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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확실하던 것들도 점점 희미해져 가지.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살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라며 제딴엔 포용력 있게(?) 돌려 생각해 보는 제주도 생겼어.  좋게 말하면 겸손해지는 거지만, 더럽게 말하면 좀 비겁해지는 거였지.  적응? 좋지, 아주 좋은 말이야. 반항하고 개기는 후배들에겐 그런 말을 하곤 했었어. "적.응.하.라.고!!!' 그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순응하며 길들여졌던 우리 스스로가 말야. 

서른도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치기 어린 의혹으로 삶을 채우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줄 알면서도 그저 세상 돌아가는 것에 쉽게 눈돌릴 수가 없는 내 안의 어린 마음이 살포시 고개를 들더라. 그 마음 지긋이 눌러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정/말/ 곤혹스럽다.

오늘도 사람들과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촛불 이야기, 독도 이야기, 역사 이야기, 지금의 현실과 우리의 이상에 대한 이야기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주제를 어찌할 줄 모르다가 그만 내지르고만 내 그 허접한 말들에 내 스스로 치여 꾸물거리고 있는 이 밤. 비는 참 잘도 오지. 요놈의 입-방-정... 명박아~ 나 좀 조용히 살고 싶다...

한때 자칭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아이디를 참 좋아했더랬고, 그것을 싸이 미니홈피 제목으로, 네이버 블로그 제목으로 썼던 적이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디에서 흘러들어온 물이라도 바다로 흘러가는 걸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강물처럼 꾸준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었을 거다.

하지만 강물은 그저 잔잔하게만 흐르지는 않잖아.  세상의 모든 도시는 흐르던 강물이 범람해서 만들어진 옥토 위에 세워졌어. 강물은 그렇게 도시를 만들었고, 도시는 강의 범람 위에 세워졌던 거지.

오래전 시골에서는 동네 개천이 물난리가 나서 넘친다 싶으면 나와서 막걸리를 먹으며 팔자좋은 구경을 했다지. 한해 농사야 망친다 싶어도 다음해 농사부터는 풍작이 기대되기 때문이었다잖아. 흐르는 강물은 가끔 땅을 욕심내고, 그 욕심이 땅을 더 비옥하게 한다는 거는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촛불의 민심이 강둑을 넘어 범람하고 있는 거야. 가둬두고 막아두고 통제하려 했지만 이미 어찌할 수 없을만큼 넘쳐 흐르고 있어. 지금 좀 불편하고 어렵고 힘들지만, 그 촛불 덕분에 우리는 다음 세상을 더 살만한 세상이 될 거라 기대하는 거잖아. 이거 아니었으면 이민 갔을 사람 많을걸? 하하하

난 그래서 지금의 촛불이 참 고맙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미안해. 도덕을 팔아 양식을 챙기는 세상에 한몫했던 사람으로서, 스스로 참회의 촛불을 들 용기 조차 없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어두운 거리를 밝힌 촛불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거야. 촛불은 더러운 세상에 깨끗한 한줄기 빛으로 고귀한 희생의 넋으로 우리에게 왔어.

오늘따라 이재무 시인의 <한강>이라는 시가 참 나에게 와 닿는다.





한강 

- 이재무-


강물은 이제 범람을 모른다
좌절한 좌파처럼 추억의 한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는 크게 울지 않는다
내면 다스리는 자제력 갖게 된 이후
그의 표정은 늘 한결같다
그의 성난 울음 여러 번 세상 크게 들었다
놓은 적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약발 떨어진 신화
그의 분노 이제 더 이상 저 두껍고 높은
시멘트 둑 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오늘 권태의 얼굴을 하고 높낮이 없이
저렇듯 고요한 평상심, 일정한 보폭 옮기고 있다
누구도 그에게서 지혜를 읽지 않는다
손, 발톱 빠지고 부숭부숭 부은 얼굴
신음만 깊어가는, 우리에 갖힌 짐승 마주 대하며
늦은 밤 강변에 나온 불면의 사내
연민, 회환도 없이 가래 뱉고 침을 뱉는다
생활은 거듭 정직한 자를 울린다
어제의 광명 몇 줄 장식적 수사로 남아 있을 뿐
누구의 가슴 뛰게 하지 못한다 그 어떤 징후,
예감도 없이 강물은 흐르고 꿈도 없이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찬란한 야경 품에 안은 강물은
저를 감추지 못하고
다만, 제도의 모범생이 되어 순응의 시간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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