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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이제 됐어?"


끊임없이 홀로 전장터로 내몰리는 전사의 비애였을 것이다. 수없이 무찌르고 베어냈지만 여전히 몰려드는 검투사들, 끝나지 않을 원형경기장의 전투. 그렇게 원형경기장의 중앙에 우뚝 섰지만, 저 시체들 너머 더 큰경기장에서 더 잔인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누군가가 알려줬을 것이다. 아니, 이미 중앙에 올랐을 때 그는 알았을 것이다. 나는 누구를 쓰러뜨리고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내 자리를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다른 검투사들과의 싸움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이 피의 비는 언제 그칠 것인가.

사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경쟁 사회에 익숙해져갔다. 다행히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더 강한 자라고 자위하고 있다. 사실 원형경기장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대학을 나와서도, 직장에 다니면서도, 그 치열한 전투의 트라우마는 번번이 삶의 한가운데서 불쑥 불쑥 고개를 내밀기 일쑤다. 그렇게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며 끝나지 않은 전투를 벌이고 있다. 더 큰 원형경기장에서 더 큰 어른들과 벌이는 전투는 그저 성적표의 성적이 좀 떨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삶을 뭉텅이로 도려내고 나락으로 처박아 버릴 수 있는 잔인한 싸움이다.





어쩌면 그 아이는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됐어?"와 "이제 됐어!" 그가 마지막에 썼다는 그 물음표는 오히려 느낌표 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금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극렬히 저항하고 있다. 그네들이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은 철저히 막혀 있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인 자살로 내몰리고 있다. 절규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 안에서라도 아이들이 숨쉴 수 있게 하자는 것을 이념 갈등으로 치부하는 저 몰지각한 어른들에게 우리 아이들의 절규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이 잔인하고 비열한 전투는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단지 몇몇 한줌도 안되는 승자, 그것도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 등극한 승자들을 위한 요식행위에 동원되는 그저그런 사람들을 피할 수 없는 패배자, 루저의 나락으로 내볼고 있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꿈꿀 수 있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교육, 그것은 원형경기장의 담장을 허물어 버리는 시작이다.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구하고 미래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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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대선 운동 당시였을 거다. 어느 강당에서 문성근 씨의 절절한 연설을 듣던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진한 눈물을 흘렸더랬다. 그때 그 연설을 들었던 나로서는 노무현의 눈물이 그저 연극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문성근 씨의 연설은 민주주의를 위해 피흘리신 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 분들을 기리는 연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노무현의 눈물을 보면서 '참 여린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그 감성으로 슬프고 힘든 서민들의 눈물을 알아주길 바라는 한편으로는 아 저렇게 여린 분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어 그 험난한 길을 돌파해 갈 수 있을까 라는 약간의 기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기우는 현실이 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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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을 뒤늦게 찾아서 올린다. 민주인사들에 관련한 내용이 아니라 노무현 후보의 역경과 삶에 대한 연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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