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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주중 방문자 수는 170명 내외. 주말에는 방문자수가 급감하는 경향인 내 블로그가 지난 일요일 방문자수 187명이라는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하더니 어제는 또 293명이나 내 블로그를 방문했다. 갑작스럽게 방문자수가 늘어난 원인을 찾기 위해 유입 URL를 보는데, 딱히 유입되는 곳이 일정치 않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검색을 통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여느 때와 다른 점은 ‘자전거 여행’이라는 검색 키워드가 유별나게 많다는 점이다.


추측컨대 아마도 지난 일요일 강호동의 1박2일이 옥천 자전거 여행을 다룬 것 때문일 것이다. 내 블로그가 자전거 여행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만큼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전거 여행 이야기가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여행을 검색한 것으로 보인다.


TV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TV예능 프로그램의 하나인 강호동의 1박 2일에 소개되는 여행지는 곧바로 포털 검색 순위에 오르며 한동안 여행객들이 몰려들어 홍역을 앓을 정도라고 하니, ‘자전거 여행’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는 내 블로그 역시 그 여파를 받은 셈이다.


그렇지만 자전거 여행은 그다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수많은 도전에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여행에 가깝다. 만일 1박2일의 김종민이 실제로 하루 70km를 주행해야 한다면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도로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나면 시간당 15km의 주행 속도로 8시간 주행의 원칙을 잘 준수할 것을 당부한다. 그러지 않고 무리한 계획을 세운다면 반드시 낭패를 보고 말 것이다.




실제로 자전거 여행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 안전대책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기본적인 도로교통법은 숙지하고, 다리 위나 터널 등 위험한 코스에 대해서는 대책을 우회로나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더군다나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라면 여행 짐 꾸리는 것부터가 큰 일이다. 무엇보다 자전거여행 경험자들이나 자전거 여행 서적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사전에 접해 두는 게 좋다.


아래는 내 블로그에 올려진 다양한 자전거 여행 팁과 관련된 정보들이다. 이 밖에도 틈틈이 올린 글들이 꽤 되지만 우선은 이 정도로 정리해 보았다.


가볼만한 자전거 여행 코스

  도로교통법과 자전거

도로 주행 요령

우리나라 국도 정보 1

우리나라 국도 정보 2

여행의 실질적인 준비

마음가짐 되새기기

자전거를 대중교통에 싣기

우천에 대한 대비

자전거 여행 중 당할 수 있는 부상1

자전거 여행 중 당할 수 있는 부상2


이밖에 자전거 전국 일주의 경험담이 내 블로그에는 담겨 있다. 일부 정보는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자전거 전국 일주는 사실 무모하게 출발한 여행을 자랑하는 것 같아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이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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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를 만나다                                




지난 토요일은 아내의 친한 동생네 돌잔치에 다녀왔습니다. 멀리 남양주에서 열리는 돌잔치라서 이왕 나서는 길, 가족 나들이 계획까지 세웠더랬죠. 아침 일찍 나와서 쁘띠프랑스를 둘러보고 청평휴양림에서 산림욕을 즐긴 후 마석공원 미술관에 들렀다가 저녁 6시에 있을 돌잔치에 참여하자는 거창한 계획은 때아닌 장마 소식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대신 쁘띠프랑스만 둘러보고 돌잔치에 다녀왔지요.

쁘띠프랑스는 입장료가 대인 8,000원이었는데, 그 가격만큼 볼만한 게 있었는지는 회의적입니다. 여기저기 다채로운 행사를 하던데, 아기를 안고 다니기에는 사실상 어렵더군요. 그래도 좀 큰 아이들은 신나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소설 <어린왕자>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잃어버린 순수의 세계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텍쥐페리의 이상이 <어린왕자>에 드러나 있죠.

어린왕자는 장미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 갔다.
그는 꽃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 조금도 닮은 데가 없어.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누구 하나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도 누구 하나 길들이지 않았어. 옛날엔 내 여우가 꼭 너희들같았지. 세상에 흔해 빠진 여우들과 뭐 다를 데 없는 여우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았지. 그러나 내가 친구로 삼았고 이젠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됐어."
그 말에 장미꽃들은 몹시 난처했다.
어린왕자는 말을 계속했다.
"너희들은 아름다워. 그러나 너희들은 비어있어.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는 없는거야. 물론 나의 꽃인 내 장미꽃도 멋모르는 행인은 너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꺼야. 그러나 그 꽃 하나만으로도 너희들 전부보다 더 소중해. 내가 물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유리덮개를 씌워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바람막이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벌레를 잡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나비가 되라고 두 세 마리는 남겨 놓았지만) 내가 불평을 들어주고, 허풍을 들어주고,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야. 그것은 나의 장미이기 때문이야."

나만의 장미, 나만의 여우, 저에게는 민서와 아내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기들여져 있어 그들 없이 세상을 건넌다는 게 저에게는 무의미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들에게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길들여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쁘띠프랑스는 좀 실망스러웠지만, <어린왕자>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내가 아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제 곁에 항상 어린왕자를 두고 있어야겠네요.



동자승이 된 민서                                           


일요일에는 부모님까지 참석한 작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민서 머리 깎기'. 이전부터 머리를 한번 싹 밀어주자는 아내의 요청이 있었는데, 자꾸 미루어 오다가 어제 드디어 거사를 진행했죠. 민서가 숨넘어가는 울음을 울거라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민서는 머리를 깎는 내내 아주 침착하고 조용히 있더군요. 물론 좀 귀찮다는 듯 머리를 도리질 치긴 했지만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일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발기를 이용해 깎긴 했지만 너무 바짝 자르지 말라는 아내의 요청이 있어서 이발기에 보조기구를 대고 잘랐더니 밤송이 같은 머리가 나왔네요. 아내는 배냇머리를 잘 간직했다가 붓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걸 대행해 주는 곳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아기의 배냇머리를 고이 간직했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선물과 함께 준다고 합니다.

민서는 머리카락은 엄마를 닮아서인지 얇고 숱이 적은 편입니다. 저를 닮았다면 무성하고 빳빳할텐데 말이죠. 깎아 놓고 보니 어느 절의 동자승처럼 아주 귀엽습니다.

아내도 민서 머리 깎은 기념으로 더불어 결혼 이후 줄곧 길렀던 긴 머리를 잘랐습니다. 머리가 기니까 아기를 업을 때 여러가지로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고, 무엇보다 머리를 다듬고 신경써야 할 일이 많다는 게 피곤하다는군요. 처음 만났을 때 짧은 단발머리였기에 오히려 전 환영했습니다. 아내는 짧은 머리가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

이렇게 모녀가 함께 머리를 다듬은 날, 기념 사진을 하나 찍었습니다. 왼쪽은 before 오른쪽은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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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억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현대인들은 과거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그 사람, 그 장소, 그 사건을 기억하고 감상에 젖어 듭니다. 어제(20일), 드디어 민서의 100일 사진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나섰습니다. 사실 100일보다는 200일에 가깝네요. 요새 100일 사진은 100일에 찍지 않습니다. 아이가 엎드려서 머리를 가눌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을 때 찍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이의 다양한 행동과 표정, 그리고 사진 촬영 중의 피로감을 좀 덜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목에 힘을 주어 고개를 한참 들고 있을 즈음이면, 새살도 부리고 웃을 때면 활짝 웃기도 하는데 지금은 제법 소리까지 내면서 웃습니다.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가족들에게도 잘 안겨 놀 때입니다. 이럴 때 첫 100일 사진을 찍는 게 좋다고 합니다.




민서의 100일 사진을 찍겠다고 결정하고 차일피일 미룬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름 사진 좀 찍어봤다고 셀프 스튜디오를 알아보다가 그만 때가 지나버린 거죠. 집 가까운 곳을 알아보다가 후배의 추천도 있고 해서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마이베베 셀프 스튜디오를 찾아 갔습니다. 대개가 그러하듯이 이곳도 100/200일 사진 찍는 곳과 돌 및 유아 사진 촬영하는 장소로 나누어져 있더군요. 시간당 3만원, 카메라 대여는 1만원.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 외에 처조카 셋이 도우미로 왔는데, 그렇게 복작거린다는 느낌이 없었죠. 게다가 다양한 소품들도 갖추고 있어서 다채로운 연출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캐논 5D 카메라도 대여해 줍니다. 조명과 카메라 세팅은 스튜디오에서 알아서 다 맞추어 줍니다. 아이 200일 사진은 보통 조명을 터뜨리기 보다는 은은하고 따뜻한 지속광으로 하는 게 좋다고 하네요.




촬영의 관건은 아기에게 있습니다. 일단 환경이 낯설면 아기는 엄마에게서 잘 떨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얼마 못가서 찡찡대기 시작하죠.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아기가 보챕니다. 잠이 오거나 배가 고파서인데, 2시간을 빌렸다면 잠시 재우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아이가 잘 노는 시간으로 예약을 잡는 게 가장 좋겠죠.

민서는 첫 번째 배경 촬영(맨 위 사진)을 마치자마자 계속 찡찡댔습니다. 촬영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처조카 셋이 동원되고 아내가 춤을 추어도 아랑곳없이 안아달라고 우는 데 방법이 없더군요. 당연히 촬영이 지체되는 일이 많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눈을 보면 눈물이 글썽거리죠. 싫다고 떼쓰다가 잠깐 촬영한 건데, 딱 성냥팔이 소녀 컨셉이 나오네요.^^




대개의 셀프 스튜디오는 다양한 소품과 배경을 촬영할 수 있고 의상도 여러 벌 준비되어 있어 아기 촬영에는 손색이 없게 꾸며놓습니다. 민서가 아직 앉는 게 불안한데, 아기용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서 위의 사진처럼 앉혀서도 찍을 수 있죠. 그러나 민서는 저 의자가 어색한지 앉힐 때마다 울어서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촬영 전에 미리미리 앉혀 버릇하면 잘 했을 텐데, 그게 또 아쉽네요.




시무룩한 민서의 모습이 그날 하루의 민서를 다 말해 주는군요. 잠시 젖을 물리니 까무룩 잠이 들려고 하네요. 젖을 떼고 다시 사진 촬영하겠다고 옷을 갈아입히면 싫다고 찡찡찡~ 안아달라고 찡찡찡~ 2시간의 한정된 사진 촬영 시간에 어떻게든 좋은 작품을 내고 싶은 부모 마음과 그냥 편하게 쭈쭈 먹고 잠자고 싶은 민서 마음이 충돌했습니다. 힘들어 하는 민서 보면서 "이래서 부모 욕심 때문에 아이 잡는다"는 말이 나오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는 카메라를 아내에게 맡겼어요. 아내도 꽤 사진을 잘 찍는 편이라서 안심하고 맡겼는데, 평소 집에서 엄마가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는 걸 많이 봐서 그런지 제가 하는 것보다는 더 편안한 사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좀 더 특별한 사진을 원했으나 특별한 경험도 덤으로 했습니다. 아기와 함께 아기가 주인공이 된 첫 행사였습니다. 민서가 잘 웃고, 잘 울고, 많이 힘들어했지만 그럭저럭 좋은 결과가 나와서 흐뭇합니다. 그런데 민서 엄마가 사진 촬영을 다녀온 후 민서 치장하는 데 부쩍 관심이 커졌습니다. 당장 민서 모자부터 예쁜 걸로 하나 사겠다고 하니, 앞으로 민서에게 들어가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물론 아깝지는 않으나 제 수입이....






민서도 이번에 큰 일을 치룬 셈이죠. 온 가족이 다함께 공들여서 만든 작품들을 보면 흐뭇합니다. 아내는 민서의 사진첩을 준비하고 있지요. 민서가 혼자 버티고 설 수 있지만 아직 걷기는 힘들 때쯤에 돌 사진을 찍을까 합니다. 보통 돌 전에 아기가 설 수 있다고 하니까 빠르면 10월이나 11월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는 더 재미있고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리라 기대하고 있죠.














셀프 스튜디오 촬영에 들어간 비용은 총 8만원. 물론 현상이나 인화를 하지 않고 룸 대여료(2시간 6만원)와 카메라 대여료(캐논 5D 2시간 2만원)만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현상하고 인화하면 또 지출이 생기겠지만 아이와 함께 한 셀프 스튜디오 나들이 꽤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아이 100일 사진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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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부터 개봉동 여기저기 담 너머로 피어난 장미를 볼 수 있었다. 개봉동에 살면서 이토록 많은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장미꽃들을 볼 수 있었다.

3월에는 진달래, 4월에는 벚꽃, 5월에는 철쭉, 6월에는 장미 등 달마다 때를 만난 꽃들이 있기 마련이다. 봄과 여름을 거쳐 수많은 꽃들이 피고 졌다. 예년에 없던 추위로 인해 벚꽃이 힘 한 번 못 써보고 시나브로 져버렸지만 장미는 다행히 좋은 날씨를 만나 한창 때를 누릴 수 있었나 보다.

오규원 시인은 ‘개봉동과 장미’라는 시에서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아름답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가시를 지닌 장미에게서 우리 사회 소시민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개봉동에서 안양천으로 가려면 목감천을 따라 가는 게 가장 편한데, 이때 목감천과 안양천을 연결하는 아파트 옆 소로를 통과해야 한다. 이 길에는 장미나무가 나란히 심어져 있고, 지난 5월부터 피기 시작한 장미들이 이제는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벚꽃은 작은 바람에도 멀리 흩어져 버리지만 장미 꽃잎은 그렇지 않아 길섶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나 마치 피를 뿌린 듯 검붉은 모습의 꽃잎들은 6월의 오랜 상처를 헤집고 만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6월이 장미의 계절일 수많은 없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전쟁의 기억들은 제각각이라서 누구는 자유 수호의 성전으로 기억하며 주석궁으로 탱크를 밀고 들어가야 한다고 저 북쪽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50년 전 6월은 이 땅에서 언어와 풍속, 역사가 같은 겨레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노약자, 부녀자, 어린아이 가리지 않고 학살을 자행했던 무참하고 비참하고 끔찍한 살육이 시작됐던 달이다. 우리가 6월을 기려야 하는 이유는 전쟁의 참혹했던 속살들을 잊지 않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이 땅에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길섶에 모인 붉은 장미 꽃잎에서 붉흔 선혈의 악몽이 자꾸 오버랩된다. 6월의 붉은 장미에서 더 이상의 피 냄새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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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아기들이 그러하듯 일단 뭐든지 입으로 갑니다. 안고 있으면 아빠 팔뚝이나 손등을 빨고 있고, 장난감을 주면 맛부터 보려는지 입으로 가져가는 거죠. 아기는 미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미각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감각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민서는 요새 입에 침이 고이는 경우가 많아요. 입으로 "브르르르르"하며 고인 침을 가지고 장난도 치죠.


































민서가 처음에는 젖병을 강력히 거부했습니다. 어렸을 때 젖꼭지를 이용해서 비타민과 약을 좀 먹였는데, 그 기억 때문인지 젖병의 꼭지를 물면 약을 먹는 줄 알고 혀를 내밀어 뱉어내려고 하거나 짜증을 내곤 했죠. 덕분에 처음에 사놨던 분유는 고스란히 애물단지로 남아버렸더랬습니다.

그런데 점점 엄마 젖이 모자르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날 유난히도 보채던 민서에게 분유를 타서 먹였더니 아주 잘 먹기 시작했어요. 젖꼭지를 아주 강하게 거부하던 민서의 모습은 사라지고 왜 그동안 이 맛있는 걸 안주었냐며 쭉쭉 빨아 먹더군요.

지금은 민서 엄마가 분유와 모유를 번갈아가면서 주고 있어서 아주 건강해지고 살도 하루가 다르게 통통하게 오르고 있습니다. 젖병을 물기 시작하면서 제가 손수 먹일 수도 있고, 덕분에 민서 엄마는 좀더 자유로와질 여지가 생겼지요.





















젖도 잘 먹고 분유도 잘 먹으니 힘도 세지고 노는 것도 에너지가 펄펄 넘칩니다. 바구니에 앉혀 놓으면 모서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을 정도로 허리힘도 생긴 듯합니다.

바구니를 타고 바구니를 밀어주면 저 앙증맞은 손으로 바구니를 꼭 잡는 듯합니다. 오래 못가 잉잉거리지만 그래도 짧은 바구니 여행이 싫지는 않았나 봐요. 그나저나 아기랑 놀아주려면 보통 에너지가 필요한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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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삶을 살아갈 또 하나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좀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커진다.
사는 건 이렇게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다는 믿음에서
강해지는 것이겠다.



도상 거리로는 47.3km가 나오지만 아마도 족히 50km는 달렸을 것이다. 지난 금요일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열리는 회사 체육대회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참석했다. 그러니까 구로구 개봉동에서 미사리 조정경기장(행정구역상 경기도 하남시)까지 자전거로 간 것이다. 새벽밥을 챙겨 먹고 5시 30분에 출발해 약 2시간30분이 걸려 8시 경에 대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포대교



전날 밤까지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12시가 넘어서 잤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4시 반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밥도 든든히 먹을 수 있었다. 5시 반에 집을 나섰지만 이미 주위는 아침 해의 기운이 뒤덮고 있었다.

장거리 자전거 주행은 정말 오랜만이다. 물론 틈틈이 자전거 출퇴근을 통해 체력을 단련해 왔지만 실상 50km에 가까운 거리를, 그것도 주어진 시간 안에 가야 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대단한 도전이다. 바로 그 전날 저녁까지도 그냥 가야할지 자전거로 가야할지 한참이나 망설였으니 말이다.

비교신학자 조셉 캠벨은 모든 사람에게는 '성소(聖所)', 즉 자기 자신만의 성스러운 공간이 있다고 했다. 나에게도 나만의 성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한강 길에 있다. 이른 아침 뻥뚫린 한강변길을 달리며 느끼는 질주의 느낌은 남다르다.

이 한강변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나만의 공상에 빠져든다. 나를 잊고 나를 찾는 신기한 경험이 여기서 빚어진다. 환기와 정화와 순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환기-귓볼에서 휘감고 나아가는 바람에서 느껴지는 것. 정화-몸안의 독소들을 길 위와 한강에 던지버리며 달리는 것. 순화-날카로워진 속살과 속마음들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












미사리 조정


참 시시한 도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달리는 법을 잃어버리는 치타는 굶어죽는 법이다. 치타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 뛰지만 자기안의 본능을 깨우는 질주의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달린다. 속도는 자본주의만의 욕망이 아니다. 인간은 달리기 위해 길을 만들었고, 그 길 위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오늘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 목표로 한 3000km 달리기는 아마도 어려울 듯싶다. 그렇지만 나는 궁금하다, 내가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지. 그 끝이 어디쯤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달리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시끌벅적한 체육대회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체육대회를 꽤 격하게 치루었으며, 그 결과 얻은 영광의 상처들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동료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집 근처까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삶을 살아갈 또 하나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좀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커진다. 사는 건 이렇게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다는 믿음에서 강해지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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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육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태동하는 아이의 영혼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과 공명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알려주는 그 신호에 우리는 충분히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운명이다.







아이를 안아 들어 본다는 경험은 매우 특별하다. 그것은 큼직한 사랑을 하나 들고 있는 무게와 같다. 아이가 무럭무럭 크다 보면 그 버거움은 아이의 몸무게만큼 더욱 커진다. 그런 사랑을 거뜬히 들어 올리는 게 또한 사랑이니,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 경험인가.

고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아기가 함께 맞아주는데, 그때마다 민서는 활짝 웃어 주는 걸 잊지 않는다. 그날 있었던 모든 안 좋은 기억들을 지워주는 미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래서 점점 가벼워진다. 누군가는 회사에 묶어 놓은 말뚝을 다시 집으로 가져와서 묶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말뚝은 꽃을 닮았나 보다. 집안에서는 꽃향기가 나는 듯하다.

민서가 7kg을 살짝 넘어서고 있다. 2.02kg의 미약한 몸무게로 태어났지만 200여일을 지나고 있는 지금 아주 건강하고 활기차게 잘 자라고 있다. 민서를 들어 안는 일은 행복하지만 조금씩 삶의 무게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걱정스런 눈길을 느꼈는지 민서는 환하게 웃어 준다. 빠져들 것 같은 눈동자를 보며 근심을 잊는다.


















요새는 뒤집기가 한창이다. 어떨 때는 잘 자다가 자기도 모르고 뒤집고는 끙끙대는 통에 나와 아내의 잠도 깨우고 만다. 그럼에도 아이가 뒤집는 모습은 경이롭다.

처음에는 허리를 활처럼 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한쪽 다리와 뒷머리를 받쳐서 허리를 띄운다. 이러면 절반은 성공이다. 예전에는 여기서 힘이 딸려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고 말았는데, 요새는 다리 힘도 세지고 목의 근육도 단단해졌는지 끙끙 두번만 하면 어느새 뒤집고 엎드려 있다.

민서에게 엎드려서 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아주 다른가 보다. 무척이나 신기한 듯 고개를 둘레둘레 흔들며 주위를 살핀다. 자신이 한 행동이 의미하는 것을 곰곰이 뒤짚어 보는 듯한 멍한 눈빛으로 앞을 본다. 물론 그렇게 한 5분 정도 있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요새는 뒤집은 자세에서 발을 허둥대곤 한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본격적으로 기어다닐 것이다.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그때부터가 큰일이라고 다들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부모든 그럴 것이다. 아이가 다칠 거라는 생각은 그 어떤 악몽보다 무섭다.


그러나 이 세상은 비참과 무지, 불의와 폭력이 난무한다.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를 무력화시키는 온갖 사건사고들이 곳곳에서 터지는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은 것 자체가 원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우리의 꿈과 희망을 다음 세대에 걸어 보는 것이다. 생명 있는 것은 모두 더 나아지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 사회는 인간의 이런 유기적 욕망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이라면 좀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꿈이다.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 육아를 통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그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경험'이다. 순수한 육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태동하는 아이의 영혼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과 공명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알려주는 그 신호에 우리는 충분히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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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의 투표다. 누구에게는 20년만의 투표일 것이다. 아니, 어떤 이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투표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소중하다고 하는 그 선거권. 어찌 보면 성스럽기까지 하지 않는가. 이 투표용지 하나 얻어 보자고 우리는 1980년 광주에서 수많은 피들이 흩뿌려졌고, 1987년에는 넥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투표용지를 볼 때마다 거기에 서려있는 피와 눈물을 느낄 때가 있다. 적어도 투표라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있어 섬세하고 엄숙한 종교 의식과 다를 바가 없다.


얼마 전 드디어 집으로 선거공보물이 도착했다. 후보들의 면면이야 그동안 동네에 붙은 선거벽보를 통해 눈에 익어 있었는데, 내 눈에 가장 이색적으로 비친 것은 투표 장소였다. 이번 투표 장소는 이전의 종교 시설이 아닌 근처 경로당으로 잡혔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경로당은 바로 집 앞에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오랫동안 그 종교 시설에서 투표를 해왔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줄곧 한동네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동안 그 종교시설이 세워진 이후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정 종교를 가지지 않은 나로서는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자원 봉사를 하는 청소년들의 친절한 안내를 동네 어귀부터 받을 수 있었고, 투표장 안도 적당한 넓이에 부산함 없이 줄을 서서 투표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종교시설도 번번이 투표 때마다 자신의 공간을 내어 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공간을 내어 주고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희생한 것인만큼 그 장소에 대해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일 기독교인이 절에 들어가서 투표해야 한다면? 만일 불교인이 성당 가서 투표를 해야 한다면? 만일 천주교인이 이슬람사원에 가서 투표를 해야 한다면? 물론 관광의 일환으로 절, 성당, 교회를 ‘구경’간다. 그러나 분명 엄숙하면서 즐거운 투표 행위가 종교적 신념과 다른 곳에서 치러진다고 할 때, 게다가 내밀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행위인 기표 행위가 부처님, 예수님, 하느님이 있다는 종교시설에서 치러질 때 느끼는 모종의 불안감(?)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정말 투표가 그런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축제일 수 있을까? 굳이 배타적일 이유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지 않는 투표소 설치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2005년도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종교인은 절반을 넘는 53.6%라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배경에는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 주는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는 선택할 수 있지만, 투표 장소는 선택할 수가 없다.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서울시만 해도 종교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한 곳이 2,210개 투표소 중 511개소(23.1%)로 꽤 많은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공직선거법」 제147조 제2항은 투표소를 “투표구 안의 학교, 읍·면·동사무소 등 관공서, 공공기관·단체의 사무소, 주민회관 기타 선거인이 투표하기 편리한 곳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서울시처럼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그런 공공장소가 없을 리가 없다. 물론 경로당이라는 공간을 투표 장소로 활용함으로써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투표일 하루만큼은 불편을 겪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선거를 계기로 노인들의 사랑방인 경로당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경로당을 찾아와 그동안 소외된 공간이었던 경로당이 오랜만에 더 활기찬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투표소 앞에서 사진을 찍어서 선관위로 보내면 추첨을 통해 경품도 준다고 하니, 경로당 앞에서 우리 세 식구 가족사진을 찍어봐야겠다. 이번 선거는 한결 더 신나고 재미있게 투표할 수 있어서 좋다.




2010. 5. 30. 국가인권위 블로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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