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 2003년 10월 22일 정은임의 영화음악, 오프닝 멘트. 사실 정은임이라는 이에 대해 잘 모른다. 새벽에 하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이 내 일상에 들..
우리 사무실에는 정수기가 하나 있습니다. 커다란 물통을 거꾸로 뒤집어 꽂아 놓는 형태죠. 매번 이 물을 마실 때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5층까지 이 무거운 생수통을 들고 오셨던 생수 회사 아저씨가 생각납니다. 한번 나를 때면 보통 5~8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옮기시는데, 정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사무실까지 올라온 생수를 생수기에 꼽는 건 남자 직원들 몫입니다. 물론 여직원들이라고 못하겠습니까만, 보통 남자가 있는 사무실에서는 남자가 하기 마련이죠. 아무튼... 이 신성한 업무(?)는 또한 사무실에서 제일 젊고(?) 가장 가까이에 있고, 또한 만만하게(좋게 말하면 편하게) 생긴 저에게 많이들 부탁하십니다. 그럼 저는 흔쾌히 임무를 수락하죠. 먼저 생수통을 생수기 옆으로 가져온 후, 뚜껑의 비닐을 ..
아내가 입원한 병동은 5인실이었다. 아내는 문으로 들어가 바로 왼쪽 구석의 침대를 썼다. 그 옆에는 60대 중반 정도의 아주머니 한분이 계신데, 수술 후 회복중이셨다. 그 아주머니의 조카(40대 초반)가 그 옆에서 아주머니를 간병했다. 붙임성이 좋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셨으며 자신의 고모만이 아니라 병실 모든 사람의 간병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쪽 줄의 맨 끝에는 간암으로 입원한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 분은 새로온 사람이나 병문안 온 사람에게 무조건 자신의 병명과 증상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려 하였다. 아주머니는 그걸로 신세한탄을 하시는 듯했다. 주말에는 간병을 위해 20대 초반의 아들이 머물렀는데, 내가 보기에는 간병보다는 제 할일만 하면서 심심하고 따분하며 만사가 귀찮다는 행동을 곧잘 했다. ..
친구들과 신림동 순대타운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돌아왔을 때까지 아주 좋았다. 아내도 오랜만의 나들이와 유쾌한 술자리를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술자리라는 게 꼭 술을 먹어야 재미만은 아닌 게다. 자리를 흥겹게 하는 요소는 술 외에도 아주 많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우리의 기분은 최고였다. 잠자리에 든 아내와 태아를 위해 책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이내 아내는 몽롱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이 든 아내를 두고 다른 일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복통을 호소했다. 평소 태아가 커가다 보니 아랫배의 통증을 이야기해 왔던 터라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 고통은 좀 달랐다. 증상이 달랐고 통증 부위도 예전보다 약간 위쪽이었다. 아무래도 충수염(흔히들 말하는 맹장염)을 의심해 볼 수밖에..
드디어 블로그 포스트 수가 댓글 수를 추월했다. 오래 전에 예상한 바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황망하기가 그지 없다. 그만큼 다른 이와의 소통이 부족한 것이려니 생각하면서도 아무리 못잡아도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이 방문하는 블로그에 댓글이나 트랙백이 이렇게 잡히지 않는대서야 체면이 서지 않는다. 물론 나 스스로 다른 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거나 대화하는 형식의 블로그가 아니라 혼자 일상의 자잘한 재미들을 옮겨 적는 것에 만족해 하고 있으니 그런 결과는 당연하다. 또 그런 것에 연연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나를 아는 지인들이 내 생활의 단편들을 아무때나 와서 보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내 마음의 문과 같다.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내 소소한 일상은 아니더라도 삶의..
며칠 전부터 뜨기 엄마가 계속 아랫배가 아프다고 했다. 갑자기 순간 통증이 몰려 온다고 했지. 뜨기 엄마도 걱정됐는지, 출산 경험이 있는 친구와 동생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그랬는데, 처음에는 다 그런거라며 웃더랜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엊그제는 어찌나 아프던지, 자다가도 "아야" 소리를 낼 정도였단다. 뜨기 엄마 말로는 안에서 네가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다고 하더구나. 그 아픔이 얼마나 심했겠느냐.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어제는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단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피해 택시를 타고 달리면서 엄마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했겠지. 걱정도 되면서 한편으로는 아무일도 아닐 거야 스스로 위로도 하면서 말이다. 병원에서는 초음파 검사며 소변 검사 등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해 보았는데, 아주..
지난주, 교과서 대단원 표지 사진촬영을 위해 부산에 갔었습니다. 교과서의 대단원 표지는 해당 단원의 내용을 압축해 보여주면서도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드는 것이 관건이죠. 교과서마다 저마다의 특색을 살려서 삽화나 사진, 혹은 삽화와 사진의 합성, 일러스트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날은 중2 음악교과서의 표지 작업을 위한 촬영이었죠. 예전 교과서의 경우 대단원 표지가 간단하게 제목만 나열하거나, 자료 사진이나 간단한 삽화로 대치해 왔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국가인권위의 교과서 권고 이후 교과서 내용을 비롯해 사진과 삽화에서 인권적인 접근을 중요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로 사진이나 삽화에서도 고정관념에 따른 성 표현을 삼가하고, 삶의 다양성이 드러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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