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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자전거답게 달렸다. 작년 11월 이후로 이렇게 하루 종일 자전거 타보는 건 처음이다. 사실 많이 긴장하고 걱정했다. 체력은 될까? 자전거는 펑크 나지 않을까? 펑크나면 내가 고칠 수 있을까? 강화도까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일까? 중간에 위험한 곳은 없을까?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등등...

예전에 자전거 전국일주 떠나기전에도 그랬다. 걱정을 하다보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것처럼 온갖 상황들이 다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냥 가는 게 좋다. 말이나 생각보다 위대한 것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걱정이 아니라면 페달에 과감하게 발을 얹고 돌려보는 거다.


안양천 자전거도로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부 지역에서. 멀리 보이는 다리는 가양대교



행주대교 남단에서 다리위로 올라가는 길


집에서 나와 달리기 시작하니, 지난 번 보다 짐도 마음도 가볍다. 날씨도 비교적 따뜻하고 화창하다. 안양천을 타고 한강을 향해 달리니 윤비(자전거 이름)도 신이 난 것 같다. 씽씽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이 녀석도 기분이 좋은 거다.

함께 가기로 한 김 선배와는 행주대교 북단에 위치한 국수집에서 보기로 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한참 헤맸는데, 다행히 행주산성에서 선배와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12시 경. 점심은 국수로 하기로 하고 근처 <원주 국수집>을 찾아갔다.



원조국수집 주요 메뉴인 잔치국수, 건너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그릇에는 비빔국수



원조 국수집, 벽에 세워놓은 자전거들.


우리가 찾아간 '원조 국수집'의 국수는 3,000원. 반찬은 달랑 김치 하나였지만, 양만은 어느 집 국수보다 푸짐했다. 아침을 늦게 먹고 출발한 나는 잔치국수를 다 먹지 못할 정도였다. 김선배는 비빔국수를 시켰는데, 그런대로 맛있단다.

선배 말에 따르면, 원래 이곳 원조국수집은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본거지란다. 이곳에서 자주 모임을 가진다는데, 이날도 모임이 있었나보다. 김선배나 나도 회원이기는 한데, 가입인사만 했지 들러보지도 않았던 터라 그냥 모른체 했다. 다른 자전거 회원들은 우리가 누군가 싶은지 흘깃흘깃 쳐다본다. 민망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좋은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자전거를 잘 모르는 나는 그냥 좋아보인다 싶었는데, 김선배 말로는 보통 50만원 이상 되는 것들 같다고 한다. 우리 자전거는 20만원 대의 저렴한 자전거. 그래도 저 으리으리한 자전거 중에 과연 몇대나 한달간 전국일주를 해보았을까 생각하니 은근히 내 자전거가 자랑스럽다. (원조 국수집은 행주산성 입구에 있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

점심을 든든히 먹고 출발한 시간은 오후 1시경. 예상보다 꽤 늦은 출발이었다. 행주대교 남단에서 48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거기서 48번 국도만 타고 내내 달리면 강화대교를 건널 수 있다. 처음 가는 것인만큼 48번 국도만 내내 따라 달리기로 했다.

행주대교 넘어 초반에 자전거 도로가 조금 있다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시 김포 근처에 이르니 넓직한 갓길이 나오고 차량통행도 한산해졌다. 최고제한속도가 80km라고 하지만 한산한 도로에서 그렇게 달리는 차량은 없다. 전국일주 하면서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 소음에 익숙한 나에 비해, 김선배는 약간 긴장하는 듯했다.

잘뻗은 국도변도 김포시내에 들어서자 없어지고 우리는 차도 위로 달렸다. 역시 시내주행이 까다롭다. 차량들이 속도는 많이 떨어졌지만 통행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시 김포시내를 벗어나면 얇은 갓길이 나온다.

김포를 벗어나 강화대교를 건넌 것은 3시 반. 행주산성을 떠난 후 2시간 반만에 강화대교를 건널 수 있었다.



시원하게 뻗은 서울-김포 48번 국도



나를 믿고 첫 자전거 여행을 나선 김선배



강화대교 건너기 전


강화대교 건너편 휴게소에 들려 쉬었다. 우리는 서로 엉덩이의 안부를 물었다. 목표한 강화도에 왔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휴게소 매점에서 지도를 얻어 다음 목적지를 논의했다. 그래도 최대한 달려서 석양을 보자는 욕심에 아픈 엉덩이를 달래며 안장에 올랐다. 계획은 해안도로 북쪽길로 달려 섬의 서쪽까지 가는 것. 하지만 길을 잘못들어 그만 해안도로 남쪽길로 들고 말았다. 다시 길을 돌아오다 착한 동네 주민분을 만났다. 그분도 자전거를 타고 가시길레 붙잡고 물었다.

"아저씨 해안도로 북쪽길로 가려면 어디로 가나요?"
"아 연미정 가려고 하는구만요. 거기 좋지. 얼마전까지 군사지역이라서 못들어갔는데, 요즘에는 주말에 한해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던데..."
"아네, 그쪽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나요?"
"그게 휴게소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가는 거지. 군부대 옆으로 통과하는 거에요. 나도 연미정이나 한번 가볼까 생각중인데, 하하"

아저씨는 아주 유용한 정보 두가지를 알려준 셈이다. 해안도로 북쪽길과 '연미정'이라는 곳이 참 볼만하다는 것. 아저씨 말대로 휴게소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가니 반듯한 자전거 길이 나온다. 하지만 그 옆으로는 견고한 철조망이 쳐져 있어 좀 삭막하다.


얕은 차단벽도 있는 자전거 전용 도로

아저씨가 안내해 준 길은 해안도로로 연미정 가는 길도 맞았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한 정보가 있었으니... 강화도는 북한과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연미정 가는 길에 해병대 군인 아저씨들이(무척 앳되 보였다) 도로를 막아섰다.

"무슨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그냐 자전거타고 왔는데... 관광이죠."

물론 살풋이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군인 아저씨들은 더이상 가는 것은 안된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민통선 안으로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민통선이라니, 우리가 참 많이도 올라왔나 보다. 민통선이라는 개념을 순간 망각한 나는 개념없는 질문을 했다.

"그럼 혹시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나요?"

군인아저씨도 황당했을 텐데 친절하다.

"글쎄요. 아무튼 돌아가셔야 합니다."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서서 가려는데, 군인 아저씨들 우리에게 거수경례도 붙인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거수경례에 웃으며 "수고하세요"라고 답했다. 나는 왜 군인을 보면 늠름하다는 생각보다는 참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까.

제법 넓직한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우리는 어림짐작으로 강화군청(중심지)이 있을 만한 지역을 찍어 바로 농로로 들어섰다. 지도에도 없는 임시도로길을 달렸다. 논들은 한번 밭갈이를 해주었는지 객토가 잘 되어 있다. 오랫동안 가물었을 텐데도 한번 객토를 해놓으니 검고 찰진 흙들이 밖으로 드러나 보였다.


임시도로를 달리는 김선배. 평화로운 강화의 봄이 느껴졌다.



임시도로 위를 달리는 김선배

결국 우리는 강화군내로 들어왔다. 거기서 숙소를 잡았다. 김선배의 네비게이션에서 검색해 나온 유일한 여관 독일장 여관에 짐을 풀었다. 물론 군청 주변에 여관은 많았다. 결론적으로 여관 상태는 그다지... 아무튼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마땅한 집이 없는데, <소문난 감자탕집>이 있어 어떤 맛이기에 소문났다고 자랑하나 궁금해 찾아들어갔다. 결론적으로 그냥 평범한 감자탕이다. 우거지가 많이 들어갔다는 것이 좋았다. 고기맛은 나쁘지 않다. 국물맛은 진한편이다. 감자는... 하나도 못먹고 다 뺏겼다.


<소문난 감자탕>집의 감자탕 가장 작은 것(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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