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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이제 됐어?"


끊임없이 홀로 전장터로 내몰리는 전사의 비애였을 것이다. 수없이 무찌르고 베어냈지만 여전히 몰려드는 검투사들, 끝나지 않을 원형경기장의 전투. 그렇게 원형경기장의 중앙에 우뚝 섰지만, 저 시체들 너머 더 큰경기장에서 더 잔인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누군가가 알려줬을 것이다. 아니, 이미 중앙에 올랐을 때 그는 알았을 것이다. 나는 누구를 쓰러뜨리고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내 자리를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다른 검투사들과의 싸움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이 피의 비는 언제 그칠 것인가.

사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경쟁 사회에 익숙해져갔다. 다행히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더 강한 자라고 자위하고 있다. 사실 원형경기장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대학을 나와서도, 직장에 다니면서도, 그 치열한 전투의 트라우마는 번번이 삶의 한가운데서 불쑥 불쑥 고개를 내밀기 일쑤다. 그렇게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며 끝나지 않은 전투를 벌이고 있다. 더 큰 원형경기장에서 더 큰 어른들과 벌이는 전투는 그저 성적표의 성적이 좀 떨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삶을 뭉텅이로 도려내고 나락으로 처박아 버릴 수 있는 잔인한 싸움이다.





어쩌면 그 아이는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됐어?"와 "이제 됐어!" 그가 마지막에 썼다는 그 물음표는 오히려 느낌표 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금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극렬히 저항하고 있다. 그네들이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은 철저히 막혀 있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인 자살로 내몰리고 있다. 절규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 안에서라도 아이들이 숨쉴 수 있게 하자는 것을 이념 갈등으로 치부하는 저 몰지각한 어른들에게 우리 아이들의 절규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이 잔인하고 비열한 전투는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단지 몇몇 한줌도 안되는 승자, 그것도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 등극한 승자들을 위한 요식행위에 동원되는 그저그런 사람들을 피할 수 없는 패배자, 루저의 나락으로 내볼고 있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꿈꿀 수 있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교육, 그것은 원형경기장의 담장을 허물어 버리는 시작이다.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구하고 미래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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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한 사회 노회한 조직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다니는 회사는 나이를 참 많이 먹었구나 싶다. 물론 회사가 45년이나 되었으니 사람으로 쳐도 중년을 달리고 있는 셈이지만 가끔 보면 그 이상의 연배를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있을 때 손쉽게 지위와 나이를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경향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회사의 행동을 보면 45세가 아닌 60대 후반일 것 같은 고루함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나이 듦에서 오는 신중함과 엄격함이 긍정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시대에 뒤쳐지는 프로세스나 시스템, 직원 복지 정책이나 회사 비전 등은 동종 업계 그 어떤 회사보다 노후화 되어 있는 회사가 아닌가 의심할 때가 많다.

2주 전부터 회사 워크숍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워크숍이라고 해서 어떤 중요한 이슈나 주제를 가지고 심층 토론이나 회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구성원끼리 하루 잘 놀고 먹고 잘 수 있는 장소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문제는 회사는 모르는 비공식 워크숍이라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회사는 팀별 워크숍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전 워크숍도 마치 007작전 수행하듯 몰래 회사를 빠져나가 개별적 혹은 조별로 해당 장소에 찾아가도록 지시를 받기 일수다. 그러니 지원금 등은 애초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은 팽배했다. 워크숍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한 몇달 전부터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는 워크숍은 절대 갈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상 회식도 아니고 토요일 오전까지 헌납해야 하는 워크숍에서 금요일 저녁 출발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다. 사실상 저녁에 출발해 술이나 마시고 놀다가 뻗어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돌아오는 그야말로 별 무의미한 일정만 소화하는 일에 사람들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팀별 워크숍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긍정적 효과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한푼도 지원하지 않는 우리 회사에 대한 반발, 조직의 고루함도 사람들의 불만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는 팀장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다.



▲ 지난 해 영종도 워크숍의 한 장면



하지만 여기에는 조직원들 사이의 오묘한 이해관계의 대립도 없지 않다. 각각의 담당자들이 각자의 일을 수행하면서 겪는 상급자와의 오랜 갈등, 각 담당자들 간의 갈등, 조직원들간의 묘한 오해 또는 서먹함 등이 두껍게 쌓여 있다 보니 조직원들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해 보려는 노력이 가치를 바랬다. 물론 1박2일 화려한 워크숍이 오래 쌓인 갈등의 때를 한번에 벗겨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속내를 편안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는 프로그램과 그것을 지원하는 회사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주 오래된 가치, 다양성의 회복                          


이렇게 부정적 분위기가 가득한 상황에서 워크숍을 준비하는 명을 받았으니 나로서는 곤혹스럽기만 했다. 윗사람에게는 금요일 일찍 출발하는 워크숍 일정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고 직원들에게는 부정적인 워크숍 인식을 긍정적 인식과 기대로 바꿔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구글 문서를 이용한 설문조사였다. 설문조사를 통해 직원 일반의 워크숍에 대한 인식을 윗사람들이 그대로 받아 안아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여 워크숍에서는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총 3차례에 걸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오히려 상처를 덧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과정도 부실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결국 1박 2일 워크숍은 무산되고 대신 금요일 저녁의 바비큐 파티로 진행할 예정이다. 워낙에 다양한 개성과 업무로 어우러진 팀이라서 하나로 통일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굳이 통일하기 보다는 서로의 이해를 요청하고 최대한 모두가 편안한 일정으로 잡아보려 하였다. 무엇보다 술자리 외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일정이었다.

다양성은 조직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힘들고 답답한 좁은 문처럼 보이지만, 그 문이 제대로 열린다면 누구나 오갈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큰 문이 될 수 있다. 그러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서 다양성을 버린다면 그건 윗사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이 반복됨을 의미한다. 동료 직원이 수시로 바뀌는 것은 그만큼 일의 편차가 커짐을 의미하고 조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자연히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퇴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다양성에 대해 폭넓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진행되는 워크숍(야유회)가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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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주중 방문자 수는 170명 내외. 주말에는 방문자수가 급감하는 경향인 내 블로그가 지난 일요일 방문자수 187명이라는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하더니 어제는 또 293명이나 내 블로그를 방문했다. 갑작스럽게 방문자수가 늘어난 원인을 찾기 위해 유입 URL를 보는데, 딱히 유입되는 곳이 일정치 않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검색을 통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여느 때와 다른 점은 ‘자전거 여행’이라는 검색 키워드가 유별나게 많다는 점이다.


추측컨대 아마도 지난 일요일 강호동의 1박2일이 옥천 자전거 여행을 다룬 것 때문일 것이다. 내 블로그가 자전거 여행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만큼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전거 여행 이야기가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여행을 검색한 것으로 보인다.


TV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TV예능 프로그램의 하나인 강호동의 1박 2일에 소개되는 여행지는 곧바로 포털 검색 순위에 오르며 한동안 여행객들이 몰려들어 홍역을 앓을 정도라고 하니, ‘자전거 여행’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는 내 블로그 역시 그 여파를 받은 셈이다.


그렇지만 자전거 여행은 그다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수많은 도전에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여행에 가깝다. 만일 1박2일의 김종민이 실제로 하루 70km를 주행해야 한다면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도로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나면 시간당 15km의 주행 속도로 8시간 주행의 원칙을 잘 준수할 것을 당부한다. 그러지 않고 무리한 계획을 세운다면 반드시 낭패를 보고 말 것이다.




실제로 자전거 여행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 안전대책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기본적인 도로교통법은 숙지하고, 다리 위나 터널 등 위험한 코스에 대해서는 대책을 우회로나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더군다나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라면 여행 짐 꾸리는 것부터가 큰 일이다. 무엇보다 자전거여행 경험자들이나 자전거 여행 서적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사전에 접해 두는 게 좋다.


아래는 내 블로그에 올려진 다양한 자전거 여행 팁과 관련된 정보들이다. 이 밖에도 틈틈이 올린 글들이 꽤 되지만 우선은 이 정도로 정리해 보았다.


가볼만한 자전거 여행 코스

  도로교통법과 자전거

도로 주행 요령

우리나라 국도 정보 1

우리나라 국도 정보 2

여행의 실질적인 준비

마음가짐 되새기기

자전거를 대중교통에 싣기

우천에 대한 대비

자전거 여행 중 당할 수 있는 부상1

자전거 여행 중 당할 수 있는 부상2


이밖에 자전거 전국 일주의 경험담이 내 블로그에는 담겨 있다. 일부 정보는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자전거 전국 일주는 사실 무모하게 출발한 여행을 자랑하는 것 같아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이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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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를 만나다                                




지난 토요일은 아내의 친한 동생네 돌잔치에 다녀왔습니다. 멀리 남양주에서 열리는 돌잔치라서 이왕 나서는 길, 가족 나들이 계획까지 세웠더랬죠. 아침 일찍 나와서 쁘띠프랑스를 둘러보고 청평휴양림에서 산림욕을 즐긴 후 마석공원 미술관에 들렀다가 저녁 6시에 있을 돌잔치에 참여하자는 거창한 계획은 때아닌 장마 소식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대신 쁘띠프랑스만 둘러보고 돌잔치에 다녀왔지요.

쁘띠프랑스는 입장료가 대인 8,000원이었는데, 그 가격만큼 볼만한 게 있었는지는 회의적입니다. 여기저기 다채로운 행사를 하던데, 아기를 안고 다니기에는 사실상 어렵더군요. 그래도 좀 큰 아이들은 신나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소설 <어린왕자>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잃어버린 순수의 세계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텍쥐페리의 이상이 <어린왕자>에 드러나 있죠.

어린왕자는 장미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 갔다.
그는 꽃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 조금도 닮은 데가 없어.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누구 하나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도 누구 하나 길들이지 않았어. 옛날엔 내 여우가 꼭 너희들같았지. 세상에 흔해 빠진 여우들과 뭐 다를 데 없는 여우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았지. 그러나 내가 친구로 삼았고 이젠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됐어."
그 말에 장미꽃들은 몹시 난처했다.
어린왕자는 말을 계속했다.
"너희들은 아름다워. 그러나 너희들은 비어있어.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는 없는거야. 물론 나의 꽃인 내 장미꽃도 멋모르는 행인은 너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꺼야. 그러나 그 꽃 하나만으로도 너희들 전부보다 더 소중해. 내가 물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유리덮개를 씌워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바람막이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벌레를 잡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나비가 되라고 두 세 마리는 남겨 놓았지만) 내가 불평을 들어주고, 허풍을 들어주고,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야. 그것은 나의 장미이기 때문이야."

나만의 장미, 나만의 여우, 저에게는 민서와 아내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기들여져 있어 그들 없이 세상을 건넌다는 게 저에게는 무의미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들에게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길들여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쁘띠프랑스는 좀 실망스러웠지만, <어린왕자>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내가 아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제 곁에 항상 어린왕자를 두고 있어야겠네요.



동자승이 된 민서                                           


일요일에는 부모님까지 참석한 작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민서 머리 깎기'. 이전부터 머리를 한번 싹 밀어주자는 아내의 요청이 있었는데, 자꾸 미루어 오다가 어제 드디어 거사를 진행했죠. 민서가 숨넘어가는 울음을 울거라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민서는 머리를 깎는 내내 아주 침착하고 조용히 있더군요. 물론 좀 귀찮다는 듯 머리를 도리질 치긴 했지만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일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발기를 이용해 깎긴 했지만 너무 바짝 자르지 말라는 아내의 요청이 있어서 이발기에 보조기구를 대고 잘랐더니 밤송이 같은 머리가 나왔네요. 아내는 배냇머리를 잘 간직했다가 붓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걸 대행해 주는 곳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아기의 배냇머리를 고이 간직했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선물과 함께 준다고 합니다.

민서는 머리카락은 엄마를 닮아서인지 얇고 숱이 적은 편입니다. 저를 닮았다면 무성하고 빳빳할텐데 말이죠. 깎아 놓고 보니 어느 절의 동자승처럼 아주 귀엽습니다.

아내도 민서 머리 깎은 기념으로 더불어 결혼 이후 줄곧 길렀던 긴 머리를 잘랐습니다. 머리가 기니까 아기를 업을 때 여러가지로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고, 무엇보다 머리를 다듬고 신경써야 할 일이 많다는 게 피곤하다는군요. 처음 만났을 때 짧은 단발머리였기에 오히려 전 환영했습니다. 아내는 짧은 머리가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

이렇게 모녀가 함께 머리를 다듬은 날, 기념 사진을 하나 찍었습니다. 왼쪽은 before 오른쪽은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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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억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현대인들은 과거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그 사람, 그 장소, 그 사건을 기억하고 감상에 젖어 듭니다. 어제(20일), 드디어 민서의 100일 사진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나섰습니다. 사실 100일보다는 200일에 가깝네요. 요새 100일 사진은 100일에 찍지 않습니다. 아이가 엎드려서 머리를 가눌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을 때 찍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이의 다양한 행동과 표정, 그리고 사진 촬영 중의 피로감을 좀 덜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목에 힘을 주어 고개를 한참 들고 있을 즈음이면, 새살도 부리고 웃을 때면 활짝 웃기도 하는데 지금은 제법 소리까지 내면서 웃습니다.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가족들에게도 잘 안겨 놀 때입니다. 이럴 때 첫 100일 사진을 찍는 게 좋다고 합니다.




민서의 100일 사진을 찍겠다고 결정하고 차일피일 미룬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름 사진 좀 찍어봤다고 셀프 스튜디오를 알아보다가 그만 때가 지나버린 거죠. 집 가까운 곳을 알아보다가 후배의 추천도 있고 해서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마이베베 셀프 스튜디오를 찾아 갔습니다. 대개가 그러하듯이 이곳도 100/200일 사진 찍는 곳과 돌 및 유아 사진 촬영하는 장소로 나누어져 있더군요. 시간당 3만원, 카메라 대여는 1만원.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 외에 처조카 셋이 도우미로 왔는데, 그렇게 복작거린다는 느낌이 없었죠. 게다가 다양한 소품들도 갖추고 있어서 다채로운 연출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캐논 5D 카메라도 대여해 줍니다. 조명과 카메라 세팅은 스튜디오에서 알아서 다 맞추어 줍니다. 아이 200일 사진은 보통 조명을 터뜨리기 보다는 은은하고 따뜻한 지속광으로 하는 게 좋다고 하네요.




촬영의 관건은 아기에게 있습니다. 일단 환경이 낯설면 아기는 엄마에게서 잘 떨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얼마 못가서 찡찡대기 시작하죠.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아기가 보챕니다. 잠이 오거나 배가 고파서인데, 2시간을 빌렸다면 잠시 재우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아이가 잘 노는 시간으로 예약을 잡는 게 가장 좋겠죠.

민서는 첫 번째 배경 촬영(맨 위 사진)을 마치자마자 계속 찡찡댔습니다. 촬영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처조카 셋이 동원되고 아내가 춤을 추어도 아랑곳없이 안아달라고 우는 데 방법이 없더군요. 당연히 촬영이 지체되는 일이 많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눈을 보면 눈물이 글썽거리죠. 싫다고 떼쓰다가 잠깐 촬영한 건데, 딱 성냥팔이 소녀 컨셉이 나오네요.^^




대개의 셀프 스튜디오는 다양한 소품과 배경을 촬영할 수 있고 의상도 여러 벌 준비되어 있어 아기 촬영에는 손색이 없게 꾸며놓습니다. 민서가 아직 앉는 게 불안한데, 아기용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서 위의 사진처럼 앉혀서도 찍을 수 있죠. 그러나 민서는 저 의자가 어색한지 앉힐 때마다 울어서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촬영 전에 미리미리 앉혀 버릇하면 잘 했을 텐데, 그게 또 아쉽네요.




시무룩한 민서의 모습이 그날 하루의 민서를 다 말해 주는군요. 잠시 젖을 물리니 까무룩 잠이 들려고 하네요. 젖을 떼고 다시 사진 촬영하겠다고 옷을 갈아입히면 싫다고 찡찡찡~ 안아달라고 찡찡찡~ 2시간의 한정된 사진 촬영 시간에 어떻게든 좋은 작품을 내고 싶은 부모 마음과 그냥 편하게 쭈쭈 먹고 잠자고 싶은 민서 마음이 충돌했습니다. 힘들어 하는 민서 보면서 "이래서 부모 욕심 때문에 아이 잡는다"는 말이 나오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는 카메라를 아내에게 맡겼어요. 아내도 꽤 사진을 잘 찍는 편이라서 안심하고 맡겼는데, 평소 집에서 엄마가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는 걸 많이 봐서 그런지 제가 하는 것보다는 더 편안한 사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좀 더 특별한 사진을 원했으나 특별한 경험도 덤으로 했습니다. 아기와 함께 아기가 주인공이 된 첫 행사였습니다. 민서가 잘 웃고, 잘 울고, 많이 힘들어했지만 그럭저럭 좋은 결과가 나와서 흐뭇합니다. 그런데 민서 엄마가 사진 촬영을 다녀온 후 민서 치장하는 데 부쩍 관심이 커졌습니다. 당장 민서 모자부터 예쁜 걸로 하나 사겠다고 하니, 앞으로 민서에게 들어가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물론 아깝지는 않으나 제 수입이....






민서도 이번에 큰 일을 치룬 셈이죠. 온 가족이 다함께 공들여서 만든 작품들을 보면 흐뭇합니다. 아내는 민서의 사진첩을 준비하고 있지요. 민서가 혼자 버티고 설 수 있지만 아직 걷기는 힘들 때쯤에 돌 사진을 찍을까 합니다. 보통 돌 전에 아기가 설 수 있다고 하니까 빠르면 10월이나 11월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는 더 재미있고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리라 기대하고 있죠.














셀프 스튜디오 촬영에 들어간 비용은 총 8만원. 물론 현상이나 인화를 하지 않고 룸 대여료(2시간 6만원)와 카메라 대여료(캐논 5D 2시간 2만원)만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현상하고 인화하면 또 지출이 생기겠지만 아이와 함께 한 셀프 스튜디오 나들이 꽤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아이 100일 사진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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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부터 개봉동 여기저기 담 너머로 피어난 장미를 볼 수 있었다. 개봉동에 살면서 이토록 많은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장미꽃들을 볼 수 있었다.

3월에는 진달래, 4월에는 벚꽃, 5월에는 철쭉, 6월에는 장미 등 달마다 때를 만난 꽃들이 있기 마련이다. 봄과 여름을 거쳐 수많은 꽃들이 피고 졌다. 예년에 없던 추위로 인해 벚꽃이 힘 한 번 못 써보고 시나브로 져버렸지만 장미는 다행히 좋은 날씨를 만나 한창 때를 누릴 수 있었나 보다.

오규원 시인은 ‘개봉동과 장미’라는 시에서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아름답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가시를 지닌 장미에게서 우리 사회 소시민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개봉동에서 안양천으로 가려면 목감천을 따라 가는 게 가장 편한데, 이때 목감천과 안양천을 연결하는 아파트 옆 소로를 통과해야 한다. 이 길에는 장미나무가 나란히 심어져 있고, 지난 5월부터 피기 시작한 장미들이 이제는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벚꽃은 작은 바람에도 멀리 흩어져 버리지만 장미 꽃잎은 그렇지 않아 길섶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나 마치 피를 뿌린 듯 검붉은 모습의 꽃잎들은 6월의 오랜 상처를 헤집고 만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6월이 장미의 계절일 수많은 없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전쟁의 기억들은 제각각이라서 누구는 자유 수호의 성전으로 기억하며 주석궁으로 탱크를 밀고 들어가야 한다고 저 북쪽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50년 전 6월은 이 땅에서 언어와 풍속, 역사가 같은 겨레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노약자, 부녀자, 어린아이 가리지 않고 학살을 자행했던 무참하고 비참하고 끔찍한 살육이 시작됐던 달이다. 우리가 6월을 기려야 하는 이유는 전쟁의 참혹했던 속살들을 잊지 않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이 땅에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길섶에 모인 붉은 장미 꽃잎에서 붉흔 선혈의 악몽이 자꾸 오버랩된다. 6월의 붉은 장미에서 더 이상의 피 냄새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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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아기들이 그러하듯 일단 뭐든지 입으로 갑니다. 안고 있으면 아빠 팔뚝이나 손등을 빨고 있고, 장난감을 주면 맛부터 보려는지 입으로 가져가는 거죠. 아기는 미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미각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감각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민서는 요새 입에 침이 고이는 경우가 많아요. 입으로 "브르르르르"하며 고인 침을 가지고 장난도 치죠.


































민서가 처음에는 젖병을 강력히 거부했습니다. 어렸을 때 젖꼭지를 이용해서 비타민과 약을 좀 먹였는데, 그 기억 때문인지 젖병의 꼭지를 물면 약을 먹는 줄 알고 혀를 내밀어 뱉어내려고 하거나 짜증을 내곤 했죠. 덕분에 처음에 사놨던 분유는 고스란히 애물단지로 남아버렸더랬습니다.

그런데 점점 엄마 젖이 모자르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날 유난히도 보채던 민서에게 분유를 타서 먹였더니 아주 잘 먹기 시작했어요. 젖꼭지를 아주 강하게 거부하던 민서의 모습은 사라지고 왜 그동안 이 맛있는 걸 안주었냐며 쭉쭉 빨아 먹더군요.

지금은 민서 엄마가 분유와 모유를 번갈아가면서 주고 있어서 아주 건강해지고 살도 하루가 다르게 통통하게 오르고 있습니다. 젖병을 물기 시작하면서 제가 손수 먹일 수도 있고, 덕분에 민서 엄마는 좀더 자유로와질 여지가 생겼지요.





















젖도 잘 먹고 분유도 잘 먹으니 힘도 세지고 노는 것도 에너지가 펄펄 넘칩니다. 바구니에 앉혀 놓으면 모서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을 정도로 허리힘도 생긴 듯합니다.

바구니를 타고 바구니를 밀어주면 저 앙증맞은 손으로 바구니를 꼭 잡는 듯합니다. 오래 못가 잉잉거리지만 그래도 짧은 바구니 여행이 싫지는 않았나 봐요. 그나저나 아기랑 놀아주려면 보통 에너지가 필요한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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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삶을 살아갈 또 하나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좀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커진다.
사는 건 이렇게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다는 믿음에서
강해지는 것이겠다.



도상 거리로는 47.3km가 나오지만 아마도 족히 50km는 달렸을 것이다. 지난 금요일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열리는 회사 체육대회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참석했다. 그러니까 구로구 개봉동에서 미사리 조정경기장(행정구역상 경기도 하남시)까지 자전거로 간 것이다. 새벽밥을 챙겨 먹고 5시 30분에 출발해 약 2시간30분이 걸려 8시 경에 대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포대교



전날 밤까지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12시가 넘어서 잤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4시 반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밥도 든든히 먹을 수 있었다. 5시 반에 집을 나섰지만 이미 주위는 아침 해의 기운이 뒤덮고 있었다.

장거리 자전거 주행은 정말 오랜만이다. 물론 틈틈이 자전거 출퇴근을 통해 체력을 단련해 왔지만 실상 50km에 가까운 거리를, 그것도 주어진 시간 안에 가야 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대단한 도전이다. 바로 그 전날 저녁까지도 그냥 가야할지 자전거로 가야할지 한참이나 망설였으니 말이다.

비교신학자 조셉 캠벨은 모든 사람에게는 '성소(聖所)', 즉 자기 자신만의 성스러운 공간이 있다고 했다. 나에게도 나만의 성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한강 길에 있다. 이른 아침 뻥뚫린 한강변길을 달리며 느끼는 질주의 느낌은 남다르다.

이 한강변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나만의 공상에 빠져든다. 나를 잊고 나를 찾는 신기한 경험이 여기서 빚어진다. 환기와 정화와 순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환기-귓볼에서 휘감고 나아가는 바람에서 느껴지는 것. 정화-몸안의 독소들을 길 위와 한강에 던지버리며 달리는 것. 순화-날카로워진 속살과 속마음들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












미사리 조정


참 시시한 도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달리는 법을 잃어버리는 치타는 굶어죽는 법이다. 치타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 뛰지만 자기안의 본능을 깨우는 질주의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달린다. 속도는 자본주의만의 욕망이 아니다. 인간은 달리기 위해 길을 만들었고, 그 길 위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오늘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 목표로 한 3000km 달리기는 아마도 어려울 듯싶다. 그렇지만 나는 궁금하다, 내가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지. 그 끝이 어디쯤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달리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시끌벅적한 체육대회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체육대회를 꽤 격하게 치루었으며, 그 결과 얻은 영광의 상처들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동료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집 근처까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삶을 살아갈 또 하나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좀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커진다. 사는 건 이렇게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다는 믿음에서 강해지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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