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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하는 중에 후배가 전화를 해왔다. 학교 때부터 싹싹하고 밝고 명랑했던 후배인데, 나와 함께 여러 일들을 같이 진행했던 터라 나름대로 정도 들었던 후배였다. 그러던 후배가 어느날 군인과 결혼했다. 그러다 보니 군인 따라 여기저기 지방으로 돌아다녀서 연락이 한동안 끊어졌다. 다시 연락이 된 것은 한 달 전이었을까. 우연히 마트에서 내 동기를 만나 수다를 떨다가 나에게 전화를 했던 거다.

“선배, 오랜만이죠. 저 부천 살아요. 애 둘 키우다 보니 연락하기도 쉽지 않네요. 시간 되면 OO선배와 부천에서 봐요.”

벌써 애가 둘이나 되는 주부가 됐는데도, 여전히 그 목소리는 대학 때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톡톡 튀는 고음과 안 봐도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띠고 있을 그 얼굴이 선했다. 그런 상상은 충분히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후배가 월요일부터 전화를 한 것이다. 평범한 안부를 물어왔고, 그에 대답하면서 나 역시 그의 안부를 물었다.

“오늘 새벽에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이 특유의 말투는 여전했지만 미세한 떨림은 전해졌다. 그 순간부터 아주 잠깐 서로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신의 슬픔을 직접 전해들은 일이 있던가? 이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천천히 전하는 그의 말에서 눅눅한 물기가 조금씩 전해졌다. 담담한 듯 하면서도 오래 묵혀둔 것 같은 그의 말 언저리에서 나는 맴돌았다. 꼭 들려보겠다는 말을 하면서 통화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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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야근이다. 아마도 오늘은 가보기 힘들 듯하다. 내 차림새를 보니 흰 사파리 재킷에 흰건빵 바지를 입고 있으니, 이게 어디 놀러가는 사람의 복장이지, 문상 가는 사람의 복장은 아니다 싶다. 물론 복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걸 스스로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만은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요즘같이 미세먼지가 많다는 가을 가뭄에 어쩌자고 이런 복장으로 집을 나섰는지, 아주 조금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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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정오 즈음의 공덕동. 참, /한/산/하/다/.
보통 아침 출근시간이면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거대한 물결을 이룬다.
오늘 회사로 가는 내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다.
일이 귀찮고 힘들어서가 아니다.

2차세계대전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한 바가지의 물이 배급되었을 때
그것을 생존을 위해 마셨던 사람보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얼굴과 몸을 씻는 데 썼던 사람들이
더 오래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어느 심리학 박사의 이야기처럼

일상적으로 오고가는 지루하고 상투적인 출퇴근 길도
아주 짧은 여행으로 생각하는 여유가
나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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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하는 어린 직원들에게 작은 화분을 선물했다.

삭막한 책상 한 귀퉁이가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것,  

어린 생명을 가까이 하는 것,

내가 아끼고 가꾸어야 할 생명 하나 자라고 있는 것,

그것도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진보다.

책 한 권 값도 안 나오는 것으로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인다.

기대하시라, 언제 당신에게 덜컥 화분이 안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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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마포를 지나 공덕오거리를 지나면 공덕동이 시작된다. 진입로만 보자면 왕복 8차선과 10차선을 넘나드는 큰 대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길가로는 서울 어느 거리보다 가지런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현대도시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2002년에 있었던 공덕동의 래미안 아파트의 청약경쟁률은 2,213대 1을 보여주기도 했다.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 본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일대의 거리는 서울 도시 근대화의 멋으로 불릴 만한 곳이다.


그러나 그 스카이라인 뒤로는 여전히 허름하고 무너질 것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 많다. 내가 일하는 출판사 뒤편으로도 그런 집들이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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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동(孔德洞)이라는 이름을 보자면, 한자의 공덕(孔德-공자의 덕)이라는 말에서 온 것 같지만 실상 순 우리말 ‘큰 더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큰 더기’는 우리말로 조금 높은 고원의 평평한 곳의 더기 또는 덕, 언덕을 일컬은 말이다. 한강둑의 언덕을 비롯해 아현동 언덕, 만리재 고개 등 공덕동으로 들어서는 길은 어찌했든 작은 언덕들을 넘어와야 하는 곳이다. 옛날에 이 지역을 큰더기, 큰덕으로 불리된 것이 비슷한 한자음을 빌려와 쓴 게 공덕동이라는 설명이다.


이제 이 공덕동 주변 언덕들에 자리 잡은 그렇고 그런 허름한 집들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거나 기다리고 있다. 사진에 관심 있는 많은 이들이 이미 이곳의 골목길 풍경을 렌즈에 담아내고 있다. 김기찬 사진가는 1969년부터 30여 년간 골목길 풍경을 담아왔는데, 그 풍경 안에는 이 공덕동 골목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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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의미 있다. 문명이라는 그늘이 만들어내서 지워지는 자취를 기록함으로써 미래의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껴야 할 향수를 자극하자는 것도 있겠지만, 단지 휩쓸리듯 흘러가는 세태를 잔잔히 돌아보며 성찰하는 자료로서 충분히 의미 있다고 본다. 고로 나는 기록한다, 그리고 성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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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사 옥상에서 바라본 모습


보통 내가 일하는 곳을 물어 보면 나는 마포구 공덕동이라고 한다. 공덕동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오래전에 이곳에서 근무를 한 일이 있기 때문에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이라면 깜짝 놀라곤 한다. 그렇다, 나는 다시 컴백했다.


예전처럼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내년에도 교과서도 만들고 지도서도 만들고 교재도 만드는 일을 할 것이다. 일이 일을 만들고 그 일이 다시 일을 까는 그런 수렁에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의 심정이다. 그래 알만큼 알고 겪을 만큼 겪어봤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는 심정이다.


하여튼 다시 공덕동이다. 아무래도 이제 이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놀아보니 그렇다. 오래 놀면 마음 약해지는 거다. 그러니 내가 뒤늦게 철드니, 이제 조직에 투항하니, 뭐 그런 이상한 말 하지 마라. 그냥 살아가는 거고, 살아가는 현장이 여기일 뿐이다.


그런데 공덕동이다. 그렇게 살아야 할 곳이기에 애정을 가지고 보기로 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 애정을 보면 하루하루가 새로울 것이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도 여행이고, 야근을 위해 저녁 먹으러 가는 길도 여행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고, 심심풀이로 공덕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한다. 웬만하면 하루에 하나 정도 포스팅을 하자는 게 내 생각인데, 일이 많은 곳이다 보니 이것도 쉽지 않다. 하루이틀 빼먹는다고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 않기로 하자.


이름하여 공덕동 프로젝트. 말은 그럴싸해도 사소한 신변잡기다. 내 일터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동네 사소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루 24시간 중 최소한 8시간 많게는 13~15시간을 보내는 곳이니 쓸 얘기는 솔찬히 있을 것이다. 없다고 해도 만들어 보는 게 내 사는 재미다. 일터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들을 내 역사의 한페이지에 차곡차곡 쌓는 것.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야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다.


암튼 지금도 야근 중인데, 몰래 포스팅하고 있다. 차장님이 내 블로그를 알지만, 뭐 때리기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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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동은 복잡한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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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서 났어요?”
“요 앞 길 건너 가게에서 샀어요.”
“참 예쁘네요.”
“화분이 마음에 들더군요.”


사올 때 이 녀석의 안내 팻말에 ‘더피’라고 적혀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줄고사리과 식물이라고 한다. 학명은 Nephrolepis cordifolia. 원산지는 일본이지만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구슬같이 작고 약간 동그란 듯한 잎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탐스럽다. 물을 좋아하며 음지에서도 잘 자란다.


사무실 반응은 좋았다. 예전 직장의 어느 부서는 전략적으로 화초를 분양했다. 직원들은 대부분 책상에 작은 화분 하나쯤은 기본이었고, 어떤 이는 3~4개를 올려놓아 마치 화단처럼 꾸민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사무실의 조그마한 공간에는 어김없이 큰 나무나 화분이 놓여 사무실 공기를 맑게 순환시켜 주었다. 사무실이 식물원 같을 때 일하는 사람도 식물처럼 온화하지 않을까. 그에 비하면 지금 일하는 곳은 좀 삭막한 느낌이다. 온갖 서류와 일감으로 가득 찬 책상에 그 정도 여유가 생기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럴 때 내놓을 수 있는 여유가 이 식물들의 진가를 드러낼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앞으로도 책상에 화분을 하나씩 늘려볼 생각이다. 공간은 만들면 가능하다. 회사 제안 코너에도 시간을 내서 회사 차원에서 화분의 분양을 건의해 보는 것도 생각 중이다. 물론 잘 키우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무턱대고 들여놓고 신경 쓰지 않아 시들어 버린다면 볼썽사나운 일이다.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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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높이는 1~2미터이며, 잎은 마주나고 깃 모양으로 갈라진다.
6~10월에 흰색·분홍색·자주색 따위의 꽃이 가지 끝에 한 개씩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로 10~11월에 익는다. 관상용이고 멕시코가 원산지이다.




오랜만에 안양천을 내달리니
반갑다며 나를 맞아주는구나.
반갑다,
가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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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한강에 나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한밤 중에도 자는 사람, 술마시는 사람, 싸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고스톱치는 사람, 폭죽 터뜨리는 사람, 오토바이 타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배 타는 사람... 벼라별 사람들이 참 많다. 새벽 2~5시까지 풍경이었다. 물론 그중 노래하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에 본인을 비롯한 일행이 있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뭐, 우리만 그랬나. 다들 그렇게 여름밤의 무더위를 즐기고 있었다.

제주도 뒷풀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한강에 가서 술마시자는 제안은 내가 했다. 마침 서영 선배의 차가 있었고, 거기에 돗자리도 두 장이나 있다고 했다. 한강의 야경에 술잔을 띄워보자는 아주 낭만(?)적인 제안에 금세 호응해 주었다.

그런데 역시 쉬운 일은 없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를 떠간다는 게,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길 찾아가는 데 한참을 헤매니 말이다. 예상했지만 수산시장의 횟값이 싼 것도 아니다. 광어 1kg에 2만원이라니... 저울 사기도 있다고 하는데, 이거 원 저울을 믿을 수가 있나. 좋은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딱히 즐겁지만은 않은 장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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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우여곡절을 건너뛰어 원효대교 밑에 도착해 돗자리를 깔고 앉은 시간이 대충 10시 반정도. 이미 다리 밑은 초만원이다. 이미 자리잡고 누워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 으레 그러듯이 한편에서는 점 100원 고스톱이 한창이다. 경찰봉 휘휘 돌려가며 의경 둘은 유유자적 돌아다니고 있다. 단속할 만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경찰이 옆에서 지켜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의경 둘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기대할 수 없다.

내 왼편에 누운 아주머니 아저씨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자리를 깔고 앉아 준비한 회를 풀어놓고 가까운 매점에서 술과 음료수를 사고 컵과 젓가락을 얻어왔다. 어수선하고 소란스럽지만 그래도 한강으로 떨어지는 가로등불이 빚어낸 멋들어진 야경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한여름밤에 돗자리깔고 앉아 있는 것도 오랜만이며, 술 마시는 것도 몇 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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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왼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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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른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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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즐거운 자리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분명 다닐 수 없을 텐데 하나둘 오토바이들이 보였다. 누가 이 밤에 피자라도 주문했나 싶었는데, 수시로 왔다갔다하는 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얼마 안 있어 수십대의 오토바이들이 모여들었다. 희한한 경적을 울리는가 하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 오토바이도 있다. 그들만의 회합이 시작된 것이다. 근처에 있던 의경 둘이 자전거 도로를 오가는 오토바이들을 제지하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도망친다. 잠시후 방송국 카메라 등장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들을 찍었다. 한 청년을 잡아 인터뷰도 시도했다.

우리가 날을 제대로 잡았나 보다. 단지 우리에게 오토바이가 없을 뿐이다. 젠장, 아무튼 무척이나 시끄럽고 짜증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돗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만큼 오토바이들의 영토도 늘어났다. 꿋꿋이 자리에 누워 고집을 피우던 사람들도 결국은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다리밑에서 듣는 오토바이 소음은 참기 힘들다. 우리는 그나마 한강에 바싹 붙어있던지라 참을만 했지만, 그래도 제발 회합 끝내고 거리를 달려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2시 넘어서 회합이 질주로 변했다. 족히 수십대의 오토바이들이 원효대교를 나가 차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떠나고 오토바이도 떠난 원효대교 밑에, 조금씩 새로운 사람들이 다시 돗자리를 깐다. 젊은 연인 둘이 우리 옆으로 와서 텐트형 모기장을 치고 들어가 잤다. 그때 그만 모기에 물렸다. 저거 하나 갖고 싶다. 우리는 한강에서 꼬박 밤을 새워 보았다. 누구는 잠을 잤고, 누구는 이야기를 했고, 누구는 노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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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깔고 모기장 안에서 편하게 자는 사람들. 저런 모기장이 갖고 싶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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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1시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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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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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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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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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나오면서 63빌딩 한컷. 밑에서부터 붉은 아침기운이 서서히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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