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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회는 처음이다. 그렇게 많은 시위와 집회로 거리에 서봤지만, 이번만은 분위기가 다르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도 보이고, 연인끼리 나온 사람도 있다. 넥타이 메고 앉아있는 셀러리멘도 있는가 하면, 투쟁조끼를 입고 있는 노동자도 보인다. 중절모에 머리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도 있고, 개량한복 입고 나온 할머니도 보인다. 마실나온 것처럼 가벼운 옷차림의 아주머니가 있는가하면,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옷차림에 세련된 화장을 한 아가씨도 있다. 나처럼 자전거 타고 나온 사람들도 보인다. 그뿐인가, 군복을 입고 시위대를 보호하는 예비군들이라니! 마스크를 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중고등학생이다. 교복을 그대로 입은 아이들도 보인다. 여기에 배후도 없고 주동자도 없다. 이런 집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지금 우리 민중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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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나. 비폭력무저항을 외치며 촛불 하나 들고 광장으로 나온 이들에게, 제발 우리 얘기 좀 들어 달라고 청와대로 향하는 이들에게 정권은 무력진압을 선택했다. 살수차를 동원해 시민들의 얼굴을 공격하고, 막으라고 준 방패로 학생들의 얼굴을 가격하고, 도둑 잡으라는 진압봉으로 여성들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었다.


지금은 이미 배후세력도 없고 주동자도 없는 상황이다. 오늘은 또 얼마나 연행할까. 그리고 또 내일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칠까. 정권의 폭력에 저항하는 방법은 더 많은 이들이 거리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국민의 평화적 시위에 물대포와 방패와 진압봉으로 맞서는 정권에게 더이상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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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어떤 발표가 나올까? 기대하나마나다. 내일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초하나 사들고 광화문에 나가봐야겠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기석은 대학 때부터 풍물놀이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지역 풍물패에 가입해 꾸준히 활동해 왔죠.
그가 가입한 봉천놀이마당이지난 24일 20주년을 맞았고,
서울대 노천극장에서 떡벌어지는 잔치 마당을 가졌답니다. 






엄청 잘 생긴 총각 ㅎㅎ 이렇듯 놀이마당에는 젊은 사람부터 나이 지긋한 분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어우러져 마당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사진 속 젊은 분은 다른 놀이마당에서 축하공연차 와주신 분으로 기억되네요 ^^;;




공연의 즐거움은 이들의 웃음에서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오랫동안 악기와 함께 신명나게 살아와서 그런지,
웃음이 맑고 투명해 보이더군요.
악기들에 손떼가 깊게 베일수록
이들의 웃음은 더욱 맑게 닦아지는 것은 아닐까요.









이 사람이 제 친구입니다.
양복입고 나가면 그냥 평범한 직장인으로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얼굴이죠.



봉천놀이마당이 준비한 집체극을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집체극은 봉천놀이마당의 20년을 돌아보는 형식이라고 합니다.
처음 봉천동 쪽에 자리를 잡았을 때만 해도 '봉천놀이방'이었다고 합니다.
요즘에 하도 PC방, 노래방, DVD방이 많았는데,
여기 놀이방이 원조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ㅎㅎ

그리고 고사상 앞에 떡하니 앉아서 부채를 펼쳐들고 있는 위인은
마당놀이에서 빠질 수 없는 '잡색'이라고 하더군요.
잡색은 마당놀이의 분위기를 더욱 재미있게 하는 광대와 같은 역할인데,
관객석과 마당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자칫 극과 극 사이 애매할 때 나서서 신명을 돋구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대부분 각설이 복장을 하는데, 이 각설이도 이날 아주 재미있었답니다.

참, 이 각설이도 제 친구입니다. 어쩌다 봉천놀이마당에 들어갔는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이 좋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친구죠.
쉽게 하기 힘든 각설이 역할도 아주 능청맞게 참 잘합니다.
고사상 앞에 앉은 설정도 그자리에서 즉석에서 나온 돌발적인 행동이었는데,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고사상 앞에서 간단히 제를 지냅니다. 이 제는 처음 봉천놀이마당에 생겼을 때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조금씩 봄의 기운이 싹트는 형상을 표현하는 듯합니다.
꽃다발을 들고 마당을 휘휘도는 춤사위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 분은 재능이 뛰어난지 여러 장면에서 옷을 자주 갈아 입고 나오시더군요^^




봉천놀이마당의 완연한 봄을 상징하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을 때 등장한
봄의 여신(?),이 아닐까 싶은 연기였습니다.
아무튼 조금씩 놀이마당이 활기를 띄어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겠지요.









뜨거운 여름을 상징하는 남성무가 선보였습니다.
호방하고 거침없는 무용을 선보였던 분이죠.
목소리도 천둥처럼 우렁우렁 울렸는데,
마이크가 부실해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안타까운 사연이...










뭐 그렇게 잔치가 계속 이어지다가



양반들이 나옵니다. 태만과 게으름을 상징하는 듯,
극중에서는 먹고 노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양치기(웬 양치기?) 소년이 다가와 위험을 알리지만,
노는 걸 방해했다고 양치기 소년을 묶어버리죠.

이때,



이때 흑두... 머시기라는 실질적인 위험이 엄습합니다.
아마 봉천놀이마당이 나태와 안위에 빠졌을 때 나타난 위기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춤사위는 위압감과 함께
압도하는 무거움도 느껴졌습니다.


위험을 알렸던 양치기 소년입니다.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졌지요.
흑두... 머시기라는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한창 춤을 출때,
손을 풀더니 일어나 비틀대며 무대 중앙으로 나섭니다.
눈은 여전히 가려져 있고, 몸은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져 있는 상태죠.
그리고 무대 중앙에서 쓰러집니다.




가운데 있는 분이 양치기 소년역을 한 분이죠.
아~ 물론 고사가 끝나고 꽃다발을 들고 춤을 추던 그 분이기도 합니다 ㅎㅎ
양치기 소년이 무대 중앙에 쓰러져 있을 때,
그를 구한 건 양 옆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쓰러진 양치기소년을 일으켜 세우고,
그에게 새옷(지금 입고 있는 도포)을 입힙니다.
그렇게 전체 집체극은 끝나죠.

시련도 있었고, 큰 위기도 있었지만,
새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서 지금까지 잘 지내오고 있다,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이제 마지막 공연입니다.









맨 앞에 있는 분이 봉천놀이마당의 큰 스승님이십니다.
제 친구들도 선생님이라고 저를 인사시키게 했지요.
이날도 열정적인 마무리 공연을 주도해 주셨습니다.



이분도 잡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집체극은 좀 아쉬운 감도 있지만,
직장인들이 틈틈이 만들어 꾸며왔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신명나게 살아온 20년처럼
앞으로도 봉천놀이마당이 꾸준히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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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말로 접어드니 날씨는 더 찌는 듯하다. 한창 더운 여름이 되면 무더위의 연쇄살인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복잡한 시대상황이야 어떻든 사람살이는 계속된다. 인간은 전쟁 속에서도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가지 않던가. 사실 총성없는 전쟁일 뿐이지 지금 세상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사람은 사는 거다.


여의도 광장에서는 전국의 교사들이 올라와 학원자율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광장 건너편 여의도 교원공제회관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두 남녀가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의 닻을 올리고 긴긴 항해를 시작했다.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꽃피운 사랑이여~


후배는 참 좋은 교사다. 그리고 좋은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갈 것이다. 언제나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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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길거리에 그대로 멉춰 서고 말았다. 아니다. 바로 그 정신, '그깟 사만원 때문에'라고 말하는 바로 그 정신 때문에 나는 세상에 속아넘어가는 것이다. 다른 자들의 밥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사만원 때문에 이 새벽부터 부지런히 사기를 치고 또 누군가는 그 사만원 때문에 해도 뜨기 전에 가게에 나와 알바를 족치는데, 오직 나만이, 이 한심한 이민수만이 '그깟 사만원 때문에'라고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정신이 나로 하여금, 만원만 더 달라는 사기꾼에게 내 돈도 아닌 남의 돈을 이만원이나 선뜻 내준 것이다. 방값 이십구만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천원짜리 컵라면에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이나 먹는 주제에 말이다.

- 김영하 <퀴즈쇼> 중에서  



살다보면 법이란 것과 마주칠 일이 많다. ‘법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얼마나 멋진 말인가. 덕이 많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리면 ‘그깟 사만원’이라고 말하겠지만, 스스로 착하게 살면서 손해만 보며 살 수는 없다. 고작 ‘이십구만원짜리 고시원에 살’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은 권리 위에서 낮잠자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오늘 결국 노동부에 민원신청을 넣었다. 내용은 퇴직금 미지급. 주위 사람들이 임금체불이나 퇴직금 문제로 골치를 앓았던 이들의 얘기는 남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제 이 문제는 내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인간적으로 지금의 사장에게 유감은 없다. 오히려 재직기간 동안 모질게 굴지 않아 호감이 남아 있는 분이다. 게다가 지금 일하고 있는 선배와도 막역한 사이라서 이런 식으로 일이 꼬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결코 바라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거다. 자꾸 싫은 소리하며 사정하듯이 지급을 종용하거나, 귀찮게 전화해서 괴롭히는 거나, 혹은 그냥 개무시당하는 걸 묵묵히 참는거나 내가 할 짓이 아니다. 그냥 가장 편한 방법과 원리원칙대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법에 의지하는 수밖에... 법이 내편일까? 그건 알 수 없다.


진정이 접수되면 30일 안에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과연 나는 퇴직금 미지급분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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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또다른 욕망의 장소, 경륜장에 다녀왔다. 달리는 자전거들은 모두 여기서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에 사람들은 베팅을 건다.여기는 광명경륜장-스피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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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욜에만 경기장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듯하다. 입장료는 어른 400원 어린이 무료라는데, 미성년자끼리는 입장할 수가 없다. 오늘은 목요일이라 주변이 한산하다. 당연히 내부입장은 안되는 듯했다. 곳곳이 내일부터 시작될 경륜을 앞두고 청소에 한창이었다.


경륜을 무슨 재미로 보나 싶었는데, 뉴스자료에 따르면 2007년 경륜산업의 영업이익이 175억원이었다고 한다. 경륜은 사행산업 중에서는 간신히 꼴찌를 면하고 있다. 카지노가 제일 잘나간다고 하는데 강원랜드만 지난해 영업이익이 4181억이었고, 토토가 2817억, 경마가 1913억이었다. 경륜은 경마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175억원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사행산업이 잘 된다는 건 그만큼 경기가 안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연일 성장하고 있는 사행산업을 그저 웃으며 볼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다.


광명경륜장은 가족나들이 코스로 인기가 있다니 그나마 다행일까. 하지만 막상 경기장 안에서는 도박판다운 욕설과 무질서가 있을 수 있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은 많이 고려해보고 판단해야할 것이다. 주변에 목감천이 있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어 인기다. 산책로도 잘 꾸며져 있으며, 주차는 무료다. 자전거 대여소에서는 꼬맹이들이 탈만한 조그만 세발자전거도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어 아이가 있는 가족나들이 코스로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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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이곳 경륜장까지는 목감천 자전거 도로를 이용했다. 천천히 달렸는데도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달리다보면 천변 산책로나 자전거 도로들이 지차체의 부를 그대로 보여준다. 구로구 쪽보다 광명시 쪽이 훨씬 잘 다듬어져 있다. 위의 사진도 광명시 쪽에서 찍은 건데, 아마 청보리가 아닐까? (정확한 명칭을 아시는 분은 댓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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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 초록색 물결이 일러이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 그 옆으로 자전거 길을 달리면 바람과 청보리가 만든 웨이브가 그대로 페달로 전달되는 것처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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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도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벌과 나비들이 바쁘다. 이웃집 담장 너머에 붉은 장미꽃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집을 나왔는데, 이처럼 환하게 맞아주는 유채꽃은 올들어 처음 만나다 보니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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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세워놓은 내 자전거도 노란색이다. 가벼운 오후의 산책으로 몸도 마음도 달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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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고척도서관에 간다. 대학 때 이후로 이렇게 자주 도서관에 드나드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쉬는 게 이래서 좋은 건가, 싶으면서도 뭐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가겠냐 싶다. 그래서 즐긴다.


아무튼 도서관에 가다보면, 반드시 고척근린공원을 지난다. 제법 규모가 큰 공원이며 광장 외에 스탠드가 갖추어진 운동장도 있고, 미취학 아동들이 즐길만한 조그만 놀이터도 있으며, 운동시설도 갖추고 있다. 평상도 여기저기에 갖추어져 있어 한낮에 아이들과 산책나온 주부들이나 심심풀이로 나온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날은 사생대회가 있었는지, 여기저기 중고등학생들이 많다. 이런 일은 드물다. 평일 한낮에 학생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현수막을 보니 구로구에서 주최하는 구민 사생대회다. 학생뿐만 아니라 주부 등 일반인도 참가하는 대회로 보인다. 호기심에 한바퀴 둘러보자는 마음에 공원을 거닐었다. 그리고 뜻밖의 풍경들을 만났다.


광장의 쉼터는 크게 3군데로 나누어진다. 무대 양편에 한곳씩, 무대 맞은편에 한 곳 이렇게 세 곳에는 그늘막과 평상과 벤치가 놓여져 있다. 사생대회가 끝나고 찾아간 그곳은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심풀이 오락장이었다.


먼저 무대를 마주보고 왼쪽에서는 반상위에서 흑백의 대결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략 60대 이상의 남성노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저 바둑판들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신기할 정도다. 공원측에서 마련한 것 같지는 않다. 바둑이란게 한번 빠지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하는데, 여기의 노인장들은 썩을 도끼 같은 건 없을 듯하다. 이런 노년이라면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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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무대의 오른편 쉼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한나라와 초나라의 싸움판이다. 장이야 멍이야 큰소리가 오가고 장기알이 세차게 장기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지나가는 말처럼 흘려내는 훈수에 화들짝 놀라는 할아버지의 고함이 어딘가 익숙하다. 서울 한복판 공원에서 이렇게 재미있게 장기를 두시는 분들이 바로 이 공원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무대 맞은편 쉼터로 가본다. 멀리서 보니 이곳에는 앞의 두 곳과 다르게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대세다. 간간히 할아버지도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좀전까지 흑과 백, 한나라와 초나라가 싸우는 판이었다면, 여기는 꽃들이 싸운다. 화투. 여기저기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작은 군용 모포까지 준비되어 있다. 거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판돈들은 죄다 10원짜리. 세상은 10원짜리가 모자르다고 난리인데, 이 동네 10원짜리는 죄다 여기 모여 있나 보다. 간혹 100원짜리도 나오겠지만 판은 더 이상 커지지 않는 듯하다.


나같이 젊은 놈들이 낄 판은 어디에도 없다. 한 세상 건너오며 이리저리 치인 분들이 이제 딱정이마저 굳어버린 삶의 상처들을 부려놓고 남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추운 겨울에는 어려웠을 아주 재미있는 풍경들이 5월의 따스한 봄날 공원을 메우고 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 공원에 어르신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농구장에는 10대 학생들이 던지는 공 2~3개가 골대를 번질나게 오가고 있고, 광장은 꼬맹이들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전거질과 인라인을 배우는 초보 젊은 여성의 위태로운 몸동작이 눈에 잡힌다. 우레탄길 운동코스를 열심이 걷거나 뛰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청장년층이다.


일상에 바빠서 찾아다니지 않았던 고척근린공원의 봄은 그렇게 따스하게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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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을 청소했다.


어제밤에 어항을 쳐다보고 있다가 결정했다. 저렇듯 더러운 물 속에서도 이놈들은 잘도 살아간다, 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 며칠전 한마리가 죽었다. 물론 그 죽음의 원인은 알 수 없다. 생긴걸 보면 배가 터져 죽은 거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배가 볼록했다. 배변이 되지 않는 병에 걸린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마리가 그렇게 비명횡사를 했다. 어항청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어항청소는 대공사다. 매달 여과기를 씻어주고, 물을 때때로 갈아주지만 어항을 청소한다는 것은 최소한 2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엄청난 근력이 소모되며, 꼼꼼한 세심함으로 시시각각 물고기의 변화를 관찰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다.


먼저 대야에 어항의 물을 일정정도 담는다. 여기에 당분간 이 물고기들을 놀게 한다. 열대어들은 물의 변화에 민감하다. 물고기가 여기에 있는 동안은 여과기도 작동하지 않고, 대야의 크기도 어항에 비해 턱없이 작기 때문에 물고기들은 긴장한다. 움직임도 줄어들고, 저희들끼리 똘똘 뭉쳐있다. 아가미나 주둥이의 움직임도 둔하다. 저러다 죽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는 어떤 생물이든 쉽지 않은 고난이다.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위의 작업은 먼저 깔데기를 이용해 물을 빼면서 진행된다. 물을 빼고 나서 어항을 통째로 목욕탕으로 옮겼다. 세수비누를 이용해 어항의 겉과 속표면을 닦아주었다. 밑바닥에서는 엄청난 양의 부유물들이 쏟아져나왔다. 물을 여러번 갈아주면서 헹궈야했다. 물고기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갔나 신기할 정도다. 물론 내 무관심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어항 청소가 끝나면 곧바로 다시 원위치로 옮겨놓고 물을 붓는다. 원래는 수돗물을 하루정도 묵히는 게 좋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냥 수돗물을 틀어 새로 부었는데, 거기에 바로 물고기를 넣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이 물고기들이 열대어라서 수온이 최소한 22도 이상은 되어야 했다. 첫 수도물은 16도 정도에 불과했다. 먼저 히터를 씻어서 최대 온도로 히터를 올려서 넣었다. 그래도 물은 너무나 천천히 데워졌다. 물이 데워지는 동안 여과기를 씻었다. 여과기는 한달에 한번씩 청소를 해주는데도 많은 부유물들이 쏟아져나왔다. 여과기를 청소하고 다시 온도계를 보았는데 이제 18도를 넘기는게 아닐까. 결국 뜨거운 물을 더 부어주어 20도로 맞추었다. 수온을 올려주기 위해 어항등까지 환하게 켰다. 그 외에 물갈이약도 넣어주고, 정화제도 넣어주었다.


간신히 물을 20도로 맞추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고기들을 어항에 넣었다. 갑자기 집어넣으면 놀라니, 바가지에 담아 조금씩 어항의 물과 이전의 물을 섞어가면서 서서히 담가놓았다. 역시 물의 변화가 어색한지 녀석들은 바닥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히 지켜보았다. 조금씩 구석구석을 탐색하던 녀석들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여전히 차가온 수온과 낯선 물이 걸리긴 하지만 이 정도면 별 이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녀석들은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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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삶은 잠겨 있는 열쇠를 풀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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