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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밤 12시 반, 이제는 전철도 끊기었는지, 남부순환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만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동안 글쓰기를 잊었다. 글감이 떠오르면 그것을 곱게 모아서 잘근잘근 빻아 다양한 재료를 넣고, 색깔 있는 양념으로 버무려, 먹기 좋은 요리로 만들어 보려 했던 나는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어서 다시 노트북을 열고 몇자 적어 보는데, 다시 마른 커서만 깜빡이고 있다. 커서는 계속해서 SOS 모스 부호를 보내고 있지만, 구해줄 방법이 없다. 모니터 저 편에서 보내는 신호는 계속 눈앞에서 깜빡인다.


사실 난 답을 기다리고 있다.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상이 있는 질문은 어떠한 답이든 들을 수 있지만, 결국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의 대답은 어느경우는 끝내 듣지 못하고 잊혀지는 경우가 더 많다. 난 지금 질문에 휩쌓여 있다. 대답해 줄 사람도 없다. 좋은 질문을 만들어 보아야 한다. 커서는 여전히 답을 줄 수 없다. 질문을 만들어 보자. 내 인생을 향해 던지는 진지하고 가슴 아프게 절절한 질문을 던졌을 때 진실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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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가 블로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들어가 보니 이미 190여개의 포스팅이 올라가 있다. 주로 시와 시에 대한 단상, 그리고 일상의 상념들을 담았다. 시 때문일까, 글들이 남다르다. 쉽게 따라갈 수 없는 그의 감수성이 느껴진다. 여전히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있어 좋다. 그러면서도 이제까지 왜 숨겨왔을까.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참 많은 걸 이해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서툴던 것일까, 부끄러웠던 것일까, 꺼렸던 것일까?

요새 인기 있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소양 없는 자가 글자를 알면 안 된다고 말한다. 당시로서는 소양 없는 자가 글자를 안다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을 게다. 기득권을 지켜주고 있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양 없는 자가 돈도 권력도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기득권을 형성하고 그들만의 질서를 만들었다. 여기에 파열음을 내는 어떠한 시도도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집단 불법세력으로 몰아 세운다. 지금의 시대에 글자를 아는 것만으로는 권력도 돈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글자는 힘이 될 수 있고 권력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세상의 텍스트들이 그렇다. 이제 인터넷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권력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 SNS를 모르는 정부 여당을 향해 수많은 민초들이 SNS를 통해 비판하고 저항한다. 여기서 다시 정기준은 이렇게 예견했다. 글자를 알게 되면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고, 글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자 할 것이라는 점. 지금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질서에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SNS에서 유통되는 많은 텍스트들은 정제되지 않은 것이 많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일 것이다. SNS는 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돈과 권력이 소양없는 자에게 폭력이 되는 것처럼 SNS에서 흐르는 수많은 텍스트를 자신의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소양이라는 것(그것은 단순한 주관일 수도 있고, 정보를 거르고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일 수도 있다)이 필요하다.

리영희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돈과 권력이 없는 99%가 글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그 자체로 진보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자신을 드러내겠지만 돈도 권력도 없는 99%에게 블로그와 SNS는 아주 괜찮은 매체인 것이다. 이제 글자를 아는 것을 넘어 글을 써야 하는 시대다. 수많은 글들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권력과 질서에 저항하고 있다. 블로그든 SNS이든 이제는 쓰고 알리고 공유하고 소통하는 일은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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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SNS(social network service)들이 나오고 있고,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그 차이는 직접 운영해 볼 때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는 선배가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학원에 보내면서 떠오르는 단상을 담담하게 쓴 페이스북의 글에 대해 위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경쟁적 교육의 상징이자 아이콘이 된 학원에 보내는 엄마의 고민과 그와 함께 찾아올 경제적인 부담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에 보내달라는 아들의 청원에 대한 생각 등을 담은 그 글("나는 엄마다")은 그렇게 심각한 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댓글은 마치 사교육에 맞서는 전사와 같은 문체로 그이에게 준엄한 논리로 조언(혹은 충고)를 했나 보다. 댓글을 작성하는 동안 사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선배"의 고민에 대해 생각했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진정성은 있었지만, 어쩌면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으로 밀어 넣는" 건 아닌가 고민하는 "부모"의 진솔한 고백에 대한 배려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페이스북은 트위터와 다르다. 트위터는 주로 정보의 생산과 확산에 적합하다면, 페이스북은 지인들과의 감성적 연결에 더 적합하다. 담벼락(페이스북의 개인 홈페이지)과 타임라인(트위터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글들도 그렇게 구별된다. 그렇다고 해서 페이스북에 적합한 글, 트위터에 적합한 글이 따로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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