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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아래에서

어항을 청소하다

구상나무 2008. 5. 1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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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을 청소했다.


어제밤에 어항을 쳐다보고 있다가 결정했다. 저렇듯 더러운 물 속에서도 이놈들은 잘도 살아간다, 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 며칠전 한마리가 죽었다. 물론 그 죽음의 원인은 알 수 없다. 생긴걸 보면 배가 터져 죽은 거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배가 볼록했다. 배변이 되지 않는 병에 걸린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마리가 그렇게 비명횡사를 했다. 어항청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어항청소는 대공사다. 매달 여과기를 씻어주고, 물을 때때로 갈아주지만 어항을 청소한다는 것은 최소한 2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엄청난 근력이 소모되며, 꼼꼼한 세심함으로 시시각각 물고기의 변화를 관찰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다.


먼저 대야에 어항의 물을 일정정도 담는다. 여기에 당분간 이 물고기들을 놀게 한다. 열대어들은 물의 변화에 민감하다. 물고기가 여기에 있는 동안은 여과기도 작동하지 않고, 대야의 크기도 어항에 비해 턱없이 작기 때문에 물고기들은 긴장한다. 움직임도 줄어들고, 저희들끼리 똘똘 뭉쳐있다. 아가미나 주둥이의 움직임도 둔하다. 저러다 죽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는 어떤 생물이든 쉽지 않은 고난이다.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위의 작업은 먼저 깔데기를 이용해 물을 빼면서 진행된다. 물을 빼고 나서 어항을 통째로 목욕탕으로 옮겼다. 세수비누를 이용해 어항의 겉과 속표면을 닦아주었다. 밑바닥에서는 엄청난 양의 부유물들이 쏟아져나왔다. 물을 여러번 갈아주면서 헹궈야했다. 물고기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갔나 신기할 정도다. 물론 내 무관심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어항 청소가 끝나면 곧바로 다시 원위치로 옮겨놓고 물을 붓는다. 원래는 수돗물을 하루정도 묵히는 게 좋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냥 수돗물을 틀어 새로 부었는데, 거기에 바로 물고기를 넣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이 물고기들이 열대어라서 수온이 최소한 22도 이상은 되어야 했다. 첫 수도물은 16도 정도에 불과했다. 먼저 히터를 씻어서 최대 온도로 히터를 올려서 넣었다. 그래도 물은 너무나 천천히 데워졌다. 물이 데워지는 동안 여과기를 씻었다. 여과기는 한달에 한번씩 청소를 해주는데도 많은 부유물들이 쏟아져나왔다. 여과기를 청소하고 다시 온도계를 보았는데 이제 18도를 넘기는게 아닐까. 결국 뜨거운 물을 더 부어주어 20도로 맞추었다. 수온을 올려주기 위해 어항등까지 환하게 켰다. 그 외에 물갈이약도 넣어주고, 정화제도 넣어주었다.


간신히 물을 20도로 맞추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고기들을 어항에 넣었다. 갑자기 집어넣으면 놀라니, 바가지에 담아 조금씩 어항의 물과 이전의 물을 섞어가면서 서서히 담가놓았다. 역시 물의 변화가 어색한지 녀석들은 바닥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히 지켜보았다. 조금씩 구석구석을 탐색하던 녀석들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여전히 차가온 수온과 낯선 물이 걸리긴 하지만 이 정도면 별 이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녀석들은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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