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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노닐던 곳. '仙'은 사람[人]이 산[山]에 있으면 신선이라는 말인데, 그 신선이 여기 한강의 섬에서 노닐었으니[遊], 과연 놀만한 곳이다. 가을 바람이 수양버들을 한껏 흔들던 강가에 앉아서 아이는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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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생각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고 있다고. 혹여 지금 내가 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러다가 다행히라는 생각도 든다. 그때 무엇 때문에 아파했는지, 왜 고통스러워 했는지
쉬 잊혀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밀어내면서 잊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사람들과 함께 있다. 홀로 있는 시간에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자아겠지만,
그 자아를 넓히고 공감의 감정으로 행복을 느끼려면 사람과 함께 하는 일밖에 없다.

일상에 조용한 파문이 던질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던지는 돌멩이에서 시작한다.
살천스러운 시대에 그저 소나기가 지나가기만 기다릴 게 아니다.
텐트에 비가 세기 시작했으면 먼저 나서서 비를 옴팡 맞더라도
팩을 다시 박고 텐트를 재조정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장작을 준비하고 불을 지펴 함께 불을 쬐자.
그러면 비도 그치고 좀더 따뜻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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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의사는 '성장을 멈췄다'라고만 말했다. 그러니까 세포분열을 멈춘 것과 같은 의미였을까?

세상의 모든 인연들이 쉽지 않다. 더군다나 부모 자식간의 관계야 두말하면 잔소리 아닐까. 그래서 옛부터 사람들은 몸가짐을 그렇게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내가 버렸을, 혹은 눈감고 지나쳤을 인연이 다시 돌아와 내 발길을 붙잡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정말로 삼신할머니가 있으시다면, 내 안으로 거두어들이지 못한 안타까운 그 죽음을 부디 다른 곳으로 고이 보내주시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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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 7백여 명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니 무려 77퍼센트가 5월엔 최소 70만 원을 더 쓰게 된다고 답했다. 70만원이라는 거금이 어떻게 5월 한 달에 더 많이 지출될 수 있는지는 달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다가 5월의 신랑신부들은 어찌나 많은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식이면서 부모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 자식의 도리를 설파하는 각종 이벤트들은 사실 도리가 아니라 돈으로 연결된다. 돈 없으면 부모 노릇, 자식 노릇 못하는 세상일까?


대한민국의 어린이날은 독특하다. 사실 국제적인 어린이날은 1925년 제네바에서 있었던 아동 복지를 위한 세계 회의에서 결정한 6월 1일이다. 또 UN과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 어린이의 날은 11월 20일이다. 만일 우리나라도 6월이나 11월이었다면, 5월은 좀 덜 잔인한 달이 되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의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1923년 색동회 창립일인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데서 시작되었다. 적어도 1925년의 세계 회의 때의 결정보다 2년이나 앞서니 대한민국의 어린이날은 토종 어린이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방정환 선생이 색동회와 어린이날을 만든 데에는 당시 어린이들의 존엄성과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됐다. 예전에는 ‘어린이’들을 ‘어린것, 이놈, 아이, 애새끼’ 등의 거친 표현으로 불렀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식은 어디만큼 왔을까? 현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위협들-범죄, 환경오염, 빈곤, 차별 등-은 항상 약자인 아동들 앞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우리 사회 역시 ‘어린이’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준비는 많이 부족하다. 최근에 제정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반대 여론에서는 ‘어린이’를 교육 환경을 이유로 차별과 인권 침해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생각과 의견에 경청하는 자세가 부족하다. 어린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큰돈 들여서 사주는 것도 좋겠지만, 평소에 어린이의 의견을 존중하며 들어줄 수 있는 세계가 어린이들에게는 필요하다.


현재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양희 교수는 지난해 월간 <인권>(2010. 1-2월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동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아직 풀지 못한 게 있어요. 아동의 목소리를 듣는 자세가 없다는 것이지요. 아동 의견 존중은 인권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그게 반영되었을 때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확인하게 되지요. 자기 의견을 말했는데 그게 묵살된다면 인간으로서,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게 아닌 것이지요.” (인터뷰 보러 가기)


이번 어린이날에는 어린이와 함께 아동인권 선언문을 읽어보고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아동인권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적어서 집에 걸어두는 것은 어떨까. 어린이는 존중받는 느낌을 가지고 인류 역사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해온 노력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달 5월 초에 인권위 블로그에 보낸 글을 이제사 올리는 게으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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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거나 대식구를 들여 놓았다. 먹여 살릴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있는 살림이었고 새로 들여놓는 것은 동그란 식물 장식과 치어망이 전부다. 부디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저번처럼 약한 놈 잡아먹는 불상사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구피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키우는 물고기 중의 하나다. 번식도 쉽고, 서로 평화롭게 잘 사는 물고기들이기 때문이다. 가격은 일반적인 구피들이 1000원, 꼬리가 까만 구피는 2000원이다. 3000~5000원까지 하는 구피도 있지만 그것들은 구입하지 않았다. 구피는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데, 자기 새끼들을 잡아 먹는다고 하니, 새끼를 낳을 때 쯤에는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우선은 성공적으로 번식을 시키는 게 목표다.

아침마다 민서에게 물고기를 보여준다. 민서는 한참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 본다. 관상용이자 애완동물로 물고기는 매우 유용하다. 조용하고 손이 별로 많이 가지 않으며, 돈도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건조한 고층 아파트의 특성상 어항은 습도 조절에도 매우 유용한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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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 군대를 간다는 것에 대해 잘 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조교들이 내리는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굴러야 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매이징(Amazing)한 일일 것이다. 물론 군생활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라는 걸 배워가는 게 훈련소 생활이니, 현빈은, 아니 김태평씨는 사회지도층이나 연기자가 아닌 평범한 훈련병으로서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군기 잡힌 모습은 분명 연기가 아닐 것이다. 해병대 군기가 보통 군기인가!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 대부분은 1년 이상 똑같은 악몽에 시달린다. 바로 군에 재입대하는 꿈인데, 이런 꿈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비상사태가 발생해서 다시 재입대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고, 군행정 시스템이 잘못되어 아직 군에 입대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었으므로 시스템이 복원되기까지는 일단 재입대하라는 황당무계한 꿈도 꾼다. 때로는 꿈속에서 자다가 눈을 떴는데, 아주 익숙한 내무반이더라는 꿈도 지겹게 재방영된다. 그럴 때마다 등에서는 식은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꿈에서 깨어난다. 꿈이 얼마나 생생했는지, 불을 켜서 일어난 방이 내무반이 아님을 확인해야 간신히 다시 잠들 수 있을 정도다.

정신의학자들은 트라우마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와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군대가 주는 정신적 충격이 크다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심각한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을 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군대 내 구타 및 가혹행위도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해병대의 군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김태평씨가 다니는 해병대의 군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쎄다”라고 이야기한다. 도대체 해병대 군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과연 그 군기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한몫을 해 줄까?

지난 3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병대에 대한 직권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그것은 참담하게도 군기가 “쎄다”는 해병대 내에서의 구타∙가혹행위에 대한 내용이었다.(관련 보도자료)

사실 이번 직권조사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부대 내 구타 및 가혹행위에 대해 “우리 사회의 우려와 달리 군 내부적으로 상당한 노력과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음에도(2006년 2월 군대내 인권상황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 유독 해병대에서만 이런 현상이 잘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해 실시했다고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0년 해병대 의무대 환자발생보고서에 따르면 고막천공 30여건, 비골∙늑골, 대퇴부 파열 등 타박상 기록이 250여건에 이르는데 발병 경위 등은 부실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또 대부분의 가해자가 후임병 시절 유사한 구타∙가혹행위를 당했고 이를 참고 견디는 것을 ‘해병대 전통’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폭행사건을 상급자에게 발설할 경우 기수열외 등 2차 피해를 주는 폐쇄적 조직 문화가 팽배했다(기수열외: 해병대 조직에서 배제하는 것을 의미하며, 구체적 방식은 가해자인 선임이 피해자 보다 후임기수에게 피해자에 대해 반말과 폭행을 가하게 하여 인격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 게다가 지휘∙감독자들은 부대의 명예훼손 및 불이익을 우려해 ‘구타에 대해 엄정히 사법처리하라’는 관련 원칙을 준수하지 않고, 경미하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앞에서 전한 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대개의 군대 꿈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20대의 꽃같은 젊은 날을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끼리 보내는 공간이 왜 이렇게 비극적인 기억으로 남아야 하는 걸까. 그것은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이 가지는 한계도 있지만, 비합리적인 조직 문화와 고리타분한 관행 때문이다.

군인복무규율 규정에 따르면 ‘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적 제재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안전과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헌법을 지키고 수호해야 할 군대가 헌법의 가치를 무시하는 행태를 간과한다면, 그것은 곧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김태평씨, 아니 현빈의 무사 제대를 기원한다. 그가 말한 유행어로 이 글을 정리한다.

“여긴 당신네들이 생각하는 그런 훈련소가 아니야. 뛰어난 교관과 조교들이 훈련생들 한명 한명을 열과 성의를 다해 인권적 가치로서 대하는 그런 곳이야. 한마디로 목숨을 바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토를 지킬 수 있는 어메이징한 군인을 만드는 곳이지.”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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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기억이 나지는 않아. 엄마의 자궁은 그냥 아늑했어. 하루종일 웅크리고 있었지만 불편하지 않았거든. 물론 가끔 기지개를 펴기도 했어. 그때마다 엄마는 놀라서 손으로 나를 쓸어주었지.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았어. 하루종일 잠만 잤지만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었지. 엄마아빠는 날마다 나를 위해 노래 불러주었고, 책도 읽어주고, 바깥 세상의 꽃과 나비, 해와 구름, 바람과 숲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어. 그때는 잘 몰랐지만, 참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언제까지 거기에 있을 수는 없는 거였나봐. 엄마의 몸이 나를 밑으로 자꾸 밀어내고 있었어. 작은 문이 거기에 있다는 걸 느꼈지. 물론 나도 엄마아빠가 말하는 그 세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되었던거야. 좀더 많이 먹고 자고 놀면서 몸집을 키워야 하는데, 나 이렇게 작게 나가도 되는 걸까 고민고민 하다가 그만 갑자기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엄청난 힘으로 날 밀어주는 엄마가 느껴졌지. 그래서 나도 온힘을 다해 작은 문을 향해 나아갔어. 팔과 다리 어느것 하나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내가 저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걸 느꼈어. 그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열망과 의지였겠지. 자세한 건 나도 몰라. 누구는 본능이라고 하는데, 나는 분명 나의 의지와 열정으로 그 포근한 자궁을 포기하고 더 큰 세상으로 나온 거야.

얼마전(4월 26일) 병원 정기검진 마지막날이었나봐. 엄마아빠는 무척 기뻐하셨어. 내 머리에 뇌실이 있어서 걱정하셨다나봐. 의사 말로는 발달상황이 좋아서 MRI라는 건 안찍어도 된다고 하셨지. 들어보니까 나를 꽁꽁 묶고 이상한 원통형 기계에 혼자 밀어 넣는다는 거야. 얼마나 무서운 일이야. 그런걸 하지 않는다니 정말 다행이지. 그래도 이날 주사는 피할 수 없더군. 일본뇌염 예방 주사라는데, 아휴 얼마나 긴장했는지 언제 주사 놓는지도 몰라서 울 수도 없었어. 이제 내가 태어났던 병원에는 이제 따로 갈 일이 없다고 하니 다행이야. 빵빵이 의사 아줌마도 이제 안녕~ 우리 이제 병원 말고 밝은 거리에서 만나요. 그때는 아줌마 보고 무서워서 숨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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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SNS(social network service)들이 나오고 있고,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그 차이는 직접 운영해 볼 때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는 선배가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학원에 보내면서 떠오르는 단상을 담담하게 쓴 페이스북의 글에 대해 위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경쟁적 교육의 상징이자 아이콘이 된 학원에 보내는 엄마의 고민과 그와 함께 찾아올 경제적인 부담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에 보내달라는 아들의 청원에 대한 생각 등을 담은 그 글("나는 엄마다")은 그렇게 심각한 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댓글은 마치 사교육에 맞서는 전사와 같은 문체로 그이에게 준엄한 논리로 조언(혹은 충고)를 했나 보다. 댓글을 작성하는 동안 사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선배"의 고민에 대해 생각했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진정성은 있었지만, 어쩌면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으로 밀어 넣는" 건 아닌가 고민하는 "부모"의 진솔한 고백에 대한 배려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페이스북은 트위터와 다르다. 트위터는 주로 정보의 생산과 확산에 적합하다면, 페이스북은 지인들과의 감성적 연결에 더 적합하다. 담벼락(페이스북의 개인 홈페이지)과 타임라인(트위터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글들도 그렇게 구별된다. 그렇다고 해서 페이스북에 적합한 글, 트위터에 적합한 글이 따로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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