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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임
사과했을까? 어찌됐든 사과를 하기 위해 노력했을 거다. 그럼에도 그녀는 법적 책임을 물었을 것이고 적법한 처벌과 그에 따른 사과를 원했다. 그의 죽음으로 처벌이 끝난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 가장 큰 처벌이 된 것일까? 죽음은 사과를 대신할 수 있을까? 그의 죽음으로 그녀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

 

2. 양심과 도덕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자신을 눌러온 '책임'. 그래서 그는 '책임'의 방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법률적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은 그에게 어쩌면 구질구질하고 어정쩡한 책임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양심과 도덕이 묻는 '책임'의 무게는 법보다 더 무거웠을 것이다. 법에 따라 책임을 다하기에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결국 목숨으로 양심과 도덕이 물은 책임을 다하겠다고 생각하고 결국 실행해 버렸다. 내가 지나치게 미화한 것일까? 법적 사회적 정치적 사망을 피하려는 자를 자를 옹호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노무현과 노회찬이 그러했듯, 그도 법과 정치의 책임을 뛰어넘어 더 가혹한 형벌로 자신을 단죄한 것이다. 살아 당하는 고통도 힘든 일이지만, 죽어 책임을 다하는 일도 어려운 일은 마찬가지다.

 

3. 사과
그녀는 사과 받지 못했다. 그가 책임의 무게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그것이 사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미안하다 말해달라고 했는데, 그는 다시 그만의 방식으로 사실을 드러냈다. 그녀의 인생은 소모되었다. 타자화되었고, 피상화되었다. 더 깊은 오해와 불신으로 추락시켰다. 인생의 모든 것이 후회되고 서울시에서 일한 것이 더없이 저주스러워지는 일이다. 아니, 서울시에 살았다는 것이, 아니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 이 세상에 나왔단 사실조차 부정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과라는 것은 내 존재의 상처를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결국 그녀의 상처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해받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4.
그는 위대한 인물이다. 우리 사회의 질적 성장은 그의 성실한 노력과 자기 희생에 어느정도 기대고 있다. 그가 뿌린 희망의 씨앗들이 여전히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난 그를 위대한 인물로 기억하고 싶다. 

다만, 피해 여성에 대해서도 보호해야 한다. 어찌됐든 자신만의 방법으로 처벌을 감행한 그의 마음과 고뇌를 생각해서라도 그녀의 삶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 제발 더 이상 그녀를 타자화하지 말자. 그녀의 삶을 지키자. 그것이 먼저 삶을 마감한 그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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