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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tong3: 생산역군이라고 추켜줄 때는 '근로자',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 '인부', 권리를 주장하면 '배부른 노동자'.. 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입니다. 다섯 분 철도노동자의 명복을 빕니다.

@namhoon: '인부 5명이 목숨을 잃다'(X) -> '노동자 5명이 목숨을 잃다'(O). 이 세상에 '인부'란 직종은 없습니다.

@grainy_: 전국의 출판사 수가 2만 개가 넘고, 출판시장 규모가 세계에서 일곱째라는 이 나라에서 노조가 있는 출판사는 7곳뿐이고, 노조에 가입된 출판노동자 수는 50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사실 출판노동자들은 스스로를 근로자로 불리는 것도 마땅치 않은 듯. 그건 지금 기업내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역들이 내세우는 논리이기도 하다. 나름 전문직업인이며 평범한 노동자들과는 다르다라고 주장하지만, 이제는 교사도, 비행기 기장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고, 공무원들도 노동자 조직을 만들고 있다.  어차피 기업 내에서 임금을 받고 정해진 기간과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이라면 노동자가 맞을 것이다. 출판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권리 위에서 낮잠을 잔다면 언젠가 인부 취급을 받을 날이 있지 않을까라는 비관적 전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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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가 블로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들어가 보니 이미 190여개의 포스팅이 올라가 있다. 주로 시와 시에 대한 단상, 그리고 일상의 상념들을 담았다. 시 때문일까, 글들이 남다르다. 쉽게 따라갈 수 없는 그의 감수성이 느껴진다. 여전히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있어 좋다. 그러면서도 이제까지 왜 숨겨왔을까.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참 많은 걸 이해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서툴던 것일까, 부끄러웠던 것일까, 꺼렸던 것일까?

요새 인기 있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소양 없는 자가 글자를 알면 안 된다고 말한다. 당시로서는 소양 없는 자가 글자를 안다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을 게다. 기득권을 지켜주고 있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양 없는 자가 돈도 권력도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기득권을 형성하고 그들만의 질서를 만들었다. 여기에 파열음을 내는 어떠한 시도도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집단 불법세력으로 몰아 세운다. 지금의 시대에 글자를 아는 것만으로는 권력도 돈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글자는 힘이 될 수 있고 권력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세상의 텍스트들이 그렇다. 이제 인터넷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권력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 SNS를 모르는 정부 여당을 향해 수많은 민초들이 SNS를 통해 비판하고 저항한다. 여기서 다시 정기준은 이렇게 예견했다. 글자를 알게 되면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고, 글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자 할 것이라는 점. 지금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질서에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SNS에서 유통되는 많은 텍스트들은 정제되지 않은 것이 많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일 것이다. SNS는 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돈과 권력이 소양없는 자에게 폭력이 되는 것처럼 SNS에서 흐르는 수많은 텍스트를 자신의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소양이라는 것(그것은 단순한 주관일 수도 있고, 정보를 거르고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일 수도 있다)이 필요하다.

리영희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돈과 권력이 없는 99%가 글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그 자체로 진보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자신을 드러내겠지만 돈도 권력도 없는 99%에게 블로그와 SNS는 아주 괜찮은 매체인 것이다. 이제 글자를 아는 것을 넘어 글을 써야 하는 시대다. 수많은 글들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권력과 질서에 저항하고 있다. 블로그든 SNS이든 이제는 쓰고 알리고 공유하고 소통하는 일은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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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은 제가 인권위에서 3년 근무하면서 이미 당한 사례이지요. 기한이 없는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 급여나 조건 등은 하나 달라지지 않고 그냥 그대로 계속 일만 해라.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차별은 유지하겠다라는 것. 급여도 조건도 복지도 그대로다. 그거죠. 이거 노무현 정부때의 인권위에서 제가 겪었던 거에요. 새삼 MB 정부를 깔 일은 아닐 듯, 그냥 따라하고 있는 거죠. 아참, 다시 떠오른 놀라운 사실은 당시 인권위에 노조가 생겼지만, 비정규직은 가입할 수 없었다는 것. 정규직이 반대했죠 ㅎㅎㅎ

그러니 적어도 노동 문제에서 노무현 정부는 MB정부와 하나도 다를게 없었고, 오히려 악화시키는 데 앞장섰어요. 물론 MB정부가 가속 페달을 밟은 건 사실이지만, 애초 출발은 노무현 정부였죠. 만일 계속 노무현 정부가 재집권했어도 이 정도 속도는 나왔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내년 집권을 하겠다는 통합과 혁신 등 야당 연합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MB보다 나아지는 점은 있겠지요.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런 모호한 비전, 반 MB 외에는 별 것도 없는 내용으로 표를 달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일상의 삶, 즉 일하는 사람들의 삶에서는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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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가볼 걸 그랬어. 오랜만에 찾은 남산.
중간에 돌아서는 발걸음들이 계단 틈에 숨어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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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신혼 부부에게 흔하게 하는 조언으로 "지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하지만, 난 그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차피 갈등은 생활 곳곳에 숨어 있다. 일부러 드러내는 것도 문제지만, 무조건 가리는 것도 옳지 않다. 져주는 것은 당장의 갈등을 덮을 수 있지만 흐르는 물을 작은 돌로 막아 놓은 것일뿐이다. 물이 계속 들어오면 범람하게 되어 있고 더 큰 홍수대란을 피할 수 없다.

"화내는 사람이 진 거다."

갈등을 풀어가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화를 내느냐 내지 않느냐와 같다. 다름을 다름으로 보고 공통의 분모를 찾던가 해결의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그런 진득한 기다림과 이해와 설득에 대해 숙련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힘과 권력으로 일방적으로 몰아부쳐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의 일부를 시혜적으로 베풀면서 "봐라,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는 훈계가 일상적이었다.

MB와 한나라당의 방법이 항상 그러했다. 이번 한미FTA 역시 그들의 치졸하고 옹졸한 속내에서 비롯된 참담한 결과물이다. 그렇게 좋고 훌륭하고 중요한 문제라면 보다 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기다려야 하는 문제를 졸속으로 강행처리하고서 나몰라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가진자의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도(한석규)가 이런 말을 하지 않나.

"겨우 폭력이라니..."

트위터 상에서 벌어진 논쟁으로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에게 폭행을 한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저 의견의 다름으로 볼 문제인데,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화를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으로 해결했던 사건이다. 게다가 일부 트위터인들이 폭력을 휘두른 사람을 옹호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용이 부족하고 폭력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분노하라"는 어느 레지스탕스 노인이 쓴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지만, 정당한 분노는 방법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물불 가리지 않는 분노는 야만적인 '화'와 다를 게 없다.

MB치하에서 많은 이들이 핍박받고 있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MB만 물러가면, 정권만 교체하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 말하지만 우리 스스로 MB를 닮아서는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도 더 나아갈 수도 없다. 당신이 희망임을 보여주는 일을 거리에서 치열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에서 수많은 갈등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도 우리가 MB의 세상, 탐욕적 자본주의 세상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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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rism  차에서 연탄불 피우고, 욕실에서 목매고, 10층 베란다에서 몸 던지고,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돌연사하고...지난 2년간 쌍용차 노동자 20여 명이 그렇게 죽었다. '헬프미!' 사인이 더 필요한가

@meprism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 중엔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인한 돌연사가 많다. 옆에서 잠든 사랑하는 이에게 마지막 작별의 인사조차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고통과 안타까움은 어떤 것일까. 그들의 죽음은 돌연사가 아니라 예비된 죽음에 가깝다. 막아야 한다..

@vanyaji: 세아이의 아버지. 한여자의 남편. 40대초반. 새벽4시 돌연사. 며칠전 쌍용차해고자 부인의 돌연사에 이은 참담한 소식..KT안동지사. 무겁다. 무겁다.


트위터를 보면 우울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전해오는 비명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분노한 사람들의 악다구니도 보인다. 글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표정까지 보는 듯해서 고개를 돌리고 싶다.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진다고 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비명과 악다구니 속에도 사람이 있다. 비명은 도와달라는 호소로 듣고, 악다구니는 들어달라는 외침으로 듣고 있다. 이런 관심이라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느 쌍용차 남편을 둔 부인은 어느날 밤 갑작스럽게 아이들 곁을 떠났다. 그 시간 남편은 지방 일용직으로 돈을 벌러 가고 없었고, 아이들은 엄마의 죽음을 모른채 이틀을 보냈다고 하더라.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죽었을까. 그 아이들은 왜 그런 상황에 처해야 했을까. 그이가 그렇게 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오늘 하루의 돈벌이를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그렇게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처지들의 동질감일까. 그렇게 남은 아이들과 남편을 위한 계좌번호가 트위터에 떴을 때 작은 돈을 입금하고 돌아서도 가시지 않는 이 아픔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1996년 정리해고법이 통과되었다. 그때 추운 거리를 얼마나 쏘다녔던가. 하지만 막을 수 없었고, 그렇게 비정규직이 양산되었고, 88만원 세대가 나왔다. 정리해고의 남발로 수많은 목숨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 곁을 떠났고, 우리는 OECD 자살율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이 죽음의 굿판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걸 보면 분명 이를 즐기고 기뻐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어제 한미 FTA가 통과됐다. 당장은 아무일도 없겠지만, 언젠가 이것도 수많은 목숨들을 잡아 먹을 것이다. 정리해고법이 그러했듯이... 정리해고법이 통과되고 불과 15년만에 우리는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제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한미 FTA를 통과시켰다. 죽어라죽어라 고사를 지낸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닐텐데, 참 할 말이 없다.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은 그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조금은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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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공영라디오(NPR)과의 독점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미 FTA를 찬성하고 있으며, 반대하는 이들은 반미 성향을 지닌 극소수의 국민”이라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원기사 보기)


반대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 보면서 깊이 이해하기 보다는 쉽게 분류해서 낙인찍고 따돌리는 건 정말 쉬운 일이지. 그런데, 꼭 주먹으로 쥐어패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야. 저런 것도 아주 질이 나쁜 폭력이지. 게다가 그냥 시정잡배의 말이라면 그냥 그만큼만 영향을 받지만, 이건 한나라의 권력자가 한 말이란 말이지. 저 말은 경찰과 검찰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라서 실제적인 폭력으로 이어지잖아.

아무튼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잘 뽑았어. 교육 효과가 명확하잖아. 온갖 나쁜 선례의 백과사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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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 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 안철수
  • 그의 노력과 열정이 남달랐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시스템과 함께 맞물렸다는 것, 그 결과로 그가 명성과 부를 얻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보통의 부자들이 자신의 노력과 열정만 내세웠다면 그는 이번 기부로 자신의 명성과 부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인정했다. 즉, 자신의 열정과 노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부를 누렸다는 것을 고백한 셈. 그러나 그의 그런 고백이 다시 그의 명성을 더욱 치켜세우는구나. 누구 말대로 기부할 돈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명성은 죽음을 통해서나, 혹은 죽을만큼의 고통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저 별 너머의 것이라는 것. 하물며 별 너머의 먼지로 사라지더라도 얻기 힘든 그 무엇이라는 것.
  • 그럼에도 다행(?)은 그의 말대로 그 사람이나 나나 모두가 언젠가 저 별 너머의 먼지가 될 것이라는 것. 아무튼 여타 다른 부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겸손(?)을 표방하였다. 어찌됐든 그는 우리 사회가 베푼 최대의 자선(자산이 아니라)임에 틀림없다. 어느 중견기업의 회사 20대 후반의 이사와 비견된단 말이지. 할아버지 잘 만나서 그 자리에 있음에도 세상에 대한 깊은 고민은 전혀 없고, 그저 그리스 사태가 복지병으로 생긴 거라고 헛소리나 하고 앉아 있던 그 이사 말이다. 사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반박도 안한 나라고 뭐 잘났냐만. 갑자기 우울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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