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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왔어?




오늘은 어디가요?




물론 부모형제와 함께 살 때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그 때 나는 '우리' 가족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내' 가족이라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내' 가족이 생겼다. '내' 가족이 생기면서 책임과 의무가 더욱 늘었고, 나만의 자유와 평화의 영역은 매우 축소됐다. 그러나 혼자였던 '나'는 또 다른 '나' 둘을 더 얻었다. 숫자로만 볼 수 없는 부유함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8월 초 휴가 때 내 가족과 함께 한 첫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첫날부터 휴가길은 심상치 않았다. 토요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섰지만, 뉴스에서는 영동고속도로가 새벽부터 시작된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물론 영동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서울을 빠져 나가는 모든 고속도로는 아침부터 심한 정체를 겪고 있었다. 휴가를 8월초로 몰아주는 우리나라 현실이 고속도로에 여실이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1년에 한번 있는 휴가, 이렇게 고행을 해서라도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갈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참 꽤재재한 현실을.





























첫날 여행지는 담양.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그것도 휴가철인 일요일 집을 나선 것이 잘못이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에 치일 거라고 예상은 했어도 시골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몰릴 것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담양 소쇄원은 세번째 찾은 것이었는데, 예전처럼 고즈넉한 맛을 볼 수 없었다. 그 작은 전통 정원과 가옥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디를 담아도 멋진 풍경이 나왔던 소쇄원은 어디를 찍어도 낯선 사람들의 사진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운좋게 자리잡은 평상은 우리가 앉은 이후 채 10분도 안되서 다른 사람들로 꽉 채워지고 말았으니, 저 위의 평상 사진은 정말 운이 좋게 잘 나온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마 사촌누이의 소개로 어렵게 찾아간 명옥헌원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정자라서 그런지 그나마 조용히 머물 수 있었던 곳이다. 물론 이곳에도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 중에는 일본인과 서양인도 있었다. 하지만 연못과 그 주변의 배롱나무들에서 활짝 핀 꽃이 제법 운치있는 곳이었다. 담양 여행 중 민서가 가장 잘 웃고 행복에 겨웠던 곳이 아마 이곳이 아니었을까.

죽녹원은 입구의 주차전쟁부터 만만치 않았다. 죽녹원 내부에서는 온갖 사투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날이 날인만큼 대나무 숲의 시원함보다는 짜증이 밀려올 정도로 사람과 날씨에 치였다. 그래도 간간히 나들이가 마냥 즐거운 딸내미 덕분에 웃었다.






월요일에는 함양의 서암정사와 상림공원을 다녀왔다. 이날은 장모님도 함께 했는데, 서암정사 주변은 한창 공사중이라서 덤프트럭들이 바로 절 앞까지 오갈 정도로 부산했다. 그래도 서암정사 본래의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장모님이나 아내는 대만족이었다. 상림공원은 날씨를 생각하면 가지 않는게 좋을 뻔했다. 그래도 상림공원 앞 늘봄식당에서 오곡정식은 나쁘지 않았다.



















셋쨋날은 순천 송광사를 돌아보고 계곡에서 간단히 물놀이를 즐겼다. 이곳에서 민서와 처음으로 물놀이를 했는데, 민서는 차가운 계곡물이 신기한지 발로 물장구를 치면서 장난을 치면서 까르르 숨넘어가는 웃음을 던졌다. 태어난지 8개월 된 민서에게 모든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피곤함도 만만치 않았다. 넷쨋날은 장모님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구례의 위안리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내린 결론은, 역시 집에 물 받아놓고 하는 물놀이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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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큰집 풍경



처음으로 큰아버지와 단둘이 함께 한 여행은 시제를 지내러 간 남해였다. 대학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 20년 가까이 지난 세월이다. 허물어져가는 종가집이라지만, 그래도 나름 종손이라고 해, 나만 유일하게 남해의 조상 묘소에 찾아간 것이다. 큰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해 나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낳은 자손이 지금도 하나의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큰아버지의 이야기는 구례로 들어와 일가를 이룬 앞 세대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떠나는 유태인들의 이야기처럼 장대한 대서사시가 큰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그 당시 나로서는 양자역학에서 나오는 소립자 이론만큼이나 실체가 불분명하고 이해가 어려운 이야기였다. 당시의 나로서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지난한 과정의 앞세대의 삶이 있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것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내 선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큰아버지의 조촐한 고희연이 지난 토요일 구례에서 있었다. 큰아버지의 동생과 그 자식 손자, 그리고 친척분들만 참석한 자리지만 식당 한켠을 온전히 차지하며 시끌벅적했다. 손자손녀들도 큰애가 이제 어린이집에 다니는 정도이지만 제법 소리를 내는 터라 정신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일가친척들만의 자리라 제법 즐겁고 유쾌한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돌아보면 나로서는 몹시 아쉬움이 남는다. 큰아버지가 가진 삶의 무게는 한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그 전 세대의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큰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들을 녹취해 볼 생각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먼저 살다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들려주는 것도 삶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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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스스로 저차원적인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 비유하고 있으면서도 고차원적인 동작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해내는 기계와도 다르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존재죠. 어느 하나로 결론지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듯이 아이들 역시 공부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조금만 참고 바짝 쪼이면 잠시나마 성적을 올릴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자주성과 창의성 등은 그 과정에 말살되기 쉽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장래(대개는 대학과 직업의 동의어입니다)를 위해 서로가 조금만 참고 노력하자고 합니다만 실상 보이는 현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적을 통해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는 극히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의지를 밀고 갈 수 있도록 책임감을 북돋우고, 필요한 조건과 환경을 같이 고민해 만들어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절제와 인내의 힘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학교 공부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교훈이겠죠. 성적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긍정적 결과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석차는 이 과정에서 교훈과는 전혀 관계없는 부산물입니다. 석차는 사회가 필요로 해 아이들을 서열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고르는 사회가 아니라 대학이 아이를 고르는 사회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습은 바뀌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통계청 결과에 따르면 15~24세의 사망 이유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자살의 이유는 가족 문제나 이성 문제 등도 섞여 있겠죠. 하지만 학교 및 학업과 관련된 자살 기사는 심심치 않게 신문 지면 한쪽을 채우고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심스럽지만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만큼 성적과 체벌을 통해 청소년의 삶을 옥죄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권리와 자유도 주어져야 합니다. 권리와 자유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하다며 권리와 자유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위의 악순환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아이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이들을 험악한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로 만들어 옆의 친구를 쓰러뜨리고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보다는 드넓은 자연에서 모험을 통해 협력과 협치를 이해하며 책임과 의무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이 아닐까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고 미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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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를 모를 때가 많다. 이것은 꼭 속마음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몸 상태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많은 이들이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병마는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신의 몸에서 조금씩 아주 천천히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 병마를 키웠던 것은 자신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이다.


내 몸 상태를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건강 검진이 있다.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 공단에서 제공하는 일반 정기검진을 받았다.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제외하고 그다지 신통한 검사는 없었다. 그 결과가 오늘 나왔다. 키는 더 커졌고(응?) 몸무게는 약간 줄었다. 체지방과 허리둘레도 정상으로 나왔다. 다만 혈액검사 결과에서 이상이 있었다.


총콜레스테롤은 178(200미만 정상)이 나왔는데, HDL-콜레스테롤은 42(60이상 정상)로 정상보다 적게 나왔다. 반면 트리글리세라이드 221(100~150미만 정상)로 정상보다 많이 나왔다. LDL-콜레스테롤 91.8(130미만 정상)은 정상으로 나왔다. HDL-콜레스테롤과 트리글리세라이드가 비정상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생소한 의학용어들은 대개 공포의 대상이 되기 쉽다. 더군다나 비정상 수치라고 찍혀 나오니 내 건강염려증을 부채질한다. 인터넷에서 각각의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트리글리세라이드는 일종의 중성지방으로 몸에 그다지 좋지 않은 콜레스테롤이다. 반면 HDL-콜레스테롤은 관상동맥질환과 역의 상관관계가 있어서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이다.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은 적고 몸에 별로 좋지 않은 콜레스테롤은 높으며 아주 안 좋다는 콜레스테롤은 정상인 셈이다. 역시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결론이다.


HDL-콜레스테롤은 등푸른 생선이나 채소와 과일에서 많이 나온다. 과일과 생선을 즐기지 않은 내 식습관이 문제다. 중성지방이라는 트리글리세라이드는 주로 알코올이 수치를 높인다고 하는데, 일주일 1~2회 정도의 음주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확실히 많이 줄여야 할 이유가 됐다. 보통 이쯤 되면 “술이 웬수다”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음주 습관이 ‘웬수’인 것이다. 따라서 술을 없애거나 바꿀 게 아니라 자신의 음주 습관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곧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


















고지혈증의 식이요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정보다.

1. 하루 3끼 식사는 규칙적으로 합니다. → 아주 잘 하고 있다.

2. 과식은 피하고 곡류(밥, 빵, 떡 등), 어육류(생선, 고기 등), 채소, 우유, 과일 등을 다양하게 먹습니다. → 생선과 우유, 과일 섭취에 좀 더 신경 써야겠다.

3. 합병증을 막기 위해선 반드시 싱겁게 식사를 해야 합니다. → 아내의 음식은 좀 싱거운 편이다.

4. 술은 고혈압과 뇌졸중의 위험이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으나, 만약 마실 경우에는 주 1-2회 이내로 하고, 1회는 2잔 이내로 마시도록 합니다. → 주 1~2회는 맞으나 1회 1병 이상 마신다. 주 1회로 줄이고 1병 이내로 줄여야겠다.

5. 잡곡류 (콩, 보리, 현미), 채소류, 해조류 (미역, 다시마) 등 섬유소가 많은 식품을 충분히 섭취합니다. → 잡곡류는 충분히 잘 하고 있지만 해조류는 규칙적으로 먹어야겠다.

6. 햄, 소시지, 핫도그, 반조리 식품 등의 가공식품은 피합니다. → 이젠 또 하나의 낙이 사라졌다.

7. 과체중이면 체중조절을 하도록 합니다. → 아주 살짝 과체중이다.

8. 규칙적인 운동은 고지혈증의 예방과 치료에 필수적입니다. → 일주일에 3회 이상 자전거 출퇴근(왕복 2시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게 풍부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몸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식의 양과 질은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옛 표어를 빌려와 표현하자면, "무턱대고 먹다가는 돼지꼴을 못면한다"라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는 그저 한 개인의 건강관리라는 측면 보다는 보다 진보적인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필요한 기준이 된다. 3끼 건강한 식사와 꾸준한 신체 활동, 그리고 운동 등을 통해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이 지구를 사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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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통화 시간 : 86시간 27분 49초 4108통화
☏ 발신 통화 시간 : 48시간 18분 05초 2312통화
☏ SMS 발신건수 : 661건
₩ 구매 당시 가격 : 100원
@ 구매 년월 : 2008년 2월 경

액정에 얼룩같은 상처들이 꽤 넓게 분포해 있다. 
윗부분의 색은 이미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횟수로는 3년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화기라는 것이 통화만 잘되면 되는 거다,
라는 생각은 이제 고릿적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다양한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이 대세다.
굳이 대세를 따라간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기능들을 보면
나에게 참 유용할 것으로 보이는
여러 애플리케이션들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안드로이드 폰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폰 4G가 나를 유혹하고 있다.
어찌됐든 조만간 지금 저 핸드폰과는 이별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세상을 이어준 저 녀석과 이별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짠하다.

아직은 그래도 내 곁에서 잘 살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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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야유회를 다녀왔다. 사람들의 평점은 5점 만점에 4.18점. “참 잘했어요.”에서 “참”을 빼는 정도가 되겠다. 무난하게 끝났지만 스스로 평가해 보면 좋지 않다. 많은 사람과 함께 행사의 취지와 내용을 만들어 가는 과정, 그 안의 불만들을 받아 주고 서로가 다른 의견들을 하나로 모아가는 일, 야유회의 진행 과정에서의 부자연스러움 등은 나에게는 참으로 벅찬 일이었다. 거기다가 갑자기 몰려든 교재 편집업무까지 어느 것 하나 수월하게 진행된 것은 없었다.


돌아보면 사람들의 불만을 모으고 그 불만을 넘어 더 나은 결과를 내고자 했던 여러 실험들은 그다지 바람직한 결과를 내오지 못했다. 설문조사 자체에 대한 실험은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으나 내용과 결과의 해석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소집단의 의견수렴은 설문조사보다는 심층면접이나 익명성을 강조한 의견서 작성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이후 다른 사례에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충분한 시간과 지원은 꿈꾸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로지 경험과 야근만을 강요하는 환경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야유회 행사에서도 미숙한 진행은 어쩔 수 없었다. 내 성격이 ‘다큐’에는 강해도 ‘예능’에는 젬병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게다가 너무 자만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남들 앞에 나서본 일이 없고, 하다못해 반장 한번 안 해 본 내가 뭘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야유회가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초기에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보이콧을 생각할 만큼 분위기는 무척 안 좋았다. 설상가상 설문조사 과정에서 팀장의 심기까지 건들고 만 일도 있다. 이때의 분위기는 험악하기까지 했었는데, 이런 과정을 무사히 넘겨 한 사람 빠짐없이 참여하는 야유회를 만들어 낸 것도 큰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유회나 워크숍이 회사에 대한 애사심을 만드는 장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심지어 팀별 워크숍이나 야유회가 회사의 공식 행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회사의 앞날을 암울하게 한다. 어디까지 믿고 따를 수 있을까에 대해 조직원들의 의심은 깊어만 간다. 물론 다른 회사의 경우를 본다면 그나마 인간적이라는 게 세간의 평이다. 하지만 회사는 '예능'이 아니라 '다큐'다.  조직은 그 무엇보다 살벌하게 돌아가기 나름이다. 그런 조직이 애사심을 갖게 하기 보다는 다른 탈출구나 요령만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 회사의 리더십은 바닥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선한 사람들이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좋지 않은 조건과 환경에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회사 생활을 엮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야유회는 그런 성심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멋진 작품이었다.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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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이제 됐어?"


끊임없이 홀로 전장터로 내몰리는 전사의 비애였을 것이다. 수없이 무찌르고 베어냈지만 여전히 몰려드는 검투사들, 끝나지 않을 원형경기장의 전투. 그렇게 원형경기장의 중앙에 우뚝 섰지만, 저 시체들 너머 더 큰경기장에서 더 잔인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누군가가 알려줬을 것이다. 아니, 이미 중앙에 올랐을 때 그는 알았을 것이다. 나는 누구를 쓰러뜨리고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내 자리를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다른 검투사들과의 싸움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이 피의 비는 언제 그칠 것인가.

사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경쟁 사회에 익숙해져갔다. 다행히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더 강한 자라고 자위하고 있다. 사실 원형경기장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대학을 나와서도, 직장에 다니면서도, 그 치열한 전투의 트라우마는 번번이 삶의 한가운데서 불쑥 불쑥 고개를 내밀기 일쑤다. 그렇게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며 끝나지 않은 전투를 벌이고 있다. 더 큰 원형경기장에서 더 큰 어른들과 벌이는 전투는 그저 성적표의 성적이 좀 떨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삶을 뭉텅이로 도려내고 나락으로 처박아 버릴 수 있는 잔인한 싸움이다.





어쩌면 그 아이는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됐어?"와 "이제 됐어!" 그가 마지막에 썼다는 그 물음표는 오히려 느낌표 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금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극렬히 저항하고 있다. 그네들이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은 철저히 막혀 있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인 자살로 내몰리고 있다. 절규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 안에서라도 아이들이 숨쉴 수 있게 하자는 것을 이념 갈등으로 치부하는 저 몰지각한 어른들에게 우리 아이들의 절규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이 잔인하고 비열한 전투는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단지 몇몇 한줌도 안되는 승자, 그것도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 등극한 승자들을 위한 요식행위에 동원되는 그저그런 사람들을 피할 수 없는 패배자, 루저의 나락으로 내볼고 있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꿈꿀 수 있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교육, 그것은 원형경기장의 담장을 허물어 버리는 시작이다.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구하고 미래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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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한 사회 노회한 조직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다니는 회사는 나이를 참 많이 먹었구나 싶다. 물론 회사가 45년이나 되었으니 사람으로 쳐도 중년을 달리고 있는 셈이지만 가끔 보면 그 이상의 연배를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있을 때 손쉽게 지위와 나이를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경향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회사의 행동을 보면 45세가 아닌 60대 후반일 것 같은 고루함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나이 듦에서 오는 신중함과 엄격함이 긍정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시대에 뒤쳐지는 프로세스나 시스템, 직원 복지 정책이나 회사 비전 등은 동종 업계 그 어떤 회사보다 노후화 되어 있는 회사가 아닌가 의심할 때가 많다.

2주 전부터 회사 워크숍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워크숍이라고 해서 어떤 중요한 이슈나 주제를 가지고 심층 토론이나 회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구성원끼리 하루 잘 놀고 먹고 잘 수 있는 장소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문제는 회사는 모르는 비공식 워크숍이라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회사는 팀별 워크숍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전 워크숍도 마치 007작전 수행하듯 몰래 회사를 빠져나가 개별적 혹은 조별로 해당 장소에 찾아가도록 지시를 받기 일수다. 그러니 지원금 등은 애초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은 팽배했다. 워크숍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한 몇달 전부터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는 워크숍은 절대 갈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상 회식도 아니고 토요일 오전까지 헌납해야 하는 워크숍에서 금요일 저녁 출발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다. 사실상 저녁에 출발해 술이나 마시고 놀다가 뻗어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돌아오는 그야말로 별 무의미한 일정만 소화하는 일에 사람들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팀별 워크숍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긍정적 효과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한푼도 지원하지 않는 우리 회사에 대한 반발, 조직의 고루함도 사람들의 불만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는 팀장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다.



▲ 지난 해 영종도 워크숍의 한 장면



하지만 여기에는 조직원들 사이의 오묘한 이해관계의 대립도 없지 않다. 각각의 담당자들이 각자의 일을 수행하면서 겪는 상급자와의 오랜 갈등, 각 담당자들 간의 갈등, 조직원들간의 묘한 오해 또는 서먹함 등이 두껍게 쌓여 있다 보니 조직원들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해 보려는 노력이 가치를 바랬다. 물론 1박2일 화려한 워크숍이 오래 쌓인 갈등의 때를 한번에 벗겨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속내를 편안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는 프로그램과 그것을 지원하는 회사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주 오래된 가치, 다양성의 회복                          


이렇게 부정적 분위기가 가득한 상황에서 워크숍을 준비하는 명을 받았으니 나로서는 곤혹스럽기만 했다. 윗사람에게는 금요일 일찍 출발하는 워크숍 일정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고 직원들에게는 부정적인 워크숍 인식을 긍정적 인식과 기대로 바꿔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구글 문서를 이용한 설문조사였다. 설문조사를 통해 직원 일반의 워크숍에 대한 인식을 윗사람들이 그대로 받아 안아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여 워크숍에서는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총 3차례에 걸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오히려 상처를 덧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과정도 부실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결국 1박 2일 워크숍은 무산되고 대신 금요일 저녁의 바비큐 파티로 진행할 예정이다. 워낙에 다양한 개성과 업무로 어우러진 팀이라서 하나로 통일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굳이 통일하기 보다는 서로의 이해를 요청하고 최대한 모두가 편안한 일정으로 잡아보려 하였다. 무엇보다 술자리 외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일정이었다.

다양성은 조직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힘들고 답답한 좁은 문처럼 보이지만, 그 문이 제대로 열린다면 누구나 오갈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큰 문이 될 수 있다. 그러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서 다양성을 버린다면 그건 윗사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이 반복됨을 의미한다. 동료 직원이 수시로 바뀌는 것은 그만큼 일의 편차가 커짐을 의미하고 조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자연히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퇴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다양성에 대해 폭넓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진행되는 워크숍(야유회)가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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