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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기억이 나지는 않아. 엄마의 자궁은 그냥 아늑했어. 하루종일 웅크리고 있었지만 불편하지 않았거든. 물론 가끔 기지개를 펴기도 했어. 그때마다 엄마는 놀라서 손으로 나를 쓸어주었지.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았어. 하루종일 잠만 잤지만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었지. 엄마아빠는 날마다 나를 위해 노래 불러주었고, 책도 읽어주고, 바깥 세상의 꽃과 나비, 해와 구름, 바람과 숲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어. 그때는 잘 몰랐지만, 참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언제까지 거기에 있을 수는 없는 거였나봐. 엄마의 몸이 나를 밑으로 자꾸 밀어내고 있었어. 작은 문이 거기에 있다는 걸 느꼈지. 물론 나도 엄마아빠가 말하는 그 세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되었던거야. 좀더 많이 먹고 자고 놀면서 몸집을 키워야 하는데, 나 이렇게 작게 나가도 되는 걸까 고민고민 하다가 그만 갑자기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엄청난 힘으로 날 밀어주는 엄마가 느껴졌지. 그래서 나도 온힘을 다해 작은 문을 향해 나아갔어. 팔과 다리 어느것 하나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내가 저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걸 느꼈어. 그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열망과 의지였겠지. 자세한 건 나도 몰라. 누구는 본능이라고 하는데, 나는 분명 나의 의지와 열정으로 그 포근한 자궁을 포기하고 더 큰 세상으로 나온 거야.

얼마전(4월 26일) 병원 정기검진 마지막날이었나봐. 엄마아빠는 무척 기뻐하셨어. 내 머리에 뇌실이 있어서 걱정하셨다나봐. 의사 말로는 발달상황이 좋아서 MRI라는 건 안찍어도 된다고 하셨지. 들어보니까 나를 꽁꽁 묶고 이상한 원통형 기계에 혼자 밀어 넣는다는 거야. 얼마나 무서운 일이야. 그런걸 하지 않는다니 정말 다행이지. 그래도 이날 주사는 피할 수 없더군. 일본뇌염 예방 주사라는데, 아휴 얼마나 긴장했는지 언제 주사 놓는지도 몰라서 울 수도 없었어. 이제 내가 태어났던 병원에는 이제 따로 갈 일이 없다고 하니 다행이야. 빵빵이 의사 아줌마도 이제 안녕~ 우리 이제 병원 말고 밝은 거리에서 만나요. 그때는 아줌마 보고 무서워서 숨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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