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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또다시 셀프스튜디오에서 돌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많이 나왔지요. 그래도 아기들에게는 참 힘든 일입니다. 옷을 여러번 갈아입히고, 엄마 아빠는 저만치서 이상한 행동하고 안아주지도 않죠. 시간은 자꾸 지나가고, 번쩍번쩍 눈부신 빛이 터지고... 그렇게 2시간을 보냈는데, 참 힘들게 찍었지요.

여기서 나온 사진으로 민서엄마가 돌잔치 초대장을 만들었다. 역시 엄마의 센스가 아빠보다 일만배는 뛰어나다.





다음은 그날의 사진들 중에서 일부만 옮겨 와서 보여드립니다. 제가 뽑은 베스트는 아무래도 민서 엉덩이 사진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 귀엽지 않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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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지인분들께 돌잔치 초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애초 돌잔치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고생시키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안한다고 했다가

주위 어르신들의 강권도 있고 아내의 바램도 있어서 결국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주변에서 우리 딸의 건강을 염려하고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이 있고,
또 여러 방면으로 도움 주신 분들이 많은데, 따로 인사드릴 기회도 없었다는 생각에
이렇게 무리한 일정이나마 잡아보고 인사드리고자 하게 됐습니다.
늦게나마 이런 자리를 통해 인사드리게 된 점 죄송스럽습니다.

연말이라서 많은 연말 모임이 잡히고,
또 세상이 어수선하다보니 주말 같은 때는
가족과 오붓하게 지내는 시간이 훨씬 좋다고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그러다보니, 토요일 저녁 너무 어려운 걸음 하시는 분들에게는 또한번 죄송스럽게 됐네요.

아무튼 강민서 돌잔치 합니다.

축하를 받기 보다 감사하는 자리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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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초대 이메일의 내용이었습니다.
자세한 시간과 장소가 궁금하신 분은 메일 또는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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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돌잔치에 초대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2.02kg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엄마랑 헤어져 인큐베이터에서 스무날을 보내야 했던
그 아이가 어느덧 1년의 생을 넘기고 있네요.
그동안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주었습니다.
꼬물꼬물 거리며 바닥에서 버둥거릴 때만 해도 언제 커서 제 발로 걸을까 걱정했는데,
어느덧 혼자 일어서 걸음마를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세월의 치유력을 실감합니다.

돌잔치라는 게 아이 생일 잔치인데, 그 주인공인 아이는 피곤하고 힘든 과정이라 생략할까 했지만,
이렇듯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이 아이에게 크나큰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셨던 것이며,
더불어 이 세상의 모든 삶의 의지가 한 아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큰 힘이 되어 주었다는 생각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자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화려하고 비범한 자리를 만들 능력은 없어서
사회 일반에서 행하고 있는 이벤트성 돌잔치를 열게 됐습니다.
엄마아빠의 부족한 능력을 탓하시는 말씀은 새겨 듣겠습니다만,
저희 딸의 건강과 안녕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따로 전화 연락을 드리지 못함은
따로이 잡고 계신 좋은 주말 약속을 저희의 미천한 행사에 참석하느라 놓치실까 두려워함이니,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강대진의 민서 크는 이야기: 블로그 링크
하미라의 민서 크는 이야기: 블로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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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단풍이 한창인 계절에는 주말에 차를 끌고 여행을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운전 미숙도 있겠지만, 아기가 장시간 차안에 갇혀 있는 일은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 가까운 양평을 다녀오면서도 오는 길에는 길치의 고통을 톡톡히 치루어야 했었기에 더더욱 주말 여행은 겁이 난다. 그렇다고 이 좋은 가을날 집에만 있는 것도 한번 주어진 삶에 대한 불성실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나들이를 나섰다. 덕수궁과 정동길, 광화문 광장까지 둘러보는 이른바, 가을맞이 서울 단풍 트레킹.











민서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날 하루 민서가 웃고 즐기며 흥분하는 모습은 더불어 어른들도 즐겁게 한다. 꽃과 비둘기, 낙엽과 많은 사람들의 모습. 즐겁고 행복한 주말의 고궁 나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평범하고 즐거운 나들이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삶의 의미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때라고 하던가. 아이가 생기면서 매 순간 그런 느낌들이 심장을 두드린다. 더불어 별 것 아니던 내 삶도 더 살아야 할 가치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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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달력을 한 부를 샀다.
내년에는 부디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인 차별이 없애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하루에도 백번씩 나는 나의 삶이, 살아있는 혹은 죽은 사람의 노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되새긴다. 그리고 받은 것 만큼 되돌려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만 하는가를 스스로 일깨운다."

우리는 단 하루 한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상은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배웠으면서도 이 세상의 어두운 곳을 비추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돌리곤 한다. 내 지금의 안락이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 삶도 그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여기 최소한의 변화를 원하는 작가들의 카메라가 일을 벌였다. 무한도전의 달력 보다 재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사진 안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들은 아닐 것이다. 토요일 저녁을 즐겁게 해주는 무한도전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으며, 무엇에 빚지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사진들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존재 가치가 있다.

2011년 달력이 다 끝나기 전까지 우리 사회의 차별과 반인권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부디 작은 혹은 최소한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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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만났을까. 인연이라는 것은 뜻하지 않게 다가오는 우연성 때문에 종종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운명은 길 위에서 시작된다. 삶이라는 것은 누구나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길 위에서 종종 길을 묻곤 한다. 어디로 가는 길일까. 어디로 가야 할까. 이 길이 옳게, 바르게 가는 것일까.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평생의 반려자로, 그리고 동행자로 만난 그이와의 사랑에 또 하나의 작은 생명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사람을 얻는 것만큼 부유해지는 것은 없다. 그것이 결혼이든 출산이든, 사람만한 재산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많아지면 그만큼 부자유스러워진다. 인생에서 들고 다닐 수 있는 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얻었을 때, 그것이 크고 위대할수록 버려야 할 것도 크고 무거운 것들이 되기 마련이다. 물론 처음에는 스스로 버틸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결국은 깨닫는다. 버리는 것이 얻는 것보다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문학의 길을 가기 위해 의사의 길을 버렸고, 대화가 반 고흐는 목사의 길을 포기하고 가난한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버리지 않고 다 가지려는 욕심이 사람과 세상을 망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래된 친구와의 연락도 줄어들고, 슬픔을 달래주던 술친구도 없어지며, 내 고민을 들어주던 담배도 끊고, 식도락 여행 대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술이나 담배, 음식은 차라리 쉽다. 어려운 것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소홀해지는 것이다. 관계에서도 금단 증상은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중했던 것을 버리고 포기하면서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간다.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버리면서 나눔의 삶을 생각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의 가치는 소유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써 더 커진다는 진리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겉으로 나누는 사람들은 결코 소중함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버리지 않고서는 나눔의 가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꽃은 져야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모든 꽃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화려한 과거는 있다. 열매 맺지 못했다고 꽃이 아니겠는가. 인생에서 삶의 의미는 살아 있는 경험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에 있다. 얻고 버리고 나누는 삶의 모습은 그것 하나로 완전한 삶의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꽃으로 비유하자면 우리는 살아 있는 지금이 바로 화려하게 개화하고 있는 순간이다. 길게 피는 꽃이 100일을 가듯이, 우리네 삶도 길면 100년 동안 이어진다. 살아 있는 경험을 하기에는 충분하고 넉넉한 시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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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우연히 누군가의 포스팅에서 본 잉크 색깔. '남쪽 바다 파랑' 영어로는 'South Sea Blue'
이름이 때깔처럼 참 곱더라. 그래서 부랴부랴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잉크로 써 본 시.
나희덕의 '귀뚜라미'.
남쪽 바다 빛깔의 파란색으로 어두운 콘크리트 벽 속에 갇혀 노래 부르는 귀뚜라미를 불러냈다.
마음까지 지중해 바다에 떠 있는 듯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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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이 생각보다 연하다. 그러나 연한 것만큼 부드럽다.
검정색 잉크만 쓰다가 새로운 잉크를 쓰니 마음이 부자가 되었다.
내 글씨는 못났다. 다행히 보호색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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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맞다. 우리 내외와 민서, 그리고 부모님까지 모시고 나선 가을 나들이로 선택한 장소는 소요산. 가을 단풍이 설악산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 단풍 보기가 쉽던가. 게다가 전철까지 소요산역이 생긴 마당에 단풍으로 유명한 소요산이 그리 여유로운 풍경을 보여주리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그 넓은 소요산 주차장에 차 댈 곳이 없어서 다시 바깥 도로변에 주차할 때까지만 해도 괜히 왔다 싶었다.



원래 일정은 자재암까지만 가는 것이었기에 큰 무리는 없겠다 싶었는데, 사람들의 물결을 보니 숨이 턱막혀왔다. 사람 구경에 신난 민서는 자신만의 탄성을 연일 내지르지만 이 인파의 물결 속을 헤치며 자재암까지 오를 생각을 하니 좀 걱정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입구에 국화전시회장은 볼만했다. 아직 많은 국화들이 만개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활짝 핀 국화꽃들 앞에서 연신 셔터기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아침을 일찍 드신 부모님을 위해 먼저 식당부터 잡았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12월에 치를 돌잔치 이야기며, 부모님 건강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 아버지 치과 치료에 대한 잔소리. 아버지는 그동안 잘 참아오시던 담배를 다시 태우시기 시작했다. 치과에서는 절대 금연을 강조해 오던 터라 성과 없는 잔소리를 해야했다. 나이들면 늘어나는 게 잔소리라는 말이 딱 나를 두고 한 말일까. 내가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알았다"하면서도 건성으로 듣고 넘어가신다. 한번 더 다짐을 받으려 재차 말을 하니, "이번 것만 다 피면 안핀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짐작 할 수 있는 건 쉽게 못 끊으실 것이며 재차 담배를 입에 물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잔소리'라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어떤 감명도 깨달음도 변화의 다짐도 얻을 수 없는 소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나의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그것은 '잔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어렵다. '진심'이 없는 게 아니라 표현의 방법이 문제일 것이다.



어머니는 매번 함께 외식을 할 경우 당신께서 계산을 하시겠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아이 키우면서 살기 어려울 테고 시부모와 함께 여행 다니는 게 어려울 테니 당신께서 내시겠다는 마음이겠지만... 아버지에게 시집 온 이후 아들 둘을 키우면서 제주도도 못 가보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날의 소소한 외출은 턱없이 부족하다. 언젠가 제주도 여행을 함께 가겠다는 마음은 몇년전부터 생각하던 것이지만 이제 내 가족이 생기고 나니 그도 역시 쉬운 게 아닌 일이 되었다. 역시 마음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이런 것이리라.




가족은 연민의 무덤이다. 끝없는 연민 속에서도 그 끝에 닿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다. 누군가가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라고 하지만, 가족에 대한 연민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질되지도 않으면서 끈질기게 다가와 마음을 태운다. 이런 연민은 행동하지 않으면 그저 마음의 속살만 썩게 한다. 오랜 세월 속에서 시들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은 연민의 무덤이며 그 끝인 것이다.

연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떨까. 구체적인 행동이 더 나아진 미래를 보장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연민은 더 나쁘다. 그것은 연민의 주체나 객체 모두에게 나쁜 것이다.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창조적 주체가 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매일 얼굴을 대면하는 가족에게서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옳다. 여행도 그런 발견을 촉진시켜 줄 수 있는 좋은 도구다.

이날 소요산 여행은 울긋불긋 단풍잎으로 보면서, 자재암까지 다녀온 일정으로 무사히 마쳤다. 여전히 나는 많이 부족한데 부모님은 빨리 늙어가신다.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하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10월 마지막주는 처형댁 식구들과의 여행이 잡혔다. 이 여행이 닫혀 있는 연민의 그늘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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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창립기념일이라고 한강 유람선 선상 파티를 열었다. 임원들이야 회사가 너희들을 위해 해주는 연회니 즐겁게 놀고 먹으라고 생색냈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모두  열심히 야근과 특근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하는 행사다. 추석 때 선물로 김 한 장도 안주는 회사가 도대체 어디서 비용이 나와서 한 사람 앞에 5만원 이상 들어간다는 이런 화려한 선상파티를 열었을까? 결국은 의지와 생각의 문제다. 그리고 돈이 없다는 말은 생판 거짓말일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한푼이 아까워서라도 나 나름대로 즐겁게 놀고 마시겠다고 다짐했다.

기본적으로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그 피와 땀의 결과가 나의 의도대로 쓰이진 않는다. 이번 선상파티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주어진 상황과 조건을 비관해봤자 인생만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가까이에서 함께 피와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서로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는 자리로 만드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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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반포대교 분수쇼만 올렸지만 많은 사람들의 얼굴얼굴을 담아보았다. 여기저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웃음 띤 얼굴을 담아보려 한 것이었다. 이것도 한때라, 어찌됐든 고생하는 동료들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미래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고, 상황은 갈수록 궁지로 몰리고, 사회는 우리를 배터리 취급하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 서로에게는 밝게 웃어주며 살아가자.



결론적으로 마음껏 배불리 먹고 취하지는 못했다.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삶은 저렇게 묵묵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잃어버리고 흘려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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