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마포를 지나 공덕오거리를 지나면 공덕동이 시작된다. 진입로만 보자면 왕복 8차선과 10차선을 넘나드는 큰 대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길가로는 서울 어느 거리보다 가지런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현대도시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2002년에 있었던 공덕동의 래미안 아파트의 청약경쟁률은 2,213대 1을 보여주기도 했다.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 본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일대의 거리는 서울 도시 근대화의 멋으로 불릴 만한 곳이다. 그러나 그 스카이라인 뒤로는 여전히 허름하고 무너질 것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 많다. 내가 일하는 출판사 뒤편으로도 그런 집들이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공덕동(孔德洞)이라는..
보통 내가 일하는 곳을 물어 보면 나는 마포구 공덕동이라고 한다. 공덕동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오래전에 이곳에서 근무를 한 일이 있기 때문에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이라면 깜짝 놀라곤 한다. 그렇다, 나는 다시 컴백했다. 예전처럼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내년에도 교과서도 만들고 지도서도 만들고 교재도 만드는 일을 할 것이다. 일이 일을 만들고 그 일이 다시 일을 까는 그런 수렁에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의 심정이다. 그래 알만큼 알고 겪을 만큼 겪어봤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는 심정이다. 하여튼 다시 공덕동이다. 아무래도 이제 이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놀아보니 그렇다. 오래 놀면 마음 약해..
한국관광공사에서 도전 트래블러거를 모집한다고 한다. 트래블로거에 선정이 되면 여행 경비의 일부 지원해 준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해 내용을 들춰보니 반갑게도 지정 여행지에 태안도 포함되어 있다. 다음은 지원양식에 따른 이벤트 응모 내용이다. - 지원 사유 :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태안은 지난 기름유출 사건 때 자원봉사를 다녀온 적이 있던 곳입니다. 당시 함께 했던 후배들과 괜찮아지면 꼭 한번 일부러라도 놀러 가자고 약속했지요. 그렇지 않아도 10월에 갈 생각인데, 지원해 주시면 멋진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 여행 지역 : 충청남도 태안 - 여행 날짜 : 10월 3일 ~ 10월 4일 - 여행 컨셉 : 다시 찾는 태안, 살아나는 태안 - 여행 일정 : 10월 3일 출발하는 1박2일 일정 ..
낯설지만 재밌었던 레바논 영화 . 사실 이 영화가 어느 나라 영화인지는 인터넷을 뒤져보고 알았다. 영화를 보고서는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고, 영화 팸플릿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이슬람과 그리스도교가 공존하는 모습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연애결혼을 인정하면서도 아랍의 보수적인 문화로 미혼 여성이 혼자 호텔을 예약할 수 없고, 혼전 성관계가 용납되지 않지만 그러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처녀막 재생 수술이 보편화되어 있는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레바논 여성들의 솔직하고 유쾌한 이야기가 지중해의 따스한 빛과 카라멜의 황금빛 영상으로 스크린을 감싸고 있다. 영화 은 그런 배경을 묵직하게 깔았지만, 여성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닿아 유쾌하고 발랄하게 상황을 이끌어갔다. 우리나라 영화 를 연상할 수 ..
“이거 어디서 났어요?” “요 앞 길 건너 가게에서 샀어요.” “참 예쁘네요.” “화분이 마음에 들더군요.” 사올 때 이 녀석의 안내 팻말에 ‘더피’라고 적혀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줄고사리과 식물이라고 한다. 학명은 Nephrolepis cordifolia. 원산지는 일본이지만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구슬같이 작고 약간 동그란 듯한 잎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탐스럽다. 물을 좋아하며 음지에서도 잘 자란다. 사무실 반응은 좋았다. 예전 직장의 어느 부서는 전략적으로 화초를 분양했다. 직원들은 대부분 책상에 작은 화분 하나쯤은 기본이었고, 어떤 이는 3~4개를 올려놓아 마치 화단처럼 꾸민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사무실의 조그마한 공간에는 어김없이 큰 나무나 화분이 놓여 사무실 공기를 맑게 순환시켜 주..
만두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 거다. 그런데 한때 국민 대다수가 만두를 끊은 일이 있다. 이른바 ‘불량만두’ 사태. 지금도 업체 관계자들은 그때 생각만 하면 몸서리를 친다고 한다. 당시 피해액만 5천여억원, 게다가 젊은 만두업체 사장의 자살까지 불러왔다. 후속 취재에 따르면 보도되지 않은 또 다른 이가 자살을 했다고 하니 사람만 두명이나 죽어나간 사태다. 물론 만두 먹고 죽었다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전국언론노조 민두언론실천위는 당시의 보도에 대해 ‘탐사보도의 부재’와 ‘선정주의적 접근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어렸을 적 만두는 집안에 큰 행사가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집안의 모든 식구들이 여기에 매달려 누구는 밀가루를 빚고 누구는 속을 만들고, 누구는 속을 꼼꼼하게 채워야 했다. 밀가루를 반..
무영탑을 만든 아사달 같이 전문가들이 만든 작품이 아니다. 거친 손으로 투닥투닥 두드려 만들어낸 흙인형이다. 당연히 누가 왜 만들었는지 세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그저 누군가의 무덤 한켠에 자리잡아 이생의 삶을 다시 저승에서도 잘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토우는 보통의 신라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표현한 UCC, 즉 자체개발 콘텐츠인 셈이다. 천년의 세월을 넘어 토우가 여전히 우리에게 재미있고 유쾌한 상상을 선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천년전 이 토우를 만들었던 이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그 유쾌한 만남이 즐겁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신라관 한편에는 이 토우들만 모아 독특한 전시를 펼쳐놓고 있다. 손가락 두마디 만한 크기의 토우들이 보여주는 세상은 신라인의 유쾌함..
언제부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했다. 늦은 저녁 지하철 풍경은 모두 각자의 일상을 마치고 하나둘 어깨에 짊어진 짐들을 질질 끌며 집으로 가고 있다. 저 짐들은 다시 내일 아침이면 질질 끌리며 직장으로 학교로 다시 경쟁의 세상으로 가지고 가야 할 것들이다. 세상의 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을까. 짐의 형식이나 방법은 달랐을 테지만,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반드시 짊어질 억겁의 운명은 하나였을 거다. 생-로-병-사, 21세기 과학이 풀지 못하는 의문은 몇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 경계에 다가서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안의 괴로움까지 풀 수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만났다. 마른듯하지만 강건하고, 부드러운 듯하지만 날카로운 조각선들, 저 보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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