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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스스로 저차원적인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 비유하고 있으면서도 고차원적인 동작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해내는 기계와도 다르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존재죠. 어느 하나로 결론지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듯이 아이들 역시 공부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조금만 참고 바짝 쪼이면 잠시나마 성적을 올릴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자주성과 창의성 등은 그 과정에 말살되기 쉽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장래(대개는 대학과 직업의 동의어입니다)를 위해 서로가 조금만 참고 노력하자고 합니다만 실상 보이는 현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적을 통해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는 극히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의지를 밀고 갈 수 있도록 책임감을 북돋우고, 필요한 조건과 환경을 같이 고민해 만들어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절제와 인내의 힘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학교 공부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교훈이겠죠. 성적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긍정적 결과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석차는 이 과정에서 교훈과는 전혀 관계없는 부산물입니다. 석차는 사회가 필요로 해 아이들을 서열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고르는 사회가 아니라 대학이 아이를 고르는 사회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습은 바뀌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통계청 결과에 따르면 15~24세의 사망 이유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자살의 이유는 가족 문제나 이성 문제 등도 섞여 있겠죠. 하지만 학교 및 학업과 관련된 자살 기사는 심심치 않게 신문 지면 한쪽을 채우고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심스럽지만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만큼 성적과 체벌을 통해 청소년의 삶을 옥죄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권리와 자유도 주어져야 합니다. 권리와 자유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하다며 권리와 자유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위의 악순환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아이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이들을 험악한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로 만들어 옆의 친구를 쓰러뜨리고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보다는 드넓은 자연에서 모험을 통해 협력과 협치를 이해하며 책임과 의무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이 아닐까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고 미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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