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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있는 동안에도 내륙에 비가 왔었다. 강진을 나와 달리는데 날씨가 잔뜩 흐리다. 비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한두방울 긋기 시작했다. 일전에도 비를 맞고 달린 적이 있었다. 그때도 얼마 못가서 덕신해수욕장의 청솔민박집에 머물다가 다음날 출발했다. 기상청 예보에도 비올확률이 40%라고 했으니 비가 올 거라는 각오는 되어 있었다.


먼저 2번 국도를 타고 목포 방면으로 가다가 13번 국도를 타고 영암으로 갈 예정이었다. 잘만 하면 광주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못해도 나주까지는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성전 근처에서 점점 빗방울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월남저수지 옆을 지나서 풀치터널 앞에서는 옆에서 지나가는 차들이 내는 물보라를 느낄 정도였다. 쏟아진다 싶을 정도는 아닌 잠깐은 맞고도 다닐 수 있는 가랑비 정도였지만, 도로는 이미 푹 젖어 있었고,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비를 피해 보았지만, 쉽게 그칠 비같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영암까지 가서 차후 여정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빗속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빗속을 자전거로 달린다는 것,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니다. 비로 인해 내 시야도 방해를 받고, 달리는 차들 역시 시야가 더욱 좁아지게 된다. 게다가 빗길의 미끄러움까지 더해진다면 위험은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또 가끔씩 큰 차가 옆으로 지나가면 뒤쪽에서 일어나는 물보라 세례가 있다. 도로가 많이 젖어 있고 비가 계속 오다보니 그런 일이 종종 생긴다. 또 자전거는 물받이가 허술하다. 그러다 보니 내 자전거의 바퀴에서 튄 물이 심지어는 내 머리까지 올라와 버리곤 한다.


장황하게 빗속을 달리는 어려움을 늘어놓은 이유는 내가 영암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함이다. 결국 나는 영암에서 이날 하루의 여정을 정리해야 했다. 쟈켓도 이미 젖어가고 있어 더이상 달린다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길은 천천히 젖어들었다. 가을도 천천히 길 위에 내려 앉았다. 가로수들은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제가 가진 것들을 길 위에 내려놓고 있다. 나도 스스로 시련의 계절을 이겨내기 위해 나를 버리는 여행을 시작한지 벌써 보름을 훌쩍 넘겼다. 참 좋은 것을 많이 보았지만, 무엇보다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길 위에 서보았다는 것이 기쁘다. 비록 40km도 달리지 못하고 멈추었지만 비에 젖은 길 위에 서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 비에 젖어 있든, 자갈이 깔려 있든, 포장이 되어 있든, 비포장이든, 그 길 위에 서 있음을 그리고 살아서 달리고 있음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주행거리 : 24km

주행시간 : 2시간 30분

주행구간 : 강진버스터미널 - 성전면 - 풀치고갯길 - 영암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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