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주]2007년 11월 4일에 다녀왔던 주산지글.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가을을 맞아 지난 가을을 추억해 보고 가을 사진을 보며 지금을 위로하고자 퍼왔다. 여기에 글을 가져오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있는 글은 지웠다. 






1.

새벽부터 갔어야 했다.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6시가 좀 넘어서 나온 게 화근이었다. 주산지 앞은 이미 차들로 빽빽했고, 버스를 타고 온 주왕산 등산객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올라가는 아이들, 그리고 새벽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해 차려진 포장마차와 막걸리를 나르는 트럭들까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가 가을 단풍이 든 주산지의 새벽 물안개가 만들어 낸 풍경이다.

 

차를 몰고 주차장 앞까지 밀고 들어간 나는 도로 한가운데서 나가지도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엉망으로 차를 주차시켜 놓은 비양심 인간들 때문이다. 차 안에 갇혀 우왕좌왕 하는 동안 친구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주차할 곳을 찾아다녔지만 한참만에야 겨우 나가는 차를 발견하고 주차를 시킬 수 있었다. 세상은 온전히 밝아오고 있었다. 더 늦으면 물안개를 못 보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는 또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빨리 걷는다면 약 15분 정도 걸린다. 주산지까지 가는 길도 풍경이 좋다. 우리의 발걸음이 빨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늦은 시간에 찾은 것인지 주산지 풍경과 만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012345

 

2.

“너 여기 안가면 평생 후회할 거다.”

10여년 전, 친구는 또다른 친구의 그 말에 이끌려 밤새 마신 술의 피곤함을 무릅쓰고 주산지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가 본 10여년전 주산지 풍경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인적도 드문 주산지의 물안개를 보며 친구와 그 일행들은 오랫동안 말없이 주산지를 바라만 보았다. 밤새 술잔을 비우면서 새벽을 맞은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말이다.

 

주산지를 배경으로 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2003년에 나왔으니까 그가 방문한 것은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훨씬 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날처럼 사람과 차로 북새통을 이룬 주산지 풍경은 그에게 매우 낯설다. 그때와 사뭇 달라진 풍경에 주산지 가는 길 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라진 게 어디 사람들 모습뿐일까. 유명한 관광지답게 주산지 가는 길은 고은 흙길로 넓게 다져져 있고, 길 양편으로 계곡과 울창한 침엽수림도 손색없이 자리잡고 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그냥 산비탈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서 주산지로 들어갔다고 하니 영화가 바꿔놓은 세상은 거의 천지개벽과 맞먹는 것같다.

 

01234567891011

 

3.

많은 사람들이 나갔지만 주산지 주변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에서 200m 정도 가야 있는 주산지 전망대 주변에는 서있을 틈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수많은 카메라들의 기이한 행렬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라 놀랍기만 하다.

 

주산지는 유명한 사진촬영 장소다. 물속에 뿌리를 내린 능수버들과 왕버들나무, 새벽 물안개, 그리고 주변의 가을단풍이 주는 오묘한 분위기는 신선들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그러다 보니 멋진 풍경사진을 담아보고 싶은 사진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요즘이 가장 많은 시기다.

 

집을 나오면서 카메라만 챙겼지 미쳐 삼각대를 챙기지 못했다. 요새는 자꾸 빼먹고 다니는 게 많다. 그런 일이 생기면 몸이 고생하기 마련이다. 삼각대가 없으니 셔터속도를 길게 잡을 수 없다. 아무리 숨을 참고 몸을 고정하려 해도 미세한 몸의 떨림과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어둠 때문에 풍경을 제대로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각대를 고정해 놓고 셔터속도를 오래 개방해야 물안개의 묘한 분위기를 담을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맨몸에 기대어 셔터를 눌렀다. 어렵게 찾아간 곳인만큼 최대한 좋은 사진을 담아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구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카메라의 렌즈보다 마음의 눈에 풍경을 담는 일이 중요하다.

 


012345



4.

주산지는 조선 숙종 때인 1720년에 착공해 1721년 조선 경종 때 완공한 인공저수지다. 원래는 하류쪽 농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고, 지금도 주산지 아래의 농가는 이 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주산지는 그 크기만을 따지면 여느 저수지 정도의 크기로 한바퀴 빙 둘러보는데 채 1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주산지를 나오면서 사과 속에 꿀이 들어가 있다는 청송사과를 한묶음 샀다. G마켓에서 가장 싼게 2만 원대이니, 1만원이면 정말 잘 샀다는 생각이다. 당분간은 이 사과의 맛을 통해 주산지의 멋을 추억할 것 같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