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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다.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태양은 나를 향해 비추며, 바람마저 내 귀밑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준다. 새들의 노랫소리도 나를 축복하고 꽃들도 내 아름다움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그런 날들. 내 사랑과 열정이 넘쳐나던 젊은 날을 떠올릴 수 있고,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니거나 산골짜기를 오르내리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이도 있겠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전직 군인이었던 한 여성은 구금자들 앞에서 찍은 사진을 내 보이며 “내 삶의 최고의 날”이라고 했다. 그이에게는 군대에 있던 젊은 날이 국가를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하며 내적, 외적 아름다움을 이루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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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름다운 삶은 지금 있는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그 사진은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온 정신적 문명이 망가지는 장면을 담은 것일 뿐이다. 눈이 가려지고 손목이 묶인 수감자들의 심정을 생각하지 않은 것, 타인의 고통과 수치심, 절망감에 대해서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을 그저 사진 속 배경에 처리해 버린 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것이다.


윌리엄 아서 워드는 “언젠가 우리는 모두 생활(수준)의 기준이 아니라 삶의 기준으로, 부(가진 것)의 척도가 아니라 나눔의 척도로, 표면적인 위대함이 아니라 내면적인 선함으로 평가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개인마다 생각하는 최고의 날로 다시 돌아가 보자. 과연 그 최고의 날은 생활수준의 기준으로 잡았던 것일까? 부의 척도로 재단했던 것일까? 아니다, 내면적인 선함, 인간성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다가오는 8월 22일은 역사적인 제네바 협약이 맺어진 날이었다. 1864년 8월 22일 제네바에서는 전쟁에서 군대 부상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협약을 맺는 것으로 출발해 지금은 전시에서의 민간인 보호에 관한 조항까지 전쟁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인류의 약속으로 자리매김했다. 제네바 협약의 정신은 치열한 전쟁 상황에서도 야만적인 상황을 멈추게 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여성이 놓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사진은 ‘내 삶의 최고의 날’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누구에게 분명 ‘내 삶의 최악의 날’이 되는 사진이다. 우리 스스로 인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배울 수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과 갈등의 배경이 저 사진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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