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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1.
대기업 회장 P씨는 비행기 안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에서는 “P씨 탓에 항공기 출발이 1시간 지연돼 다른 승객들이 겪은 불편을 감안하면 벌금형은 너무 가볍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검찰 구형대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하며 재판은 마무리됐다.


상황2.
서울 청계천 근처에서 옷장사를 하는 K씨는 경기 악화로 가계수표 2500만원을 막지 못해 부도를 냈다. 그는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 기소됐는데, 입원 중인 남편 치료비도 모자라 쩔쩔매던 김씨는 결국 “벌금을 낼 돈이 없다”며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판사 앞에 선 김씨는 “어려운 형편을 좀 봐달라. 벌금형보다 차라리 징역형을 선고받는 게 낫겠다.”라고 하소연하였다.(2011년 2월 10일자 세계일보에서 발췌)


상황3.
지난해 8월, 한 스피드광이 고급 승용차를 몰고 고속도로에서 시속 300km로 광란의 질주를 벌이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고 곧바로 풀려났지만, 약 65만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12억원) 상당의 벌금을 내게 될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역대 사상 최대의 벌금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상황1과 2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일반인에게 벌금 1000만원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러나 대기업 회장인 P씨의 경우 습관적으로 정치인을 대상으로 1만 달러를 1만원이라고 부를 정도의 배포와 재력이 있던 사람이다. 그의 셈법대로라면 1만 원짜리 벌금을 낸 셈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어떨까? 이 역시 인권의 원칙에 맞지 않다.


하지만 벌금 300만 원을 낼 수가 없는 K씨의 경우는 어떠한가. 사실상 가정 경제가 부도를 맞은 상황에서 교도소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에게 우리 법은 어떤 대안을 줄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벌금형보다 징역형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은 벌금을 내지 못할 경우 노역장 유치 규정을 두고 있는데, 사실상 경제적 약자에게 벌금의 자유형화(징역형화)를 조장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상황3은 벌금형의 차별화를 통해 부유층에게 막대한 벌금형을 준 사례로 일명 일수벌금제라고도 한다. 1920년대 스웨덴에서 처음 도입돼 일부 유럽 국가에서 시행 중인 이 제도는 하루 소득이 100만원인 사람과 10만원인 사람이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벌금을 각각 10만원, 1만 원 등으로 차등 부과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형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의견 표명”을 통해 이런 일수벌금제도에 대한 도입을 고려할 것을 권고했다. 법무부도 이전부터 탄력적 양형기준을 마련해 생계형 법규 위반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는 구체적으로 벌금의 자유형화라는 조항의 실질적인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형제도 폐지, 보호수용제 도입 반대, 범죄의 경중을 고려한 선거권 제한, 구류형 폐지, 외국에서의 수형기간을 형집행 기간에 포함, 정신장애자의 범위 명확화 등을 이번 의견 표명에 담았다. 모두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인권의 가치에서 논의되어 온 과제들이다.


형법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 만큼 인권의 관점에서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개정안은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60 여년만의 총칙 부분에 대한 전부 개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축적된 판례와 발전된 형법이론 및 형법의 세계화 경향을 반영하는 등 긍정적인 면이 크다. 하지만 인권의 측면에서 보다 면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형법 개정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권이 보다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국가인권위원회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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