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 4.7. 아침 자전거 출근 10.6km
🏁 2021년 누적 주행거리 300.8km



공공성을 지키는 일

최근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있다. 미국 방송사 NBC에서 만든 의학드라마로 뉴욕의 공공병원 '뉴암스테르담'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의 공공성을 다루는 드라마이다. 

미국은 이미 최첨단 민영 의료 시스템 중심의 국가이다. 그런 미국 사회에서 공공병원의 위치는 어떠할까? 뉴욕이라는 대도시에 자리잡은 공공병원 ‘뉴암스테르담’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재정(자본)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병원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공병원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이사회와 병원장은 정부나 주 예산을 끌어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부자들로부터 기부를 최대한 많이 받는 것이 지상과제다. 문제는 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한 의료 행위에 집중하고 돈이 안되는 의료는 멀리하는 것에 있다. 심장외과 의사들은 이 병원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이들이는 의과이고, 종양과 과장은 환자들을 만나기보다는 TV 출연을 통해 병원 기부금 모금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건 공공의료가 할 일은 아닐 것이다. 해법은 자본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공공성의 회복에 있다. 주인공 맥스 굿윈은 이 병원의 의료팀장으로 부임한다. 그리고 그는 공공병원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대장정에 나선다. 

맥스 굿윈이 이 병원에 의료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한 일이 돈을 제일 많이 벌어들였던 심장외과 의사들을 모두 해고하는 일이었다. 이유는 수익을 목적으로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많이 했다는 것. 그동안 병원이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심지어 비호하기 했던 주요 의과를 없애버린 것이 그의 첫 업무였다. 돈이 아닌 환자를 중심으로 진짜 의료를 하라는 것이 그의 요구였다. 이와 함께 그는 병원 곳곳을 쏘다니며 의사들에게 말한다.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How can I help)” 그리고 말도 안되는 요구들이 나와도 만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불가능할 도전에 뛰어든다. 

<뉴암스테르담>은 마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의사들은 병원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장벽과 저항을 물리쳐 나가야 한다. 환자를 지키고 의료를 행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맥스의 지휘 아래 단순 두통 환자를 하루종일 진찰하고, 거리의 노숙자를 상담하여 병원으로 데리고 오는가 하면, 교도소를 직접 방문해 집단 진료로 의료 환경을 개선해 나간다. 병원을 찾는 불법이민자, 약물중독자, 범죄자 등은 대부분이 보험이 없거나 무일푼이고, 게다가 치료가 어려운 병이거나 막대한 치료 비용이 들어간다. 맥스를 비롯한 의사들의 시도는 언제나 병원 이사회의 문앞에서, 때로는 거대 제약회사의 횡포로, 그리고 경직된 정부 조직에 의해 좌절된다. 민영화된 의료 시장에서 공공병원이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은 환자를 받아 더 많이 치료하면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맥스의 생각이다. 그러기에 공공성은 효율성의 뒷받침없이는 허울좋은 구호에 불과하다. 반대로 효율성만을 내세우는 공공성은 이미 공공적이지 않다. 이 불안한 줄타기를 드라마의 주인공 맥스는 능숙히 해내었고, 그런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몇년전에 보았던 <뉴스룸>은 언론의 모습을 정보 제공자인 앵커와 제작자, 기획자들의 치열한 논쟁, 타협의 과정이 잘 전달되면서 언론과 정치의 민낯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미국 드라마에서 진보적인 이슈를 다루는 방식은 집요하고 디테일하며 파격적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다양한 인종들이 주인공이고, 대개의 경우 동성 부부와 가족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이들 가족이 겪는 자잘한 문제(육아, 가사, 여가)들은 이성 부부의 가족이 겪는 일과 그리 다르지 않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 사건과 사례들이 캐릭터에 녹아들어가 있고, 잘 모르는 사건이나 의학 용어, 의료 행위들도 이야기의 맥락에서 이해되며 빨려들어가게 만든다. 이것이 서사의 힘이다. 

오랜만에 좋은 드라마를 만났다. 이렇게 재미있고 사회적인 드라마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시즌 3로 이어지고 있는데 계속 다음 편이 기대되는 요즘이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 욕심, 삶  (0) 2021.06.16
나와 그대들의 20대를 위하여  (0) 2021.04.09
공유 자전거가 알려 준 것  (0) 2021.03.24
도라지를 다듬다가  (0) 2021.03.22
마포대교 리어카  (0) 2021.03.19
댓글