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밤이 왔지만, 어느날에는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공기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만 계절의 변화일 뿐이라고 속으로 달래 본다. 하지만 살갗의 느낌보다는 가슴의 느낌이 더 서늘하다.

한낮에 입은 상처들이 이 밤을 달리며 신음하고 있다. 때로는 나도 아프다. 다른 이의 상처를 본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상처받고 아픔을 느끼는 영혼들이 누군가의 품 안에서 고운 꿈나라로 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서구의 누군가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개미들은 전염병에 걸린 개미들을 격리하거나 죽이지 않고 더 건강한 개미들이 치료하고 보살핀다고 한다. 건강한 개미들 중에서 일부는 전염병에 걸리겠지만, 계속해서 건강한 개미들이 투입되면서 전염병이 개미 사회 전체로 전염되는 것을 막는 한편, 조직 내에 내성을 키워 더 건강한 개미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참 많이 아프다. 믿음을 주면서 아픔을 달래 보고 싶은데, 상처 입은 짐승마냥 여기저기 다른 곳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상한 딜레마에 빠지고는 한다. 개인이 먼저인가 조직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에 대한 예의는 없다. 어떤 개인도 조직에 저항해서 싸울 때 살아남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런 딜레마에 스스로를 밀어 넣을까?

우리는 그의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이 어떻게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 상상할 수 없다. 그의 말들은 모두 거짓이라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그의 지나친 자기합리화일 뿐일 것이라고 말하면, 그 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상처 받은 짐승은 더 거칠다. 

그러나 내 인간성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그러니까 왜 지금 또 배가 고프냐고.


- 저녁에 국수를 먹었다고 그러는거야? 아니면 TV에서 라면 먹는 장면이 나오니까 라면이 또 땡기는 거야? 이 늦은 밤 12시를 넘겨 새벽 1시를 달리는 데 말이지. 


- 아니면 욕구 불만인가? 스트레스로 뭔가 먹지 않으면 안되겠어? 


- 농구도 잘 뛰었잖아. 성적이야 매번 형편없었지. 고작 하루 5골 넣으면 많이 넣은 날이었잖아. 오늘 3골 넣은게 그렇게 속상해? 그런 날이 한두날이었나? 


- 발톱? 어디 봐. 발톱이 찍혀서 피가 나는게 아파서 그러나? 농구하다 보면 그런 일 당할 수도 있는 거잖아. 처음 당하는 일이니 속이 좀 상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대할 필요는 없어. 


- 물론 걸을 때마다 욱신욱신 쑤시는 거 알아. 어쩌겠어. 발톱만 안빠지면 되지. 


- 뭐? 빠질지도 모른다고? 저런 많이 아프겠군. 


- 아, 아니 당신이 잘못한 걸 가지고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난 지금 당신 푸념을 들어주고 있는 거라고, 이 친구야.


- 잉? 가슴도 아파? 어디 한번 보자구.


- 어어, 미안미안, 팔을 좀 들었을 뿐인데 그렇게 아파? 누구랑 부딪힌거야? 넌 이렇게 아픈데 그 사람은 멀쩡하데?


- 하, 팔꿈치에 찍힌 거라면 상대방은 네가 아픈 것도 모르겠구나. 병원 안가봐도 될까? 흉통은 조심해야 한다구. 갈비뼈가 금가거나 한 건 아닐까?


- 그래, 뭐 일단 오늘밤 푹 자고 나면 또 달라질 수도 있지. 그냥 단순한 근육통일 거야. 걱정마라구.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아픈데가 많아? 


- 하긴 그런 날이 있지. 되게 운수 없는 날 말이야. 그런 날은 여기저기서 덤벼들지. 조심해야 한다구. 당신 이러고 있으면 안되잖아.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데, 가서 이만 푹 자야 하는 거 아냐?


- 그래, 잘 생각했어. 잠부터 자라고 이 사람아. 내일 더 자세한 얘기를 들어 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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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보복론을 부추기는 것은 시민들 사이에 근대적 법의식만 약화시켜, 사회의 인권의식 전반을 떨어뜨리게 될 겁니다." - 진중권



사형제를 비롯해 물리적(화학적) 거세 등이 가지는 의미. 

결국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 시민 사회의 규약을 무너뜨리고 원초적인 복수와 감정만 넘쳐나는 사회가 될 거라는 것. 

문명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 인권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된 것임을 재확인해야 하는 시간. 

문명이냐 반문명이냐는 범죄의 양상보다는 범죄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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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책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진당은 책임있는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책임을 지는 노력을 당권 투쟁으로 몰아세웠고, 동지애라는 이름으로 다른 정파를 향해 폭력을 휘둘렀다. 그들이 원하는 진실만을 내세웠고, 대중들이 보는 진실은 애써 외면했다. 무엇보다 진보정치는 아직 세상을 책임질 수 없다는 각인을 수많은 국민들에게 새겨넣었다. 최소한 마지막 문제만을 봤을 때도 지금의 통진당 세력은 진보정치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대선이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안철수가 이기든, 문재인이 이기든, 박근혜가 이기든) 진보정치가 들어설 공간이 전혀 보이지 않음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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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밤 12시 반, 이제는 전철도 끊기었는지, 남부순환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만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동안 글쓰기를 잊었다. 글감이 떠오르면 그것을 곱게 모아서 잘근잘근 빻아 다양한 재료를 넣고, 색깔 있는 양념으로 버무려, 먹기 좋은 요리로 만들어 보려 했던 나는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어서 다시 노트북을 열고 몇자 적어 보는데, 다시 마른 커서만 깜빡이고 있다. 커서는 계속해서 SOS 모스 부호를 보내고 있지만, 구해줄 방법이 없다. 모니터 저 편에서 보내는 신호는 계속 눈앞에서 깜빡인다.


사실 난 답을 기다리고 있다.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상이 있는 질문은 어떠한 답이든 들을 수 있지만, 결국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의 대답은 어느경우는 끝내 듣지 못하고 잊혀지는 경우가 더 많다. 난 지금 질문에 휩쌓여 있다. 대답해 줄 사람도 없다. 좋은 질문을 만들어 보아야 한다. 커서는 여전히 답을 줄 수 없다. 질문을 만들어 보자. 내 인생을 향해 던지는 진지하고 가슴 아프게 절절한 질문을 던졌을 때 진실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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