩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로워야 한다.”
지난 1월25일 정기적으로 받는 메일의 일부였다. 70이 넘어 글을 깨우쳐 매일 쓴 일기가 벌써 8권에 이르는데 그 할머니와 가족의 이야기였다. 80이 넘으신 할머니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로워야 한다”고 썼다. 그러기 위해 같이 살자는 자녀들 다 뿌리치고 혼자 포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무엇이 할머니로 하여금 자유를 갈망하게 했을까. 여기저기 검색을 통해서 사람들의 글을 보았다. 책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책은 구하기 어려웠다. 교보와 영풍, YES24, 인터파크 어디를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다. 책은 1995년 11월에 나온 책인데, 모두 절판으로 나왔다. 책이 많이 팔리지도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 끌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더더욱 욕심이 갔다.
이제 인터넷 헌책방을 찾아다녔다. 역시 찾기 쉽지 않았다. 결국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헌책사랑’의 게시판에 책을 구한다는 글을 띄어보고 기다렸다. 2월1일 메일로 답이 왔다.
안녕하세요
'헌책사랑' 사이트에서 책을 구한다는 내용을 읽고 이메일을 드립니다.
홍영녀 할머니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책을 제가 갖고 있습니다.
(생략)
정말 연락이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너무 기뻤다. 다시 이메일이 오가고 택배비 3000원에 책값 3000원 해서 6000원. 책값이 4500원인데 6000원을 쓰면서도 아깝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책이 도착했다. 군데군데 형광펜으로 칠한 자욱이 있다. 헌책이 정이 가는 건 사람의 손때가 묻었다는 정감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낡으면 그 정이 떨어지는데, 그리 낡지도 않고 표지도 깨끗하다.
앞쪽의 몇 쪽을 읽어보았는데, 좋다. 일부분을 여기에 옮겨 본다.
무남이 이야기
무남이는 생으로 죽였다. 에미가 미련해서 죽였다. 우리 시아버지 상 당했을 때는 무남이 난 지 일곱 달 되어서였다. (글줄임) 동생이 장사 치르는데 젖먹일 시간 있겠냐며 우유를 가방에 넣어 주었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상제 노릇하랴 일하랴 정신이 없었다.
무남이는 동네 애들이 하루 종일 업고 다녔다. (글줄임) 젖이 퉁퉁 부었어도 먹일 시간이 업었다. 그런데 애들이 무남이가 우니까 우유를 찬물에 타 먹였다. 그게 탈이 났다. 똥질을 계속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시어머님이 앓아 누우시게 되었다. 그 경황에 자식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그땐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흉이었다. 이번엔 시어머님이 또 한 달만에 돌아가셨다. 초상을 두 번 치르는 동안에 무남이의 설사는 이질로 변했다. 애가 바짝 마르고 눈만 퀭했다. 두 달을 앓았으니 왜 안 그렇겠나. 그제서야 병원에 데리고 가니까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늦었다고 했어. 그땐 남의 집에 세들어 살았는데 주인집 여자가 자기 집에서 애 죽이는 것이 싫다고 해서 날만 밝으면 애를 업고 밖으로 나가곤 했지. 옥수수밭 그늘에 애를 뉘여 놓고 죽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날이 저물면 다시 업고 들어가곤 했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서……. 애를 업고 밭두렁을 걸어가면 등에서 가르릉가르릉 가느다란 소리가 났어. 그러다 소리가 멈추면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라 애를 돌려 안고 ‘무남아!;하고 부르면 힘겹게 눈을 뜨곤 했어. 사흘째 되는 날인가, 풀밭에 애를 뉘여 놓고 들여다 보며 가여워서 ’무남아!‘하고 부르니까 글쎄 그 어린 것 눈가에 눈물이 흐르더라구.
그날 저녁을 못 넘길 것 같아서 시집 올 때 해 온 개끼 치마를 뜯어서 무남이 입힐 수의를 짓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바늘 귀를 꿸 수 없어서 서투른 솜씨로 눈이 붓도록 울면서 옷을 다 지었지.
겨우 숨만 걸린 무남이에게 수의를 갈아 입히니 옷이 너무 커서 어깨가 드러났어. 얇은 천이라서 하얗고 조그만 몸이 다 비쳐 보였어.
그렇게 안고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첫닭 울 때 숨이 넘어갔어. 죽은 무남이를 들여다 보니 속눈썹은 기다랗고, 보드라운 머리칼은 나슬나슬하고, 고사리 같은 자근 손이 에미 가슴을 저며 내는 거 같았어. 나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울지 않고 못 배겨.
게다가 그땐 이 에미가 얼마나 독하고 야박스러웠나 몰라. 무남이 싸 안았던 융포대기나 그냥 둘 걸, 물자가 너무 귀한 때라 융포대기를 빼 놨어. 그리고는 헌 치마에 새처럼 말라 깃털 같은 무남이를 쌌지.
즈이 아버지가 주인 여자 깨기 전에 갖다 묻는다고 깜깜한데 안고 나가 묻었어. 어디다 묻었냐고 나중에 물으니까 뒷산 상여집 뒤에 묻었대. 그땐 왜정 때라 부역하듯이 집집마다 일을 나갔는데 나도 나오래서 밥도 굶고 울기만 하다 나갔떠니 하필이면 일하러 가는 곳이 상여집 뒷산이었다.
그곳을 보니까 새로 생긴 듯한 작은 돌무덤이 봉긋하게 있어서 그걸 보고 그냥 그 자리에 까무러쳐서 정신을 잃었었지.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예상했던 장해를 만나도 당황스럽지만, 예상치 못한 장해를 만나면 중도에 여행을 계속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저 역시 한라산 등반 이후 예상치 못한 다리근육통으로 여행을 계속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등반할 때 쓴 다리근육과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의 근육이 서로 다른 것 같더군요. 자전거 페달을 밟고 갈 때는 고통이 걸을 때만큼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특히 혼자 가는 여행은 수많은 자기연민을 불러일으키고 감상에 빠지게 하면서 스스로 회의에 빠져드는 일이 잦아집니다.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집에 가고 싶다” “애인이 보고 싶다” 등등 별의별 생각이 나를 유혹합니다.
여행의 준비과정부터 마음가짐을 잘 새겨넣는 것이 중요하듯이 여행 중간 위기의 순간에도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제대로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끝까지 해보겠다는 각오와 보다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진다면 목표에 도달하는 정상적인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여행의 중간정도를 지나는 시점에서 일정이나 경유지 변경은 그중 하나일 뿐이고, 중량을 줄이기 위해 우편으로 안 쓰는 짐을 보내는 것도 좋겠죠.
여행은 온전히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즐겁고 기쁠 때는 잘 모르지만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나의 치부는 내 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때 그것마저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끌어안고 갈 수 있는 힘, 그것이 자기애가 아닐까 합니다. 누구나 후회를 하고 자괴에 빠지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좌절을 고통스러워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인간이며 그것이 바로 자기자신일 때, 그럴 때 생기는 자기연민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 그것이 자전거 여행이 아닐까요.
여행 중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고 기록한다면, 먼훗날 자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으로 기억될 역사의 한페이지가 있음을 뿌듯하게 여길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 그 아저씨네 민박집에는 항상 방이 없었다. 그 옆에 민박집을 찾아갔는데, 어제 잤던 다른 민박집보다 형편없다. 그래도 피곤한 몸이 엎어져 스르르 잠들어버렸다. 한라산 등반을 쉽게 보았는데, 내려오는데 너무 많은 힘을 빼앗긴 탓이다.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다리가 장난이 아니다. 이전에도 약간의 근육통이야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좀 심각하다 싶을 정도다. 폈다 구부렸다 하는 것은 물론 걷는 것조차 어색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아침에는 배를 타고 가는 거라 좀 쉰다 해도 예정했던 땅끝마을을 달릴 생각하니 암담하다.
제주에서 완도로 가는 배는 월요일 휴항이라고 한다. 제주6부두에는 이미 고등학생쯤 보이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배를 타고 완도에 도착하면 광주까지 가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한다고 하니 여행객에게는 꽤 괜찮은 서비스다. 배삯은 19000원, 역시 자전거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다. 객실에 앉아 있으니 졸음이 쏟아졌다. 피곤이 온몸을 누르고 있었나 보다.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떴을 때는 어느새 완도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완도항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그냥 달렸다. 피곤하니 밥맛도 없어진 걸까. 가다가 가게에 들려 빵과 우유를 억지로 먹고 완도대교를 넘었다. 이제 다시 갈림길, 여기서 땅끝마을로 갈지 아니면 강진으로 빠질지 고민해 본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다음주부터는 날씨가 예년 기온을 '되찾는다'고 한다. '되찾는다'는 말은 지금 좀 춥지만 다음주는 그래도 더 따뜻해질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11월 말의 날씨다. 최대한 빨리 서울로 돌아가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게다가 근육통을 느끼는 정도로 봐서는 무리한 여행을 자제해야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결국 강진으로 핸들을 돌렸다.
강진으로 달리는 길 왼쪽으로는 두륜산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황량한 논밭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도로에 갓길이 너무 좁다. 게다가 도로폭도 좁고, 작은 언덕들도 곳곳에 있어 애를 먹인다. 가뜩이나 허벅지 근육들이 고통을 호소하는데 이런 언덕을 만나면 곤혹스럽기가 그지없다. 강진읍내에 가까워지자 다시 갯내음이 나기 시작한다. 여기도 항구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 직장 워크숍을 영암쪽으로 온 일이 있고 이 근처의 식당에서 푸짐한 점심상을 먹은 적이 있어 찾아보았으나 쉽게 찾기 힘들다. 결국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간단히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숙소를 알아보았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은 광주까지 가 볼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여행을 걱정하고 격려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곳 게시판에 들려 하루하루 나의 여정을 함께 지켜보고 있다. 사진과 글로 담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길은 항상 말한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길이 가장 아름다운 길임을… 내가 꿈꾸는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만드는 그것이 이 길 위에 있다. 그래서 달리는 지금의 내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내 앞에 뻗은 이 길이 가장 멋진 풍경이다. 아마도 이후 내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여행이 내 인생의 가장 멋진 순간으로 기억될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가야할 목적지를 향해 열린 이 길을 달리면서도 끊임없이 나는 나에게로 난 길을 달린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저 평범하게 집에서 쉬는 것보다는 내가 안위하고 있는 그 지도 바깥으로 나가는 경험을 선택한 것이 자랑스럽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서울까지, 내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그 집까지 달려갈 것이다.
주행거리 : 51km
주행시간 : 4시간 30여분
주행구간 : 제주항(6부두) - 완도항 - 청해진 유적지 - 완도교 - 55번 지방도 - 북일면 - 신전면 - 임천저수지 - 강진 시외버스 터미널
6시 반에 일어났다. 민박집 주인아저씨에게 대략적인 한라산 등반코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아저씨가 소개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제주도의 흑돼지가 유명한데, 그 집의 김치찌개에는 그 흑돼지 고기를 사용한단다. 아주 맛있었고 가격(4천원)도 만족스러웠다.
터미널에서 성판악가는 시외버스에 올랐다. 버스로 약 30분 정도면 성판악까지 간다. 오늘은 수능일이라 그런지 아침시간의 버스가 한산하다.
한라산은 긴 등반코스로 인해 성판악 매표소에 오전 9시 전에 입장해야 등반이 가능하다. 8시 반경에 성판악 매표소에 도착 45분 정도에 입장했다. 내 손에는 카메라와 아저씨가 준 감귤 6개만 들려 있었다.
성판악 코스에서 진달래밭까지는 비교적 평탄하며 잘 만들어진 길이다. 누구나 쉽게 오르며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길로 올라갔다가 이 길로 내려온다. 이번 한라산 등반이 나로서는 두 번째지만 오르는 길은 예전과 같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산길을 관음사 코스로 잡았다. 민박집 아저씨의 적극적인 추천이 그 이유다.
어쨌든 오르는 길은 매우 여유 있게 올랐다. 길이 평탄하고 조용히 걷고 싶은 마음에 다른 관광객들이 앞지를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걸었다. 적어도 진달래 밭까지는 숲을 거닌다는 기분으로 올랐다. 진달래밭에 도착하니 11시가 약간 넘었다.
진달래밭 산장에서 정상까지는 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니 백록담이 보였다. 2002년엔가 2003년에 올랐을 때는 백록담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내 구름속으로 숨어버렸는데 오늘은 구름 한점 없다. 훤히 드러나 있는 백록담 바닥에는 물이 거의 없었다. 그저 바닥이 좀 젖어 보이는 정도. 그러나 엄청난 분화구의 크기와 그 주위 봉우리들이 이루는 장관은 힘들게 오른 피로를 위로하는데 더없이 멋진 풍경이었다. 게다가 엄청난 바람 때문인지 정상 곳곳에는 얼음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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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은 처음 가보는 관음사코스로 낯선 길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다시 성판악으로 내려갔지만, 일부 사람들만 이 길을 선택했다.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타난 한라산의 숨은 비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음사 코스의 눈꽃도 화려했다. 바위에도 눈이 얼어붙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산길은 너무 지루했다. 올라가는 길은 짧았지만 내려가는 길은 무척 길고 지루했다. 초반에는 볼거리가 풍부해 천천히 내려오며 즐겼지만 내려가다 보니 이건 지리산 내리막길보다 더 힘들다. 속도를 본격적으로 내어 보지만 그래도 3시간이 걸렸다. 내려와서 입구에서 내려오는 보통사람의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지도를 보니 4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자전거로 단련이 됐지만,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오늘도 점심을 거르고 감귤 3개로 버티며 내려온 것이다. 관음사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3시 반정도. 여기서 버스타는 곳까지 또 3.5km를 가야 한단다. 민박집 아저씨는 히치를 하라고 하는데, 잘 잡히지도 않고, 하다 보니 얼굴 얇은 나로서는 도저히 못할 짓이었다. 작정하고 터벅터벅 걸어 내려가니 신비의도로(일명 도깨비 도로)가 나온다. 여기도 일련의 관광객들이 몰려 구경하느라 어수선하다. 한 35분 정도 걸어 내려와 버스 타는 곳까지 오니 시간은 4시. 예정보다 많이 늦어졌지만, 한라산 여행은 무사히 마쳤다.
내일은 아침 9시 배를 타고 완도로 떠난다. 그리고 땅끝마을까지 간 후 해남쪽으로 달릴 예정이다. 해남까지 가기는 좀 먼 거리다. 아마 땅끝마을 어딘가에서 하루 묵지 않을까.
어제 부두터미널에서 나에게 제주도 여행에 조언을 준 그 민박집 아저씨가 오늘 저녁에 만났을 때 한 말이다. 거리는 그다지 길어 보이지 않는데, 정말 제주의 바람은 다신 만나기 싫은 괴물이다.
오늘 아침은 서귀포 찜질방에서 시작했다. 밤새 코고는 아저씨 때문에 잠을 설쳤다. 이리저리 피해 다녀 보았지만, 수면실을 제외하고 찜질방이 춥다.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지만, 7시에 일어나 샤워만 간단히 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제주 서귀포 찜질방은 7000원에 옷대여료 2000원을 추가로 받는다)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을 나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천지연 폭포. 그러나 입장료가 2천원에다가 찾아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입구에서 돌아섰다. 다음 정방폭포를 찾아가 본다. 역시 입장료 2천원을 받지만 멀리서 훔쳐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그냥 그렇게 눈에만 살짝 담아보고 돌아섰다.
관광지에 온 것처럼 여유있게 다닐 수 없었다. 오늘 가야할 거리는 어제보다 길면 길었지 짧지 않다. 게다가 바람도 아마 여전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출반전부터 점찍어 놓은 곳을 제외하고는 주마간산(走馬看山)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5시 전에 제주시의 민박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달려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주마간산이라지만, 제주는 눈에 담기에도 벅찰 만큼 아름답고 멋진 풍광들이 가득했다. 자전거를 멈추고 카메라에 담는 것은 그 수십 수백의 풍경 중의 몇 개에 불과하다. 내 기억의 동영상에 비하면 사진기에 실린 몇 장면은 몇천분의 1초에 불과한 장면일 것이다.
아침을 먹지 않고 나왔었다. 금방 식당이 나오겠지 싶었는데,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아 지나다가 서귀포시내를 벗어나자 식당이 안보인다. 간혹 나오는 식당에 들어가 아침식사가 되는지 물으니 아직 안된단다. 낭패다. 아무리 달려도 식당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학교 앞 분식집에서야 아침식사(김밥과 라면)를 했으니 대략 10시를 훌쩍 넘어서다. 밥도 안먹고 2시간 반을 달렸다. 물론 중간에 비상식으로 가지고 있던 쵸코바 하나를 먹긴 했지만, 오늘 낌새가 상당히 안 좋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예감은 이상하게도 들어맞아 오늘 그렇게 한끼 먹고 점심은 건너뛰고 민박집에 와서야 저녁을 먹었으니 달리는 동안 딱 한끼만 해결한 것이다.
그렇게 달렸지만 서귀포를 지나 서서히 북상하는 길이 시작되자 예상대로 맞바람을 상대해야 했다. 엄청난 맞바람은 어제와 똑같았다. 내리막길에서조차 최고속도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맞바람은 심하게 나를 괴롭혔다.
중간중간 쉬는 시점에서 지도를 확인하고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길을 찾아가보는데, 꼭 가기로 한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을 가게 된다면 5시까지 제주에 들어가는 게 무척 어려워질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페달을 밟아보아도 내 체력으로 이 맞바람을 뚫고 가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기껏해야 평지에서 3단, 속도가 평상시 보다 절반 이상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12시가 좀 안되어 섭지코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그 입구에서 1.5km를 더 들어가야 한단다. 어찌됐던 이곳이라도 가봐야 한다는 오기에 입구로 진입했다. 곧이어 내 뒤에서 관광버스 다섯 대가 추월해 간다. 섭지코지 주차장에서 보니 초등학생들이 섭지코지로 올라가고 있다. 섭지코지는 그 전에도 제주의 명소였지만, 드라마 '올인'의 촬영장소로 더 유명해졌다. 지금도 그 셋트장이 관광코스로 활용되고 있었다.
아이들만 아니었으면 무척이나 운치 있게 구경했을 것 같다. 한꺼번에 많은 아이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어수선을 피우니 좀 섭하다. 아이들이야 단체 관광을 온 마당에 여행의 멋과 흥미를 친구와 짓고 까부는데 쏟아 붓느라 정신없지만 다른 관광객들은 어쩔 수 없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라 이해는 하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서운할 틈도 없다. 섭지코지를 돌아보고 다시 페달을 밟아 갔다. 절반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간신히 절반을 온 것이다.
제주는 봄날씨다. 야생화들도 한참이었고, 심지어 유채꽃까지 피어있는 곳도 발견했다. 어느 곳인가에서 상큼한 감귤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 왔다. 계속해서 맞바람을 보내 나를 괴롭히던 제주가 그 순간만큼은 색다른 즐거움에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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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의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1시 10분. 역시 많이 늦어졌다. 올라갔다 올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은 처음 출발할 때도 했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성산일출봉을 보고 못 오르니 안타깝기만 했다. 매표소 앞 편의점에서 멀리 일출봉을 보며 한껏 감상에 빠져 보았다. 오가는 신혼부부들이 부럽기만 하다.
성산일출봉까지 들렸다 나오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줄곧 제주시내까지 달려야 했다. 아, 그러나 저 제주의 바람은 앞으로 나가는 페달을 자주 멈추게 하고 말았다. 맞바람이 심할 때는 바람의 저항을 피하기 위해 손은 양쪽 손잡이가 아닌 중앙을 잡고 온몸을 핸들쪽으로 바짝 엎드려 최대한 저항을 피하는 자세로 페달을 밟았다. 자세는 약간 효과가 있었다. 간간히 보이는 제주의 밭과 돌담들은 그저 눈으로 보고 기억에 담을 뿐. 하지만 정말 걷고 싶은 돌담길을 만났다. 하지만 사진에 담는 것으로 하고 다시 바짝 엎드린채 페달을 밟는다.
한참을 그렇게 바람과 씨름하며 달리는데, 어느 동네어귀에서부터 개가 나를 뒤쫓기 시작했다. 내가 서면 이놈도 서서 나를 지켜보고, 내가 다시 달리면 또 따라온다. 좀 다가서려면 도망가고, 다시 자전거를 달려 도망가려면 악착같이 따라온다. 사실 도망가보려 했지만, 맞바람 때문에 속도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누구네 개인지 모르지만, 내가 참 한심한 속도로 달렸는지 지치는 기색없이 1km정도를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재밌다 싶으면서도 계속 쫓아온다면 필시 돌아갈 때 차도도 건너야 하고 여러 위험도 있을 수 있어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겁을 주고 돌멩이를 던져 녀석을 돌려보냈다. 잠깐의 만남이지만 참으로 기이하게 길동무를 경험한 것이다. 미국을 횡단한 홍은택 씨 역시 자전거 여행 중 수십마리의 개들이 자기를 쫓아왔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경험을 하니 신기하기만 하다.
점심도 거르고 제주시내로 들어선 시간이 대략 5시. 여름이었으면 아직 한창 밝을 때겠지만, 11월의 제주에서 이 시간 해는 완연히 지고 있었다. 물어물어 민박집을 찾아가서 샤워와 빨래를 하고 오늘의 일과를 정리해 본다.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들도 많이 봤지만, 징하디 징한 바람맛도 기억에 생생하다. 다리가 무척 피곤하다. 내일은 아침 일찍 한라산에 오를 것이다.
돌아보면 저는 참으로 무식하게 제주를 여행했네요. 좀 여유있게 제주를 느껴야 했는데,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보통 제주도 일주를 1박2일만에 마무리 하는 건 정말 달리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위 여행기에도 나오지만 이튿날 제대로 관광지를 둘러본 곳은 섭지코지 뿐이 없습니다. 그 많은 제주의 명소를 그냥 지나친 것이죠.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간다면 최소한 제주도 일주만 2박3일을 잡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한라산 등정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좀 넉넉잡고 정말 관광다운 관광을 하며 간다면 3박4일을 추천합니다. 아래는 추천코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