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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새 '동경'의 마음을 잃었다. 저 산 너머는 어떤 모습일까. 저 바다 건너는 어떤 세상일까. 저 길을 돌아가면 무엇이 있을까. '동경'은 그런 궁금함과 호기심에 희망을 버무려 만들어진 마음인데, 살아가며서 그런 동경을 잃고 산다. 동경을 잃어버리면 무관심만 남는다. 지금 있는 자리에 연연하고 지금의 인연에 매달리고 세상을 원망한다.
  • 동경을 무너뜨리는 것은 두려움이다. 그리고 관성이다. 산 너머에 대한 동경보다 두려움이 커진 것이며, 저 바다 건너 세상에 대한 동경 보다 두려움이 커진 것이다. 길을 돌아가서 만나는 무엇이 나를 위협할 거라는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그 용기를 애써 외면하고 '돈'이라는 탐욕의 물질에 위안을 삼지만, 실상 돈이 그렇다고 많은 것도 아니니 괜한 절망감과 자괴감으로 스스로에게 상쳐를 분다. 그러면서 '돈'만 있으면 저 산 너머로 갈 수 있을 것이고, 저 바다 건너의 세상도 다 내것이며, 저 길을 돌아가서 만날 무엇인가도 내 앞에 무릎 꿇을 거라는 얼토당토 않은 미신에 빠져든다.
  • 돈이 동기 부여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살아있음의 유한한 경험은 그것만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 산 너머로 가기 위한 여정, 그 바다 건너의 세상까지 가는 동안의 설렘, 그 길을 돌아가는 동안 품게 될 기대와 희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 등은 모두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것이며,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전하는 울림이다. 
  • 다시 무언가를 동경하고 그리는 마음을 품어보는 일이 참으로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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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안양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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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스토리 IP제한 공지(http://notice.tistory.com/1686)가 뜬 이후 나에게도 해당되나라는 의문점을 가졌지만 적극적으로 알아보려 하지 않아서 그만 내 블로그가 사라져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버렸다. 물론 티스토리 홈페이지를 통해 로그인해서 들어오면 여전히 살아 있지만 1차 주소를 www.eowls.net으로 해 놓았던만큼 이 주소로 들어오면 없는 페이지로 나온다. 그러니까 지난주 금요일부터 사라져버린 블로그를 소생시키기 위한 내 노력은 나름 눈물겨웠다.
  • 나름 자부하고 있던 블로그 주소이지만 사실 블로그 작업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글쓰는 것에도 마음을 써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 업무에 가정사 챙기는 일까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마흔을 앞둔 생활인의 한계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라는 위로를 던졌다.
  •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일, 생각과 상념을 차분히 정리하는 일도 블로그가 있는 이유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까이는 일도 많이 봐왔고, 인터넷 세상에서 개인정보가 어떤식으로 유출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도 있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글이 가지고 있는 성찰의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 세상의 화두는 '쫄지마'가 되고 있다. 세상의 온갖 강요된 질서에 쫄대로 쫄아버린 지금의 30~40대에게 저 말은 얼마나 용감한 말인가. 그 '쫄지마'가 대상으로 가지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고, 나꼼수는 '가카'를 그 정점으로 보고 있지만, 실상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가카'는 멀리 있고, '상사'는 가까이 있는 존재다. 태고적부터 쌓여져 온 직업 내의 권위의식이나 사회의 줄세우기 관행 등이 우리를 스스로 쫄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 글을 쓸 때 언제부턴가 자기 검열에 빠져들 때가 많다. 이것을 쓰면 누군가가 보고 사회(회사나 국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닐까. 그로 인해 벼라별 구설수에 휘말리고 소송에 휘말리고, 맘고생 몸고생 개고생을 사서하지 않을까 등등.
  • 아무튼 나도 그만 쫄고 싶다. 그 시작을 블로그를 부활시키는 것에서 시작해야지. 벼라별 말들을 아주 읽기 힘들고 쬐그마한 글씨들로 주저리주저리 나불대 보자. 읽는 사람 피곤하게 하는, 가독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내멋대로 글장난을 즐겨보자. 사실 블로그라는 것은 그런 나불거림의 장난질 기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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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다 큰 아들이 늦은 나이에도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아마도 턱없이 높은 외모에 대한 기준 때문이라고 보셨을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난 내 기준에서 매우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아름다움은 꼭 외모만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같이 살다 보면 자잘한 긴장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편이란 작자가 금요일 후배들과 새벽까지 술을 먹다가 들어와서는 토요일 온종일 뒹굴뒹굴하며 보내고 일요일마저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으니, 모처럼의 휴일이 맥없이 그냥 가는 게 못내 아쉬웠을까. 아내는 부산스럽게 외출 준비를 했다. 초췌한 내 몰골 때문인지 아니면 나에게 화가 났는지, 나에게 나가자는 말도 안 하고 민서를 데리고 개웅산에 다녀오겠다는 거다. 일단 아내 얼굴에서 노랑 신호등(주의)에 불이 들어왔다는 신호다.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그냥 내보내면 난 죽는다.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틀 내내 비가 내린 터라 나는, "비 온 뒤라 개웅산 온통 진흙길일 거야. 잠깐만 기다려. 민서 자전거 끌고 안양천에 같이 나가자."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아내는 화가 나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속으로 삭이면서 풀어낸다. 짜증 내며 징징거리는 민서와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게임만 하는 나를 보면서 내심 많이 답답했나 보다. 안양천을 나와 가을의 둔치를 걸어 다니다가 고척교 아래 마련된 메밀밭에서 잠시 쉬는 그의 얼굴에 여유로운 웃음이 떴다. 다 풀어냈구나.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은 관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외모를 보기 위해서는 거울만 있으면 되지만 자신의 마음을 보기 위해서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를 통해서 내 마음의 저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인 것이다.

하지만 타인과 맺는 관계를 자신의 문제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변질시키기도 한다. 이 사람한테는 이래도 되겠지, 이 사람은 이러는 나를 이해할 거야, 하는 마음은 자신의 문제를 상대방에게 떠넘기기 위한 기만이다. 이는 깊은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오래된 인연이 이런 이유로 돌아선다.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제를 떠넘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는 객관적 자아를 형성하는 것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믿는다. 때로는 끊어질 듯한 긴장감을 형성하는가 하면, 때로는 느슨한 무관심을 지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끈의 길이는 약간 길었으면 좋겠다. 그 사이에서 바람이 무심히 지나가고 그 바람 사이로 서로의 체취를 맡으며 언제나 그리워할 수 있도록 말이다. 곁에 있어도 네가 보고 싶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런 그리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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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넘기면 자기 얼굴에 살아온 인생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더라.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나이도 이제 마흔이 낼모레다. 어찌됐건간에 나이와 인생에 얼굴에 드러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좋은 얼굴을 가지고 싶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얼굴 표정을 본다. 뽀얀 얼굴에 드러나는 다양한 표정에 매번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게다가 이제는 자아가 생기는 시기라서 그런지 감정을 얼굴에 싣는 것이 점점 다양해지고, 어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나름의 표정 연기도 점점 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어린 아가의 애교라는 게 그런 게다. 억지 울음이나 억지 웃음도 짓는데, 그런 표정을 보고 있자면 웃지 않을 수 없다. 아기야 그것을 어른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보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한 행위였음에도 우선 어른들에게 웃음을 준다. 아이가 주는 행복 중의 하나다.

민서도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직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 대화를 통한 자기 표현이 어색해서일까. 그 표정들이 정말 다양하다. 심지어 사진 찍자며 웃어 보라면 억지 웃음까지 짓는다. 그 억지 웃음이라는 게 입만 살짝 벌리고, 눈만 살짝 감은 듯 뜬 듯 한 상태로 있는 표정이라서 어찌나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억지 울음도 그렇다. 원하는 걸 안 들어 주면 억지로 우는 울음을 운다. 소리만 "앵~" 할 뿐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다. 입가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소리만 내는 억지 울음도 재미있기는 마찬가지다.

민서 엄마에게는 독특한 버릇 하나가 있는데, 눈이 나쁘다 보니 양미간에 주름을 잡고 힘을 주면서 시선을 주는 것인데, 요새는 이것도 따라해서 걱정이다. 그래서 민서 엄마도 이 버릇을 고치기로 마음 먹고 있다.

강아지 인형이 있는데, 이 강아지 인형이 얼굴은 정면을 향하면서 눈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민서는 이 모습도 따라하는데, 마치 눈을 흘겨보는 것 같은 표정이다. 이 표정이 익숙해져서인지, 언제는 아빠가 좀 장난을 치니까 눈을 흘겨보듯이 쳐다보다가 팽하고 엄마한테 가더라. 순간순간이 놀랍다.

민서가 많이 웃어주길 바란다. 그 웃음의 미학이 얼굴에 항상 깃들어 있어서 행복한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덕분에 나도 많이 웃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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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들이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진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상흔으로 남아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일이 될 수 있다. 곽노현 교육감의 일이 그렇다. '선의란 무엇인가' 그는 구치소에 갇히기 전에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의 '선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교육을 살리기 위해 나선 동지이자 경쟁자를 향한 개인의 측은지심의 발의는 분명 존경할 만한다. 하지만 법이 측은지심의 마음을 인정할 수 있을까? 법의 판단이 어떻게 나오든 그의 행동은 그렇게 쉽게 '선의'로 인정될 수 없는 선이 있고, 유감스럽지만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은 것이다.


박명기-곽노현 모두가 댓가성을 인정하지 않는 돈이다. 두분 모두 '선의'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선의'는 법정에서 실체가 없는 주관적 의지일 뿐이다. 법정에서는 분명 통장의 잔고와 돈의 흐름을 따지지 '측은지심'의 기준이나 선의 발의에 대해 따지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최종적인 선고에서 판사의 재량에 따라 어느정도의 정상참작의 선에서 고려될 수는 있겠지만 유무죄의 기준에서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선의'가 현대적 '정의'의 심판대에 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선의'를 잘못 이행해 벌어진 결과다. 아쉽지만 법정에서 '선의'가 설 곳은 피고인이 설 증언대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진정한 '선의'는 과정과 결과 그리고 그 영향에서 모두 긍정적인 에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선의'는 '선행'과 맞닿아야만이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곽노현의 '선의'를 '선행'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재판의 결과를 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래서 그 '선의'를 '선의'로 인정하기가 어렵다. 물론 곽노현 교육감을 구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댓가성이 아니라는 곽-박 교수의 주장을 믿으면서도 최종 판단이 어찌 내려질지 아무도 자신할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아직 법의 정의가 어떻게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곽노현 교육감의 '선의'는 박명기 교수를 향한 '선의'에서 머물렀다. 그 방법과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 오해를 살만한 일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사회 공동체를 향한 '선의'와는 관계가 멀다. 곽노현 교수에 대해서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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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4일 밤 7시 30분 -

"괜찮으세요?"
"으... 다리에... 다리에 쥐가 난 거 같아요?"
재빨리 그의 신발 앞코를 위로 꺾고 무릎을 아래로 눌러 다리를 똑바로 폈다. 힘껏 꺾고 눌렀는데도 쥐가 난 다리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빠른 대응 때문인지, 그의 다리는 곧 내 힘에 수그러들었고 그의 고통도 멎었다.
"오랜만에 뛰는 거라서 그럴 거에요."
"네, 정말 힘드네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랬어요. 저도 첫날에는 쥐도 났고, 다음 날에는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쑤시고 그랬죠."

- 1시간 전, 6시 30분 공덕 초등학교 실내 체육관 -

조용한 체육관에 불이 켜졌다. 사람들은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무채색과 강렬한 컬러의 운동복들이 교감한다. 가볍게 체육관을 도는 사람,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 공을 꺼내며 퉁퉁 바닥에 튀어보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몸풀기가 시작됐다. 난 스트레칭을 하고 체육관을 다양한 형태로 뜀뛰기를 한 후, 운동장으로 나가 2바퀴를 돈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농구동호회 모임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러 개의 농구공이 번갈아 튀는 소리와 심장의 방망이질 소리가 비슷해지면 경기에 임할 준비가 끝난다. 이날은 편집부서에서 신입직원 2명이 합류해 총 9명이 동호회에 참석했다. 먼저 3:3 반코트. 지는 팀이 떨어지는 경기. 대개는 가위바위보로 팀을 가른다. 복불복, 누구와 팀이 되든 최선을 다한다.

농구 동호회에서 개인의 실력을 상중하로 나눈다면, 나는 하급 수준이겠다. 무엇보다 야투 성공률이 너무 낮고 돌파와 드리블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자신있는 부분은 넓은 시야와 부지런한 공간 침투, 그리고 빠른 패스 등이다. 슛이 부정확하니 적절한 패스를 통한 어시스트에 집중하고, 드리블이 안되니 부지런히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어 낸다.

어제도 총 5 경기 정도(2시간 반)를 하면서 고작 3골을 넣었다. 이전의 어느 때보다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이다. 물론 점수나 승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느 경기든, 집단으로 하는 경기에서는 골보다 팀에 얼마만큼 기여하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었기에,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중간 정도는 했다.

3게임 정도 마무리 됐었을 때 위의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 오는 회원들은 대부분 격하게 진행되는 우리의 경기를 따라오거나,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들을 과하게 쓰면서 부상을 입거나 쥐가 나기도 한다. 평소에 운동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2시간 반 정도가 지나면 온몸에 피로감이 몰려오고, 옷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씻을 만한 장소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서 대충 씻고 옷 갈아입고 집으로 가야 한다. 밤 9시가 되서야 집으로 나서니 피곤이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다시 동호회 모임이 오면 아침부터 운동복을 챙기는 모습이 생소하지가 않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농구동호회 모임에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간혹 새로오는 분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예전 모습을 오버랩해보면, 지금의 내가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운동의 중요성은 정작 할 때는 짐작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몸이 서서히 달아오른다.

나는 몸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다만, 우리의 몸은 언제나 관리를 필요로 한다. 단순히 몸매를 가꾸는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지점들이 많다. 농구동호회는 항상 그런 화두를 나에게 던져주는 좋은 멘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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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생각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고 있다고. 혹여 지금 내가 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러다가 다행히라는 생각도 든다. 그때 무엇 때문에 아파했는지, 왜 고통스러워 했는지
쉬 잊혀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밀어내면서 잊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사람들과 함께 있다. 홀로 있는 시간에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자아겠지만,
그 자아를 넓히고 공감의 감정으로 행복을 느끼려면 사람과 함께 하는 일밖에 없다.

일상에 조용한 파문이 던질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던지는 돌멩이에서 시작한다.
살천스러운 시대에 그저 소나기가 지나가기만 기다릴 게 아니다.
텐트에 비가 세기 시작했으면 먼저 나서서 비를 옴팡 맞더라도
팩을 다시 박고 텐트를 재조정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장작을 준비하고 불을 지펴 함께 불을 쬐자.
그러면 비도 그치고 좀더 따뜻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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