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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길, 같이 걷는 길 

지리산둘레길을 시작할 때는 가족과 함께 걸었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걸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 걸었다. 홀로 여행을 다녀온 게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20대의 젊은 날 혼자 지리산 종주를 했던 게 기억난다. 아, 물론 1박 없는 홀로 여행은 종종 다니곤 했다. 직업도 어딜 돌아다니는 일이 없이 붙박이 사무 업무만 하는 거라 출장도 드물다. 사정이 이러니 1박 이상의 여행을 혼자 떠난다는 것이 무척 낯설다. 설레거나 두려움도 무뎌질 나이가 되고 있다. 허나 나이가 얼마든 여행은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건 사실이다. 

혼자 길을 걷는다는 것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늘상 관계 안에서 긴장하고 주위 사람을 살피면서 때로는 눈치를 받거나 반대로 눈치를 주는 일은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하루 이상 사람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는 숲 속에서, 남의 눈치 없이 오로지 내 몸만 살피면서 걸었다. 내 숨소리에 한참동안 귀기울이고 무섭게 뜀박질하는 심장 소리도 무심히 흘려듣지 않았다. 단단해지다 못해 굳어지는 무릎과 종아리 근육의 느낌, 돌과 돌 사이를 건너면서 살짝 비틀리는 발목도, 내리막길에서 온몸의 하중을 견뎌내는 발가락들이 아프다고 지르는 비명도 들었다. 산길을 걸을 때면 언제나 느끼던 감각이지만, 이번에는 더욱 가깝게 느껴 보았다. 온전히 내 안으로 들어가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위태 마을 벗어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숲길로 이어진다. 봄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면서 남도의 숲이 깨어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쉬고 싶은 곳에서 쉬고, 걷고 싶은 데서 걷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문다. 여럿이 가다 보면 멈추거나 쉬거나 걷는 것을 함께 결정해야 하지만, 혼자 가는 길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또한 자유로운 일이니, 이것 때문에 혼자 여행을 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쉬고 싶은 곳에서 한참을 쉬기도 하고, 머문 곳에서 만나 낯선 여행객들과 스스럼 없이 대화도 나누고, 마을에서 마주치는 노인들과 인사를 나눈다. 대부분의 인사말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 어데셔 오셨소?"다. 그렇게 말문을 트는 어르신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홀로 걷는 건 무심히 던지는 안부로도 푸근해지는 넉넉함이 생기는 걸까?   

혼자 걷는 게 함께 걷는 것보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혼자든 함께든, 길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함께 둘레길을 걸었던 친구나 가족들은 나에게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좋은 추억을 쌓고, 함께한 기억을 남기며, 오랫동안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  그럼에도 홀로 걷는 길도 소중하다. 걸으면서 몸을 덜어내 듯이 걸으면서 생각도 덜어내는 데는 혼자 가는 여행보다 좋은 게 있을까? 결론적으로 함께 가는 여행은 쌓는 여행이지만, 혼자 가는 여행은 덜어내는 여행이 된다.

산죽들이 길 옆에서 여행객을 맞아준다. 이른 아침의 맑고 투명한 공기가 허파를 채워 준다.


자연의 회복과 내면의 평화

혼자만의 여행에서는 멍한 시간이 많이 생긴다. 차를 가져가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비용을 아끼는 게 가장 컸지만 그냥 버스 안에서 멍때리며 창밖을 보고 싶다는 이유도 컸다. 사실 운전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니 운전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장거리 이동 중에는 그냥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구경하거나 책을 보거나 편하게 낮잠을 자는 걸 즐기고 싶었다. 바람대로 됐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 진주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려는 외지 등산객이라면 이곳을 거쳐 간다.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면서 고속버스 - 시외버스 - 농촌버스의 연계 시간을 철저히 조사했다. 가장 어려운 건 농촌버스의 행선지 표시와 시간대 맞추기다. 일단 농촌버스는 보통 하루에 4회 정도 운행한다. 이마저도 특정 구간은 운행 수가 더 적다. 진주시에서 하동군 옥종면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옥종면에서 위태마을까지 농촌버스로 이동한다는 계획이었다. 굳이 금요일 오후에 진주로 내려간 이유도 토요일 새벽 옥종면행 첫차(보통 오전 6시~7시 사이)를 타기 위해서다. 내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6시20분에 첫 차가 있었는데, 실제 진주터미널에서 도착해 알아보니 7시 20분이 첫차다. 이렇게 되면 옥종면에서 8시에 출발하는 위태마을 가는 농촌버스를 놓칠 것 같다고 생각했고, 불길한 예감은 맞았다. 8시 버스 다음은 오후 1시에 있다. 아무리 기다림의 여행이라지만 5시간을 시골읍에서 보내긴 좀 그렇다. 결국 버스정류장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올라탔다. 이곳의 택시들에게 둘레길 손님은 흔하다. 타자마자 내 행색을 본 기사 아저씨는 “둘레길 가시오?”라고 묻는다. 위태마을로 데려다 달라고 하니 잘 알고 있다는 듯 더이상의 말없이 바로 출발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꼬불꼬불 난 길을 택시는 거침없이 달린다. 옥종면에서 출발한 택시는 지리산 산골짜기 마을을 향해 달린다. 위태마을에서 이날의 여정을 시작했다. 막상 혼자 걸으려니 뭔가 심심하다. 그래도 해 왔던 게 있으니 카메라도 준비하고 신발끈도 다시 맨다. GPS 지도도 다운받아 앱에 연결했다. 둘레길은 안내하는 표지판도 잘 되어 있고, 길 안내 매듭들이 나무에 걸려 있어 길을 놓치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종종 길을 벗어날 때가 있고, 한참이나 안내하는 표지를 찾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앱으로 깔아놓은 지도는 유용하다. 

지리산둘레길 10구간 위태-하동호 코스 지도

 

지리산둘레길 11구간 하동호-삼화실 코스 지도

 

90년대 초반에 지리산을 다닐 때에도, 2000년대에 백두대간 일부를 혼자 걸을 때에도 종이 지도는 필수였다. 시중에서 파는 등산지도를 비닐로 싸아서 눈비에 젖지 않게 하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자주 꺼내보고는 했다. 지금은 종이 지도가 필요 없다. 조그마한 액정 화면에서도 얼마든지 확대 축소가 가능한 지도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자주 꺼내 보다 보면 배터리가 금방 소진된다. 결국 배터리를 하나 더 챙겨야 했다. 하지만 핸드폰은 지도만 보는 용도가 아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이걸 또 SNS에 올린다. 문자나 카톡이 오기도 하고 급한 전화가 올 때도 있다. 지도 앱을 계속 실행시키니 1회용 보조 배터리로도 어림없다. 결국 괴물 배터리를 하나 구했는데, 이 무게가 가방 하나 만큼이나 무겁다. 생각해 보면 그냥 종이 한장 들고 다니는 게 더 나은 게 아닐까 싶다. 결국 내 어깨와 무릎은 더 많은 무게를 견뎌내야 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다. 

세상은 참 이상하게 변한 거다. 전기와 전자 장비가 내 생활 반경을 확대해 주었지만 최첨단과는 동떨어진 깊은 숲속을 걷겠다고 나서면서도 주렁주렁 매달린 전기 전자 장비가 내 몸을 상하게 한다. 다시 돌아와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도 이런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내 여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걸까?

인류의 욕망은 이상 기후를 가져오면서 지구 곳곳에서 홍수와 가뭄을 일으키고 있다. 재난은 최부국 미국에도, 최빈국 스리랑카에도 찾아왔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두 나라의 빈부격차만큼이나 다르다. 빈부 격차만큼이나 지금의 기후 이변은 인류가 처한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다. 교황청도 인류 중심주의에 빠져 있던 교회의 과거를 반성하고 지구 환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가 변화해야 하며 당장 성장 중심의 경제 정책 등을 멈춰야 한다고 한다고 호소했다. 

 

“자연에 대한 관심, 빈자들을 위한 정의, 사회에 대한 헌신과 내적 평화 간의 결합은 결코 분리할 수 없다.” - <찬미받으소서> (프란체스코 교황)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자연에 대한 관심 보다는 도시 문화의 욕망에 사로 잡혀 있고, 빈자들을 위한 정의가 아닌 부자들을 위한 공정을 외치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헌신보다는 개인의 이기적 처신을 우선한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우리의 내적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 인류의 그러한 모습에 대한 교회의 통렬한 반성이 저 문장으로 탄생했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느림을 생각했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고, 천천히 걷는 여행이었다. 그러면서 코로나로 잊혀진 ‘일상을 회복’하는 길도 너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란다. 일상을 회복하자고 하는데, 그 ‘일상’이 어떠했던가? 너무 불필요한 만남이 많지는 않았는지, 너무 열심히 소비했던 건 아닌지, 허상에 사로잡혀 물건을 사들인 건 아니었나 생각했다. ‘보복 소비’라는 말이 왜 떠돌고 있을까? 이 단어가 무섭다. 어떻게든 돈을 쓰게 만들어 자원을 낭비하게 만드는 말이다. 이게 미덕일까? 이게 선행일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저 말이 가진 무자비함을 느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일상의 회복보다 더 중요한 자연과 내면의 평화는 언제쯤 회복을 맞이하고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하동의 대나무숲. 빛이 새어들 틈도 작아 땅에서는 다른 풀들이 자라기 힘들다. 바람이 불면 이파리들이 부딪는 소리가 스산하다.

 

하동호 주변 산책로.
하동호
10~11구간 시종점




우연으로 엮인 길 

첫 번째 우연. 60대 노부부와 같이 걸었다. 11구간을 걷고 있을 때였다. 여성분이 먼저 길을 물어왔다. 이 분들도 지리산 둘레길은 초행길이었다. 나 역시 초행길이라 자신하긴 어려웠지만 지도 어플로 확인해 길을 안내해 드렸다. 두 분이 내 앞에서 길을 나섰다. 이내 쫓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앞서 10구간을 다 걷고 11구간을 걷던 터라 힘이 부쳤다. 두 노인은 지친 내가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잘 걸으셨다. 그래도 부지런히 가다 보면 정자 아래에서 쉬거나 쉼터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두 분과 다시 만난다. 자꾸 만나니 말도 섞게 되고, 인생과 여행 이야기를 나눈다. 펼쳐 놓은 간식거리를 서로 권하고 사양하고를 하다 보니 녹초가 된 몸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진다.  

  • 코로나라서 음식 나누는 것도 함부로 못하네요.
  • 괜찮습니다, 어르신. 저도 이것저것 챙겨왔어요.
  • 아내와 함께 해파랑길을 다 걷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이 길도 참 좋네요.
  • 대단하십니다. 저도 아내와 함께 걸었는데, 아내가 관절이 좋지 않아 더이상 걷지 못해요. 그래서 이렇게 혼자 다닙니다. 
  • 아휴, 젊은 나이일텐데, 이렇게 좋은 구경을 못하는 것도 그렇고···· 아쉽겠네요.
  • 네, 많이 속상하네요. 저도 아내 두고 혼자 이렇게 오는 게 좀 미안하기도 하고요. 

 

해파랑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도보 여행이 주는 즐거움, 인생의 황혼기를 함께 하는 부부의 이야기는 한없이 부러웠다. 건강과 부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가치있을까? 둘다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하겠지만, 그런 행운은 극소수만이 누릴 것이다. 이미 내 삶은 부와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 그저 건강한 몸으로 계속 이런 소소한 도보 여행을 계속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노부부는 나보다 저만치 앞서서 계속 나아갔다. 어린(?) 나는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만 쫓아 갔다. 11구간의 끝 삼화실에서 다시 또 만나고 헤어졌다.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두 분을 만날 날이 있을까? 11구간을 마치고 한숨 돌렸다. 한꺼번에 두 구간을 걸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여정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도상으로 22km를 걸었더니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중간에 하루를 묵을 계획이었지만, 목적지까지 완주했으니 바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삼화실에서 택시를 부를까 했는데, 마침 들어오는 택시가 있어 잡아타고 하동시외버스터미널로 부탁했다. 

 그런데 기사분의 택시 내부가 익숙했다. 인연의 씨줄과 날줄이 다시 엮였다. 아침에 옥종면에서 위태마을까지 태워 준 그 기사분이었다. 

"원래 삼화실에서 하동시외버스터미널은 제 택시가 다녀서는 안되요. 여기 시골 택시들도 다 자기 구간이 있어서 가급적 지켜야 하는 거죠. 그런데 어쩌다 보니 손님을 태웠는데, 이게 또 참 신기한 일이네요."
"그러게요. 저도 콜택시를 부르려던 참에 마을로 들어오는 택시 보고 잡은 건데···· 이런 우연도 있네요."

하동이 작은 고장이라고 해도 면적으로 보면 그렇게 작은 곳이 아니다. 이곳에도 12개 면이 걸쳐 있는 곳이라 작은 곳도 아니고 강과 산이 뒤엉켜 있어 길도 얽히고 섥힌 곳이다. 우연의 실은 그 얽히고 섥힌 곳에서도 엮어 주는 힘이 있는 것일까? 

11구간.

 

 세상에는 많은 우연이 있다. 대부분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우리는 우연을 무척 사랑한다. “아니 이런 우연이····”라는 말은 우리가 우연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려 주는 관용어다. 뜻밖의 일이 일어났을 때 즐겨 쓰는 말이며, 기쁜 일이 있을 때 다르게 표현하는 말로 이 말이 쓴다. 우연은 그렇게 모든 일의 시작이다. 유럽의 신대륙 발견이 그러했고, 페니실린의 발견도 그랬다. 인류의 위대한 탐험이나 엄청난 과학적 성과는 이 우연에서 시작된 일이다. 우연은 사실 우연이 아니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의 확률로 일어나게 된 일이다. 그러니 우연은 곧 발견하지 못한 필연인 셈이다. 여러 우연은 사건과 만나 역사가 된다. 그렇게 우연이 역사에 남게 된 셈이다. 

여행은 이런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우연을 의도적으로, 역동적으로 생산해 내는 일이다.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은 여행에서 만들어지는 우연의 역동적 사건들을 통해 극복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뜻있는 여행이 중요하다. 물론 모든 우연이 역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억 속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 갈 사건들도 얼마나 많은가? 다만, 수많은 우연의 희생 속에서 필연이 만들어지고, 그 필연이 인연을 만들며, 인연들이 엮이면서 역사가 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사랑도 그렇고, 인류사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역동적으로 만들어진 이 ‘우연’들을 어떻게 다시 엮어내 ‘역사’로 만들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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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4일, 지리산둘레길의 아홉 번째 덕산-위태 구간을 걸었다. 이 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경남 산청군에서 하동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 포장도로길을 많이 걷는다.
- 여러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 해발 482m의 중태재(갈티재)가 가장 높은 곳이다.
- 대나무 숲이 종종 지나가게 된다.

구간 길이는 약 10.2km이며 쉬지 않고 걷는다면 3시간 정도면 무난히 완주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길이다. 덕산, 송하, 위태 마을은 논농업 중심이지만, 중태마을이나 유점마을은 산 속에 있어 주로 감나무 농장을 하고 있거나 다양한 밭작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까지 여러 산촌을 보아왔지만, 이번에는 산촌마을 한가운데로 통과하는 여정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지나가는만큼 여행자로서의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산천재에 위치한 8-9구간 시종점.
산천재. 하늘은 맑았고, 12월 기온으로는 좀 포근한 편이었다.
멀리 눈쌓인 지리산이 보인다. 천왕봉과 싸리봉 등의 능선이 아닐까 생각된다.
산천재를 벗어나 덕천강의 강둑길을 걷는다.

산천재에서 시작된 걸음은 먼저 덕천강변길로 이어진다. 덕천강은 남강으로 흘러들어가 낙동강을 만난다. 지리산에서 내려온 물의 여정이다. 멀리 눈쌓인 지리산을 보면서 걷는 기분이 묘하다. 겨울산은 아름답다. 봄, 여름, 가을이 주는 아름다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우 매력적이지만 위험하고, 눈 부시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 쉽게 허락되지 않으며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혹독하다. 이번 겨울은 더더욱 위험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산장(대피소)들이 운영을 하지 않는다. 눈덮힌 지리산을 보면서 내년 겨울에는 꼭 저 산에 올라보겠다 다짐한다.

덕천강을 넘을 수 있는 징검다리. 원래 코스는 이 길이 아니다. 두물이 만나는 곳에 있는 원리교와 천평교를 넘어야 한다.
송하마을 이정표
9구간 초반에는 포장길을 걷는다. 차량통행은 드물지만 가끔씩 빠른 속도로 차들이 이동하니 조심해야 한다.
철조망에 다닥다닥 붙은 리본들. 초반 여정에서는 이정표나 리본을 보기가 어렵다.
멀리 보이는 다리가 20번 국도를 잇는 덕산1교이다.


9구간에서 덕천강을 넘은 이후로 초반 여정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마을을 지나는 것도 아니며 그냥 차도를 내내 걷는다. 마을이라도 나오고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그렇게 지루하진 않겠지만 마을도 보기 어렵고 가끔 지나다니는 차들만 있을 뿐이다. 왼쪽으로 조례산을 끼고 20번 국도가 통과하는 덕산1교 다리 밑을 지날 때면 넓게 펼쳐진 갈대밭이 나온다. 덕산1교 다리를 지나면 강과 이별하며 중태마을을 향하는 길로 이어진다. 도로 양옆으로 황량해진 들판이 깊어가는 겨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겨울은 겨울대로의 멋이 있다. 종잇장처럼 얇게 스며드는 햇살이 무척이나 반갑고,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옷길을 여미게 하면서도 추수를 끝낸 들판의 떨어진 지푸라기들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겨울의 정취를 실감하게 해준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남은 여정을 걱정해야 하지만,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면 눈발이 휘날리는 시골길을 걷는 것도 좋은 이야깃거리로 전할 수 있을 듯싶다.

중태마을에 위치한 지리산둘레길 안내소와 당산나무
지리산둘레길 안내소. 스탬프가 준비되어 있다.
곶감을 말리는 창고. 마을마다 이런 창고들을 갖추고 있었다.
가정집에서는 처마에 매달아 곶감을 말리고 있었다. 때깔이 곱다.
시냇물과 대나무 숲 오솔길이 잘 어우러진 풍경
마을은 점점 더 산으로 올라간다.
"농작물에 손대지 말아 주세요. 마을주민께서 애써 키운 자식과 같은 재산입니다."


옛부터 내려온 마을에는 언제나 마을을 지키는 나무가 있다. 보통 마을 입구에 있는 그 나무를 당산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수호나무인데, 매년 정월이 되면 마을주민들이 나무 아래에 모여 제를 올리곤 한다. 마을의 지킴이가 되어 마을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고, 행운이 들어올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중태마을 입구에도 그런 나무가 있다. 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센터 앞에 있는 나무이다. 나무 아래에는 정자도 마련되어 있어 나그네들의 다리쉼을 돕기도 한다. 중태마을의 당산나무는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렸는데, 그 자리에 다른 자리에 있던 나무를 옮겨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중태 마을은 근대사에서도 등장한다. 우금치에서 크게 패한 동학농민군들이 이곳 덕산까지 후퇴했는데, 이를 쫓는 일본군과 중태 마을 인근에서 전투를 벌이기 위해 매복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울창한 대나무 숲
중태마을을 벗어나고 한참 걷다가 만난 쉼터. 잔잔한 음악과 함께 둘레객들을 응원하는 푯말이 인상적이다.
쉼터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이렇게 꾸며 놓았을까?
대나무숲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고, 길 바로 옆은 잣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중태마을을 벗어나 유점마을로 향한다. 옛이름들을 보면 유점골, 놋점골, 불당골이라는 골짜기 이름들이 있다. 모두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유점골은 유기 그릇(점은 '그릇을 만드는 곳'을 뜻하는 옛말이다)을 만드는 마을이었고, 놋점골은 놋그릇을 만들던 곳이었다. 불당골은 불당이 있던 곳을 의미한다. 지금도 그 골짜기 어딘가에는 사람이 살고 있나 보다. 차량이 드나든 흔적이나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옛날 변변한 먹을거리도 없고 오가기 쉬운 곳도 아닌 이 첩첩산중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마을을 관통하는 길을 걷는 일은 조심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삶의 터전에 낯선 이들이 드나드는 일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다. 최근 아파트 단지 내 공간이 사유지라는 명목으로 타 지역 아이들이 놀이터에 들어오는 것도 막는 인심을 생각하면, 소수의 마을 주민들만이 공유하는 그 길을 낯선 나그네들에게 내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부수적인 피해도 없지는 않았을 터. 애써 키운 농작물이나 과수에 손을 대는 객들도 있을 것이고, 내어 준 길 말고 다른 길로 드나들며 길을 어지럽히는 이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나물이나 약초에 손을 대는 사람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산촌 주민들도 있다. 곳곳에 안내판을 세우고 주의를 당부해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된다.

이번 여행은 특히나 여러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다. 어르신들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인사드리고, 마을 안을 통과할 때면 대화도 조심하고, 흘러내린 마스크도 다시 고쳐 쓴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따로 표현할 수는 없고 그저 마음가짐,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중태재 오르막길 입구
중태재 벤치
중태재에서 내려오는 길
대나무숲
중택지.
지리산둘레길 9-10구간의 시종점

중태재는 해발고도 482m로 그다지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고갯길이다. 이 고갯길이 산청군 시천면과 하동군 옥종면을 연결해 준다. 중태재를 내려오다가 보면 대나무숲을 관통하게 된다. 이번에는 대나무숲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이다. 대숲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할 거라 상상했다. 내 어릴적 대숲은 한여름 낮이어도 서늘하고 컴컴하여 귀신이 나올 것처럼 스산했다. 그런데 이미 댓잎들을 많이 떨구어서인지 그리 컴컴하지도 않았고, 대나무숲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오히려 초록의 대나무에 튕겨 반짝반짝 빛이 났다.

대숲은 그리 길지 않다. 그래도 이번 구간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곳 중의 하나다. 이 숲을 빠져나와 조금만 더 걸어내려가면 중택지에 도착한다. 중택지는 작은 소류지이지만 풍광이 좋다. 여기서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면 위태마을이 나온다.

위태마을에 들어서니 멀리 개짖는 소리와 닭우는 소리가 시끄럽다. 오전 8시 40분 즈음 덕산에서 시작된 둘레길이 12시 10분 즈음 위태 마을에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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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두 번째 둘레길 여행이다. 10월 16일 토요일 출발하면서 이번에는 현지에서 하룻밤 묵고 올라오기로 했다. 친구들과의 외박 여행은 그야말로 오랜만이다. 셋 중 둘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상태이고, 나는 다음주 2차 접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는 건 코로나가 아니었다. 일주일전부터 예보되어 있던 가을비. 비가 얼마나 올까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리는데, 현지 예보에 따르면 약한 비가 오전 중에 그칠 거라는 것. 한 달 전부터 잡았던 일정을 강행키로 하고 다시 새벽길을 나섰다.

운리마을에 있는 지리산둘레길 8-9구간 시종점 표지판
출발할 때 비가 왔다. 비를 맞으며 둘레길을 시작해야 했다.
밤새 내린 비와 바람으로 낙엽들이 길에 가득했다.
지리산의 마을마다 쉼터 같은 나무들이 있다. 때로 그 나무 아래에서 다리쉼을 하고 가도 좋다.
포장도로는 끊기고 자연 흙길이 시작됐다. 멀리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amp;nbsp;
비는 오락가락, 바삐 걷는 친구들, 무엇이 그리 바쁜가. 천천히 가세.
겨울이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가에 핀 꽃들에게도 눈을 돌려 보자고. 우리에게 인사하고 있지 않은가.
운리마을을 벗어나 완만한 오르막길 임도가 나왔고, 그 정상에 작은 정자와 함께 지리산둘레길 안내판이 있다.&amp;nbsp;
7구간 웅석봉에 대한 트라우마일까? 급한 오르막길을 앞두고 긴장감이 돌아 사진 한방 찍는다.&amp;nbsp;

비를 맞으며 걷는 일이 어려울까? 한여름 소나기라면 여행자에게 땀을 식혀 주는 바람보다 때로는 더 반갑다. 가을비는 어떨까? 숲속에서 만나는 가을비는 낙엽과 함께 떨어지면서 보다 우울한 정취를 깊게 해 준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 울리는 숲 한가운데서 우리는 떨어지는 빗방울과 낙엽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슬픈 광경을 목도한다. 때로 우리 인생은 불운이 겹겹이 들이닥쳐 청구서처럼 펄럭일 때도 있겠지. 살다보니 정말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껴진 그 순간,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견뎌지더라. 그 인연을 위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견뎌내고 나아가는 것 아닐까.

비는 서서히 그쳐갔다. 지리산 둘레길의 정자가 있는 곳에 이 길의 유례가 실린 표지판이 있다.

솔숲과 참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며 숲길과 게곡길, 임도를 번갈아 가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고령토를 운반하던 운재로가 남아 있으며 남명 조식 선생의 무덤에 이르는 길도 만난다. 마근담 계곡 따라 덕산 초입이 옛날 장터였다.


길을 가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참나무 군락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행히 8구간에서 급한 오르막길은 없었다. 반대로 가장 멋진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amp;nbsp;
보드라운 흙길이 내내 이어진다. 아침 산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amp;nbsp;
이런 곳에 모셔진 무덤의 주인은 심심하지는 않겠다. 둘레길 여행객들의 심심치 않을 방문을 받을테니.
빽빽이 둘러싼 참나무 사이를 걸었다. 지리산둘레길의 참다운 아름다움을 여기 참나무숲에서 만난다.&amp;nbsp;
참나무숲 군락지를 걷는 일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햇볕이 내리 쬐나, 바람이 부나...


이곳은 지리산둘레길 중에서 참나무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참나무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좋은' , '진실'의 의미를 지닌 접두어 '참~'이 붙었는데, 그만큼 우리 조상들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있게 쓰인 나무였다. 집을 짓는 목재로서뿐만 아니라 다 타고 남은 숯도 참나무 숲을 '참숯'이라고 부르면서 높게 쳐 준 것이다. 반대 의미의 접두어인 '개~'를 생각해 보면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 참나무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장관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땅에서 올라온 황토흙 내음, 떨어지는 빗방울이 낙엽에 닿는 소리, 비에 젖은 숲의 나무와 땅이 주는 오묘한 빛이  함께 어우러져 자연의 오감을 한껏 느끼게 해 주었다. 지난달까지 울어 제끼던 매미 소리도 사라지고 새 소리마저 드물었던 이날의 숲은 인상적으로 내 기억에 남았다. 도시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쌓여 왔던 답답함과 긴장감이 이곳 참나무 숲에서 순식간에 씻겼다.  

참나무숲 군락지는 걷기 좋게 잘 다듬어져 있다.&amp;nbsp;
참나무 군락지를 안내하는 안내판

 

비도 많이 그치고 나뭇잎에 매달린 빗방울들만 간간히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amp;nbsp;
10월 중순. 가을이 여기 지리산까지 내려오고 있었다.&amp;nbsp;

 

참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백운 계곡이 나온다.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을 매우 아겼으며 자주 찾았던 곳이다. 그와 관련된 일화들이 표지판에도 나와 있다.

조식 선생에 대해 아는 바는 없었다. 다만, 그가 평소에 "지식을 알면 행해야 한다"는 것(실천궁행實踐躬行)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알면서도 행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부조리와 비합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거나 체념하는 일이 많아진다. 수없이 조정으로 천거되고 높은 벼슬을 추천받았으면서도 결코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이곳 산청에서 후학 양성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이 분의 모습이 어쩌면 고고한 학자로서의 표상일 수는 있겠다.

게다가 조식 선생이 이러한 생각(실천궁행) 때문에 퇴계 이황과도 크게 다투었다고 하니 그가 큰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생각해 보면 이황이나 이이의 유학이 세상의 일이나 인민의 안락과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조식 선생의 학문이 훗날 북학파, 실학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누가 더 세상 사람에게 이로웠는가는 물을 필요가 없겠다.

백운계곡의 모습
백운동 계곡
둘레길 안내 이정표와 돌무덤.&amp;nbsp;
쓰러진 나무가 위태롭게 보인다.&amp;nbsp;
작은 대나무들이 길 옆에서 여행객들의 손을 잡아준다. 떨어진 댓잎들이 바스락거리며 밟힌다.
울창한 숲이 산을 이룬다. 산이 숲을 가꾼다. 사람은 그저 머물다 갈 뿐이다.


백운계곡을 지나 다시 산길을 걷다보면 마근담을 만난다. 마근담의 어원은 '막은담'에서 왔다고 한다. 온 사방이 산으로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했다. 공기가 맑고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마근담에서부터는 흙길이 아닌 시멘트-콘크리트 길이다. 여전히 주위는 높은 산으로 에워싸여 있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이날 따라 바람마저 거세어 온 산의 나무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약한 잎들이 바람에 떨어져서 하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가을이 실감난다.

내려가는 길에는 감농장이 지천이다. 산청은 감이 유명하고 이곳에서 생산된 감을 이용해 곶감을 만들어 도시로 내보내는 모양이다. 감나무에서는 감들이 한창 익어갔고, 감 농장의 한켠에서는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매달아 말리기 위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1월에는 산청 곶감 축제가 열릴 만큼 이곳 산청에서 곶감은 무척이나 중요한 생산물이다.

사실 곶감은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건조 과일은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긴 하지만 곶감이 주는 매력은 여타 마른 과일들에 비교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이곳 산청 곶감은 지리산의 깊은 산속에서 겨울을 난다. 이 곶감을 먹는다면 지리산의 맑은 공기를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근담으로 내려 서는 길.&amp;nbsp;
마근담길은 대부분 포장도로로 덕산까지 이어진다.
산청은 곶감으로 유명하다. 매년 1월 산청곶감축제가 열린다.&nbsp;
감나무에는 곶감이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곶감에서 빨리 거둔 감들로 곶감을 말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nbsp;
마을 주민들이 모여 함께 빨래를 하던 공동 빨래터. 이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nbsp;
남명 조식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가 내린 비
지리산둘레길 9-10구간 시종점 표지판.&nbsp;

 

이날 9시에 운리마을에서 시작해 1시에 덕산(시천면 산천재)의 시종점에 도착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우리는 조미원이라는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다음날 서울로 상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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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1~6구간, 주천에서 성심원까지는 아내와 딸이 함께 걸었다. 그러나 아내의 건강 문제로 오래 걷는 게 힘들어졌다. 아내가 빠지니 아이도 안 걷겠다고 버틴다. 걷기, 오르기, 그리고 견디기... 아이에게는 좀 지루하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아빠와 딸의 여행은... 앞으로 10년 뒤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서운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위해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고 내 건강을 살필 시간이다.
가족과 함께 서울둘레길을 완주했을 때의 그 기쁨과 희열을 잊을 수 없다. 항상 엄마가 앞에 서고, 어린 딸이 중간에, 내가 맨 뒤에서 걸었다. 어린 딸이 10여km를 아무 투정없이 걸었을까. 한번은 내가 아이를 업고 걸었던 일도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길을 아이는 잘 걸었다. 힘겨웠던 시간은 지나면 영광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게 지리산둘레길은 자연스럽게 세워진 목표였다. 서울둘레길에 비해 멀리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지만 이는 내가 좀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과 이루려 했던 지리산둘레길 완주의 마음은 결국 그렇게 접었다.
하지만 그렇게 접을 수는 없어서 친구들에게 제안해 보았다. 그렇게 세 친구들이 모여 지리산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7구간부터 걷는 것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아내와 함께 지리산둘레길을 걸어 왔던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가족끼리 가지 못한 사연도 이해해 주었다. 못다한 완주의 꿈을 다시 시작했다.

성심원 나루터의 흔적
성심원 길. 경호강을 끼고 걷는다.


9월 4일. 여느 때처럼 새벽에 나섰다. 친구들도 약속된 시간에 늦지 않게 모였다. L은 전날 늦게까지 영업한다고 술을 엄청 마셨단다. 운전하는 내내 옆자리에서 수다를 떠드니, 차 안이 술냄새로 가득해진다. 어차피 초반 운전은 내가 해기로 했고, C가 내 뒤를 이어 운전했다. 새벽 4시에 나섰지만, 도로는 분주했다. 사람들의 토요일 새벽길도 바쁘게 돌아갔다. 함양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성심원 앞에 차를 주차했다. 친구들이 급하게 서둘렀다. 기념 사진도 찍자마자 저만치 가버린다. 황급히 쫓아가면서도 발걸음은 가볍다. 세 친구의 둘레길 여행은 이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성심원 앞에는 경호강을 건널 수 있는 나루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1988년 제대로 된 다리가 세워지기 전까지 이 나루터를 통해 사람들은 성심원을 오갔다고 한다. 이제는 흔적만 남아 있는 나루터에는 이날 텐트가 쳐져 있었다. 누군가 거기서 하루를 묵었나 보다. 둘레길 여행객일까, 낚시꾼일까? 경호강은 은어 낚시로 유명하다. 우리가 찾아간 9월은 은어철이 아니지만, 강을 따라 가는 길에 낚시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경호강을 따라 걷다 보면 다시 산으로 향한 길이 나기 시작한다. 아침재를 향해 오르는 길이다.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로 이어지고, 차량 통행이 가능한 포장도로 길이 한참 이어진다. 그러다가 만나는 첫번째 고갯길이 아침재다.

경호강을 벗어나 걷는다.
아침재. 여기서 어천마을로 가는길과 웅석봉 가는 길로 나뉜다.&nbsp;
119농원 앞. 119 대원으로 일하시던 분이 만든 농원일까? 이름이 신기하다.&nbsp;

아침재는 어천마을과 성심원 사이의 고갯길이다. 여기서 오른쪽길이 웅석봉으로 가는 길이다. 계곡을 만나기 전까지 편안한 산길은 계속 이어진다. 점점 더 숲으로 들어가면서 길은 좁아지고 길을 덮는 풀들도 키가 높다. 이런 산속으로 수천년 동안 사람이 마을과 마을을 잇기 위해 등짐을 지고 날랐을 것이고, 배고픈 산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였을 거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니 사람들은 유람을 위해 산속을 거닌다. 걸으며 듣고 보고 느끼는 것들은 도시 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옛추억들을 되살린다. 단지 옛 생각에 젖어들기만 해서 이 산길을 찾는 걸까? 복잡한 일상과 피곤한 인간 관계를 떠나 한나절 아무 생각 없이 오감만을 되살리며 걷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119농원을 지나서 조금만 걸어가면 작은 계곡을 하나 건넌다. 다리가 따로 없다. 물이 적을 때는 그냥 건널 수 있겠는데,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훌쩍 뛰어 건너기는 약간 불안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며 건넜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숲속이었지만 깊은 산에서 내려온 물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이 물은 웅석 계곡을 지나 어천 마을 앞을 흐르다가 경호강에 다다른다. 여기까지는 여느 지리산 둘레길과 다르지 않았다. 7코스 중의 가장 큰 난코스는 이 계곡을 넘어 시작된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기 전의 계곡
물이 상상 이상으로 차가웠다.
계곡을 건너자마자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좁고 가파른 길이다.
크게 자란 버섯들을 많이 보았다. 당연히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도 자태는 아름답다.


계곡을 건넌 후부터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지그재그 오르막길이 웅석봉하부헬기장(지금은 정자가 지어져 있다)까지 내내 계속된다. 둘레길이 처음인 두 친구는 이런 길이 어떻게 지리산 둘레길이냐며 혀를 내둘렀다. L은 전날 과음한 탓에 더 힘들어 했다. 땀을 비오듯 흐르는 그를 받쳐주면서 걷는 데 땀에서 술냄새가 났다. 작작 쳐먹지... 게다가 물을 그렇게 마시니 저러다 탈수증이 걸리지 않나 걱정될 정도였다. 여러 여행 후기에서도 7코스에 대해서 힘들다는 평이 많다.
지리산둘레길 5코스 중에 있던 산불감시초소도 꽤나 힘든 오르막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여기 웅석봉 오르막길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좁은 산비탈길을 그야말로 한뼘씩 타고 오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루하고 힘들다. 해발 고도로 보아도 산불감시초소는 약 600m지만 웅석봉 헬기장은 800m에 약간 못미친다. 예전에는 지리산 종주를 거의 매년 했었지만 이제 산에 올라간다면 덜컥 겁부터 먹는 나이가 됐다. 온전한 산행을 안 한지 꽤 오래됐다. 가족과 함께 둘레길 여행을 시작하면서 더 안가게 된 것이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젊은 시절의 그 낭만과 열정을 마음에 품고 산에 오르고 싶다. 몸이 따라주지 않겠지만 세월의 노련함와 여유로 산을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이번 웅석봉 오르막길도 그런 마음이었다. 좀더 크게 심호흡하면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신중하게, 힘들다고 땅만 보고 걷지 않고 잠시 허리 펴고 나무와 하늘도 쳐다 보고, 그렇다고 발 아래에 핀 버섯과 야생화와 풀들에도 눈길 주는 것도 잊지 않기. 2~30대의 나 역시 그랬을 테지만, 4~50대의 나도 그렇게 산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걷는다.
웅석봉 하부헬기장의 정자에서 중년 부부를 만났다. 50대로 보이던 두 부부가 함께 산행을 나왔다. 웅석봉 꼭대기로 올라간다면서 지리산둘레길은 다 돌아봤는데, 정말 좋았다고 이야기해 준다.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온 우리 일행을 위해 지리산둘레길의 아름다움을 줄줄이 이야기해 주니 친구들이 좋은 기운을 받았다.
힘들게 올라온만큼 여기서 준비해 간 맥주와 약간의 간식거리로 배를 채웠다. 그렇게 한참을 쉬고나니 기운이 돌아왔다. 다시 나머지 길도 내쳐 나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다행히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따라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말한마디 나누기 어려웠던 오르막길과 달리 내려가는 도중에는 셋이 나란히 뭉쳐서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었다.

웅석봉 하부 헬기장부터는 평탄한 내리막길이다.
달뜨기 능선으로 불리는 곳이다. 산 중턱에 도로가 보인다.&nbsp;
큰달맞이꽃. 달뜨기 능선이 보이는 언덕에 홀로 피어 있었다.&nbsp;
운리 마을 초입. 어느 가정집의 담은 작은 대숲이 펼쳐져 있다.&nbsp;
단속사지 석탑. 절은 사라졌지만 석탑은 남아 있다. 다시 지어진 거겠지만...

2시 즈음 운리마을에 도착했다. L이 준비한 간편 식량은 물만 있으면 저절로 열을 내어 음식을 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L은 물을 준비하지 못했고, 우리가 준비한 물도 그가 웅석봉 오르는 길에 거진 다 마셨다. 물 부족을 겪으며 내려온 찰나에 밥을 먹으려니 물이 없네. 결국 L이 운리마을 경로당을 찾아가 물을 얻어 와 간편식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9시 즈음 출발해 2시 즈음 마쳤으니 그리 오래걸린 여정은 아니다. 다만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고, 지리산둘레길 중 손꼽을만한 힘든 길을 거쳤으니 이후 둘레길은 여유롭지 않을까 기대한다.

더보기

지리산둘레길 정보

성심원 &rarr; 아침재(2.3km) &rarr; 웅석봉하부헬기장(2.5km) &rarr; 점촌마을(6.4km) &rarr; 탑동마을(1.5km) &rarr; 운리마을(0.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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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2. 저녁 자전거 퇴근 10.9km / 10.23. 아침 자전거 출근 9.7km
🏁 2020년 누적 주행거리 1339.1km


1.
상강. 아침 기온이 4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상강은 첫 서리가 내린다고 하는 날이죠. 상강답게 쨍한 아침 날씨와 서늘한 공기가 조화를 이룹니다. 찬 이슬이 내리는 한로를 지나 지표면의 온도가 많이 떨어져 서리가 맺히는 상강, 그리고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으로 절기가 이어집니다. 만추, 마땅히 입동이 오기 전까지의 이 시기를 일컫는 말이겠죠. 나뭇잎들의 색이 더더욱 붉어지고 낙엽이 비처럼 떨어집니다. 어제는 강하게 부는 바람 때문에 낙엽이 미친듯이 공중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네요.

2.
아이는 아직도 같은 반 아이들 중 모르는 아이가 많다고 합니다. 고작 22명밖에 되지 않지만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등교하고 그나마 학교에서도 마음놓고 놀고 떠들 수가 없으니 서로를 알아가는 게 어렵습니다. 벌써 겨울방학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아이는 친해지고 싶은 아이와 친해지지 못한게 가장 아쉽다고 말하네요.

3.
11월 초에 시간이 된다면 지리산둘레길 일곱번째 구간을 걸어볼 생각입니다. 아마도 산은 더욱 붉게 물들었거나 나뭇잎을 떨구고 황량한 기운을 내뿜고 있겠죠. 텅빈 들판을 보면서 속으로 눈물을 한웅큼 쏟아내면 시원할 것 같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당황스럽게 한 2020년을 이렇게 보내는 아쉬움과 억울함이겠죠. 그렇게 걸으면서 풀어집니다. 세상 속의 나는 작고 하찮지만 내가 경험하면서 품는 세상은 그 어느 세상보다 크고 넓을 수 있다는 걸 느껴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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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막 마을 지나 논 한가운데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걷는 길에서 강아지풀을 들고 장난치는 아이

 

 

들녘이 누렇게 변했다. 추수를 앞둔 벼들이 고개를 한껏 숙이고 있다. 한가위를 지나 풍요의 시간이다. 넉넉한 곳간처럼 마음도 넉넉해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왜 이리 공허할까. 사람 사는 세상의 흐름은 이제 더 이상 자연의 흐름과 같아질 수 없는 거다. 땅과 하늘은 풍족한 곡식과 과일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갇혀 있다. 오랫동안 발이 묶이면서 시간의 흐름도 묶이길 바랐지만, 시간은 바이러스 따위 쳐다보지도 않고 제 갈길을 달려 갔다. 

매달 걷기로 한 지리산 둘레길이었다. 5월 이후로 5개월만에 다시 길을 나섰다. 모가 심어졌던 논들은 이제 그 모가 자라 벼가 되었고, 수확만 기다리고 있다. 또다시 시간은 훌쩍 넘어갔고, 아이는 금세 엄마의 키를 넘볼 만큼 자랐다. 좀 천천히 자라주면 안되겠니, 속으로 말해 본다.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을 채우려는 마음, 채워질수록 공허한 마음은 가을이 죽는 숙명이다. 이 난국은 끝이 보이지 않고, 혼란은 더욱 깊어간다. 불안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힘을 가진 이들도 해결책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정답이 있을까? 누구도 알 수 없는 낯선 상황에서 우리는 최선의 해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 사실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이어가는 것. 비정상적인 생활을 정상적으로 이어갔던, 그런 생활이 벌써 1년을 채워가고 있다. 이렇게 2020년이 다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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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6구간(수철-성심원)(출처: 네이버 지도)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눈앞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걸으면서 만나는 강과 들과 산의 모습은 내가 놓치고 지나온 자연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 5월, 찰랑찰랑한 논에 심어져 있던 모들이 이제는 어린아이 키만큼 자라 무거운 벼이삭을 늘어뜨리고 있고, 막 연초록 새잎들을 틔우던 나무들도 어느새 빛바랜 나뭇잎을 하나둘씩 떨어뜨리고 있다. 감나무의 감들은 잘 익어 어서 따달라고 가지를 늘어뜨리고, 대추는 매달린 채 쪼그라들었으며, 지천에는 밤송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풍경을 만난다. 저 벼들과 감과 대추와 밤이 그동안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내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낮과 밤, 비와 바람을 그 안에 품고 있을까. 잘 커 줘서 고맙다. 

 

 

벼들을 말리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직 추수가 다 끝나지는 않았다. 멀리 웅석봉 자락이 보인다. 저 너머 지리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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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막마을에서 금서 농공단지 옆을 지나는 길. 논밭 사이로 난 길을 지나 마을과 마을을 지난다. 

 

수철리 마을 회관 앞 공터에서는 이삭을 말리고 있다. 고속도로를 나와 지방도로를 달릴 때에도 한적한 곳에는 여지없이 벼를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벼를 잘 말려야 썩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요새는 다들 건조기에서 말리지만 일부러 건조기를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들판에 벼를 말리는 일은 여간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매번 요리조리 잘 뒤집어 골고루 말리는 일도 번거롭지만 안 본 틈에 짐승들이 접근해 먹어치우는 것도 감시해야 할 것이다. 자칫 지나가는 차량들이 실수로 밟고 지나가는 일도 벌어진다. 정말 재수 없으면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는 일이다. 대부분이 노인들인 시골에서는 벼를 말리는 일도 거두는 일도 뒤적거리는 일도 모두 수작업이라 보통 힘이 드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리한 건조기를 마다하고 굳이 여기 아스팔트 바닥 위에 말리는 건, 가을 햇살이 주는 오묘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고추도 건조기에 말리는 것보다 햇볕 아래 말리는 것을 더 높게 쳐주듯이 밥맛도 건조기로 말린 쌀보다 이렇게 햇볕에 말린 쌀이 더 좋다고 한다. 널어놓은 벼가 바싹 말라가는 시간은 밥이 맛있어지는 시간이다. 

수철마을을 지나면 곧 지막마을로 들어선다. '지막'은 '종이로 만든 막'을 뜻한다. 지리산 산골마을 중에는 종이를 만들던 곳이 많았다. 지막마을 역시 산에서 닥나무를 베어다 닥종이를 만드는 일을 마을의 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삶은 닥나무 섬유를 발에다 건져 종이 모양을 만들고 나무판에 붙여 햇볕에 말렸는데, 여러집에서 그렇게 말리고 있으면 커다란 하얀 막이 마을을 덮은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지막' 마을이 된 것이라는 유래다. 

지막마을을 지나고 평촌마을을 지날 때면 금서 농공단지가 옆으로 펼쳐진 모습이 보인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산청공장이다. 여기가 비행기나 헬리콥터 등을 만드는 공장인 셈이다. 수철마을로 들어오다 보면 정문 앞을 지나가게 되고 이렇게 둘레길을 가다 보면 또 옆으로 지나치게 된다. 농공단지에 제법 크게 지어진 건물이라서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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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농공단지 옆을 지나 경호강을 만난다. 

 

농공단지를 지나면 큰 물줄기를 만나게 된다. 경호강이라고도 불리는데, 남강의 상류부의 명칭이다. 경호강은 남강으로 바뀌고, 진양호에서 잠시 머물다가 북동쪽으로 물의 흐름을 바꾸어 함안군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경호강은 래프팅 장소로 인기가 많다. 여름철 이 길을 걷다 보면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래프팅 시기가 아닌 데다 코로나로 인해 이곳의 휴양 산업도 큰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래프팅을 안내하는 표지판이나 강변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강이 훔친 사람 마음이 어디 래프팅뿐일까. 걷는 내내 경호강 주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경호강 낚시는 보통의 대낙이 아닌 릴낚시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은어낚시가 유명한데, 5월에서 8월까지가 한창때이다. 10월인 지금도 강에 들어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은어 철이 지났는데, 저들은 무엇을 낚기 위해 차가운 강으로 들어가 낚싯대를 흔들고 있는 것일까? 래프팅과 낚시 말고도 ATV(4륜차)를 즐기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왔는지 할머니부터 초등학생까지 10여 명 되는 사람들이 둘레길 코스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며 ATV를 타고 우리 옆을 지나갔다. 한참을 엔진 냄새를 맡으며 걸어야 했던 불쾌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ATV들이 많이 낡아 보였고, 바퀴마저 똑바로 굴러가지 않아 보여 위험해 보였다. ATV를 타고 어디까지 구경을 가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걸으면서 구경하는 경호강의 풍경이 훨씬 조용하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경호강 풍경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어느새 이 구간의 가장 높은 고개, 바람재를 오른다. 높다고는 했지만, 실상 언덕 정도다. 하지만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고,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나 됐지만, 부모 앞에서는 아직도 아기같이 군다. 이번 둘레길 구간의 특징은 마을과 강을 따라 걷는 길이 많아 평지길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마땅히 쉴만한 공간을 찾기 어렵다. 바람재를 넘어갈 때도 쉴만한 곳을 찾을 수 없어 길 옆에 자리를 깔아 아이를 앉히고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조금만 가면 끝난다는 말로 구슬려 다시 길을 나섰다. 거짓말은 아닌 게 바람재를 넘으면 곧 성심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날의 종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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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은 한센인들의 노후를 위한 복지시설이다. 천주교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한센인 또는 중증장애노인들의 생활을 보살피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도착한 시점에는 입구에서부터 코로나 방역을 위한 열체크와 문진을 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면역력이 취약한 고령의 중증 장애 노인들이 있는 시설인만큼 초긴장 상태일 것이 분명하다. 안에서 생활하는 노인들도 외부에서 찾아와 주는 사람이 아예 없다시피하는 요즘은 외롭고 쓸쓸함이 더할 것이다. 더불어 그들을 돕는 이곳 종사자들 역시 노인 시설에서 일하는 직업적 사명감으로 외부와의 만남이나 접촉을 일체 끊고 살아가야 하는 힘든 시절이다. 

오랜만에 둘레길 걷기를 나섰지만, 마음은 가볍지가 못했다. 여전히 코로나와의 싸움 최전방에서 고전분투하고 있을 여러 종사자들의 면면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가벼워질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걷는 둘레길에는 대부분 노인들이 사는 시골마을이라서 말소리 숨소리 하나 쉽게 나가지 못한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에게 말을 건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저 조용히 주어진 길을 걸으며 마을을 소리 없이 지나치는 것이 코로나 시대 여행자의 양심일 것이다. 

성심원 앞에서 산청택시를 불러 차를 주차해 둔 수철마을로 갔다. 요금은 17000원 정도. 아이는 피곤했는지 뒷좌석에 잠들었다. 

 

성심원 앞길

 

 

그래서 이번 둘레길이 공허한 마음을 채웠을까? 아직은 어설프다. 세상이 분명 나아지고 있다고 믿지만, 말들의 전쟁이 난무하는 온라인 공간을 보면 심란하다. 한편으로는 총칼이 부딪히는 것이 아니고 말로만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저 많은 말들에 쌓인 업보는 어떻게 풀려고 저러는 것인지 안쓰럽다. 어지러운 온라인 공간에 이렇게 글과 사진을 남기는 건, 그럼에도 우리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작은 희망이 되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물론 무엇보다 내 마음 안의 공허를 채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아내에게 다음 지리산둘레길 일정을 서둘러 잡자고 했다. 걷는 일은 명상과 사색이 함께 어우러지는 일이다. 마음의 평안을 찾는 여정이다. 어질러진 일상을, 흐트러진 마음을, 늘어진 몸가짐을 바로잡는 일이 될 것이다. 

 

 

새벽길을 달려 온 여정이라 아이가 힘들어했다. 길은 평이했지만, 걷기 여행은 약간의 고단함을 견뎌내는 것. 아이가 알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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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지리산둘레길 4구간인 금계-동강 구간을 지나온 이후로 벌써 6개월, 즉 반년이 흘렀다. 이토록 오랫동안 둘레길 자락을 찾지 않은 이유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이유도 있었지만 봄부터 창궐하기 시작한 전염병(코로나19 바이러스)이 더 큰 원인이다. 

이 전염병이 언제까지 어떻게 이어질까? 두려움과 공포로 우리는 모두 칩거에 들어갔다. 어려운 말로 비대면 접촉이 늘어나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었다. 3월 초 잠깐 둘레길을 가자고 했을 때에도 출발 전날까지 나와 아내는 망설였다. 아내는 장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 당시 시골 노인분들은 외지인들에게 민감했고,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도 길에서나 만나면 잠깐 인사나 나눌 뿐 교류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둘레길을 걷겠다는 여행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사실 어느 여행인들 그러지 않았나? 집을 떠나 낯선 곳에 간다는 것에는 많은 기쁨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위험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오랜 옛날부터 집을 떠나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쉽게 나라와 나라를 드나들고 바다와 산을 넘나들 수 있다고 하지만, 어찌됐든 21세기에도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유행어가 나올 만큼 집 밖을 나서는 일은 일단 마음가짐부터 단단해져야 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어 인심도 흉흉하다. 여행객을 곱게 볼 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모든 상황을 감수하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오랜 상의와 숙고 끝에 5월 마지막주 주말 지리산 둘레길 5구간, 동강-수철 코스를 걷기로 결정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지리산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새벽 4시 출발. 5월 말, 사위는 5시부터 밝아오기 시작한다. 4시간 반을 달려 다시 함양군 휴천면 원기마을에 도착했다. 새벽길을 달렸던 피곤함은 임천강으로 흐르는 맑은 아침 기운 속에서 쉽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원기마을 앞의 엄천교를 건너면 동강마을이다. 여기서부터 5구간의 시작점이다. 5구간은 꾸준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여정이다. 쌍재를 지나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 고동재를 거쳐 수철마을까지 다시 내려오는 비교적 단순한 구간이다. 고도 변화는 그렇게 이어지지만 길 자체는 구불구불 산길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말하자면 2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구불구불이요, 다른 하나는 오르락 내리락이다. 아무래도 산을 치고 올라가는 산행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 계곡과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라서 산세에 따라 길은 구불구불 이어지거나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기 마련이다. 이런 길의 특성 때문에 도심에서 걷는 10km와는 비교할 수 없는 노고가 들어간다. 도심에서 10km는 오르막이 있어도 3시간 안에 끝나지만, 지리산 둘레길은 보통 6시간 정도는 걸어야 한다. 물론 숙련도에 따라 시간은 달라진다. 

 

쌍재와 고동재 사이 가장 높은 곳이 아마도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곳일 듯하다. 전체적으로 완만하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여정이다. 

 

 

 

동강-수철 구간 지도: 8번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이다. 

 

 

오전 8시 30분 경, 여정을 시작했다. 둘레길에서 만나는 마을 중에는 농촌 마을로서 노동의 현장성보다는 전원 마을이라는 여유로움이 더 짙게 느껴지는 마을이 있다. 잘 정돈된 담장과 여기저기에 그려진 벽화, 그리고 손님을 안내하는 팻말과 민박집 이름이 적힌 간판 등이 그런 느낌을 전한다. 반면 다양한 농기계나 농기구가 도로 한쪽에 있어 아무렇게나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오래된 돌담과 낡은 구옥들이 제멋대로 그늘을 드리우는가 하면, 소나 닭을 키울 것 같은 축사나 우리가 보이면 여기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느낌을 준다. 이 둘은 둘레길에서 항상 공존한다. 농촌이라는 노동의 현장성도 있고, 둘레길 마을이라는 여행의 공간성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길을 지나 한참 임도를 따라 걷다가 왕복 2차선 차도와 만난다. 거기서부터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까지는 차도 옆으로 걸어야 하는데, 인도가 없어서 위험천만하다. 게다가 바로 옆 하천변 공사가 대대적으로 진행 중이다 보니 덤프트럭 등 공사 차량도 가끔 오간다. 여기는 둘레길 여행객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미흡하다. 따라서 5구간을 걷고자 하는 분들은 아예 산청함양 사건 추모공원에서 시작점을 잡는 것을 권한다.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이제 지구상에서 전쟁이라는 행위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잔인하고 비이성적이며 비인간적인 전쟁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되새기고 질문해야 한다. 이를 위한 기념비적 장소나 집회, 모임을 이어나가고, 책과 영상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다음 세대에도 이해시켜야 한다. 

최근의 위안부 논란에서도 우리는 결코 전쟁 중 일어났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간과해서도 안되며 이를 축소 은폐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한다. 비록 모임의 운영과 관련해 여러 의혹이 있다고 해도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전쟁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에서 주춤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이에게 잠시 전쟁과 산청함양 사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서 설명해 주었다. 그 잔인함과 비이성적 광기를 모두 알려주기는 어려웠지만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이곳에 교육관이 있어서 방문하면 더 자세한 역사 교육이 되었겠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교육관이 휴관 상태였다. 나에게는 두 번째로 아쉬운 지점이었다. 



산청함양 사건 추모공원, 멀리 보이는 위령탑

 

산청함양 추모공원을 지나면 곧이어 산길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5구간의 산행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계곡길을 따라 쌍재까지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가파르지 않다. 가다 보면(추모공원에서 2km 지점) 상사폭포를 만날 수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폭포를 직접 보기는 어려웠다. 수풀이 우거져 있고, 폭포를 보기 위해 계곡으로 직접 발을 들여놓기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초행길에서 지나치게 경관을 추구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주어진 길을 따라 눈앞에 나타난 길을 잘 즐기는 것도 걷기 여행의 방법이다. 특히 사람이 그다지 많이 다니지 않는 길에는 산짐승의 위험도 있다. 다람쥐나 청설모는 귀엽지만 멧돼지나 뱀은 매우 위험한 존재다. 길이 아닌 곳에서는 그런 위험이 더 커진다. 따라서 아이가 있거나 단출한 가족끼리 둘레길을 간다면 최대한 제시된 길을 따라가는 게 안전하다. 



천천히 오르다보면 어느새 쌍재에 다다른다. 상사폭포에서 어렵지 않다. 줄곧 오르막이라지만 구불구불 이어지면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오르다 보면 반가운 매점도 있다.  산청 막걸리 5000원에 몇 가지 산나물 안주는 공짜다. 아내와 둘이 한잔 마시는 시간은 아이에게도 휴식 시간이다. 아이는 여전히 산에서 만나는 곤충들에 민감하다. 도시 아이로 자라나면서 생성된 벌레에 대한 비호감이 둘레길 걷기로 극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매점에는 막걸리나 맥주도 있지만 생수나 아이스크림도 있다. 안주류로 도토리묵이나 파전도 있고 간단히 요기를 때울 수 있는 라면도 팔고 있다. 

 

“와~ 멋지다.”
매점을 지나 고동재로 가려고 오르막길을 가다가 앞서 가던 아내의 탄성이 들렸다. 곧 갑작스럽게 조망이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곳이다. 그다지 높이 올라온 것 같지 않았는데, 사방 어느 한 곳도 막힘없이 트였다. 이곳이 최고의 조망지라고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지리산 천왕봉을 만났다.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천왕봉을 아이에게도 설명해 주었으나 지리산 능선을 밟아본 일이 없는 아이에게 그저 먼산 바라보기 밖에 뭐가 더 있겠나. 아내와 나만의 추억일 뿐일 것이다. 

5구간 초입에서 느꼈던 아쉬움으로 막혔던 속이 여기서 시원하게 뚫렸다. 사방 어디를 내다 봐도 산과 들과 하늘이 가득하다. 바람도 여기서는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을 되새겨볼 만했을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우리는 바람과 함께 머물렀다.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봉우리에서 바라본 풍경1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봉우리에서 바라본 풍경2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봉우리에서 바라본 풍경 - 저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천왕봉



 

산불 감시 초소를 지나면 얼마 안가 고동재가 나온다. 수철리와 방곡리를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여기에는 장승 하나가 버티고 서 있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간략한 안내말을 전한다. 모르고 다가섰다가 장승에서 나오는 소리에 깜짝 놀랄 수도 있을 것 같다. 고갯길에서부터는 임시도로를 따라 수철마을까지 연결된다. 산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인적도 없는 길에 뱀 한 마리가 지나가는 걸 보았고, 뱀 껍질도 발견했다. 새소리만 가득한 길을 자박자박 걸어가니 발걸음도 가볍고 흥이 오른다. 오래 걸은 피곤함도 잊을 수 있었다. 

 

수철마을로 내려서니 여기저기 민박집도 보인다.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마을의 풍경이다. 여기도 마을회관 주변에 중장비가 오가면서 공사가 한창이다. 둘레길 초입 계곡쪽 공사와 함께 마을 회관 앞 개천 공사도 진행 중이라서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개인택시로 전화를 걸어 동강 마을까지 가는 택시를 문의했다. 10분만에 차가 한대 배정되었고 곧이어 택시가 마을회관까지 올라왔다. 이곳에서 동강마을까지는 2만 4천 원 정도 나온다. 코로나 때문인지 기사님은 말씀이 없으셨고, 새벽부터 이어진 여정 때문인지 아이는 잠이 들어버렸다. 

고동재를 내려와 걷는 임도
수철마을에서

 

수철 마을 회관 앞 평상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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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째 더 춥네요. 아침 7시 기온은 심지어 영하 1도로 나왔는데, 코로나19보다 감기가 먼저 걸리것 같네요.

어제는 학교 선배 덕분에 간만에 고깃집을 갔네요.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고 점심시간 빼고는 외식을 한 적이 다섯손가락으로 꼽을만큼 드뭅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어들고요. 경기 상황이 최악이라고 하는데 거리와 상가에서는 더욱 체감할 수 있는 상황이겠지요. 다행인지 화요일 저녁시간이지만 당산동 고깃집은 제법 시끌시끌하더군요. 빈자리가 많긴했지만 8시 넘어 단체 손님들(주로 2030)도 들어오고 활력이 좀 보였습니다.

3월부터는 다시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다시 도전해 보려고요. 이번달에 찾아갈 코스는 5구간(동강-수철)입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산청-함양-거창 지역의 양민들(주로 어린이와 노약자, 여성)이 학살된 아픔을 안고 있는 곳이죠. 군인들이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집들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끌어내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던 사건입니다. 우리때는 거창 양민 학살 사건으로 교과서에 실렸지만 그마저도 축소된 것이었죠. 거창에서 700여명을 살해하기 전, 산청과 함양에서 먼저 700여명을 학살했던 것이 뒤늦게 밝혀졌던 겁니다.

참혹한 역사의 이야기가 담긴 5구간에서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막막합니다. 그래도 다시는 이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 교육이 필요하겠지요.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는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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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3.3. 맑음. 아침 기온 0도. 미세먼지 보통.
🎉 아침 자전거 출근 10.1km
🚲 2020년 자전거 총 주행 거리 160.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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