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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입원한 병동은 5인실이었다. 아내는 문으로 들어가 바로 왼쪽 구석의 침대를 썼다. 그 옆에는 60대 중반 정도의 아주머니 한분이 계신데, 수술 후 회복중이셨다. 그 아주머니의 조카(40대 초반)가 그 옆에서 아주머니를 간병했다. 붙임성이 좋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셨으며 자신의 고모만이 아니라 병실 모든 사람의 간병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쪽 줄의 맨 끝에는 간암으로 입원한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 분은 새로온 사람이나 병문안 온 사람에게 무조건 자신의 병명과 증상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려 하였다. 아주머니는 그걸로 신세한탄을 하시는 듯했다. 주말에는 간병을 위해 20대 초반의 아들이 머물렀는데, 내가 보기에는 간병보다는 제 할일만 하면서 심심하고 따분하며 만사가 귀찮다는 행동을 곧잘 했다. 아주머니가 대소변을 보러 힘겹게 화장실로 가도 부축 한 번 하는 걸 보지 못했고, 침상에 있는 기록표에 사소한 걸 기록해 달라고 해도 자기는 글씨를 못 쓴다면서 거부하여 어머니 속을 박박 긁었다. 보다 못해 옆에 회복중이던 아주머니가 직접 써 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그 청년이 옆에 다가오면 두렵다고까지 했다.
간암 아주머니의 건너편 침상에는 작년 8월부터 들어온 아주머니 한분이 누워있었다. 간병은 그 분의 남편분이 직접 24시간 돌보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수술 중 무엇이 잘못되어 합병증이 발생해 지금까지 누워있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금식조치로 인해 입으로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남편분이다. 1년 가까이 간병을 하면서도 지치거나 어두운 기색없이 언제나 밝은 얼굴이다. 아주머니의 이름은 '이기자'였는데, 아저씨가 자신의 아내를 부를 때는 항상 "우리 이기자"라는 말을 붙여 넣었다. 예를 들어 "우리 이기자, 어디 아파?" "우리 이기자, 불편해?" "우리 이기자, 옷 갈아 입고 싶어?" .... 아내를 지칭하는 아저씨의 부름은 마치 "우리 함께 이 고난을 이겨내자"라는 각오와 소망이 담겨져 있었다. 아저씨는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곧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어 병실을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주역이기도 했다. 60이 넘으셨는데도 매우 젊은 인상이었는데, 아마도 항상 밝고 웃는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저씨는 그렇다고 아주머니들과 희희낙락하며 희롱이나 쓰잘데기없는 농담을 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매우 진지하게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세상사를 풀어놓기도 하는가 하면 자기의 미국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 문화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 말들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재미있게, 그리고 아주 유익하고 쓸모있는 정보로 아주머니들의 귀에 속속 들어왔던 것일게다.
마지막으로 그 아저씨의 옆 침대에 있던 분은... 우리가 입실한 이후 다음날 바로 퇴원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병동 생활은 주변 분들의 관심과 배려로 한결 편했다. 이기자 아저씨는 내 아내에게 같은 '하씨'라며 '올리비아 하세'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고, 회복중인 아주머니의 조카분은 아내의 어깨와 등 그리고 손과 발을 지압해주면서 임산부에게 좋은 혈을 직접 알려주었다. 간암 아주머니는 병간호 온 이들이 가져온 음식들을 골고루 나누어주면서 정을 나누었다.

아내는 수술후 둘쨋날까지 가스가 나오지 않았다. 개복 수술 이후에는 장의 유착이 있을 수 있고, 심할 경우 장폐색이 생겨서 위험한데, 가스가 분출되느냐 안되느냐가 그 기준점이라고 했다. 그런 가스가 수술후 이틀째까지 나오지 않아서 본인을 비롯해 온 가족이 애가 타게 가스를 기다리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토요일 저녁, 어머니가 다녀간 이후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가 가스가 나왔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이 사실을 간호사에게 알렸고 잠시후 침상에 붙어 있던 '금식' 팻말은 사라졌다. 이날 저녁부터 미음을 먹기 시작했고, 일요일에는 죽이 나왔으며 월요일 아침에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 처음으로 담당교수와 주치의가 다녀갔다. 몇번 자리를 비우긴 했지만 나 역시 수술하고 입원하는 내내 처음보는 의사들이었다. 의사는 증상과 통증 정도를 물어보고 퇴원 의사를 물어본 후 퇴원을 '결정'했다.

월요일, 퇴원하기에는 더없이 알맞게 푸르고 청명한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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