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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집을 나섰지. 그러니까 민서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우리 둘이 나가는 외출이었어. 그동안 민서가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돌아보면 나도 참 무신경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영등포의 카페에서 차 한잔하고, 점심 먹고, 영화 한편 보고, 술 한잔 마시는 그다지 평범한 데이트 일정이었는데,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당신은  9개월 전 한 아이의 엄마가 됐지. 처음 되어 보는 엄마, 당신에게 걱정과 근심이 왜 없겠어. 하지만 그보다 희망과 행복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환한 웃음이 있었다. 그 어떤 부정적 생각보다 더 크게 자리잡은 긍정의 미소, 그랬지, 난 그 미소에 흠뻑 빠져있더랬지. 그래서 참 고맙다. 나에게 부정적인 생각이 끼어들 작은 틈마저도 환한 미소로 꽉 채워준 당신은 남다른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을 표현하는 모든 말이 무색하다. 표현이 무색하니 그저 "사랑한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좋다고 웃어주는 그이다. 사랑이 언제나 뜨거울 수는 없다.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사랑할 일이다. 사랑을 말할 때는 차갑게, 사랑을 표현할 때는 뜨겁게, 그렇게 사랑하며 살자.





이제 당신은 엄마가 됐고, 난 아빠가 됐다. '엄마'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기도'(김종철 시인)라고 하지 않던가.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먼저 배우고 아빠를 알아가듯이, 엄마는 우리 가정의 가장 큰 바탕이 되는 사람일 거다. 부디 당신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집은 비록 작고 가진 것이 없어도 아이의 마음 속에는 커다란 운동장을 만들어 주자. 1+1=2라는 단순한 공식 너머의 진실을, 당신과 내 마음을 합치면 온 우주가 된다는 믿음을 아이에게 보여주자. 가진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이 있음을 당신과 내가 보여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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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이 근심거리라고 말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 보도를 접하는 농부들의 마음이 가장 씁쓸할 것이다. 근심거리까지는 아니지만, 풍년이 예전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지금의 딜레마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의 하나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쌀은 그 가치가 예전 같지 않다. 발전된 농업 기술로 쌀 생산량이 대폭 증가한 것도 이유겠지만, 쌀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바다 건너 들어오면서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30년 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남는 쌀에 대한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정부는 일단 햅쌀이 나와 쌀값이 폭락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우선 40~50만톤을 사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재고 쌀 149만톤 가운데 비축분으로 100만톤을 뺀 나머지는 가공용으로 처분키로 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북한에 대한 쌀 지원 문제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서는 현재의 남북 경색 국면을 타계할 수 있는 계기로서 대북 쌀 지원을 조심스럽게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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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북한의 사정은 어떨까. 당장 쌀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북한은 지금 절박한 상황일까? 이 에 대해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세계식량기구의 평양사무소 토벤 두에 소장은 유보적인 입장이다. 그는 북한 신의주 지역의 홍수와 관련, “잠정 집계에 의하면 북한 주민 2만3천명이 대피했다”면서도 “아마도 북한 정부가 수해를 자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수해지역의 농작물 피해는 매우 심각하지만 전국적으로 (피해지역이) 좁기 때문에 영향은 제한적”이라고는 것이다. 그는 이어 올해 식량 수확과 관련해서는 “9월 작황 상태를 평가할 예정이고 그것이 끝나봐야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지원이 정권 유지에 악용된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세계식량기구를 통한 식량 지원은 군부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다”며 “우리는 훌륭한 분배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토벤 두에 소장의 말을 요약하면 북한의 올해 수해는 그다지 심각한 상황은 아니며, 농작물 피해는 좀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또 북한의 지금의 식량난은 2006~2007년의 수해 때에 비하면 견딜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한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결핍에 시달리고 있어서 세계 식량 기구에서도 평양 사무소를 두고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다.


북한의 상황이 예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나 기아에 따른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8년 9월,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식량 지원을 정치적 사안과 분리하여 추진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그 권고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2006년 ‘북한 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본 입장’에서도 천명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 인권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사업은 정치적 사안과 분리하여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쌀이 남아돌아 일부 쌀은 사료용으로 전환을 추진하는 한국 사회에서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베풀 쌀에 대해 인색하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엔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ICESCR) 제11조는 “모든 사람은 배고픔에서 자유로울 기본적 권리가 있으며 적절한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웃 주민의 굶주림에 아파하며 이웃을 돕는 시민의 인간적 존엄성이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예전 보릿고개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반도 북쪽의 주민들의 기아 상황에 대해 아무 대책도 없다면 이는 또 다른 인권침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남북관계 상황, 북한의 전반적인 식량 상황, 쌀 지원 문제에 대한 국민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언론에서는 민간차원의 대북 쌀 지원은 허용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한다.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간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 앞으로가 문제인 것 같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수호하는 일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싸움 중의 하나다. 지구에 인류가 그 역사를 써 온 이후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부여한 존엄성이며, 우리가 수호하며 지켜왔기 때문에 가능한 가치였다. 남북관계 역시 쌀 지원 등 인도적 지원을 통한 관계 회복의 노력이 긴장 상태를 해소하고 다가올 미래의 통일 한국이 보다 인권적인 사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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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가 춤을 추듯이 온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을 여니 반갑다고 바짓가랑이에 달려 든다.
함께 춤을 출까 하다가 집에 갈길이 걱정됐다.
이래저래 소심한 마음은 쏟아지는 장대비를 카메라에 담는 걸로 위안한다.

사진첩을 보다가 우연히 지난 겨울 옥상에 눈이 쌓인 모습을 담은 게 발견됐다.
이렇게 눈이 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얼마 안있어 9월이다.
세월 참 빨리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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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여승무원 승소 소식을 접하고서...


처음에 그들은 그야말로 빛나는 존재였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찬사도 들었다. 입사도 쉽지 않았다. 적게는 13대 1, 많게는 135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했다. 시속 300km의 거침없는 속도처럼 내달릴 인생을 꿈꾸었을 것이다. KTX 홍보 광고에도 단연 돋보였다. 그들을 선발할 때 철도공사 임원이 배석하여 키와 용모, 나이 등을 따져가면서 사람들을 선발했다. 선발된 이후에도 교육과 업무 지시, 감독 및 평가, 대외 홍보활동에까지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철도공사의 직원과 다름없이 활동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철도공사 직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외주와 도급을 거쳐 그들은 비정규 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그들은 거리로 나섰고 언론은 키 크고 예쁜 젊은 여성들의 거리 집회에 반짝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지난 27일 서울중앙지법은 이들이 사실상 한국철도공사(KTX)의 실질적인 정규직 근로자이며 철도공사는 이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관련 기사 : “해고된 KTX 승무원들, 철도공사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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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간을 돌려 2006년으로 가보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2월에 KTX여승무원 관련 진정 2건을 받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여성에 대한 고용차별이라는, 아직은 우리 사회에 생소한 사안에 대한 조사는 쉽지 않았다. 처음 사건을 배당받았던 조사관은 월간 <인권>(2006년 11월호)에 이렇게 밝혔다.


“처음 사건을 배당받고 든 암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본질적인 비정규직 문제임에 분명하지만 법망에 걸리지 않는 간접고용 사건인 것이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이던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은 성차별을 주장해 정규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KTX 여승무원들은 그토록 열심히 싸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관련 기사 가기


지난한 과정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9월 KTX 여승무원에 대해 성별을 이유로 하는 고용 차별이라며 한국철도공사에 시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권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관련 보도자료 가기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적한 차별의 내용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고용 차별이 어떤 편견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4년이 지난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 문제다. KTX여승무원 채용 과정에서 한국철도공사는 ‘서비스 업무에 적합한 용모의 여성’을 채용 조건으로 내세웠고, 신입직원의 경우 21세부터 25세까지로 나이를 제한하였으며, 162cm 이상을 신장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업무에 있어 신장과 나이의 제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어떠한 논리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남성 중심 사회의 차별적이고 일방적인 시선만이 존재했다. 게다가 이는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용모, 키 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을 채용기준으로 제시하거나 요구하는 것을 금지)을 위반한 것이다.


다음은 ‘성차별에 근거한 분리 채용’의 내용이다. KTX승무원의 역할은 방송 시스템 취급, 승강문 취급 및 이례적인 사항 발생 시 조치 등 본질적인 업무 대부분을 수행하는데, 이 중 고객서비스 업무만을 단순 반복적인 업무로 보아 여성 승무원에게 전담시킴으로서 저임금과 고용 차별을 정당화했다.


이 문제는 여성의 일을 평가절하 하는 성차별적 편견에서 비롯됐다. 현대 사회는 여성을 사회적 노동 시장에 끌어들이면서도 여성의 노동을 공짜로 제공되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보았다. 누군가를 보살피고(고객서비스, 돌봄, 간병 등), 청소하고, 요리하는 일에 대해 저평가하여 저임금을 지급하고, 외주나 도급화 등을 통해 차별하는 사례는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다. KTX여승무원 사례는 승무원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업무를 모두 배제시키고 그중 돌봄의 영역(고객서비스)으로 축소하여 저임금 계약직으로 비정규직화 해 차별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철도공사가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이들에 대한 차별적 고용을 시정하는 한편, 오랜 세월 우리 사회의 차별에 가슴 아파했을 KTX여승무원들을 보듬어 안아야 할 것이다.





위 글은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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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모래 속에 갇혔다. 아니 그는 납치 감금됐다. 그리고 거기서 하는 일이란 하루 종일 모래를 퍼담아 올리는 강제노역이다. 그 옆에는 그 전부터 모래를 퍼 담는 일을 해온 여자가 있다. 여자는 물론 감시원이 아니다. 남자를 반겨하며 함께 일할 동료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갇힌 것도 억울한데, 이런 여자의 반쪽 역할을 해야 한다니 남자는 기가 막힐 법하겠다. 그래서 남자는 호시탐탐 모래 밖으로 나가는 계략을 꾸민다. 계략으로 꾸민다는 게 고작 꽤병부리기 ,거짓말하기, 여자 괴롭히기가 다다. 유치하고 치졸하기가 그지없다. 아무튼 그는 안해 본 게 없다. 그러다가 딱 한 번 모래 구덩이를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얼마 못가 잡히고 말았다. 잡히는 꼴도 우습게 되고 말았다. 모래늪에 빠져 죽기 직전인 상황이 되어 추격자들에게 살려달라 구걸하면서 잡힌 것이다. 물론 그 다음 질질 끌려 다시 처음의 그 구덩이에 버려졌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었다.

원래 그가 이 마을에 찾아온 동기는 단순한 취미 생활에서 비롯됐다. 그는 모래에서 산다는 희귀한 벌레를 잡겠다고 귀한 휴가를 내어 바닷가 오지 마을을 찾아온 학교 선생에 불과하다. 그에게 작은 욕심이 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모래 속 벌레를 찾아내어 이름을 떨친다는 것. 그러나 그는 묘한 음모에 빠져 들어 하루종일 끈적한 모래 속에서 살아야 하는 지옥같은 일상에 갇히고 만 것이다.

모래의 여자 - 6점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는 그에게 닥친 이 지루한 노동(모래 퍼담아 올리는 일)은 처음에는 살인 충동까지 불러올 정도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일하는 여자와 정분이 나고 여자는 임신까지 한다. 도망가겠다는 생각을 버린 것은 아니라면서 이 여자와 라디오를 사겠다는 작은 꿈도 키운다. 결국 켜켜이 쌓이는 일상이 모래만큼 무겁게 삶을 덮쳐왔던 것이다. 일하지 않으면 모래에 파묻혀 버리는 모래구덩이처럼 우리의 일상도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시간의 모래폭풍 속에 파묻혀 버릴 것이라는 경고일까.
아니면 본질을 잃어버린 노동의 무의미함에 대한 통렬한 경고일까. 흠, 그래 꿈보다 해몽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많은 모래들은 어디로 갔을까? 가만 보니 남자가 갇힌 그 동네는 모두가 이 모래로 먹고 사는 동네인 듯한데, 그렇게 퍼담은 모래가 어디로 갔을까? 그러고 보니 남한 땅 곳곳에서도 모래를 퍼담아 나르는 일이 한참이구나. 물론 바닷가가 아니라 강속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모래는 모래인데 이 남자나 저 청기와 밑에서 골 때리고 있을 그 남자나 삽질하는 것은 어찌 그리 똑같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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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 책과 아무 관계가 없지만 굳이 관계를 찾는다면 힌트는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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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 살기 힘든 인간에게 500년, 1000년의 시간은 영원과 동의어다. 큰 산에는 천년을 살아온 주목이 있고, 오랜 사찰이나 향교에는 그곳의 역사만큼 살아온 은행나무가 있다. 시골의 동네 어귀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그곳을 떠났던 사람들의 추억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 은행나무는 도심 길거리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다. 예전에 플라타너스가 주종을 이루던 가로수를 얼마전부터 은행나무로 교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나무가 산에서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아마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나무는 우리 땅에서 스스로 싹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은행나무들은 어떻게 자라서 도심의 길가를 채우고 있는 것일까. 얕은 지식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은행나무는 중생대부터 지구상에서 살아와 지금까지 유전자를 이어오고 있다. 이 때문에 다윈은 은행나무를 들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렀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11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의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도 있고, 의상대사의 지팡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느 것이든 천년의 세월에서 비롯된 가상의 이야기겠지만, 나무가 살아온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성균관대의 명륜당에 있는 은행나무는 그보다 못하지만 500년에 가까운 수령을 보인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대개 사찰이나 사당에 많이 심어진 것들이 많은데, 명륜당의 은행나무도 마찬가지다. 명륜당 앞마당에서는 종종 전통혼례식이 열린다. 내가 찾아간 이날도 지인의 전통결혼식이 있었다. 5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 아래에서 인간은 백년해로의 의식을 거행한다. 은행나무의 기운이 그들을 축복했을 것이다.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후배 박선영 양. 오랜 인연과 드디어 결혼을 올렸다. 신랑이 전통결혼식을 고집했다고 하는데, 그 이 역시 싫지는 않았나 보다. 그에게 전통 혼례복은 아주 잘 어울렸다.



식전 신랑 신부가 전통 혼례복을 입고 명륜관 마당 여기저기서 기념촬영을 했다. 거기에 나도 끼어서 사진을 찍었다.



신랑은 시종일관 땀을 흘렸다. 그야말로 육수가 뚝뚝 떨어진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래도 싱글벙글. 신부의 언니가 동생의 신랑 땀까지 손수 닦아주신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겠지만, 무엇보다 주목 받는 건 역시 신부. 온갖 카메라 세례를 받는다. 아무래도 쉽게 접하기 힘든 전통 결혼식이라서 그런지 저마다의 카메라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지. 전통 혼례에서 신부는 얼굴 가리는 게 꽤나 중요했나 본데, 요새 신부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술은 정말 잘 마셨는데 말이죠. 그쵸?



덕담도 듣고...




신랑 저러다 쓰러지는 줄 알았다. 땀흘리는 모습.




신랑신부도, 하객도 모두 무더위 보다 뜨거운 사랑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그 둘을 지그시 지켜보던 은행나무의 보살핌으로 부디 백년해로 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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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SNS)의 첨병으로서 페이스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트위터가 한창 그 주가를 올리고 있다. 나름 초기 사용자이지만 여전히 그다지 활동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 트위터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옆에서 보아온 트위터의 위력은 만만치 않다는 게 사실이다. 그 소식의 전파 속도나 이야기의 질, 그리고 글 내용의 청정성, 다양한 글 추천 등은 여타 인터넷 게시판의 글들보다 수준이 높다.

어쩌다 보니 여기서 옛 지인들도 만나게 된다. 대학 동문들끼리 트위터에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다지 새롭지 않다. 새로운 이야기들보다는 옛날 이야기들, 혹은 공통된 사람들의 현재 근황, 자기 이야기 등등





따지고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들인데, 술병은 켜켜이 쌓여간다. 낯설지 않은 분위기 편안한 담론들, 지루하지 않게 넘어가는 술잔들 사이에 옛정이 새록새록 스며들었다. 그래서 꽤나 마셨나 보다. 딱히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고민도 없었지만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달렸고, 술이라도 잠시 깨보자고 달려간 노래방에서는 픽 쓰러져 잠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은 온몸의 뼈와 근육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내장은 고통에 겨워 신음하며 머릿속은 지옥의 아수라장처럼 어지럽기만 했어도 되돌아보면 그 인연들이 다들 기쁘고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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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다.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태양은 나를 향해 비추며, 바람마저 내 귀밑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준다. 새들의 노랫소리도 나를 축복하고 꽃들도 내 아름다움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그런 날들. 내 사랑과 열정이 넘쳐나던 젊은 날을 떠올릴 수 있고,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니거나 산골짜기를 오르내리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이도 있겠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전직 군인이었던 한 여성은 구금자들 앞에서 찍은 사진을 내 보이며 “내 삶의 최고의 날”이라고 했다. 그이에게는 군대에 있던 젊은 날이 국가를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하며 내적, 외적 아름다움을 이루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관련 기사: 이스라엘 여군 “내 최고의 날” 페이스북 사진 인권침해 논란



그러나 아름다운 삶은 지금 있는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그 사진은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온 정신적 문명이 망가지는 장면을 담은 것일 뿐이다. 눈이 가려지고 손목이 묶인 수감자들의 심정을 생각하지 않은 것, 타인의 고통과 수치심, 절망감에 대해서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을 그저 사진 속 배경에 처리해 버린 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것이다.


윌리엄 아서 워드는 “언젠가 우리는 모두 생활(수준)의 기준이 아니라 삶의 기준으로, 부(가진 것)의 척도가 아니라 나눔의 척도로, 표면적인 위대함이 아니라 내면적인 선함으로 평가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개인마다 생각하는 최고의 날로 다시 돌아가 보자. 과연 그 최고의 날은 생활수준의 기준으로 잡았던 것일까? 부의 척도로 재단했던 것일까? 아니다, 내면적인 선함, 인간성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다가오는 8월 22일은 역사적인 제네바 협약이 맺어진 날이었다. 1864년 8월 22일 제네바에서는 전쟁에서 군대 부상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협약을 맺는 것으로 출발해 지금은 전시에서의 민간인 보호에 관한 조항까지 전쟁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인류의 약속으로 자리매김했다. 제네바 협약의 정신은 치열한 전쟁 상황에서도 야만적인 상황을 멈추게 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여성이 놓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사진은 ‘내 삶의 최고의 날’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누구에게 분명 ‘내 삶의 최악의 날’이 되는 사진이다. 우리 스스로 인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배울 수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과 갈등의 배경이 저 사진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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