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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소설 ‘토지’에서 묘사한 추석 한가위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서늘한 달이 산마루에 걸리면 자잔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복 단장한 청상의 과부는 밤길을 홀로 가는데 – 팔월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黙示)하는 축제나 아닐는지. 우주만물 그 중에서도 가난한 영혼들에게는.

   가을의 대지에는 열매를 맺어놓고 쓰러진 잔해가 굴러있다. 여기저기 얼마든지 굴러 있다. 쓸쓸하고 안쓰럽고 엄숙한 잔해 위를 검시(檢屍)하듯 맴돌던 찬바람은 어느 서슬엔가 사람들 마음에 부딪쳐와서 서러운 추억의 현(絃)을 건드려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하고많은 이별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

   “저승에나 가서 잘사는가.”

   사람들은 익어가는 들판의 곡식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들판의 익어가는 곡식은 쓰라린 마음에 못을 박기도 한다. 가난하게 굶주리며 살다 간 사람들 때문에.

   “이만하믄 묵을 긴데…….”

   풍요하고 떠들썩하면서도 쓸쓸하고 가슴 아픈 축제, 한산 세모시 같은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산기슭에서 먼, 먼 지평선까지 텅 비어 버린 들판은 놀을 받고 허무하게 누워 있을 것이다. 마을 뒷산 잡목 숲과 오도마니 홀로 솟은 묏등이 누릿누릿 시들 것이다. 이러고 저러고 해서 세운 송덕비며 이끼가 낀 열녀비며 또는 장승 옆에 한 두 그루씩 서 있는 백일홍나무에는 물기 잃은 바람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겨울의 긴 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부터 더욱 흐느끼는 듯 꽹과리 소리는 여전히 마을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밤을 지샐 모양이다. 하기는 마을 처녀들의 놀이는 이제부터, 달 뜨기를 기다려 강가 모래밭에서 호작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시작될 것이다.







고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묘사된 팔월 한가위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이만하믄 묵을 긴데’ 싶다가도 여기저기 빼앗기고 나면 한줌 겨울나기도 쉽지 않은 곡식들, 그것은 풍요 속의 빈곤을 드러내는 아이러니였죠. 지금 우리는 그렇게 풍족할까요?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는 도시의 음습한 그늘을 뒤지며 돌아다니는 200만명의 종이 줍는 노인들이고, ‘돌림병에 약 한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은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잠겨간 세월호 아이들이었습니다. 진실은 여전히 저 바다 깊이 잠겨 있고요. 그래서 이번 추석은 더더욱 쓰린 가슴에 못을 박게 되는군요. 그리고 이렇게 겨울이 성큼 다가오겠지요.


그래도 추석은 명절입니다. 곳곳에 흩어져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던 이웃과 친척들이 한 지붕 아래 모입니다. 조상네 밥 한끼 대접하고자 모여 지나간 시간들을 술 한잔으로 털어내며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날이죠. 우리 아이들도 노을 지는 시골길에서 만나는 바람 속에서 가을 들녘의 풍요와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지금의 작은 행복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더불어 이웃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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