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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짧아서 꽃이 지는 것일까, 아니면 꽃이 지니 봄이 짧은 것일까? 엊그제 피었던 목련은 지난밤 내린 비에 거진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속절없이 떨어져버리면 나는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편 아담한 빌라촌 앞에는 목련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맘 때면 이 근방에서 가장 먼저 목련이 피어 오르면서 봄 소식을 알려준다. 하얀 목력이 나무을 가득채우면서 피어난 모습은 개봉역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아래에 있는 작은 노점도,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그래! 여기 목련 아래!'라는 간판(대신 현수막)을 달았다. 호떡이나 오뎅을 파는 노점이 목련의 이름을 빌려 달 정도로 이 나무는 거리의 명물이다. 



저 사진을 찍은게 지난주 목요일(3.29.)인데, 일주일도 안되어 목련 잎들이 거진 다 떨어졌다. 봄이 오고 가는 모습은 참 심란하다. 꽃잎이 떨어진 거리의 모습도 그 쓸쓸함을 더한다. 지금 아름다운 꽃을 보며 즐기기보다 지는 꽃잎을 보며 한숨 쉬는 일이 많아졌다. 일상에 지친데다가 꽃이 피고지는 일을 수십년간 보다 보니 감성도 매마르는 것일까? 몸도 마음도 나이를 들어 피는 꽃보다 지는 꽃에 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겠지. 이렇듯 꽃이 지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서글펐던 건 매한가지였나 보다. 중국의 옛 시인 두보도 지는 꽃을 보면서 시를 한수 지었다.  


꽃잎은 무엇이 급해 저리 빨리 날리는가, 늙어가니 봄이 더디기를 바라는데
안타깝구나 기쁘게 즐기는 곳, 어디 가도 젊은 때는 이미 아니네

花飛有底急, 老去願春遲
可惜歡娛地, 都非少壯時


아이처럼 "꽃이 피었어요!"라며 즐기면 그만인 걸 왜 굳이 지는 꽃에 마음을 두었을까? 세월을 살아가다 보니 꽃이 피든 지든, 반복되는 자연의 흐름에 익숙해진다. 피는 걸 즐기는 어린아이의 기쁨과는 멀어지고, 지는 걸 느끼는 늙은이의 슬픔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 합동공연의 제목이 '봄이 온다'였다. 사실 너무나 긴 겨울이었다. 2017~2018 겨울이 그러했지만, 2008~2016년의 겨울도 무척이나 길었다. 홍준표 자한당 대표 말대로 평양에서 노래한다고 봄이 오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노래라도 하지 않고 어떻게 이 땅에 봄이 올까. 짧은 봄이 침묵의 봄이 되길 바라는 건 아마도 그들 뿐일 것이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걱정많은 노인들은 벌써부터 꽃이 지는 걸 걱정하지만, 어린 아이들이야 지금 핀 꽃을 보며 즐길 뿐이다. 4월 위기설까지 나돌면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달았던 게 엊그제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봄날의 따스함이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린아이처럼 즐기자.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말이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 '봄날은 간다'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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