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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 그 아저씨네 민박집에는 항상 방이 없었다. 그 옆에 민박집을 찾아갔는데, 어제 잤던 다른 민박집보다 형편없다. 그래도 피곤한 몸이 엎어져 스르르 잠들어버렸다. 한라산 등반을 쉽게 보았는데, 내려오는데 너무 많은 힘을 빼앗긴 탓이다.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다리가 장난이 아니다. 이전에도 약간의 근육통이야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좀 심각하다 싶을 정도다. 폈다 구부렸다 하는 것은 물론 걷는 것조차 어색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아침에는 배를 타고 가는 거라 좀 쉰다 해도 예정했던 땅끝마을을 달릴 생각하니 암담하다.


제주에서 완도로 가는 배는 월요일 휴항이라고 한다. 제주6부두에는 이미 고등학생쯤 보이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배를 타고 완도에 도착하면 광주까지 가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한다고 하니 여행객에게는 꽤 괜찮은 서비스다. 배삯은 19000원, 역시 자전거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다. 객실에 앉아 있으니 졸음이 쏟아졌다. 피곤이 온몸을 누르고 있었나 보다.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떴을 때는 어느새 완도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완도항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그냥 달렸다. 피곤하니 밥맛도 없어진 걸까. 가다가 가게에 들려 빵과 우유를 억지로 먹고 완도대교를 넘었다. 이제 다시 갈림길, 여기서 땅끝마을로 갈지 아니면 강진으로 빠질지 고민해 본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다음주부터는 날씨가 예년 기온을 '되찾는다'고 한다. '되찾는다'는 말은 지금 좀 춥지만 다음주는 그래도 더 따뜻해질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11월 말의 날씨다. 최대한 빨리 서울로 돌아가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게다가 근육통을 느끼는 정도로 봐서는 무리한 여행을 자제해야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결국 강진으로 핸들을 돌렸다.


강진으로 달리는 길 왼쪽으로는 두륜산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황량한 논밭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도로에 갓길이 너무 좁다. 게다가 도로폭도 좁고, 작은 언덕들도 곳곳에 있어 애를 먹인다. 가뜩이나 허벅지 근육들이 고통을 호소하는데 이런 언덕을 만나면 곤혹스럽기가 그지없다. 강진읍내에 가까워지자 다시 갯내음이 나기 시작한다. 여기도 항구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 직장 워크숍을 영암쪽으로 온 일이 있고 이 근처의 식당에서 푸짐한 점심상을 먹은 적이 있어 찾아보았으나 쉽게 찾기 힘들다. 결국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간단히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숙소를 알아보았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은 광주까지 가 볼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여행을 걱정하고 격려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곳 게시판에 들려 하루하루 나의 여정을 함께 지켜보고 있다. 사진과 글로 담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길은 항상 말한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길이 가장 아름다운 길임을… 내가 꿈꾸는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만드는 그것이 이 길 위에 있다. 그래서 달리는 지금의 내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내 앞에 뻗은 이 길이 가장 멋진 풍경이다. 아마도 이후 내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여행이 내 인생의 가장 멋진 순간으로 기억될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가야할 목적지를 향해 열린 이 길을 달리면서도 끊임없이 나는 나에게로 난 길을 달린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저 평범하게 집에서 쉬는 것보다는 내가 안위하고 있는 그 지도 바깥으로 나가는 경험을 선택한 것이 자랑스럽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서울까지, 내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그 집까지 달려갈 것이다.



주행거리 : 51km

주행시간 : 4시간 30여분

주행구간 : 제주항(6부두) - 완도항 - 청해진 유적지 - 완도교 - 55번 지방도 - 북일면 - 신전면 - 임천저수지 - 강진 시외버스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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