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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동네나 학교 운동장에 친구들과 놀 때면 늘 깍두기 한두 명씩은 껴있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아주 어렸을 적에 형들과 놀고 싶은 마음에 깍두기를 자처하던 때가 있었죠. 이때 깍두기는 기량이 많이 떨어지거나 신체적으로 핸디캡이 있는 이들을 놀이에 껴줄 때, 특별한 지위나 능력을 부여해 놀이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깍두기라서 행복해요

며칠 전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 현호(가명)와 신영(가명)은 어렸을 적에 늘 깍두기를 단골로 맡았던 사람들이었죠.

현호는 어렸을 적에 운동신경이 몹시 둔했다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낀 팀은 패배를 밥 먹듯이 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눈치를 보는 게 무척 싫었다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기는 깍두기가 되어 놀이에 참여하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그럴 때, 실수를 하거나 도전의 한계치에 다다르면 오히려 친구들이 도와주거나 요령을 더욱 자세히 알려주었고, 격려나 응원의 목소리도 다른 친구들에게 보다 더 많이 받았다지요. 게다가 다른 친구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기술이나 도전을 해결하면 다들 함께 좋아하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특권적인 배려를 받은 셈이지요. 현호는 깍두기 생활을 하다가 어느새 기량과 실력이 늘어서 어느 날은 깍두기를 하지 않을 때도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깍두기는 죽기보다 싫었다구

반면, 신영은 정반대로 깍두기 되는 게 무척이나 싫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작아 또래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면 깍두기를 도맡아 했죠. 친구들은 깍두기가 아니면 놀이에 끼워주지 않겠다고 그러고, 그러면 자신은 깍두기 되는 게 싫다며 억지를 부리지만 번번이 어쩔 수 없이 깍두기를 하여 같이 어울렸다고 합니다. 신영은 그래서 악착같이 혼자 또는 짝궁과 따로 연습을 했죠. 그리고 그렇게 연습한 끝에, 여전히 자기보다 키가 큰 아이들이 머리 위로 올리는 고무줄은 잡을 수 없었지만, 낮은 위치의 고무줄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현란한 실력을 보여주었다고 하는군요. 신영은 그런 데서 자신감을 느끼고,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을 키워왔다고 하는군요. 다른 친구들과 당당히 겨루고 싶고 아무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싶었던 바람이 때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죠.

‘깍두기’, 현호에게는 승패를 떠나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어울릴 수가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죠. 반면 신영에게는 놀이에서 자신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렸던 친구였습니다.

깍두기를 생각하는 인권의 마음

인권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마땅한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인이나 노인, 여성, 청소년, 성적소수자들은 어쩌면 놀이의 ‘깍두기’같이 보다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깍두기라고 해서 언제까지 깍두기만 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언젠가 그 사람은 깍두기에서 벗어나 하나의 온전한 객체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깍두기’라는 사회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그 기회이며 삶의 자극인 셈이죠. 깍두기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마음, 어릴 적 놀이의 추억에서 인권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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