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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큰집 풍경



처음으로 큰아버지와 단둘이 함께 한 여행은 시제를 지내러 간 남해였다. 대학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 20년 가까이 지난 세월이다. 허물어져가는 종가집이라지만, 그래도 나름 종손이라고 해, 나만 유일하게 남해의 조상 묘소에 찾아간 것이다. 큰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해 나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낳은 자손이 지금도 하나의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큰아버지의 이야기는 구례로 들어와 일가를 이룬 앞 세대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떠나는 유태인들의 이야기처럼 장대한 대서사시가 큰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그 당시 나로서는 양자역학에서 나오는 소립자 이론만큼이나 실체가 불분명하고 이해가 어려운 이야기였다. 당시의 나로서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지난한 과정의 앞세대의 삶이 있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것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내 선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큰아버지의 조촐한 고희연이 지난 토요일 구례에서 있었다. 큰아버지의 동생과 그 자식 손자, 그리고 친척분들만 참석한 자리지만 식당 한켠을 온전히 차지하며 시끌벅적했다. 손자손녀들도 큰애가 이제 어린이집에 다니는 정도이지만 제법 소리를 내는 터라 정신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일가친척들만의 자리라 제법 즐겁고 유쾌한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돌아보면 나로서는 몹시 아쉬움이 남는다. 큰아버지가 가진 삶의 무게는 한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그 전 세대의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큰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들을 녹취해 볼 생각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먼저 살다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들려주는 것도 삶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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