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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아래에서

부음을 듣다

구상나무 2008. 10. 2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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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하는 중에 후배가 전화를 해왔다. 학교 때부터 싹싹하고 밝고 명랑했던 후배인데, 나와 함께 여러 일들을 같이 진행했던 터라 나름대로 정도 들었던 후배였다. 그러던 후배가 어느날 군인과 결혼했다. 그러다 보니 군인 따라 여기저기 지방으로 돌아다녀서 연락이 한동안 끊어졌다. 다시 연락이 된 것은 한 달 전이었을까. 우연히 마트에서 내 동기를 만나 수다를 떨다가 나에게 전화를 했던 거다.

“선배, 오랜만이죠. 저 부천 살아요. 애 둘 키우다 보니 연락하기도 쉽지 않네요. 시간 되면 OO선배와 부천에서 봐요.”

벌써 애가 둘이나 되는 주부가 됐는데도, 여전히 그 목소리는 대학 때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톡톡 튀는 고음과 안 봐도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띠고 있을 그 얼굴이 선했다. 그런 상상은 충분히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후배가 월요일부터 전화를 한 것이다. 평범한 안부를 물어왔고, 그에 대답하면서 나 역시 그의 안부를 물었다.

“오늘 새벽에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이 특유의 말투는 여전했지만 미세한 떨림은 전해졌다. 그 순간부터 아주 잠깐 서로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신의 슬픔을 직접 전해들은 일이 있던가? 이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천천히 전하는 그의 말에서 눅눅한 물기가 조금씩 전해졌다. 담담한 듯 하면서도 오래 묵혀둔 것 같은 그의 말 언저리에서 나는 맴돌았다. 꼭 들려보겠다는 말을 하면서 통화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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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야근이다. 아마도 오늘은 가보기 힘들 듯하다. 내 차림새를 보니 흰 사파리 재킷에 흰건빵 바지를 입고 있으니, 이게 어디 놀러가는 사람의 복장이지, 문상 가는 사람의 복장은 아니다 싶다. 물론 복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걸 스스로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만은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요즘같이 미세먼지가 많다는 가을 가뭄에 어쩌자고 이런 복장으로 집을 나섰는지, 아주 조금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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