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주]2007년 11월 4일에 다녀왔던 주산지글.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가을을 맞아 지난 가을을 추억해 보고 가을 사진을 보며 지금을 위로하고자 퍼왔다. 여기에 글을 가져오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있는 글은 지웠다. 






1.

새벽부터 갔어야 했다.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6시가 좀 넘어서 나온 게 화근이었다. 주산지 앞은 이미 차들로 빽빽했고, 버스를 타고 온 주왕산 등산객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올라가는 아이들, 그리고 새벽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해 차려진 포장마차와 막걸리를 나르는 트럭들까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가 가을 단풍이 든 주산지의 새벽 물안개가 만들어 낸 풍경이다.

 

차를 몰고 주차장 앞까지 밀고 들어간 나는 도로 한가운데서 나가지도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엉망으로 차를 주차시켜 놓은 비양심 인간들 때문이다. 차 안에 갇혀 우왕좌왕 하는 동안 친구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주차할 곳을 찾아다녔지만 한참만에야 겨우 나가는 차를 발견하고 주차를 시킬 수 있었다. 세상은 온전히 밝아오고 있었다. 더 늦으면 물안개를 못 보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는 또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빨리 걷는다면 약 15분 정도 걸린다. 주산지까지 가는 길도 풍경이 좋다. 우리의 발걸음이 빨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늦은 시간에 찾은 것인지 주산지 풍경과 만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012345

 

2.

“너 여기 안가면 평생 후회할 거다.”

10여년 전, 친구는 또다른 친구의 그 말에 이끌려 밤새 마신 술의 피곤함을 무릅쓰고 주산지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가 본 10여년전 주산지 풍경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인적도 드문 주산지의 물안개를 보며 친구와 그 일행들은 오랫동안 말없이 주산지를 바라만 보았다. 밤새 술잔을 비우면서 새벽을 맞은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말이다.

 

주산지를 배경으로 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2003년에 나왔으니까 그가 방문한 것은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훨씬 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날처럼 사람과 차로 북새통을 이룬 주산지 풍경은 그에게 매우 낯설다. 그때와 사뭇 달라진 풍경에 주산지 가는 길 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라진 게 어디 사람들 모습뿐일까. 유명한 관광지답게 주산지 가는 길은 고은 흙길로 넓게 다져져 있고, 길 양편으로 계곡과 울창한 침엽수림도 손색없이 자리잡고 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그냥 산비탈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서 주산지로 들어갔다고 하니 영화가 바꿔놓은 세상은 거의 천지개벽과 맞먹는 것같다.

 

01234567891011

 

3.

많은 사람들이 나갔지만 주산지 주변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에서 200m 정도 가야 있는 주산지 전망대 주변에는 서있을 틈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수많은 카메라들의 기이한 행렬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라 놀랍기만 하다.

 

주산지는 유명한 사진촬영 장소다. 물속에 뿌리를 내린 능수버들과 왕버들나무, 새벽 물안개, 그리고 주변의 가을단풍이 주는 오묘한 분위기는 신선들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그러다 보니 멋진 풍경사진을 담아보고 싶은 사진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요즘이 가장 많은 시기다.

 

집을 나오면서 카메라만 챙겼지 미쳐 삼각대를 챙기지 못했다. 요새는 자꾸 빼먹고 다니는 게 많다. 그런 일이 생기면 몸이 고생하기 마련이다. 삼각대가 없으니 셔터속도를 길게 잡을 수 없다. 아무리 숨을 참고 몸을 고정하려 해도 미세한 몸의 떨림과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어둠 때문에 풍경을 제대로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각대를 고정해 놓고 셔터속도를 오래 개방해야 물안개의 묘한 분위기를 담을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맨몸에 기대어 셔터를 눌렀다. 어렵게 찾아간 곳인만큼 최대한 좋은 사진을 담아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구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카메라의 렌즈보다 마음의 눈에 풍경을 담는 일이 중요하다.

 


012345



4.

주산지는 조선 숙종 때인 1720년에 착공해 1721년 조선 경종 때 완공한 인공저수지다. 원래는 하류쪽 농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고, 지금도 주산지 아래의 농가는 이 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주산지는 그 크기만을 따지면 여느 저수지 정도의 크기로 한바퀴 빙 둘러보는데 채 1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주산지를 나오면서 사과 속에 꿀이 들어가 있다는 청송사과를 한묶음 샀다. G마켓에서 가장 싼게 2만 원대이니, 1만원이면 정말 잘 샀다는 생각이다. 당분간은 이 사과의 맛을 통해 주산지의 멋을 추억할 것 같다.

 




반응형
반응형



언제부턴가 화초를 키우는 재미가 붙었다. 책상 주변에서 제각각 자라고 있는 화초들도 꽤 늘었다. 물론 일부 화초는 흙으로 돌아간 것들도 있다. 화초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만큼 사무실 내에서 키우는 화초들에게는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번식과 분갈이에 대한 시도도 있었다. 최근에 삽목에 페페는 어느정도 성공한 화초다. 먼저 적당한 크기로 줄기를 잘라서 수경재배를 한다. 1~2주 사이에 잘라낸 줄기 쪽에서 뿌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어느정도 뿌리가 잘 자라면 다시 흙으로 옮겨심어 준다. 그리고 꾸준히 관심가지고 관리해 주면 뿌리가 안착하고 알아서 잘 자라준다.

지금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페페는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여기에 힘입어 얼마전 다시 네마탄서스라는 화초의 줄기도 똑 끊어서 수경 재배를 하고 있다. 화초를 키우면서 삽목까지 하며 번식을 시도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인류가 처음 식물을 재배할 때의 호기심과 기대가 이러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네마탄서스에 대하여...              

과 명 : 제스네리아과 (Gesneriaceae)
속 명 : Nematanthus
원산지 :남아메리카


** 특 징 **
착생하는 다년초이며 오래된 줄기는 목질화 하거나 길게 신장하여 덩굴성이 된다. 잎은 주로 대생한다. 꽃은 엽액에 하나 또는 몇 개씩 붙는다. 꽃받침은 5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화관의 기부는 볼록하게 부풀고 끝은 오므라들어 5갈래로 얕게 갈라진다.


** 가꾸기 포인트 **
생육적온은 20∼25℃이며 겨울철에는 관수량을 줄이면 8∼10℃에서 월동이 가능하다. 생장기인 5∼9월은 용토의 표면이 말랐을 때 관수하는데 고온기에 용토를 과습하게 관리하면 낙엽이 지므로 한여름은 관수량을 줄여야 한다.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도 역시 관수량을 더 줄여서 관리한다. 고온건조기에는 분무하여 공중습도를 유지시키는 것이 좋다.














반응형
반응형




"안양천 진입했어요. 헤맬 줄 알고 서둘렀는데 생각보다 길을 잘 해놨네요."
동행인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서둘러 나가 하늘을 보았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다행히 오후 늦게 비가 시작될 거라는 예보다. 부지런히 달리면 비를 맞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그렇게 자전거 하트코스 도전이 시작됐다.

자전거 하트코스는 서울 남부 지역의 지천들을 잇는 코스다. 당장 집에서 나가는 길에서 안양천까지는 목감천을 타고 간다. 목감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구일역에서 동행인을 만났다. 안양천 주변에는 아마도 토요일 현장수업의 일환으로 안양천 청소를 나온 듯한 중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당연히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청소는 뒷전이다. 그래도 안양천의 다양한 자연생태를 보는 재미는 아이들에게 각별하지 않을까.

구일역 안양천에서 남쪽으로 달렸다.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마중나왔다. 강변 억새풀들이 쭉쭉 하늘을 향해 발돋음을 했다.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들풀들도 반갑다. 동행인이 자전거를 즐겨타지 않는지라 천천히 페달을 굴리다 보니 풍경들이 반갑다. 우리를 앞지르는 자전거족도 많지 않았다. 반대로 우리의 맞은편에서 한강쪽으로 달리는 자전거족을 많이 만났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자전거 도로 상태는 무척 좋지 않았다. 좁고 울퉁불퉁했는데, 해당 지자체의 관리 능력이 드러나는 듯하다. 물론 지방하천의 자전거길까지 신경쓰는 건 예산 문제로 많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족들이 느끼는 그런 차이는 비교대상이 되기 쉽다. 양천구는 어떤데 구로구는 이러네, 광명시는 이런데 안양은 이러네 등등... 입이 가벼운 사람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기 쉽다. 자전거족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만큼 해당 지자체에서 좀더 신경쓰는 건 어떨까.

안양천 자전거 도로가 끝날즈음 학의천 자전거 도로가 나온다. 지천으로 갈수록 자연생태는 더욱 원시적이다. 개발이 필요하되 자연친화적인 개발의 중요성이 돋보인다. 무분별한 난개발은 오히려 하천을 죽일 수 있다. 자전거도로 핑계를 대며 4대강을 개발하는 지금 정부는 난개발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어울리며 살 수 있는 하천개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과천 입구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과천은 또다른 세상이다. 계획된 도시답게 도시는 잘 정비되어 있고, 길은 깨끗했다. 과천 진입해서 양재천 들어가기 전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과천 양재천은 도심내 하천답게 예쁘게 꾸며져 있다. 산책 나온 사람들의 모습은 한가롭고 여유있어 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의 모습에서 한가한 가을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과천을 벗어날 즈음 하천은 다시 벌거벗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달리니 양재 근처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닐하우스들과 함께 드러난 타워팰리스의 모습은 딱 그만큼 우리 한국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양재천을 달리면서 조금씩 피로가 몰려왔다. 무엇보다 손목과 손바닥 통증이 심했다. 상체로 누르는 압력을 손바닥과 손목이 온전히 받고 몇시간을 달리니 견디기가 어렵다. 중간중간 핸들을 놓고 상체를 세워서 달린다. 도로에 사람이 별로 없기에 가능한 자세다.

반포대교 앞에서 동행인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빗줄기는 제법 굵어져 있었다. 그대로 맞을 경우 10분이면 많이 젖겠다 싶을 정도였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본 경험이 많다. 이상하지만 비를 맞으면 자전거가 더 잘 나가는 느낌이고 이상하게 기운도 더 난다. 반포대교 이후에는 혼자 집까지 돌아왔다. 비 때문인지 사람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10시 시작한 자전거 하트 코스 도전은 오후 4시 반에 끝났다. 중간에 점심 먹고 맥주 마신 시간 1시간 반 정도를 제외하면 5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체력의 한계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저질 체력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제 길도 잘 아는만큼 종종 다녀볼 생각이다. 다음에는 더 푸른 가을하늘을 품고 달리고 싶다.


 





반응형
반응형
아래 뮤지컬 서편제에 대한 리뷰는 '위드블로그'의 도움으로 작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나 누나야 강변 살자.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서정주, '국화 옆에서'


우리의 누이에 대한 이미지는 애잔하면서 그리운 존재이고, 힘들고 지칠 때 언제든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아득하고 따뜻한, 그래서 엄마와 함께 찾아가고픈 품이다. 뮤지컬 서편제나 영화 서편제, 소설 서편제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누이의 한이다. 누이의 한은 지독한 예술가적 편집증을 가진 아버지 유봉으로부터 발생하였고 동생 동호와의 이별과 만남에서도 애잔한 끓어오르는 정한으로 표현된다. 지난 금요일(10월 1일)에 본 뮤지컬 서편제에서도 누이의 한을 절절이 느껴보고 왔다.

뮤지컬 서편제는 영화와 달리 동호의 비중이 높다. 동호는 계부 유봉에 반발한다. 이는 아버지라는 전세대와의 갈등이면서 어머니를 죽인 '소리'라는 무형의 존재를 아버지라는 유형의 개체에 대입하고 있다. 소리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고, 그 소리는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의식에서 동호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결국은 떠난다. 그러나 떠남은 또다른 상처를 누이 송화에게 심었다. 이후 유봉은 송화에게 약을 먹여 눈을 멀게 하고 득음을 재촉한다. 송화는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결국 용서하고 소리를 찾아 유랑의 길을 함께 떠난다.

수십년이 흘러 동호와 송화는 극적으로 재회한다. 송화와 동호는 밤새 심청가를 부르며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 안는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와 같지만 뮤지컬에서 주는 감동은 그 이상이다.

뮤지컬의 기획 의도에서 밝혔듯이 이 뮤지컬은 해외 라이센스 뮤지컬이 뮤지컬 전용관이나 대형 공연장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한국적인 뮤지컬을 만들어 보겠다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고른 것이 바로 이청준의 원작 소설 '서편제'. 우리나라 영화계에 백만 관객의 시대를 열어 준 영화 '서편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하지만 영화 서편제에서는 판소리만 나왔던 것에서 뮤지컬 서편제는 서양음악의 기본 요소들도 함께 하면서 대중적인 뮤지컬로서 손색이 없는 내용을 갖추었다. 뮤지컬의 재미를 극대화하면서도 판소리의 궁극의 경지를 향한 노력은 게을리지 하지 않은 수작이다. 또한 무대를 꾸민 한지는 다양하게 교차하고 움직이면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한지의 멋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로서 전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로 '서편제'는 그 내용과 형식을 충분히 갖추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송화가 심청가를 열창하는 장면은 응어리진 가슴 속 한을 소리로 이끌어 내는 모습에서는 여느 뮤지컬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날 공연에서 송화 연기를 한 차지연의 연기는 그야말로 신들린 듯했으며, JK김동욱이 맡은 아버지 유봉은 김동욱 특유의 창법으로 아버지의 근엄하면서도 애끊는 마음을 절절이 전달했다. 동호 역할을 한 김태훈의 시원하게 내지르는 노랫소리는 락커의 반항과 피끓는 정열을 잘 드러내었다.

우리의 노래 우리의 뮤지컬 서편제가 전 세계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를 기대해 본다.







반응형
반응형


사무실 내에서 유난히 화초를 많이 키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패해서 죽어나간 화초도 꽤 있다. 퇴사하는 직원들이 놓고 간 화초도 결국 내 몫으로 온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름을 모르면 100% 죽었다.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그 화초의 생장 조건이나 특성을 모른다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분갈이를 제대로 못하거나 물을 엉뚱하게 주거나 생장 조건을 잘못 맞추거나 해서 죽이고 만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화초의 특성과 생의 조건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깔끔하게 비어 있는 화분이 몇개 있다. 

오늘 아침 공덕역을 빠져 나오면서 입구에 있는 화초 가게에 들렸다. 그리고 이 녀석을 5000원을 주고 구입했다. 그렇게 충동구매를 한 칼라데아 루피바르바. 가게에서는 그냥 바르바라고만 알려주었다. 검색해 봤지만 그런 식물은 나오지 않았다. 네이버 카페 "식물과 사람들"에 사진을 올려서 물어보니 3시간도 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칼라데아 루피바르바.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의 기운이 동시에 이름이다. 원산지는 니카라과 에콰도르 등 남미... 참 멀리서 온 식물이다. 줄기는 곧게 쭉 뻗는 성질이 있고, 잎은 길죽하지만 작게 물결치는 모양이다. 이파리의 느낌은 벨벳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잔털이 나있다. 기분이 울적할 때 한번쯤 쓰다듬어 준다면 나아지지 않을까 잠깐 상상해 봤다. 간혹 뿌리쪽에서 꽃도 핀다고 한다. 얘도 꽃을 피울까?

고온다습한 정글에서 자란 열대성 식물이란다. 사무실은 고온건조한데 종종 분무질을 해야겠다. 물은 2~3일에 한번씩 주면 좋다. 당연히 추위에 약하니 겨울에는 절대 실외로 방출해서는 안되겠다.

자리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쇼쇼쇼  (0) 2010.10.21
식물나라 만들기-수경 재배  (0) 2010.10.14
내 아내에게  (6) 2010.09.06
옥상의 장대비  (2) 2010.08.27
은행나무의 축복  (2) 2010.08.24
반응형




사람이 우는 시간 보다 웃는 시간이 월등히 많다는 어느 당연한 조사 통계가 나왔더랬다. 죽을만큼 슬픈 사건이나 당장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을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소소한 기쁨에 웃음짓고 있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런 소소한 기쁨이 기쁨인지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기쁨은 그렇게 몰래 찾아와 조용히 다독여주고 사라져간다.

어느날 집안 문과 문 사이에서 민서와 숨바꼭질 놀이를 할 때였다. 잠시 얼굴 감추었다가 표정을 우스꽝스럽게 하고 나타나 "깍꿍"해 주면 민서는 환하게 웃어준다. 이럴 때가 좋다고들 한다. 심심하고 유치하고 말도 안되는 장난에 아이가 활짝 웃어주는 이때. 그렇다, 지금을 즐겨야 하는 이유다. 먼 훗날 아이 교육비가 어떻게 간식비가 어떻고, 학비가 어떻게 하면서 따지면서 걱정할 때가 오겠지만, 지금 이 시절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언제까지 민서와 숨바꼭질로 이렇게 넘어가듯 웃을 날이 오겠는가. 오늘이 지나면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 것. 삶의 의미는 오늘 하루하루 매일같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하며 사는 것이다.







- 민서의 요즘 사는 이야기                                           
민서는 요새 들어 얼굴에 무언가가 나기 시작했다. 열이 있거나 보채거나 하는 기미는 별로 없어서 큰 문제는 아니겠지 싶은데, 오는 수요일 병원 검진이 있으니 그때 의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참이다. 생각컨데, 아마 한창 이유식을 먹이고 있는 가운데 들어간 재료에서 나오는 알러지 반응이 아닐까 싶다. 우선  하군(민서엄마)이 잘 먹고 있는 이유식의 일부 재료를 한번더 꼼꼼이 점검해 보기로 했다.

10개월에 진입하는데 여전히 이가 나오고 있지 않다. 이른둥이인만큼 상대적으로 이가 늦게 나올 수도 있고, 또 일찍 나온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니 느긋하게 기다려 본다.

무언가에 기대어 혼자 서는 건 아주 잘하고 있다. 무언가를 잡고 서 있다가 의도적으로 놓고 두 발로만 서는 연습을 혼자서 틈틈이 한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활동력도 좋은데다가 잘 먹고 잘 싸고 있어서 이가 좀 늦게 나오지만 그래도 건강히 잘 크겠다는 믿음이 간다. 아마 돌 때 되면 걷지 않을까.

돌잔치를 할 것인가를 놓고 주변분들과 의논하고 하군과도 여러번 상의해 봤는데 마땅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돌잔치의 주인공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직 한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무슨 결정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우연도 필연의 일종이다는 생각에 민서 앞에서 약식 돌잡이를 했다. 민서가 오른쪽의 금수저를 잡으면 돌잔치를 하고 왼쪽의 은수저를 잡으면 안한다는 식이었다. 이런 식의 의사 결정을 3가지로 나누어서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2:1의 숫자로 돌잔치는 안한다로 민서가 결정했다.

사실 돌잔치는 돈잔치가 된지 오래다. 아이가 귀해지면서 돌잔치는 어느 정도의 규모로 하느냐가 그 집의 살림규모로 비교되고, 또 정작 주인공인 아이와 부모는 피곤에 지쳐 쓰러지기 쉽상이다. 물론 아이와 관계된 분들에게 덕분에 아이가 1년동안 무탈하게 잘 컸다는 인사자리의 의미가 크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잔치까지는 피곤할 뿐이다. 틈틈이 지인들과의 자리에 아이를 인사시키는 게 더 의미있다.

따라서 돌잔치 때 민서 보러 오겠다는 분들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러나 다른 기회를 통해 민서를 인사시키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반응형
반응형


얼마전 집에서 쉬고 있던 동생이 아는 사람 통해서 중국을 통해 자전거 한대를 들여놨습니다. 집에 가서 보니 BMW clasic bike 써져 있는 자전거인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네요. 어쩌면 제가 처음으로 시승기를 올리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이 자전거가 중국 짝퉁인지, 아니면 중국OEM방식의 정품인지 저도 확신이 안갑니다. 동생 말로는 유로화로 삼백만원 정도의 고가 자전거라고 하더군요. 물론 가짜라면 가격은 다르겠죠.




매끈하게 빠진 모습은 미니벨로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특징적인 부분은 핸들과 바퀴의 휠 부분인데요.




핸들은 위 사진처럼 끝이 위로 말아 올려진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의 자전거는 처음 보는데, 조립이 잘못된걸까요? 아니면 원래 이런식일까요? 그리고 기어가 붙어 있는 앞손잡이 부분은 잡기가 불편할정도로 매우 좁습니다. 이 자전거의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싶더군요.




바퀴 휠은 꽤 강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얇은 살이 아니라 두꺼운 판넬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럴까요? 아무튼 자동차 바퀴만큼 멋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자전거 무게가 더 나갑니다. 제가 타고 다니는 블랫캣 미니 3.0보다 조금 가벼운 정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실제 무게는 잘 모르지 말입니다.










안장이나 기어(단일 기어 7단) 등은 꽤 좋아 보였습니다.(뭐 하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게 없네요. 전부 인상비평 정도) 일단 기어는 시마노 정품으로 보였고요, 안장 역시 꽤 좋은 가죽으로 날렵하고 튼튼하게 제작된 안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조립과정의 부실인지 기어에서 작은 문제들이 보였고, 안장은 부착 형태가 잘못되어 있어서 타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이런 불편이나 문제는 쉽게 고칠 수 있을 듯합니다만, 주행시 손잡이 부분은 구조적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폴딩형 자전거인만큼 접는 문제는 확실히 편하군요. 가운데 부분의 접이장치만 풀어주면 아주 쉽게 접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블랫킷 미니 3.0이 세번의 과정이 필요한 반면 한번에 접히는 BMW클래식은 확실히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안전에 대한 의구심도 버릴 수 없습니다. 가운데 접이장치는 블랙캣에 비해 좀 불안한 느낌입니다. 블랙캣처럼 잠금장치가 별도로 있다면 좋을텐데 그 부분이 좀 아쉽네요.

전체적으로 주행감 등은 블랙캣에 익숙해져서인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동생에게 이것저것 손볼 데가 많겠다고 알려주었는데, 고치고 나면 더 좋아질까요? 손잡이의 한계 때문에 저는 그다지 찾을 것 같지가 않네요. 그래도 날렵한 폴딩형 자전거의 특징과 BMW고유의 로고가 던지는 아우라, 쉽게 접을 수 있는 편리함 등이 이 자전거의 장점을 도드라지게 하는군요.

이상 시승기를 마칩니다.^^














마포대교에서 저녁노을과 파란하늘을 함께...











반응형
반응형






지겹게 비가 오고 있다. 9월 중순에 접어들고 있는데, 장대비가 하루 종일 온다. “이건 세상이 미치니까 하늘도 미친 거야.” 누군가가 낮게 뇌까렸다. 비가 오는 낙원상가 한편에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스쳐간다. 불과 며칠 전까지 뜨겁게 내리쬐던 여름의 흔적도 장대비 속에 사라져간다. 이날 나는 채만식의 삼대를 영화 속에서 다시 만나는 데자뷰를 경험했다. 박동훈 감독의 영화 <계몽영화>는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 시대, 현대를 이어온 3대의 이야기를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우리를 끌어들였다.


오해도 있었다. 3대의 이야기를 영화에서 다룬다고 하는데, 과연 그 엄청난 한국의 근현대사를 영화에 담는 게 가능한거야? 괜히 장엄한 근대사의 물결 어쩌구저쩌구하는 계몽 퍼레이드는 아니겠지? 아니면, 좌파적 감상으로 주류 기득권을 향한 냉소와 비판의식에 쩔어 있는 영화가 아닐까? 




아, 그 모든 내 상상력은 거기까지다. 그러니 나는 영화감독도 못하고 글도 못 쓰는 거다. 영화는 내 생각을 비웃듯이 꽤 재미있으면서 진지하고, 진지하려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확 잡아채는 짠함을 던져주고, 슬퍼지려는 격정 앞에서 다시 관객의 자세를 다잡아준다. 정학송과 그의 아내가 세 번째 만나는 국제중앙다방의 데이트는 시종일관 비실비실 웃음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둘이 나누는 이야기에는 우리 세대가 모를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둘은 피난길의 시체 이야기들로 핏대를 올렸는데, 결혼을 합의하려는 자리에서 생뚱맞은 시체 이야기는 그 시대의 상처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그 세대에게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지 유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 정학송의 아버지 정길만의 이야기는 어떤가. 정길만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다니면서 농부들의 핍박하는 조선인 앞잡이로 살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밤에 농부들에게 살해당하는 꿈을 꾸는가 하면, 술김에 일본 간부에게 일의 문제점을 이실직고 하고 마는 순진한 애아빠다. 그런 그에게 어릴적 동네에서 함께 자랐지만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친구가 찾아온다. 그러나 정길만은 그 친구를 고발하고 자신의 일가를 보전한다. 




1대나 2대 모두 그렇게 악독하고 모진 사람들은 아니었다. 모진 시대의 흐름에 부대끼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앞 세대의 진실이었을까.


김훈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시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시 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시를 발려내고 먹이만을 집어 먹을 수는 없다.”


그네들은 그런 시대를 살았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낚시 바늘은 더욱 강고하고 튼튼했다. 가난의 시대, 억압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에는 강한 낚시 바늘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던 것이다. 1대의 진실 친일과 2대의 진실 가부장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우리 세대, 다음 세대를 흔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낚시바늘은 더욱 우리를 옥죄어 오고 우리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죽을 수만은 없다. 악함, 부정, 슬픔, 아픔 등은 모두 없었으면 하는 것들이지만, 실상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모두 선함, 긍정, 기쁨, 즐거움이라는 가치와 서로 의지하면서 존재하는 것들이다.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과거의 일들을 재조명해 보는 일은 그래서 필요하다. 감출 필요도 없고 부정할 필요도 없고 단죄는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역사의 희생자들이 있다면 보듬어 안고 가는 일만 남았다. 죽어가던 정학송은 내내 침대에 손이 묶여 있었다. 친일 부역자의 자식이며 가부장제의 화신인 그가 마지막 가는 길에는 침대에 꽁꽁 손이 묶여 있었다. 영화는 정학송의 손을 풀고 다정히 손을 잡아주길 원하고 있다. 용서는 깊은 이해에서 나올 수 있고, 그 혜택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