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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SNS)의 첨병으로서 페이스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트위터가 한창 그 주가를 올리고 있다. 나름 초기 사용자이지만 여전히 그다지 활동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 트위터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옆에서 보아온 트위터의 위력은 만만치 않다는 게 사실이다. 그 소식의 전파 속도나 이야기의 질, 그리고 글 내용의 청정성, 다양한 글 추천 등은 여타 인터넷 게시판의 글들보다 수준이 높다.

어쩌다 보니 여기서 옛 지인들도 만나게 된다. 대학 동문들끼리 트위터에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다지 새롭지 않다. 새로운 이야기들보다는 옛날 이야기들, 혹은 공통된 사람들의 현재 근황, 자기 이야기 등등





따지고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들인데, 술병은 켜켜이 쌓여간다. 낯설지 않은 분위기 편안한 담론들, 지루하지 않게 넘어가는 술잔들 사이에 옛정이 새록새록 스며들었다. 그래서 꽤나 마셨나 보다. 딱히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고민도 없었지만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달렸고, 술이라도 잠시 깨보자고 달려간 노래방에서는 픽 쓰러져 잠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은 온몸의 뼈와 근육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내장은 고통에 겨워 신음하며 머릿속은 지옥의 아수라장처럼 어지럽기만 했어도 되돌아보면 그 인연들이 다들 기쁘고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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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다.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태양은 나를 향해 비추며, 바람마저 내 귀밑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준다. 새들의 노랫소리도 나를 축복하고 꽃들도 내 아름다움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그런 날들. 내 사랑과 열정이 넘쳐나던 젊은 날을 떠올릴 수 있고,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니거나 산골짜기를 오르내리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이도 있겠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전직 군인이었던 한 여성은 구금자들 앞에서 찍은 사진을 내 보이며 “내 삶의 최고의 날”이라고 했다. 그이에게는 군대에 있던 젊은 날이 국가를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하며 내적, 외적 아름다움을 이루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관련 기사: 이스라엘 여군 “내 최고의 날” 페이스북 사진 인권침해 논란



그러나 아름다운 삶은 지금 있는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그 사진은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온 정신적 문명이 망가지는 장면을 담은 것일 뿐이다. 눈이 가려지고 손목이 묶인 수감자들의 심정을 생각하지 않은 것, 타인의 고통과 수치심, 절망감에 대해서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을 그저 사진 속 배경에 처리해 버린 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것이다.


윌리엄 아서 워드는 “언젠가 우리는 모두 생활(수준)의 기준이 아니라 삶의 기준으로, 부(가진 것)의 척도가 아니라 나눔의 척도로, 표면적인 위대함이 아니라 내면적인 선함으로 평가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개인마다 생각하는 최고의 날로 다시 돌아가 보자. 과연 그 최고의 날은 생활수준의 기준으로 잡았던 것일까? 부의 척도로 재단했던 것일까? 아니다, 내면적인 선함, 인간성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다가오는 8월 22일은 역사적인 제네바 협약이 맺어진 날이었다. 1864년 8월 22일 제네바에서는 전쟁에서 군대 부상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협약을 맺는 것으로 출발해 지금은 전시에서의 민간인 보호에 관한 조항까지 전쟁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인류의 약속으로 자리매김했다. 제네바 협약의 정신은 치열한 전쟁 상황에서도 야만적인 상황을 멈추게 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여성이 놓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사진은 ‘내 삶의 최고의 날’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누구에게 분명 ‘내 삶의 최악의 날’이 되는 사진이다. 우리 스스로 인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배울 수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과 갈등의 배경이 저 사진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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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동영상은 민서가 태어난지 약 한달되었을 때의 동영상이군요. 태어날 때는 너무나 작았죠. 2.02kg이었고 병원에서 보름 정도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퇴원할 때도 간신히 2kg을 넘어서 퇴원했던터라 걱정도 많이했는데 말이죠.







그러던 민서가 이렇게 잘 크고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잔병치레 한번 없이 잘 웃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싸고 있죠. 요새는 입으로 혼잣말을 뭐라뭐라 하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조만간 그 동영상도 찍을 수 있다면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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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wls0115: @saunakim 말씀대로 진실은 밝혀지겠죠. 하지만 언론통제와 표현의 자유 침해는 지금 이명박 정부 하에서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심각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saunakim: @eowls0115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말씀 하시는 건지요?


이전부터 김철균 비서관을 팔로잉 하면서 그가 소통하려는 노력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또 그의 이런 노력이 진심이라는 것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오늘은 한마디 안할 수가 없었다. 김 비서관 말대로 PD수첩의 불방과 청와대 사이에 아무 연관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며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의 오해는 하루 이틀 쌓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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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언론통제와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지적된 사안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 질문이 좀 도발적인 면도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마치 그런 일은 없다는 듯이 반문하는 건 아니다. 약간은 흥분해서 요새 말하는 폭풍 트윗을 좀 했다. 다음은 이후의 내 트윗이다. 비서관에게 맨션으로 날리지는 않았다.


1. 국제앰네스티는 2010연례보고서에서 “한국 사회는 지난 1년간 인터넷과 집회·시위 등에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면서 미네르바 사건과 PD수첩 기소 사건 등을 소개했다.

2. 국제엠네스티는 “미네르바 사건 이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많아지고 정부의 무리한 기소가 늘었다.”면서 “과도한 불법화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3. 그 외에 용산참사나 천안함 사태에 대한 의견 표현은 매번 경찰과 검찰에 의해 협박당하거나 위협당하거나 체포 연행 기소 등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4. 지난번 6.2 지방선거는 세계 선거사에서 웃음거리가 될 만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이나 친환경 무상급식 홍보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한 것은 기가 찰뿐이다.

5. 게다가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를 조사하러 온 유엔 특별 보고관을 미행한 것도 한국정부의 외교통상부 직원이다. 누구든 사찰하고 미행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6. 그 외에도 공무원, 교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 침해는 언급안하겠다만, 기소, 고발, 고소 등으로 표현의 자유 위축시킨건 명백하다.

7. 이번 PD수첩 사태 역시 표현의 자유 침해 연장선에서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 물론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사람들이 청와대를 의심하는 건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 침해가 사회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그에 대해 정부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 생애 최초의 폭풍 트윗의 내용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 전반에 표현의 자유 등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건 이번 PD수첩 불방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등의 기본권 침해에 대해 특별한 조처를 취할 생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인권을 침해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도 나쁘지만,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현실을 그냥 놓아두고 있는 것 역시 잘못이다. 이것이 정부가 우리 사회의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이번 PD수첩 불방 사태에 대해 억울해 할 것만 아니다. 우리 사회 인권 보호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은 내놓지 않는 한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청와대를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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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장마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8월 한 달간 비가 오지 않은 날이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니 말이다. 덕분에 자전거 출퇴근은 단 한번에 불과하다. 어제가 그 날이었다. 오랫동안 쉬던 자전거라서 그랬는지 탈이 나도 단단히 났다. 퇴근길에 구로역 근처에서 그만 대못을 밟고 말았다.


한창 집으로 달리는 길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가 드르륵드르륵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생각에는 뒷바퀴 쪽에 안장 등에서 문제가 생겨 주저 앉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자전거를 세우고 찬찬히 살펴보니 뒷바퀴에 모나미 볼펜심 정도의 길이와 굵기를 가진 대못이 박혀 있었다. 그 대못의 머리 부분이 바퀴 물받이 부분에 부딪히면서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냈던 것이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펑크를 떼울 줄도 모르고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떼울 수 있는 장비도 없었다. 오랜만에 자전거 끌고 나와서는 집까지 걸어가야 상황이 난감하다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구로역 못가 자전거 점포가 있고, 동양공전 근처에도 자전거 점포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시간은 오후 9시를 넘어가고 있어서 가게가 열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구로역 근처의 자전거 가게는 열려 있었다.


5000원을 주고 펑크를 떼운 후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이로서 이날까지 977.9km를 달렸다. 올해 계획인 3000km 주행은 어렵겠지만 그 절반은 무난하지 않을까. 이놈의 비만 그만 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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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에 우리나라가 동참하면서 이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란과의 경제 교류 분야에서 있을 우리 기업의 피해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란 사람들의 삶과 의식에 대한 접근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란을 과격한 종교의 나라로 오해하고 있는 이면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이전부터 서방 세계와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 온 이란은 서방 언론 매체를 통해 과격한 종교 국가의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지난해 반정부시위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보여준 이란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여기에 ‘이슬람’이라는 편견을 씌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란의 여성 변호사 시린 에바디는 2009년 만해평화상 수상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물론 유감스러운 사건이 있지만 그게 이슬람의 전부는 아닙니다. 같은 이슬람 정부라고 해도 여성 총리가 나온 나라가 있을 정도로 이슬람도 다양한 해석을 가지고 있으며 충분히 인권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다만 비민주적인 정부들이 인권을 억압하는 정책에 ‘이슬람’이란 말을 남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립스틱 지하드, 하이힐 혁명

지난해 있었던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일명 ‘립스틱 지하드(성전)’, ‘하이힐 혁명’으로도 불린다.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셨다는 것이다. 이란의 젊은 여성들은 6~7월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개혁파의 상징색인 녹색 스카프나 깃발을 든 채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여성의 정치 사회 운동 기반과 민주주의 의식의 저변 확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모습이다.


이전부터 이란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자유롭고 실용주의적인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공식적인 옷차림 규제는 매우 엄격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허용치를 넘나드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10대들은 속이 비치는 머리스카프로 흉내만 내면서 엉덩이도 덮이지 않는 짧은 겉옷을 입고 다닐 정도다.


또 이란의 인터넷과 휴대폰 보급, 그리고 그 여파도 이번 시위에 큰 역할을 했다. 온라인 상에서 빠르게 전파되는 시위 소식은 그대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혈 사태를 곧바로 감지할 수 있어서 세계 여론을 끌어들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유혈 진압의 상처와 그 치유

결과적으로 지난해 대통령 선거는 이란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선거 부정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었고, 그 의혹을 표출하는 이란 민심에 대한 무자비한 유혈진압이 일어났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2010년 보고서에서 “지난 1년간 이란 정부의 국민통제는 더욱 강화됐고 혁명수비대와 ‘바시지’ 민병대, 경찰의 민간인 탄압과 불법체포, 감금, 폭행이 상시화 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국제엠네스티는 1년간 체포된 이란 반정부시위대가 5,000명이 넘는다는 보고서를 냈다.


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란 교도관들이 수감자를 구타하고 강제로 수감자의 손톱을 뽑는 등 가혹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온라인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수감자에 대한 인권침해로 악명 높은 카리작 구치소를 폐쇄하라고 지시했으며, 이란 사법부는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140명을 즉각 석방하기에 이르렀다.


이란의 지난해 유혈 사태는 쉽게 치유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전 세계인의 양심이 지켜보고 응원한다면 그 치유 과정 역시 빠르게 전개될 수 있다. 눈여겨 볼 사실은 이란은 세계 최대의 난민 수용 국가라는 점이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 자료에 따르면, 이란은 100만 명이 넘는 난민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한다.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쿠르드족 출신인 이들에게 이란 정부는 거액을 들여 사회보장을 제공하고 있으며, 대신 그들로부터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고 있다고 한다.




장금이와 천국의 아이들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 분야에서도 꾸준한 교류를 통해 더욱 발전된 관계를 이룰 수 있다. 많은 이란인의 가슴 속에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이겨낸 한국 드라마의 ‘대장금’(2006년 이란 국영 TV IRIB에서 방영해 80%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이란 국민들의 인기를 얻었다)이 새겨져 있고,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천국의 아이들’(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이란 영화, 2001년 국내 개봉)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이란 영화, 2009년 국내 개봉)의 맑고 투명한 눈망울을 기억하고 있다.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에서 한층 나아진 모습으로 경쟁할 때 세계 평화와 인류애는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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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난 민서가 태어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민서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날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고통스러워하고 힘겨워 하던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산의 고통에 대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 터라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힘겨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매우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고통은 여전히 내 기억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당사자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둘째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둘째를 가지는 것에 대해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내 재정 건전성이나 내 삶의 부자유 등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어 했던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내가 그것을 잊었을 리가 없다. 적지 않은 나이라서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 단단히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둘째를 생각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딸 민서가 홀로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 고통과 힘겨움을 무릎쓰려는 엄마의 모정은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둘째를 가졌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키워 보면 후회할 거라는 사람들의 말도 흘려 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미래에 저당잡혀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 아내와 나, 민서가 행복한 길을 찾는 게 정답이다.

아내가 둘째를 가지자고 한다. 아마도 잘 된다면 마흔 전에 아이 둘 키우는 아빠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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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스스로 저차원적인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 비유하고 있으면서도 고차원적인 동작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해내는 기계와도 다르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존재죠. 어느 하나로 결론지어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듯이 아이들 역시 공부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조금만 참고 바짝 쪼이면 잠시나마 성적을 올릴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자주성과 창의성 등은 그 과정에 말살되기 쉽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장래(대개는 대학과 직업의 동의어입니다)를 위해 서로가 조금만 참고 노력하자고 합니다만 실상 보이는 현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적을 통해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는 극히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의지를 밀고 갈 수 있도록 책임감을 북돋우고, 필요한 조건과 환경을 같이 고민해 만들어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절제와 인내의 힘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학교 공부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교훈이겠죠. 성적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긍정적 결과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석차는 이 과정에서 교훈과는 전혀 관계없는 부산물일 뿐입니다. 석차는 사회가 필요로 해 아이들을 서열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고르는 사회가 아니라 대학이 아이를 고르는 사회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습은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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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통계청 결과에 따르면 15~24세의 사망 이유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자살의 이유는 가족 문제나 이성 문제 등도 섞여 있겠죠. 하지만 학교 및 학업과 관련된 자살 기사는 심심치 않게 신문지면 한쪽을 채우고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심스럽지만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만큼 성적과 체벌을 통해 청소년의 삶을 옥죄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권리와 자유도 주어져야 합니다. 권리와 자유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하다며 권리와 자유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위의 악순환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아이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이들을 험악한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로 만들어 옆의 친구를 쓰러뜨리고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보다는 드넓은 자연에서 모험을 통해 협력과 협치를 이해하며 책임과 의무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이 아닐까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고 미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기고한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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