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난 이를 기억하는 방법

2011. 3. 15. 09:53구상나무 아래에서/밥과 꿈과 사람



“오빠 내가 만약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나를 생각하면서 슬퍼해주고 날 생각해 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얼마 전 그녀의 편지 묶음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런 와중에 인터넷에서는 ○○○리스트라는 것이 돌고 있다. 뒤늦게 발견된 그의 편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이름들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안타깝고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에 대한 사람들의 복수심과 사회 정의를 내세우는 이들의 비분강개가 그 바탕에 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편지는 범죄 사실에 대한 제보 단계에 불과하다.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한 일이다. 물론 죽음으로 사실을 알리고자 한 고인의 의도를 진실의 기초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편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여론 재판에 휘둘리도록 하는 것은 인권의 원칙에 맞지 않다.
 
그이가 자살을 선택하게 된 배경을 이 시대의 공권력이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믿음들이 넓게 퍼져 있다. 편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수사에서 경찰이 지나치게 저자세로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질타는 곰곰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서민들을 수사할 때와 권력자를 수사할 때의 이중 잣대에 대한 불만들이다.
 
그녀가 자살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운가?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한국 사회에서 성과 권력, 돈과 성이 가지고 있는 관계가 얼마나 저열하고 치졸한 것인지는 컴퓨터 모니터, 휴대전화, TV,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날아드는 이메일과 문자 서비스, 외모지상주의와 성을 상품화하는 드라마나 광고, 낯 뜨거운 전단지와 명함 광고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 성매매에 대한 인식, 나날이 발전하는 성산업 등 그이를 죽음으로 내몬 한국 사회의 실체적 진실은 이것이 아닌가. 인간의 존엄과 기본적인 권리가 돈과 권력으로 무시될 수 있는 사회의 본 모습이다.
 
당연히 경찰이 그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이 드러나는 인물들은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수가 아닌 변화라는 점을 인식하자.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말이 아니다. 인권을 침해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법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한 산자들의 호의가 넘쳐나서 또 다른 인권의 침해가 벌어지고 있다. 분명 그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죽은 이의 편지에서 ‘복수’를 이야기하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말의 성찬이다. 죽은 이를 기리는 것은 ‘기억’이다. 산자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호의는 그를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는 그러한 삶과 죽음이 우리 세대, 다음 세대에서는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는 약속이 먼저 우리를 떠난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