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토요일(4.13.) 안양천 구일역에서 출발해 철산교 부근에서 광명시 방향으로 건너가 돌아왔다.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했고, 나무가 있는 위치에 따라 어떤 나무는 벌써 꽃잎을 다 떨구고 이파리가 나기 시작했고, 어떤 나무는 이제 막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하기도 했다. 나들이 나온 인파들이 평소보다 많기는 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였고, 가끔 강냉이나 뻥튀기, 솜사탕을 파는 노점상들은 광명시 쪽에서 만날 수 있었을 뿐, 서울 구로구쪽에서는 상인이 없었다. 

벚꽃은 시듦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들기전에 꽃잎을 떨궈버리니 여느 다른 꽃과 달리 시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런 꽃의 모습을 보고 누구는 젊은 날에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 같다고도 묘사한다. 가장 아름다울 때 떠나가는 모습에서 아련한 향수를 느낄 나이가 됐다. 나이듦을 생각하고 덜 추하게 보기 좋게 늙어가기 위한 삶을 준비 중이다. 그런 삶은 어떻게 준비하는 것일까? 매일매일 늙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답은 보지 못하는 아둔하고 답답한 삶이다. 

 

 

 

4.15. 일요일. 

아이를 조계사 어린이 법회에 데려가는 중 아이의 친구와 그 어머니를 만났다. 그쪽 어머니가 인사동에 아이 네임텍을 만들러 간다고 하니 아이도 따라가고 싶어했다. 이렇게 뜻하지 않았던 인사동 나들이 잡혔다. 의외의 나들이에 의외의 즐거움이 함께하는 법이다. 아이의 네임텍 말고도 아이 엄마가 좋아할만한 향초 받침대도 사서 집에 놓으니 인사동이 부럽지 않다. 

 

인사동 쌈지길을 나와 집으로 향하던 중 아이를 위해 장난감 박물관을 구경했다. 공짜를 기대하고 계단을 내려가니 입장권을 구입을 안내한다. 1인당 4천원이라서 둘러보았다. 아이는 유난히 장난감 욕심이 없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애착을 갖는 장난감이 따로 있고, 그 외에는 그렇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여전히 10년도 더 된 곰돌이 인형을 항상 옆에 두고 자는 것을 보면 아이의 성정이 참 남다름을 느낀다. 

장난감 박물관은 어른들의 추억을 불러오는 다양한 피규어와 아이들 만화 속의 피규어들로 가득했다. 장난감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피규어 박물관이 더 어울릴법했다. 세 가족의 추억 놀이 삼아 방문해 보았는데, 갑작스러운 나들이치고 나쁘지 않았다. 다시 찾아갈 것 같지는 않다. 순전히 아이의 관심여부만 따지자면 말이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불복 자전거 고르기  (0) 2019.07.09
주말에는 영화를  (0) 2019.07.09
진눈깨비  (0) 2018.11.28
짧은 봄, 꽃이 지는 봄  (0) 2018.04.06
등교와 출근  (0) 2017.02.16
반응형


드디어 이번 구조조정의 피날레가 연출됐다. 상무님의 퇴출. 혹시나 했던 망상이 이렇게 실현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세계를 살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문득 지난번 회사 비전이 생각난다. "상상을 현실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오너의 의지가 옅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탕아. 회사가 가진 한계를 비판하며 나가셨던 분이 돌아온다. 과연 그분은 회사의 한계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견고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떤 돌파구를 가지고 돌아오시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내에서 적당히 힘 쓰고 퇴장할 생각이실까? 

어찌됐든 이제 나와 2000년대 초반을 함께 했던 사람은 이제 없다. 물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는 분들은 많이 있지만 그분들과 함께 일을 하지 않았기에 어떤 기억도 없고, 오직 함께 지지고 볶으며 일상을 함께 했던 마지막 사람이 이번에 떠나시는 것이다. 일전에 강 팀장이 그만두면서 상무님과 옛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떠나고 나와 자기만 남았다며 허탈해 하는 모습. 하지만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했던가.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내가 다시 여기서 그분들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반응형
반응형



구조조정. 기업에서의 개혁 작업을 이르는 말입니다. 보통 '사업 구조조정' 또는 '기업 구조조정'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성장성이 희박하거나 성과가 좋지 않은 사업을 축소 또는 정리하고, 중복성이 있는 사업은 통폐합하며, 유휴 자산 등을 정리하여 재투자를 위한 자본금을 마련하는 등의 과정을 말합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군살을 빼고 근육을 키우면서 더 어려운 도전에 나서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조정은 일반 직원들에게는 정리해고와 동의어입니다. 성과가 좋지 않은 부서에 속한 직원들은 권고 사직을 당하고, 중복성이 있는 사업부의 직원들은 강제로 보직이 변경받거나 퇴사를 종용당하죠. 계약직이나 임시직은 계약 종료나 해고를 통보받습니다.

이번에도 회사는 성과가 좋지않은 일부 부서에 한해 일괄 사직서를 받았습니다. 이 경우 근로자가 사직서를 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회사로서는 다음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정리해고'의 단계를 정식으로 거쳐야 하겠지요. 물론 회사로서는 그러기 전에 직원들을 내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근로자는 순순히 나가는 게 이익일까요? 온갖 더러운 꼴 보기 싫어서 나가겠다면 막을 수 없겠지만, 자신에게 딸린 가족, 남은 대출금, 한달에 들어가는 생활 자금 등을 생각하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요즘처럼 새로운 직장 구하기 힘든 시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요. 

여러 조건을 따져봐서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서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일이지요. 회사로서는 성과가 나지 않고 회사의 경영이 악화되는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성과가 좋지 않은 책임을 따져볼 필요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성과가 안 좋았는지, 영업과 마케팅 전략은 유효했는지, 최초 사업 기획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등 사업을 중심으로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평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해당 사업의 결과물이 갖는 다른 사업과의 관계, 시너지 효과 등을 계산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실패라고 했을 때 그에 대한 적절한 평가 없이 해당 개발 팀에게만 무한 책임을 씌우는 것은 좀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개발 부서로서 책임져야할 부분이 지나치게 무겁게 매겨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큽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저역시도 마찬가지지요. 언젠가는 저도 저렇게 내쳐지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항상 스스로 평가해 봅니다. 무엇이 잘 됐고, 무엇이 문제였으며, 그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지 등을 복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일 자신에게 권고 사직을 회사가 종용한다면, 사직서를 내기 전에 충분히 복기하고, 자신의 개인 사정을 철저히 살펴서 내도 되는 상황인지를 가늠해 봅시다. 세상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스스로도 만만한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신이 납득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을 향해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바로 저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입니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밥과 꿈과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 수능 국어 문제 풀기  (0) 2020.12.10
구조 조정의 끝  (0) 2019.03.05
*** 씨 졸업 축하합니다.  (0) 2015.08.25
떠나고 술마시고 취하고  (0) 2015.06.29
친친에서 만난 사람들  (0) 2015.01.08
반응형
목요일 새벽
첫날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새벽에 잠이 깨서 어지러웠다. 일찍 잠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전날 술을 한잔 한 게 원인이었을까. 혹시 감기 기운? 새벽에 잠이 깨는 날이 간혹 있긴 했으니 그리 대수로울 일은 아니었는데, 여느 날과는 다른 한기가 뒷덜미를 감싼다. 

목요일 저녁
밥을 먹고 있었다. 김치와 라면을 넣고 남은 밥을 넣어 죽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 최에게서 전화가 왔다. 
"KH 동생 JH가 전화를 했는데,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KH가 어떻게 된거 같은데, 네가 한번 전화해서 들어봐라."
JH 동생 전화번호를 받아 전화해 보았다. 
"아버지 모시고 울진 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시 전화드릴텐데, 형님이 돌아가셨어요. 사인을 밝히기 위해 대구 국과수로 시신은 옮겨졌고, 아마도 내일 쯤 결과가 나올 거고 장례 일정이 잡힐 것 같습니다."
친구가 세상을 떴다. 망할 놈... 

금요일
부고 문자가 도착했다. 시흥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장례절차를 다루고, 이후 천안 추모 공원에서 화장을 한다고 밝혔다. 다시 몇몇 친구들에게 문자를 전달하고 친구 최와 통화해 저녁에 함께 장례식장에 가기로 했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 입었다. 밤을 셀 거냐는 아내의 질문에, 외롭게 살던 친구놈인데, 마지막 가는 길은 배웅해야겠다고 답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몇 안되는 친구들이 모두 와 있다. 다시 한번 죽은 친구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KH는 자신이 타고 다니던 차를 몰고 울진까지 내려갔나보다. 주로 천안에서 일을 해왔던 친구인데, 직장이 불안해서 일이 없을 때는 그냥 쉬는 바람에 일정한 수입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 친구가 울진에는 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울진 바닷가에 그가 신었던 신발과 안경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국과수 부검에서도 폐에 물이 찼을뿐 별다른 외상은 없다고 한다. 스스로 바다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날 날씨는 최저 기온이 10도가 되지 않는 쌀쌀한 날씨였다. 공기부터 차가웠는데, 그를 컴컴하고 찬 바다속으로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동생 JH가 형이 타고 다니던 차에서 즉석 복권 2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차에서 먹고 잤는지, 차 안은 무척 지저분했다고 한다. 마땅한 잠자리도 없었던 거다. 
장례식 친구들 대부분 한 달 전쯤에 KH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그냥 안부나 묻는 줄 알았던 그 전화는 실상 그와의 마지막 통화였고, 그가 마지막 가는 길로 가기 위한 정리 작업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그는 희망을 잃고 생을 정리해 갔던 것일까. 영정 사진을 쓸만한 사진도 없어서 색이 바래고 흐려진 운전면허증 사진을 가져다가 영정 사진으로 썼단다. 동생 JH가 친구들에게 함께 찍은 사진이 없는지 미리 물었지만 아무도 그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KH는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 내가 한창 DSLR에 빠져서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때도 그는 사진 찍는 걸 싫어하고 피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는 게 참 마음이 아프다. 


토요일. 
운구가 나가는 날이다. 같이 밤을 센 사람 중 친구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함께 운구를 들어줄 이가 없어 나와 상주인 동생 JH와 장례버스 기사, 그리고 기사가 섭외한 동료 이렇게 넷이서 운구를 날라야 했다. 끝까지 외롭고 외롭다. 이런 녀석에게는 진눈깨비가 딱이다. 새벽부터 진눈깨비가 하늘에 가득하더니 그나마 장례식장을 나갈 때는 많이 옅어졌다. 45인승 버스에는 아버님, 동생, 동생의 여자친구만 동승했다. 그이의 삶만큼 단촐하다. 그를 화장하기로 한 곳은 천안 추모 공원 화장장. 천안 추모 공원에서 일련의 마지막 절차를 치르다 보니 여기서 장례를 치렀으면 돈을 많이 절감할 수 있었을 것 같다며 JH가 말한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지. 가난한 살림에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JH에게 형님은 종종 돈을 보내달라는 대책없는 형이었다. 그가 살아가야 할 세상 또한 힘겹다. 아버님이 새벽부터 속이 아프다고 하신다. 활명수와 청심환을 드시게 했지만 그 타는 속을 약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니. 큰 아들을 먼저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화장을 마치고 다시 시흥 장례식장에 오자마자 병원으로 스스로 걸어가셨다. 

난 그렇게 인사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진눈깨비가 서울의 첫눈이었단다. 첫눈 오면 녀석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말에는 영화를  (0) 2019.07.09
4월의 주말 풍경  (0) 2019.04.18
짧은 봄, 꽃이 지는 봄  (0) 2018.04.06
등교와 출근  (0) 2017.02.16
미운 7살? 저항 정신을 키우다  (0) 2017.02.08
반응형




봄이 짧아서 꽃이 지는 것일까, 아니면 꽃이 지니 봄이 짧은 것일까? 엊그제 피었던 목련은 지난밤 내린 비에 거진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속절없이 떨어져버리면 나는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편 아담한 빌라촌 앞에는 목련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맘 때면 이 근방에서 가장 먼저 목련이 피어 오르면서 봄 소식을 알려준다. 하얀 목력이 나무을 가득채우면서 피어난 모습은 개봉역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아래에 있는 작은 노점도,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그래! 여기 목련 아래!'라는 간판(대신 현수막)을 달았다. 호떡이나 오뎅을 파는 노점이 목련의 이름을 빌려 달 정도로 이 나무는 거리의 명물이다. 



저 사진을 찍은게 지난주 목요일(3.29.)인데, 일주일도 안되어 목련 잎들이 거진 다 떨어졌다. 봄이 오고 가는 모습은 참 심란하다. 꽃잎이 떨어진 거리의 모습도 그 쓸쓸함을 더한다. 지금 아름다운 꽃을 보며 즐기기보다 지는 꽃잎을 보며 한숨 쉬는 일이 많아졌다. 일상에 지친데다가 꽃이 피고지는 일을 수십년간 보다 보니 감성도 매마르는 것일까? 몸도 마음도 나이를 들어 피는 꽃보다 지는 꽃에 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겠지. 이렇듯 꽃이 지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서글펐던 건 매한가지였나 보다. 중국의 옛 시인 두보도 지는 꽃을 보면서 시를 한수 지었다.  


꽃잎은 무엇이 급해 저리 빨리 날리는가, 늙어가니 봄이 더디기를 바라는데
안타깝구나 기쁘게 즐기는 곳, 어디 가도 젊은 때는 이미 아니네

花飛有底急, 老去願春遲
可惜歡娛地, 都非少壯時


아이처럼 "꽃이 피었어요!"라며 즐기면 그만인 걸 왜 굳이 지는 꽃에 마음을 두었을까? 세월을 살아가다 보니 꽃이 피든 지든, 반복되는 자연의 흐름에 익숙해진다. 피는 걸 즐기는 어린아이의 기쁨과는 멀어지고, 지는 걸 느끼는 늙은이의 슬픔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 합동공연의 제목이 '봄이 온다'였다. 사실 너무나 긴 겨울이었다. 2017~2018 겨울이 그러했지만, 2008~2016년의 겨울도 무척이나 길었다. 홍준표 자한당 대표 말대로 평양에서 노래한다고 봄이 오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노래라도 하지 않고 어떻게 이 땅에 봄이 올까. 짧은 봄이 침묵의 봄이 되길 바라는 건 아마도 그들 뿐일 것이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걱정많은 노인들은 벌써부터 꽃이 지는 걸 걱정하지만, 어린 아이들이야 지금 핀 꽃을 보며 즐길 뿐이다. 4월 위기설까지 나돌면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달았던 게 엊그제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봄날의 따스함이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린아이처럼 즐기자.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말이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 '봄날은 간다'의 가사 중에서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의 주말 풍경  (0) 2019.04.18
진눈깨비  (0) 2018.11.28
등교와 출근  (0) 2017.02.16
미운 7살? 저항 정신을 키우다  (0) 2017.02.08
헌법... 그리고 개헌  (0) 2016.12.28
반응형

아침 7~9시 사이. 학교나 회사로 나가는 사람들로 거리와 버스, 지하철이 북적인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볍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출근 시간을 아끼려고, 또는 늦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아침부터 세상이 부산한 이유다. 마음이 바쁘면 여유도 없다. 출근길에서 인상 찌푸리며 실랑이 하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별 시덥지 않은 일들로 욕이 오가고, 고성이 난무한다. 오늘 아침에도 멱살잡이 하는 두 남자를 지하철역에서 만난다. 아침부터 세상은 치열하게 움직인다. 


학교에 가는 일을 등교(登校)라고 한다. 여기서 등(登)은 '오르다'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이 글자의 자형은 오랜 옛날에 쓰던 그릇의 모양에, '걷다, 가다'의 의미를 지난 '필발머리 癶'를 두르고 있다. 제사에 쓰는 그릇을 높은 곳에 올려 놓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등(登)'은 제사나 제의처럼 숭고한 의미를 담긴 말에 많이 쓰인다. 등선(登仙,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 등단(登壇, 연단 또는 교단에 올라감, 또는 문단 등 특수한 사회 분야에 처음으로 나타남), 등극(登極, 임금의 지위에 오름) 등에 이 '登'이 쓰인다. 학교에 가는 일은 숭고하고 의미 있는 일인 것이다. 



▲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 본 '등교'와 '출근'. 등교는 밝고 즐거운 이미지가 많고, 출근은 어둡고 바쁜 이미지들이 많다.



반면 일하는 가는 것을 '출근(出勤)'이라고 한다. 여기서 출(出)은 '나가다'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글자의 자형은 식물의 싹이 땅위로 돋아다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자신의 근거지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출사(出仕, 벼슬을 하여 관직에 나아감)', 출병(出兵, 군사를 내 보냄), 출간(出刊,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것) 등이 있다. 즉, 출근(出勤)은 일을 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얼마나 치열할까. 버스와 지하철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니 당연히 치열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위태롭고 걍팍한 인생들인가. 


출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렵고 고된 일이다. 따라서 견뎌야 한다. 막 땅 위로 솟은 새싹이 나무가 되기까지는 더 많은 인내와 고통이 필요한 법이니. 



반응형
반응형

"쓰레기를 절대 버리세요."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세요."

이제 초등 1~2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걷는다. 담벼락에 있는 글을 읽는다면서 반대의 의미로 읽어낸 것이다. 요즘에는 1학년 들어오기 전부터 한글을 익히고 들어온다고 하니 쓰인 글을 반대로 읽는 수준이야 놀랄 일도 아니다. 그래도 하는 모양새가 어른들이 들으면 한마디 할 성싶다. 

막 글을 읽기 시작할 때는 간판이나 표지판의 글을 한 글자씩 읽어가면 부모들의 칭찬세례를 받아 우쭐했겠지만, 이제 그런다고 해서 칭찬할 수준이 아니니 반대로 재미와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한 아이들의 묘안이 바로 반대로 읽기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이제 사물이나 현상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해석을 덧붙이려는 고집과 저항이 시작되는 나이다. 여전히 귀신과 유령, 산타클로스와 요정을 믿는 정신세계 한 구석에서는 모험을 떠나는 피터팬의 도전과 저항 정신이 싹트는 것일 게다. 

스스로 지어낸 말에 까르르거리며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오늘 아침의 풍경이었다. 

반응형
반응형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촛불 집회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외워지다시피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출처: http://raccoonenglish.tistory.com/2786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명제이다. 지금의 위기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사람들은 헌법 1조를 통해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헌법 조항의 모태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은 사회 과목에서도 종종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근대 국가의 가장 모범적인 헌법이라고 배웠다. 과연 그럴까?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 헌법 조항을 뜯어고쳤다. 그 이유는 이 헌법 조항으로 인해 나치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비판적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독일은 헌법 조항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 


(1)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 권력의 책무이다.

(2) 이에 독일 국민은 세상의 모든 인간공동체와 평화 및 정의의 기초로서의 불가침이고 불가양인 인권에 대해 확신하는 바이다.

(3) 이하의 기본권은 직접 효력을 가지는 법으로서, 입법과 집행권력 및 사법을 구속한다.


독일의 기본법 제1조의 내용이라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탄생한 바이마르 헌법은 전쟁을 막기는 커녕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을 나은 나치당을 만드는 모태가 되고 말았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국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의무와 책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는 위키백과에 제시된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에 대한 설명의 내용 일부이다. 


기본권을 나열하기만 했던 바이마르 헌법과는 달리, 독일기본법에서는 '국가의 목표'를 정하고 있다. 그 목표란 인간의 존엄성으로, 독일기본법 제1조 제1항(1 GG)에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독일기본법 제20조에서는 독일 연방공화국의 정체와 주권, 권력분립, 국가의 일반원칙을 규정하였는데, 바이마르 헌법과 달리 독일기본법 제20조 제4항에서 "이러한 질서의 제거를 감행하는 이에 대하여, 다른 대응수단이 가능하지 아니한 경우, 모든 독일인은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별도로 저항권을 명문으로 규정하여 나치 정권에 의해 일어났던 헌정질서 파괴를 방지하려 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_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개헌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출처: http://www.sportsworldi.com/content/html/2016/10/24/20161024003085.html


최근 개헌 이야기가 한참이다. 허나 지금의 논의는 정치 시스템에 매몰되어 있다. 대통령 중임제니, 내각제니, 결선투표제니 하는 것들은 결국 국민주권을 어떻게 대변할 것이냐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위기에 대한 근본적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외력이냐 내력이냐를 따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성숙한 성찰은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해 그것을 해결해 나가려는 시도이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단순히 정치 시스템의 변화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위기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욕망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키고 보존해 가기 위한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것이 박근혜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일 것이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