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 진입했어요. 헤맬 줄 알고 서둘렀는데 생각보다 길을 잘 해놨네요." 동행인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서둘러 나가 하늘을 보았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다행히 오후 늦게 비가 시작될 거라는 예보다. 부지런히 달리면 비를 맞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그렇게 자전거 하트코스 도전이 시작됐다. 자전거 하트코스는 서울 남부 지역의 지천들을 잇는 코스다. 당장 집에서 나가는 길에서 안양천까지는 목감천을 타고 간다. 목감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구일역에서 동행인을 만났다. 안양천 주변에는 아마도 토요일 현장수업의 일환으로 안양천 청소를 나온 듯한 중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당연히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청소는 뒷전이다. 그래도 안양천의 다양한 자연생태를 보는 재미는 아이..
그래도 삶을 살아갈 또 하나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좀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커진다. 사는 건 이렇게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다는 믿음에서 강해지는 것이겠다. 도상 거리로는 47.3km가 나오지만 아마도 족히 50km는 달렸을 것이다. 지난 금요일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열리는 회사 체육대회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참석했다. 그러니까 구로구 개봉동에서 미사리 조정경기장(행정구역상 경기도 하남시)까지 자전거로 간 것이다. 새벽밥을 챙겨 먹고 5시 30분에 출발해 약 2시간30분이 걸려 8시 경에 대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날 밤까지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12시가 넘어서 잤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4시 반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밥도 든든히 먹을 수 있었다. 5시 반에 집을 나섰..
여름에 한강에 나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한밤 중에도 자는 사람, 술마시는 사람, 싸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고스톱치는 사람, 폭죽 터뜨리는 사람, 오토바이 타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배 타는 사람... 벼라별 사람들이 참 많다. 새벽 2~5시까지 풍경이었다. 물론 그중 노래하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에 본인을 비롯한 일행이 있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뭐, 우리만 그랬나. 다들 그렇게 여름밤의 무더위를 즐기고 있었다. 제주도 뒷풀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한강에 가서 술마시자는 제안은 내가 했다. 마침 서영 선배의 차가 있었고, 거기에 돗자리도 두 장이나 있다고 했다. 한강의 야경에 술잔을 띄워보자는 아주 낭만(?)적인 제안에 금세 호응해 주었다. 그런데 역시..
살면서 확실하던 것들도 점점 희미해져 가지.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살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라며 제딴엔 포용력 있게(?) 돌려 생각해 보는 제주도 생겼어. 좋게 말하면 겸손해지는 거지만, 더럽게 말하면 좀 비겁해지는 거였지. 적응? 좋지, 아주 좋은 말이야. 반항하고 개기는 후배들에겐 그런 말을 하곤 했었어. "적.응.하.라.고!!!' 그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순응하며 길들여졌던 우리 스스로가 말야. 서른도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치기 어린 의혹으로 삶을 채우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줄 알면서도 그저 세상 돌아가는 것에 쉽게 눈돌릴 수가 없는 내 안의 어린 마음이 살포시 고개를 들더라. 그 마음 지긋이 눌러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정/말/ 곤혹스럽다. 오늘도 사람들과 모임에서 이..
-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밥먹는다. - 무슨 반찬 - 개구리 반찬 - 살았니? 죽었니? 아마도 누구나 기억하는 전래놀이의 노랫말이다. 여기서 개구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에 따라 놀이는 긴박하게 전개된다. 아무튼 삶과 죽음은 이 놀이에서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죽은 고기를 먹고 있다.(물론 가끔 '산낙지'도 먹어주고 있다) 불이라는 문명의 매체를 이용해 안전하게(?) 섭취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하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환경운동을 하는 후배는 채식주의자다. 유감스럽게도 그 후배와 술한잔도 못해봐서 채식주의자의 생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살아가야할 이 세상은 보통의 사람보다 몇배는 힘들 것..
한번 배우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있다. 특히 몸에 밴 기술의 경우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평생 각인되는 것이다. 그런 것에 자전거가 있다. 지난 토요일 후배의 부탁이 있어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줄 일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넘어지는 공포, 그리고 충돌의 공포다. 공포는 사람의 행동을 제어하는 주요한 감정의 하나이지만, 그 공포를 넘어섰을 때 느끼는 희열은 또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 후배도 그런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는 그 배움으로서 얻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 그리고 희망 “걱정 마, 내가 자신하건데, 너 한 번도 안 넘어지고 자전거 배우게 해줄게. 믿어봐.” 사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