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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은 항상 어수선하다. 밤늦게까지 TV시청이 이어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주머니들의 그 많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끝나는가 싶으면 남자들은 갖가지 잠자리 기행-예를 들어 코골기, 이빨갈기, 잠꼬대 등등-을 선보이고, 새벽에 자지러지게 깨어나 우는 아이들까지 참 많은 것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 상태에서도 잠을 잘 수 있는 내성을 키운지는 오래지만, 간간히 그렇게 잠이 깨면 부시시 일어나 물이라도 한모금 마셔서 화를 삭힌다.

어쨌든 그럴걸 알기 때문에 일찌감치 사람들이 <주몽>을 보느라 정신없는 시간에 나는 눈을 붙였다. 새벽에 두어번 깨고, 6시에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욕탕에 들어가 잠시 잠든 몸을 한번 더 깨웠다. 찜질방에서 자는 날은 항상 그렇다. 솔직히 욕탕에 들어가 있으면 이제 그만 쉬고싶다는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지만 서울까지 가야한다는 생각에 미치면 마음을 다시 단단히 부여잡는다.

정읍을 나왔을 때 오늘의 목표는 군산이었다. 705번 지방도를 타고 이평면까지 가고 거기서 710번 지방도를 타고 신태인방향으로 향했다. 이길 옆에 만석보유적지가 있다. 동학혁명의 발원지인 것이다. 정읍 여기저기에는 동학혁명을 기리는 장소와 유적이 많다.

신태인 방향으로 가다가 신태인으로 들어가지 않고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김제 이정표를 보고 달렸다. 조금만 달리면 부안으로 가는 30번 국도와 김제로 가는 29번 국도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29번 국도를 타고 김제로 향했다. 김제에 들어섰다는 것을 실감한 것은 바로 '지평선'이었다. 쭉 뻗은 도로의 끝에도 지평선이 보이고 양옆으로 펼쳐진 논에도 지평선이 보였다. 여기가 그 넓다는 김제평야다. 시원스럽게 지평선을 향해 내달리며 이 넓고 풍요로운 땅을 보는 것만으로 흐뭇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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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군산방향으로 길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김제에서 군산 가는 길에 학성강당에 들려볼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대학동기가 공부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읍에서 전화를 했더니, 그 사이에 어느새 임용고시도 보고 발령도 받아 올해부터 광주의 모중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정읍에서 전화했을 때에서야 알았으니, 미리 알았다면 광주에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같이 공부하는 형이 그런 아쉬움을 단숨에 털어버리게 했다.

"시골에 왔는데, 하룻밤 묵고 가야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내 발목이 잡혔다. 아마도 비때문에 짧게 갔던 것을 빼고는 오늘 최단시간을 달렸다. 10시에 하루 여정을 마쳤으니 말이다. 하지만 형 덕분에 큰 스승님까지 뵐 수 있었고, 좋은 말씀도 들을 수 있었다. 형은 이곳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강당에서 10년 공부를 마치고 분가해 지금은 학성강당 옆에 손수 한옥집을 짓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된장을 만들어 판매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옛 유학자들은 모두 주경야독을 했다면서 자기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학문을 익힐 거라고 한다.

격물치지, 어떤 일을 하던, 어떤 물건을 보던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치를 깨닫는 것, 그것이 공부란다. 학문은 묻고 배우면서 익히는 것이고 공부는 일하면서 익히는 거라고 한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것이 학문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던, 어떤 자리에 있던 거기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래서 세상이 돌아가는 진리를 터득해 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직접 집을 짓는 근이 형을 돕기 위해 난생 처음 전기톱으로 나무를 손질하면서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일'을 하며 거기서 무엇을 생각하고 배울 것이냐는 자문에, 떨어지는 무수한 톱밥보다 많은 생각에 생각이 겹쳐지는 것을 보았다.





주행거리 : 43km
주행시간 : 3시간
주행구간 : 정읍>이평면>신태인>김제>학성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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